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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8호 2023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서울대 총장, 최고 실력자를 외부서라도 모셔와야”

이우종 (공업교육72-76) 청운대 명예총장
“서울대 총장, 최고 실력자를 외부서라도 모셔와야”
 
이우종 (공업교육72-76)
청운대 명예총장


혁신은 가죽을 벗겨내는 것 
외부 시각의 혹독한 평가 수반


4차 산업혁명 및 인구절벽 시대에 접어든 대한민국은 여러 측면에서 국가쇠락의 위기에 봉착해 있다. 이러한 위기를 극복하는 데 교육개혁이 절대적인 역할을 해야 한다고 역설하는 이우종 청운대 명예총장이 대학의 위기와 혁신, 그리고 서울대의 역할에 대해 입을 열었다. 
이우종 동문은 경원대, 가천대에서 부총장을 지냈고, 청운대에서 총장을 역임하는 등 40여 년 동안 대학교육에 종사해온 전문가로 꼽힌다. 2020년, 전 세계 고등교육기관의 혁신교육사례를 평가해 순위를 매기는 ‘WURI 랭킹(The World's Universities with Real Impact Ranking 2020)’의 2개 부문에서 청운대를 30위권에 진입시켰고 이후 2년간 지방의 작은 대학을 세계 100대 대학의 반열에 올린 교육혁신가다. 10월 30일 서울 강남에서 이 동문을 만났다.

“오늘날 대학의 시초는 중세시대 때 길드 조직원에 대한 교양 교육이었습니다. 상인들이 자신의 교양 함양을 위해 대학을 설립했고 소위 문사철, 문학 역사 철학이 학문의 기초가 됐지요. 이어 르네상스 시대가 도래하면서 학문이 세분화 됐고 다시 산업혁명을 거치면서 교양인보단 전문인 육성에 대학의 무게중심이 맞춰졌습니다. 시대의 변화에 따라 학문의 중심, 나아가 대학의 양상이 변화해왔죠. 4차 산업혁명 시대를 맞으면서 열린 초연결 사회에서 대학이 혁신을 주저해선 살아남을 수 없습니다.”

우리 사회 곳곳에서 입버릇처럼 혁신을 외치며 다양한 시도를 꾀하고 있지만, 막상 들여다보면 그것이 ‘개선’에 그치는 경우가 많다고 이 동문은 말한다. 개선은 문제점을 찾아 해결하는 것인데 비해 혁신은 위기의 인식에서 시작된다고. 혁신은 기득권을 포기하는 희생이 수반되며, 인구 문제를 비롯해 기후변화, 자원고갈, 팬데믹, 핵전쟁 위협, 사회 불평등 등 위기를 인식하고 변화의 동력으로 삼는다는 점에서 개선과 구별된다고 말했다.

“혁신은 말 그대로 가죽을 벗겨내는 것입니다. 필연적으로 고통을 수반하죠. 따라서 조직 내부의 시각보단 외부 시각의 혹독한 평가가 병행돼야 합니다. 그런 측면에서 최근 출범한 모교 제도혁신위원회가 기대에 부응할 수 있을지 좀 걱정이 돼요. 법인화 이후에도 특기할 만한 발전적 모습을 보여주지 못했다는 자각은 높이 평가하지만, 22명 위원 중 외부 위원이 3명뿐인 점은 아쉽습니다.” 

이 동문은 모교에 쓴소리를 하면서도, 인구감소 시대에 대비한 ‘강한 개인 육성’, 다양한 배경의 학생들이 기숙사 생활을 통해 리더십을 함양하는 ‘학부기초대학’ 등 유홍림(정치80-84) 모교 총장의 운영 방향은 올바르게 잘 잡았다고 평했다. 과거의 총장선출제도 하에선 총장 연임이 사실상 불가능했던 것에 비해 최근 개정된 제도하에선 현실적으로 연임이 가능해진 점도 희망적으로 봤다.

“서울대 총장은 하고 싶은 사람 중에서 뽑는 게 아니라 학교에 꼭 필요한 최고 실력자를 외부에서라도 모셔오는 게 바람직합니다. 경험, 학식, 덕망은 물론 학교 재정을 끌어올 수 있는 능력까지 겸비해야죠. 직선제로 뽑으면 포퓰리즘에 빠질 공산이 커요. 혁신에 뒤따르는 고통을 회피하려는 경향이 짙을 수밖에 없고요. 지금 시기엔 교수, 학생, 직원에게 인기가 없더라도 과감하게 구조조정을 단행하는 그런 총장이 필요합니다. 이길여(의학51-57) 가천대 총장을 예로 들 수 있죠.”

이길여 총장은 1997년 가천의대를 설립했고 1998년 경원대를 인수, 2000년부터 직접 총장을 맡아 2005년엔 가천의대와 가천길대학을, 2006년엔 경원대와 경원전문대를 통합했고, 2012년엔 이들 4개 대학을 모두 통합해 지금의 가천대를 탄생시켰다. 통합 추진 당시엔 엄청난 반발에 직면했지만, 전무후무한 발전을 일군 오늘날 가천대학교의 위상을 보면 누구도 이 총장의 결단에 이의를 제기할 수 없다. 

“제가 부총장으로서 이길여 총장을 5년 동안 모시고 일했습니다. 학교운영의 중심에 항상 미래를 최우선으로 두셨죠. 막대한 재산을 전부 학교법인에 환원해 발전 동력으로 삼았고요. 미래 학령인구 감소와 학문의 변화를 예측하고, 소프트웨어와 AI를 접목한 전방위적인 교육 혁신을 추진하셨죠. 이길여 총장이 20년 이상 재직하면서 일관성 있게 추진한 결과라고 생각합니다.” 

이 동문은 강의동도 운동장도 없이 7개 국가에 있는 기숙사만으로 설립된 미네르바 스쿨에서 미래 교육의 시사점을 찾을 수 있다고 말했다. 대학은 학습자 중심의 맞춤형 교육으로 문제해결 능력을 배양하고, 대학원은 선택과 집중을 통한 연구 환경을 조성해 학문의 깊이를 추구하는 수월성 교육으로 획기적인 혁신을 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대학이 구태를 고집해선 희망이 없습니다. QS나 THE 같은 세계대학평가에 구애받을 필요도 없다고 생각해요. 연구, 평판, 재정 등 전통적 유명 대학에 유리한 지표로 이뤄진 기존 랭킹은 대학의 혁신을 제대로 평가하지 못합니다. 29위든 41위든 일희일비 말고 진정한 혁신을 추구해 나가야죠.”

이 동문은 반도체 인력 양성을 위해 최근 국가 차원에서 수도권 대학의 정원을 대폭 늘렸고, 그중 상당 부분을 모교가 차지한 것에 대해 “서울대라면 국가균형발전의 차원에서 지방대학의 고통을 분담하는 게 더 바람직했다”며 안타까워했다. 

“학령인구 감소와 대학 간 경쟁 심화로 지방대학 중 상당수는 이미 폐교 위기에 처했습니다. 그러나 지방대학은 평생학습 시대에 발맞춰 재직자 및 성인 재교육의 역할도 맡고 있어요. 수도권 대학이 대신할 수 없는 나름의 몫을 하고 있죠. 개인에게 한 줄 세우기 성적보다 자신의 장기를 살리는 게 중요하듯, 대학도 획일화된 서열보단 각자의 특장점을 살리는 데 집중해야 합니다. 그 선택과 집중 과정엔 다른 누구의 이해관계도 아닌 대한민국 교육의 미래가 있어야 합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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