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7호 2022년 12월] 기고 에세이

중용에 깃든 춤사위

이동호(조소64-72) 조각가
동문기고

중용에 깃든 춤사위
 
 

이동호
조소64-72
조각가


가야금 탄주에서 보면, 그 소리가 현(弦)위에서 격렬하게 튕겨져 나올 때보다도 그러한 격정적인 탄주를 하고 난 뒤의 정지상태 속에서 현들이 저절로 울어대는 대목에서 멋은 격정 상태를 달리게 된다. 춤추는 이가 신바람 나게 돌아갈 때보다 그 동작을 멈추고 신명을 어깨에 실어서 천천히 올렸다가 내리는 동작에서 ‘도저히 표현할 수 없는 우리 민족에 깃든 참 멋’에 더 한층의 흥을 느끼게 된다. 

정지상태에 가까운 우리 민족의 노래와 춤의 동작에서 성적(性的) 열락의 최절정이 지나면서, 전율의 여파를 상징하는 정중동(靜中動) 자세에서 우러나오는 ‘멋’의 배후에는 자연과 조화를 추구하는 동양 한국인의 정조(情操)가 깔려 있으며, 그 정조는 중용의 도를 요구하고 있다.

중용(中庸)이란 균형과 조화의 미학이다. 중국과 일본은 이러한 중용의 균형과 조화의 미를 기예와 스토리에 중점하기에 자연스러움은 맛볼 수가 없으니, 그 기예가 끝나면 그 감정은 남아  있지 않은 것은 민족 감성의 저수준 탓으로 보게 된다.

중용의 참뜻은 하늘로부터 본성을 자연스럽게 발휘하라는 것이다. 그러면 인간 행위는 사회의 정의와 그 정의에 입각한 질서를 실현 시킬 뿐만 아니라 나아가서 우주의 질서와도 융화하여 자연의 생성을 돕게 된다는 것이다.

이러한 미학적인 배경에서 보면, 멋은 동양인의 한 정조로 바뀌어짐을 보게 되며, 그 멋이 실려지는 행위 자체는 민족의 고유성으로서 나타난다고 하더라도, 적어도 그 철학적 기반만은 동양적 일반성을 지니고 있다고 보겠다. 

확실히 멋의 한 성격으로서 조화감은 우리나라 사람들의 가장 깊은 내면에 깔려 있는 기본 정조이자 사고방식이다. 이렇듯 농본문화적 특성을 가진 우리나라는 자연과의 조화를 이상으로 삼는다. 

자연은 인간의 대상물이 아니라 우리가 소속되어 있는 우주적 질서이며, 모든 생명의 모태이자 사멸의 회기점이다. 불교적으로 말하면 공적(空的)세계이며, 도교적으로 말하면 무위적(無爲的) 세계이다. 

이때의 공적·무위적이란 색적(色的)·유위적(有爲的) 세계를 존재하게 하고 의미가 있게 해주는 것이다. 사실 한 민족의 미적 사고와 정서는 그 민족의 전통적 문화와 사상의 지배를 받고 있든가 그것에 의해 알게 모르게 구속되고 있으며, 그 민족의 주류적 사상 또한 그 민족구성체의 역사적 경험에 의해서 싹트고 열매를 맺게 된다. 즉 사상과 미적인 사고와 정서는 서로가 서로의 원인이 되고 결과가 되는 상생적(相生的) 관계를 가지고 있다. 

그러나 사상과 사고 및 정서가 예술창작을 통해서 드러날 때에는, 전자가 사회가 요구하는 전형성의 면으로 작용하게 된다면, 후자는 보다 더 구체적이고 경험적인 성격을 띠고 나타나게 된다. 미적 사고와 정서는 주체적으로 대상을 느끼고 부리는 가운데서 창조적 힘을 지니게 된다. 여기에서 미적 사고와 정서는 상대적 규범성을 벗어나거나 초월하여 그것을 놀고 부리는 일을 하게 되는 것이다.
 
 
*이동호 동문은 최근 900여 페이지의 글이 담긴 USB북을 제작했다. 각 주제에 맞춰 관련 유튜브 영상을 링크해 내용을 풍부하게 했다. 낙관문화, 전쟁문화, 종교문화, 건강관리 등 다양한 분야를 아울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