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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3호 2024년 4월] 뉴스 본회소식

사비백제 숨결 따라 부여 한 바퀴

봄 국토문화기행에 동문 50명 유네스코 세계유산 4곳 돌아봐


사비백제 숨결 따라 부여 한 바퀴

412일 국토문화기행 참가자들이 국립부여박물관에서 백제금동대향로를 살펴보고 있다.

봄 국토문화기행에 동문 50
유네스코 세계유산 4
곳 돌아봐

잠실 종합운동장이 어딜까요? 과거 백제 700년 역사 중 500년 가까웠던 한성 백제, 그 왕궁터인 몽촌토성 입구입니다. 여러분은 그곳에서 오신 겁니다.”

일행 사이에 하는 감탄이 터졌다. 412부여 사비백제 역사 탐방을 주제로 떠난 본회 국토문화기행. 늘 출발지였던 잠실이 목적지인 충남 부여와 연결되며 특별한 의미를 입었다. 한성 백제에서 사비 백제로, 절묘한 여정을 동문 50명이 함께했다.

2012년 유네스코가 공주, 부여, 익산의 백제 유적지를 백제역사유적지구로 묶어 세계문화유산에 등재했다. 8곳으로 부여에만 4(정림사지, 관북리 유적·부소산성, 능산리 고분군, 나성)이 있다. 첫 번째로 정림사지에 도착하자 부여 주민인 이문표(체육교육84-89) 동문이 반갑게 맞았다. 성봉주(체육교육84-89) 동문의 인솔 하에 이 동문이 전체 안내를 맡고, 곳곳에서 현지 문화관광해설사가 설명을 보탰다.

부여 도심 한가운데 정림사지 5층석탑은 고아한 백제문화의 경지를 몸소 증언한다. 석탑인데도 목탑의 형태를 간직한 이 탑엔 쉬이 무너지고 불타는 목탑의 한계를 새로운 물성과 기술로 극복하려던 노력이 엿보인다. “판축 기법으로 서로 다른 성질의 흙들을 다져 판 쌓듯 차곡차곡 바닥을 쌓았습니다. 뒤틀림과 흔들림을 최소화한 덕에 1500년 동안 꿋꿋이 서 있죠. 백제 나성도 같은 방식으로 축조했고요.” 탑신을 자세히 보면 당나라가 백제를 정복하고 공적을 새겨넣었다. “자랑하고 싶은 싸움, 숨기고 싶은 싸움이 있죠. 당나라는 백제를 멸망시키고 그렇게 자랑하고 싶었나봐요. 당시 백제의 위상이 우리가 아는 것 이상이 아니었을까 생각해 봅니다.” 몇 글자 수모에 무너지지 않는 기품과 당당함을 우러러보게 된다.



정림사지 5층석탑을 보는 국토문화기행 참가자들.

부여의 고도 제한이 우리에겐 열린 하늘을 볼 수 있는 기회가 됐다는 이 동문의 말처럼 부여의 하늘은 눈에 걸리는 것이 없다. 정림사지 뒤편 나지막한 부소산은 왕이 거닐던 후원이자 산성을 쌓아 유사시 최후의 방어선 역할을 했다. 성인 입장료 2000원도 지공거사는 지하철처럼 무사통과. 삼충사 진입로에서 이 동문이 외진 곳에 파묻히다시피 한 아치형 콘크리트 구조물을 가리켰다. “저 터널 보이시나요? 하수구 입구 같은 저게 신사로 들어가는 진입로였단 사실을 알면 깜짝 놀랄 겁니다.” 일제가 서울 남산에 조선신궁을 짓고도 모자라 옛 백제 도읍에 세우려던 부여신궁의 흔적이다.

일제의 패망으로 신궁은 파괴됐지만 땅속에 뚫은 의문의 통로는 남아 그 어떤 가치 부여 없이 존치돼 있다. 신궁 터엔 보란 듯이 백제를 지킨 충신 성충, 흥수, 계백 장군을 모시는 사당이 들어서 지금도 매년 10월 삼충제를 지낸다고 해설사가 설명했다. 삼충사 지붕 용마루 끝 장식은 솔개 꼬리를 뜻하는 치미(鴟尾)’로 백제의 건축 양식을 재현했다. 유사시 금방 건물을 들고 날아오를 듯한 곡선이 일품이다.



부소산성에 남은 부여신궁의 흔적.


부소산성 삼충사 앞에서 기념사진.



이어 찾은 부여국립박물관. 어두운 방에서 동문들이 유리장 사면에 코를 바싹 대고 홀린 듯 한 곳을 바라본다. 금빛 광채를 뿜어내는 백제금동대향로 진품이다. “향로 속 다섯 악사가 보이시나요? 악사들이 펼쳐내는 향연의 조화가 이뤄질 때 지상세계는 태평성대가 펼쳐진다 하고요. 용이 상징하는 수상세계와 산악의 지상, 봉황의 천상 세계가 서로 무관하지 않은 건, 용이 물고 있어야 할 여의주를 봉황이 턱밑에 괴고 있네요.” 수상·지상·천상 세계가 굽이치고, 진기한 동물과 인물상까지 하루 종일 뜯어봐도 모자랄 디테일을 이 동문이 차근차근 짚어주니 지나가던 관광객도 슬몃 끼어들어 귀를 기울인다.

능산리 고분군과 나성을 볼 겸 백제왕릉원으로 향했다. 백제 고분 7기와 왕실 사찰터가 있는 이곳에서 31년 전 관광객용 주차장을 만들려 땅밑을 살피다 금동대향로를 발견했다. 진흙과 물이 가득찬 목곽 수조에서 기적처럼 온전하게 보존돼, 비극적인 국운을 직감한 누군가 후일을 기약하며 가장 소중한 것을 숨겼으리란 상상을 불러일으킨다. 지상의 것들은 소멸하고, 왕의 무덤으로 추정되는 고분들도 일찌감치 도굴이며 일제의 조사에 몸살을 앓았지만 땅밑에선 1400년간 고이 보물을 숨겼다가 후손에 돌려줬다. 발굴 당시 모습을 그 자리에 모조품으로 재현해 놓았다.

여정의 마무리는 우리나라 최고(最古)의 인공연못 궁남지. 그 유명한 궁남지 연꽃은 아직 진흙 속에서 꿈꾸고 있을 시절이라 사위가 고요한데, 김찬근(철학69-73) 동문이 품에서 서양 피리’(리코더)를 꺼내 내리 두어 곡조를 들려주니 신선 놀음의 극치다. 헤어지기 전 이문표 동문은 깜짝 선물로 금동대향로에 百濟자를 결합한 로고를 새긴 초콜릿을 나눠주며 부여에 오시면 언제든 연락 달라고 인사했다. 동문이란 인연으로 하루종일 길잡이를 자처한 이 동문에게 박수로 화답했다. 유은실(의학76-82) 동문은 다음엔 공주-부여-익산으로 이어지는 백제 여행을 계획해야겠다고 말했다. 국토문화기행은 오는 9월 대전 고택탐사로 이어진다.





궁남지에서 여유를 즐기는 동문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