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3호 2023년 6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소똥구리 보존하려 소 두마리 키웁니다”

이강운 (대학원02-08)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소똥구리 보존하려 소 두마리 키웁니다” 
 
이강운 (대학원02-08)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소장



멸종위기종 복원·증식 활동
전재산 털어 연구소 차려 


“잠깐 열 테니 잘 보세요.” 5월 26일 강원 횡성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내 멸종위기종 실험실. 이강운 소장이 실험용 케이지의 덮개를 들었다. 지푸라기 섞인 소똥 뭉치 주변을 새끼손톱만 한 곤충이 빨빨거리고 있었다. 소똥구리였다. “국내에서 멸종되지 않았나요?” “맞아요. 몽골에서 들여온 걸 국립생태원과 나눠 키우고 있죠. 내가 이 소똥구리를 키우려고 소도 키웁니다.”

이곳의 ‘귀한 몸’은 소똥구리만이 아니다. 멸종위기종 1급 붉은점모시나비, 2급 애기뿔소똥구리와 물장군, 금개구리…. 지질학적으로 1만여 년 전부터 현재까지를 가리키는 ‘홀로세’에 종의 운명이 다할 위기에 처한 생물들이다. 이 동문은 하루 24시간 이들을 보살피고 되살리며, 또 언제 사라질지 모르는 곤충들의 생애를 애벌레 시절부터 정리하는 일에 27년 세월을 바쳐 왔다. 

“혹시 붉은점모시나비를 봤어요? 서식지화 하려고 애벌레를 바깥에 뒀는데 지금 한창 나올 때거든요.” 맑은 개울과 울창한 수풀, 팔랑대며 쫓아오는 이름 모를 나비. 연구소의 첫인상은 ‘낙원’이었다. ‘모두가 싫어하고, 징그럽다 하는 곤충의 천국을 만들어 보겠다’는 야심 하나로 2만2000평 산골짜기 땅에 곤충이 먹고살 풀과 꽃을 심고 연못을 파서 일궜다. 야생 생물을 서식지 아닌 곳에서 체계적으로 보전·증식할 수 있는 ‘환경부 지정 서식지외보전기관’이다. 

“20여 년간 멸종위기종의 생태를 완전히 파악했다”는 그가 거대한 규모의 물장군 수조를 보여줬다. 깨끗한 물에살고 동종포식을 하기에 1마리씩 독방을 주어 600여 개체를 키운다고 했다. 애기뿔소똥구리 케이지에선 주인공 대신 소똥을 파헤친 흔적만 볼 수 있었다.  

“야생동물의 똥을 냄새로 찾아 보는 즉시 해체하는 소똥구리는 생태계 파수꾼입니다. 어떤 종은 똥 덩어리를 둥글게 말아 멀리 굴려서 땅에 묻고, 애기뿔소똥구리의 경우 똥 밑으로 굴을 파서 똥 덩어리를 옮기죠. 똥 속에 굴을 만들고 알을 낳아 똥을 먹어치우는 종도 있고요. 이 과정에서 땅을 갈아 공기를 통하게 하고, 식물의 씨앗을 퍼뜨리고, 응애를 태우고 다니면서 경쟁자인 파리 애벌레를 잡아먹어 주기까지 해요. 아무도 고마워 않는데 6500만년간 지구를 청소하며 생태계 순환을 도운 겁니다.” 

풀 섞인 신선한 소똥만 먹는 이들이 사료 먹는 소가 늘고, 기후변화로 지표면 온도가 높아지자 전세계에서 사라지고 있다. 오직 소똥구리를 위해 이 동문은 초지에 두 마리 소를 놓아 기르고 소똥 빚는 수고도 마다 않는다. 외국 학자들이 찾아왔다가 1000여 종의 애벌레 사육 규모에 한 번, 소를 보고 두 번 놀란다. 

생존 조건이 까다로운 멸종위기종을 보다 보면 ‘이러니 살기 힘들지’ 싶어 안쓰러울 때도 있지만 바로 그 독특함에서 새로운 가치를 읽어냈다. 유전체 연구를 통해 곤충이 가진 신약 후보 물질을 찾고 있다. “붉은점모시나비가 영하 48도의 혹한을 견디는 점에서 착안해 치주염 유발 박테리아를 억제하는 항균물질, 아토피 피부염에 효과 있는 물질을 발견해 SCI급 학술지에 논문을 냈어요. 굼뜨고 느리지만 애벌레들마다 식물의 독성을 해독하는 물질이나 방법이 있고 가치가 무궁무진하죠.”

곤충을 잡고 막을 궁리만 하는 시대에 어쩌면 역행하고 있는지 모른다. 모교 농생대에서 쓴 박사논문 주제도 호랑나비 보존을 위한 서식지 조성. “심사에 두 번 떨어졌어요(웃음). 대규모로 작물을 심으면서 곤충은 없애야 할 존재가 됐고, 곤충학은 해충을 없애는 학문이 됐죠. 곤충학회 기조 강연에서 제가 그랬어요. ‘여기 있는 분들 전부 곤충 죽이는 사람들 아니냐. 사랑 좀 해달라’고요.” 

힘들고 어려운 연구를 지속하는 건 ‘생물다양성이 밥 먹여준다’는 걸 입증하고 싶어서기도 하다. “‘그래, 다양하면 좋지’ 하면서도 대부분은 왜 생물다양성을 지켜야 하는지 몰라요. 생물에서 나온 유용한 물질로 이익을 보려 해도, 자국이 보유하지 못한 생물이면 많은 로열티를 내야 해요. 생물다양성이 ‘국부의 원천’인 이유죠.” 연구소에서 신종 1종, 미기록종 8종도 발견했다. 
 
그의 노력으로 한때 25개체까지 줄었던 붉은점모시나비는 개체 수가 여덟 배로 늘었다. 얼마 전 충북 영동에 암수 50쌍을 방사했고, 이달엔 경기도 광주에 금개구리를 방사했다. 1만마리를 키워도 100마리 살아남기 힘든 것이 야생의 세계. 고이 길러 보내줄 땐 꼭 자식 시집장가 보내는 기분이다. 거의 모든 일을 아내와 둘이 도맡아 더욱 그렇다. 

“생물 다루는 일에 출근과 퇴근이 어딨나요. 이 외진 곳에 와서 일할 사람도 없으니 우린 하루도 이곳을 비운 적 없어요.” 다소 지치고 고달픈 기색이었다. “한 번도 안 그랬는데, 몸이 힘들어선지 요새 자꾸 이런 얘길 하게 돼요. 어떤 종을 연구하고 증식하기까지 몇십 년의 시간은 단순 비용으로 환산이 안 되죠. 개인이 할 일이 아닌데, 뭣도 모르고 시작해 이만하면 잘 버텼지 싶어요.” 

한때 언론사에서 생태 탐사 프로그램을 진행했고, 자연에 대한 호기심과 사랑을 주체할 수 없어 전재산을 털어 연구소를 차렸다. 방사 프로젝트를 맡거나 글을 쓰고 강의해서 얻은 수입, 개인 연금까지 보태 연구소를 운영하고 있다. 1만원씩 개인 후원에 동참하는 이들도 든든한 지원군이다. 

연구소에 살면서 매일 4km씩 걸어 학교를 다녔던 아들딸은 어느덧 장성해 부모가 됐다. “우리 손주들은 벌레를 무서워하지 않는다”며 그는 함박웃음을 지었다. “우리 모두는 나비와 애벌레를 좋아했어요. 어른들이 근거 없이 만지면 안 된다, 아프다 겁 주니 무서워하게 된 거죠. 해로운 벌레가 아닙니다. 세상을 살리고 질병을 퇴치할 곤충임을 기억해 주세요.” 유튜브 채널 ‘HIB’에서 연구소에 사는 곤충들의 흥미진진한 생태를 볼 수 있다.     
                             
박수진 기자 

▷홀로세생태보존연구소 홈페이지: http://www.holoce.net/
▷곤충들의 흥미진진한 생태를 담은 유튜브 채널 'HIB': https://www.youtube.com/@hib4345





연관 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