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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6호 2022년 11월] 뉴스 본회소식

“어른들과 다른 감성, MZ세대가 우리의 미래다”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조찬포럼
조찬포럼



“어른들과 다른 감성, MZ세대가 우리의 미래다” 
 
이수만(농공71-78)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 
 
문화가 경제를 이끄는 시대,
이제 혼자만의 꿈 아니다


“제가 어렸을 때부터 굉장히 유명한 연예인이었던 건 아시나요? 사실 저도 아이돌이었습니다.”

11월 4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본회 오찬포럼. 연사인 이수만 SM엔터테인먼트 총괄프로듀서가 너스레로 운을 뗐다. 대학생 가수이자 MC에서 프로듀서로 변모해 원조 한류를 만들어내고 메타버스를 연예계에 도입하는 등 언제나 선구자적으로 한발 앞섰던 그다. 이날 ‘미래의 생활 문화 생태계’를 주제로 동문들에게 강의했다. 

이야기는 이 동문이 모교 신입생이던 1971년으로 거슬러 올라갔다. 노래를 해보라는 주위 권유에 듀엣 ‘4월과 5월’을 결성했다. 메시지 전달이 중요한 포크송의 시대였기에 이 동문도 우리말 가사에 밥 딜런의 정신을 이어받은 가수를 표방했다. 1학년 때 가수 활동에 치중하다 낙제 위기까지 갔지만 곧 유학을 계획하고 공부에 전념하게 된다. 

목표대로 우등 졸업을 하고 유학 기회를 얻게 된 이 동문은 틈틈이 연예 활동을 하면서 모은 돈을 가지고 1981년 미국 유학을 떠나게 된다. 자신의 이름을 건 토크쇼를 진행하는 등 인기 절정기에 내린 결단이었다. 민주화의 바람과 함께 “자유 경쟁 속에서 문화의 꽃이 피지 않을까” 예상도 했지만 “군부정권이 들어서면서 당분간은 내 실력을 키우기로 했다”고 돌아봤다. 모교에서 농기계를 전공한 그는 UCLA 대학원에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고 석사학위를 받았다. 귀국길에 학위와 함께 그가 가지고 온 것은 댄스 음악이었다. 

“미국에 가서 보니 연예인들이 우리나라처럼 홀대 받는게 아니고 너무 좋은 사회적 위치에 있더군요. MTV를 보면서 ‘보는 음악’을 알아가던 차에 TV에서 모타운 레코드 25주년 공연 쇼를 중계해 줬습니다. 거기에 마이클 잭슨이 나와 ‘빌리 진’이라는 곡에 문워크 춤을 추고 하루 만에 유명해지는 거예요. 비디오 스타가 라디오 스타를 죽이는 시대로 넘어갔구나, ‘보는 음악’을 해야겠다고 확신했죠. 무대 장치보다 가수가 움직이는 게 가장 돈이 덜 들 것 같아 댄스 음악을 택했고요.” 

“확실히 프로듀서의 기질이 있었다”던 그였다. 포크 음악으로 데뷔했지만 미국에 가기 직전엔 일본 음악을 접하고 록음악의 시대가 올 것임을 직감해 ‘이수만과 365일’이란 록 밴드 활동을 했다. 귀국 후엔 “선배님, 동창, 방송 프로듀서 모두 말리더라. 심오한 메시지가 담긴 포크송을 하던 사람이 댄스 음악이라니, 절대 하지 말라고 했다”며 이 동문은 웃었다. 굳건히 댄스 음악을 밀어붙였고, 시행착오를 거쳐 만든 팀이 보이그룹 H.O.T.다. 

“나라가 잘 살게 되니 아이들한테 돈을 주게 되고, 아이들이 문화 상품을 사게 된 거죠. 여전히 대학생이 된 다음에 가수를 하던 시대였는데 이왕이면 고등학생으로 된 윗집 오빠, 같은 동네 사는 오빠가 더 좋지 않을까 싶어 고등학생 스타를 만든 겁니다.” 

1997년 그는 7명의 전 직원 앞에서 해외로 나가겠다고 선언했다. ‘나 혼자 꿈을 꾸면 한낱 꿈이지만, 다같이 꿈을 꾸면 새로운 미래의 시작’이란 말과 함께였다. H.O.T.의 중국 공연에서 백팩에 태극기 배지를 단 팬들을 보고 “문화로서 우리나라가 부유해질 수 있겠다”는 생각을 더욱 확신했다. 그리고 ‘컬처 퍼스트, 이코노미 넥스트(Culture First, Economy Next)’는 30여 년간 SM과 한류 성공을 견인한 모토가 됐다. 그는 “친구를 사귈 때도 호감 가는 사람과 친해지고 알고 싶어지듯 우리나라의 어떤 문화든 가깝게 만들면 우리나라에 관심이 만들어지는 것 아닌가, 그러면 우리나라에 오게 되고 다른 문화까지도 관심갖게 된다는 뜻”이라고 설명했다.

“‘이코노미 퍼스트, 컬처 넥스트’가 제가 미국에서 올 때까지 기조였습니다. 부자 나라가 되면 그 나라 문화가 전 세계에 알려진다는 건데 우리나라는 까마득해 보였죠. 저는 반대로 ‘컬처 퍼스트, 이코노미 넥스트’를 생각했어요. 우리 문화를 전 세계에 알리길 꿈꿨습니다. 다른 기업들도 잘해줘서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었던 것 같습니다.” 

이제는 프로듀서로 산 세월이 더 길지만 그는 가수 생활을 통해 “노래하고, 창조하는 일의 기쁨을 깨달을 수 있었다”고 했다. “인간이 할 수 있는 가장 상위 개념의 행위가 창조예요. 우린 지금 창조의 시대에 들어와 있습니다. 우리의 젊은이들은 전부 창조를 하고 싶어하는데, 어떻게 그렇게 만들어 줄 수 있을까. 메타버스를 통해 그렇게 만들어 주는 게 중요한 시대입니다.” 그는 “SM이 가진, 아무도 카피할 수 없는 킬러 콘텐츠를 메타버스 안에서 ‘프로슈머(생산자이자 소비자)’들이 리크리에이트(재창조)할 수 있는 콘텐츠로 만들어 줘야 한다. 게임하듯 플레이할 수 있게 해줘야 한다”고 말했다. 

일찍이 메타버스를 연예계에 도입한 그의 독창적인 메타버스관(觀)도 소개했다. 그는 “리얼 라이프를 재해석한, 즉 현실 세계를 미러링한 ‘버추얼 메타버스’가 있어 그 안에서는 상상을 뛰어넘는 시뮬레이션과 창조가 이뤄진다. 이것이 다시 미러링돼 현실 세계에 새로운 창조물로 구현되는 ‘피지컬 메타버스’가 공존하며 상상은 현실이 될 것이다. 현실 세계를 미러링해서 빨리 우리나라 전체를 메타버스 안에 넣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대한민국이 문화 강국이 되려면 지속가능성과 휴머니티를 갖춘 생활 문화 생태계를 이끌어 가야 한다며 “MZ세대부터는 퍼스트 무버가 돼야 한다”고 말했다. “유엔이 주창하는 지속가능성을 MZ세대는 어려서부터 배워 왔다. 어른들이 잘못했다는 교육을 받은 그들은 우리 세대가 잘살기 위해 노력했던 것과 전혀 다른 생각을 한다”며 “앞으로 국가 간 경쟁보다 제너레이션 갭이 더 문제가 될 것이다. MZ세대가 어떤 생각을 갖고 있는지 정확하게 알아야 한다”고 말했다. “음악은 종합예술입니다. 전세계에 퍼져나가기 가장 쉬운 것이죠. 전세계 팬들 중에도 MZ세대가 많습니다. 그들에게 한국인 가수와 한국 사람들이 모티브가 되어 새로운 무브먼트를 만들어내길 바랍니다.”

본회는 이날 참석자들에게 책 ‘메타버스(플랜비디자인)’를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