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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2023년 2월] 문화 신간안내

“남북 농지개혁 차이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이어져”

건국사 재인식 대한민국 건국과 제헌국회
화제의 책
 
화제의 책
 
“남북 농지개혁 차이가 자본주의, 공산주의 체제로 이어져”


건국사 재인식
대한민국 건국과 제헌국회
 
이영일 정치58-64 
헌정회 통일특위 위원장 


“유엔 감시 아래 자유총선거로 수립된 대한민국을 ‘소남한단정(小南韓單政)세력으로 몰아붙이면서 이승만 대통령을 민족분열의 원흉으로 매도한 것은 바로 소련의 대남심리공작이었다.”  
“1946년 1월 열린 제1차 미소공동위원회가 성과 없이 끝난 후 소련은 2월 12일 북한에 중앙정부(김일성이 만든 북조선임시인민위원회를 지칭)가 세워졌다고 공표하고 3월 5일을 기해 ‘무상몰수·무상분배’ 토지개혁령을 발표했다.”

‘건국사 재인식’을 최근 출간한 이영일 동문은 1960년 서울대 4·19 학생시위를 주도했고, 국토통일원의 통일연수원장과 3선 국회의원을 지냈다. 저자는 평소 분단시대의 국민적 가치관이나 험난했던 건국역사, 특히 제헌국회의 성립이나 당시의 지도자들, 건국과정의 내외정세를 바로 알게 하는 교육이 부실하다고 생각해 이번에 책을 쓰게 되었다고 말한다. 
제1부 ‘건국전사에서 대한민국 수립까지’에서 저자는 1896년에 발족된 독립협회운동 등 민간중심의 자주독립운동을 당시 조정의 실권세력은 고종황제를 폐위하고 공화정을 꿈꾸는 반역으로 몰아 탄압했고, 이승만 등은 대역죄인으로 몰려 한성감옥에 갇혔다고 기술했다. 

“이승만은 시종일관 미국을 이용하여 자주독립의 길을 뚫으려고 애썼던 용미(用美)주의자였다.” 그가 반공포로를 석방하고 북진통일을 외치면서 미국과 벼랑 끝 협상을 벌인 끝에 한미상호방위조약을 체결하고 주한미군의 상주를 포함한 국방강화와 전후복구를 위한 경제 원조를 확보한 것은 그의 용미외교가 얻어낸 빛나는 업적이었다고 저자는 평가한다.

제2부 ‘반미특위와 농지개혁’에서 저자는 북한의 농지개혁은 ‘무상몰수, 무상분배’라고는 하지만 관리권은 농민위원회 또는 인민위원회가 가지며, 농민은 수확하면 3할을 돈으로 인민위원회에 내야 한다. 결국 농민이 분배받은 것은 경작권뿐이며 토지의 소유권은 국가가 가졌다고 했다. 반면 남한 지역을 관장하던 미군정은 1948년 5·10선거를 앞두고 일본인들로부터 몰수한 귀속농지를 한국 농민들에게 장기분할상환을 전제로 방매하기 시작했다. 그 해 8월 15일 대한민국정부가 수립된 이듬해 정부와 제헌국회는 농지개혁을 싸고 논란을 거듭한 끝에 6·25 발발 직전인 1950년 3월에야 ‘농지소유상한선 3정보 미만, 보상지가 15할, 연간보상 3할, 상환연한 5년 균분’을 골자로 하는 농지개혁을 단행했다. 남북한 간에 단행된 농지개혁 방법의 차이는 결국 그 후 자본주의와 공산주의 체제의 정착으로 이어졌다. 

한편 대한민국 건국 시점을 보는 역사관점은 다수가 1948년 8월 15일로 보지만, 진보적 사관을 갖는 상당수는 중국 상해 임시정부가 수립된 1919년 4월 11일로 보고 있다. 
이경형 편집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