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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1호 2023년 4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치과는 돈 없으면 못 가는 곳, 과연 옳은 생각일까요”

한동헌 모교 치대 교수·전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

“치과는 돈 없으면 못 가는 곳, 과연 옳은 생각일까요”
 
한동헌 (치의학93-00)
모교 치대 교수·전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





돈의동 쪽방촌에 진료소 개소
치과의·치위생사 등 무료진료 


치아는 신체 중 가장 단단한 부위다. 치아 겉면 법랑질의 경도는 백금과 철의 경도에 맞먹는다. 그렇게 단단한데 가난에는 속수무책이다. 소득 분위가 한 단계 낮아질수록 치아는 두 개씩 빠진다는 말이 있을 정도다. 

치과의사이자 전 행동하는의사회 이사장인 한동헌 모교 치대 교수는 ‘돈 없으면 치과 못 간다’는 통념에 반문한다. 그리고 ‘입 속에 보이는 삶의 격차가 온전히 능력과 노력 탓일까’ 되묻는다. 지난해 12월 그의 주도로 사단법인 행동하는의사회가 서울 돈의동 쪽방촌에 쪽방 주민을 무료로 진료하는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이하 센터)를 열었다. 

3월 27일 돈의동 입구 쪽방상담소 5층의 센터에서 한 동문을 만났다. 유리창 너머로 보이는 나란한 지붕 아래 방을 쪼개어 살아가는 주민이 500여 명. 4개월간 80명의 신규 환자가 센터를 다녀갔다. 누적 환자 수는 200명에 달한다.  월·목·금요일 하루 3시간씩 센터 문을 열고 치과의사 6명, 치위생사 4명이 교대로 나와 진료를 본다. 상근 치위생사를 제외하면 모두 무보수다.  

“2000년대 이후로 치과 진료 봉사를 할 수 있는 곳들이 많이 사라졌어요. 치과 진료에는 장비가 필요해서 이동 진료에 한계가 있죠. 한 달에 한 번 날을 정해 진료소를 열어도 환자들이 찾기 쉽지 않고요. 진료가 필요한 분들이 살고 있는 곳 근처에 상시적인 진료소를 만드는 게 진료 받는 분도, 봉사하는 분에게도 도움이 될 것 같았습니다.”  

돈의동은 행동하는의사회가 2003년부터 의료 봉사를 해온 곳이다. ‘나눔과 열림’의 기치 아래 젊은 의사들이 결성한 행동하는의사회는 서울·인천·대구·부산에 각각 진료소를 차리고 중증 장애인, 저소득 계층, 이주 노동자 등 의료 취약 계층 봉사를 실천하고 있다. 치과 진료소를 차리는 게 숙원이던 차에 서울시와 우리금융미래재단의 지원을 받아 쪽방촌에 센터를 낼 수 있었다. 

100% 예약제로 운영되는 센터는 엑스레이와 진료 의자 두 대를 갖추고 충치 치료, 발치와 레진, 틀니 치료 등 보철 치료를 하고 있다. 칫솔질과 같은 구강 관리법을 알려주기도 한다. 진료실에서 “치료했어도 이를 잘 안 닦으면 충치가 생길 수 있다. 정기적으로 오셔서 저와 함께 칫솔질을 해보자”는 그의 목소리가 들리더니, 이내 환자가 손에 칫솔을 쥐고 나왔다. “저희 웰컴 기프트예요. 원래는 이 닦기를 같이 하거든요. 칫솔을 가지고 오시면 저희가 닦아 드리면서 어떻게 관리할지 알려 드리고 있죠.” 





돈의동 쪽방상담소 5층 우리동네구강관리센터 전경. 이곳에서 쪽방 주민을 대상으로 무료 치과진료가 이뤄진다. 



환자 일곱 명이 다녀가자 센터 영업 시간인 3시간이 훌쩍 지나갔다. 사실 그는 치과에 오는 사람뿐만 아니라 ‘오지 못하는 사람들’에 대해 오래 생각해온 치과의사다. 지역·연령·계층과 관련된 구강 건강 불평등을 꾸준히 연구하고 목소리를 내왔다. ‘씹는 능력이 떨어지면 불량한 영양섭취로 뇌기능에도 영향이 간다’며 치매 예방을 위해선 국민을 위한 구강보건사업이 강화돼야 한다는 연구 결과를 내놓기도 했다.  

쪽방촌에서도 가장 큰 고민은 아직 센터를 찾지 않은 80%의 주민들이다. 그는 “이곳에 오실 때 갖는 기대가 있다. 그걸 채워드리지 못하면서 ‘이 정도로 만족하라’는 말을 하고 싶지 않다”고 했다. ‘무료니까 좋은 게 좋은 것 아닐까’ 하는, 얄팍하고 시혜적인 생각을 깨는 말이었다. 

“이곳의 환자분들은 충치 치료가 필요한 경우보다 치아를 상실한 경우가 많아요. 병원에 온다고 뚝딱 해결되는 게 아니라 이를 뽑고, 뽑은 자리가 아물어야 하고, 이가 빠진 지 오래되어 틀니제작이 까다로운 경우도 많죠. 또 하나는 틀니가 생각보다 불편하다는 겁니다. 자연히 씹는 것이나 모든 면에서 나은 임플란트를 기대할 수밖에 없어요. 그 기대를 채워야 한다는 생각이 있죠.” 

센터 환경상 숙달된 인력과 시간이 필요한 임플란트 시술을 진행하기 어려운 것도 있지만, 결국은 구강 건강권에 대한 얘기다. 가뜩이나 보장성이 낮은 치과의료분야에서 소외계층은 치과 문턱 넘을 엄두도 못 낸다.

“사람이 건강하게 살기 위한 필수적인 구성 요소가 있다면, 그것만큼은 보장해주는 게 우리 사회의 원리고 원칙이잖아요. 암 환자에겐 본인 부담 상한액이 있고, 장애인도 생활에 필요한 보장구를 지원해주는데 이는 꼭 없어도 잘 산다고 생각하는 것 같아요. ‘치과 치료는 원래 비싸다’, ‘구강 건강이 나빠진 건 네가 관리를 못해서다’란 논리인데, 좀 이상하지 않나요? 내 이로 씹어서 먹을 수 있다는 건 건강한 삶에 필수적인 구성요소예요. 그렇다면 그걸 갖출 수 있게 사회적인 보장 대책이 마련돼야 한다는 거죠. 취약 계층에게 ‘열심히 돈 모아서 임플란트 하라’고만 말하기보다, 이들에겐 지원의 폭과 너비가 더 두텁고 넓어져야 한다고 생각해요.”

세상을 바꾸겠다는 의지와 실천이 그를 움직이는 두 축이었는지 모른다. 대학시절 치의학과 대표와 치대 학생회장을 지냈고, 행동하는의사회는 정상훈(의학91-98) 초대 대표의 권유로 창립 초기부터 함께했다. 서울대, 연세대, 이화여대 등의 90년대 초 학번 의대생을 주축으로 출발한 행동하는의사회는 초반부터 회원들의 적극적인 후원 활동을 바탕으로 부산에 장애인치과를 설립하는 등 실천적인 활동을 해왔다. 한 동문은 2012년부터 5년간 국제보건의료재단 민관 협력 사업으로 라오스 오지 마을에서 의료봉사를 펼치기도 했다. 

올해 센터의 목표는 문턱을 더 낮추고 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치과가 되는 것이다. 주민들을 직접 찾아가 칫솔질 등 예방 교육도 실시할 계획이다. “2, 3년 꾸준히 하면 주민 500분 모두 한 번씩 봐드릴 수 있을 것 같아요. 이가 없는 분은 틀니부터 해드리고, 여러 방법으로 음식을 씹을 수 있도록 해드려야죠. 치료된 치아는 관리도 중요한 만큼 주민 분들과 관계를 잘 만들어 나가고 싶어요.” 

의료인은 행동하는의사회 봉사인력으로 참여할 수 있고, 비의료인도 후원회원으로 얼마든지 도울 수 있다.  

“꿈을 키워보자면 이곳을 치과뿐만 아니라 양방, 한방까지 종합적으로 치료하는 곳으로 만들 수 있을 것 같아요. 마침 어디서든 찾아오기 좋은 위치에 있죠. 창신동, 서울역 등 2000여 명 서울 쪽방 주민 전체로 대상을 확대하는 구상도 해보고 있습니다.”

박수진 기자


▷행동하는의사회 블로그: https://blog.naver.com/dah2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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