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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2022년 8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지휘자보다 CEO로 불러주세요”

금난새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동문을 찾아서
 
“지휘자보다 CEO로 불러주세요”
 
금난새 (작곡66-70)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


우리나라 첫 벤처 오케스트라 창업
기업과 예술의 만남 성공적으로 이끌어
 
부산 수영에 ‘금난새뮤직센터’ 개관
젊은 연주자들에게 꿈 펼칠 기회 제공
내년 라스베가스 CES 연계 연주회 계획  


본회는 지난 5월 27일 잠실 롯데콘서트홀에서 1200여 동문 가족을 초청해 제1회 ‘서울대학교 가족음악회’를 성황리에 마쳤다. 이날 음악회를 성공적으로 이끈 금난새 동문은 재치있는 곡 설명뿐 아니라, 연주가 끝난 후 스태프들과 함께 피아노를 밀어 옮기는 등 자유로운 지휘자의 모습을 보여주며 동문 가족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겼다. 

스스로 지휘자 대신 ‘CEO’라 칭하며 대한민국 최초로 벤처 오케스트라를 창업해 청중들이 원하는 곳이라면 어느 곳이든 마다치 않고 달려가 음악을 선사해 온 금난새 동문을 지난 7월 25일 서울 서초구 사무실에서 만났다. 금 동문은 부산 수영구 ‘금난새뮤직센터(GMC)’에서 열리는 서머페스티벌을 일주일 앞둔 바쁜 시점이었지만, 1시간 30분에 걸쳐 성심껏 인터뷰에 응했다.
 
-금난새뮤직센터(GMC)가 지난해 문을 연 것으로 압니다. 규모로 볼 때 쉽지 않았을 텐데, 설립과정을 설명해 주시죠.
“GMC는 고려제강이 2016년 부산비엔날레를 계기로 옛 수영공장 터를 살려 만든 복합문화공간 ‘F1963’ 지하에 있습니다. 고려제강 홍영철 회장님께서 부산 문화예술에 공헌해 달라는 뜻으로 제 이름을 단 공간을 마련해 주셨습니다. 저에게는 큰 상이자 격려죠. 전례가 없는 일인데, 앞으로 우리 사회에 좋은 사례로 정착돼 제2, 제3의 GMC가 생기길 바랍니다.” 

-선생님은 ‘해설이 있는 000’의 원조로 불립니다. 계기가 어떻게 되세요. 
“1993년인가, 예술의전당에서 청소년을 위한 음악회 프로그램을 요청받았어요. 우수한 연주자는 많은데, 청중이 부족하다는 생각이 늘 있었고, 교육을 통해 늘려야겠다는 생각이 있던 차에 학생들을 대상으로 클래식을 들려준다기에 좋은 기회라 생각했지요. 미래의 클래식 관객들이잖아요. 그전까지도 이 프로그램이 진행됐지만, 관례적으로 해왔던 것 같아요. 학생 입장에선 그냥 지루한 시간이었죠. 제목부터 ‘금난새와 함께하는 음악여행’으로 바꾸고 학생 눈높이에서 쉽고 재미있게 음악을 들려줬죠. 청중에 다가가는 전략이죠. 또 그때까지 공짜로 진행됐는데, 2000원을 받았습니다. 돈 주고 표 사는 연습도 필요하니까요. 그해 전석 매진을 했습니다. 당시 예술의전당 전 공연 통틀어 첫 매진이 아닐까 싶습니다. 9회 하는 동안 예술의전당 최고 인기 프로그램으로 자리 잡았습니다.”      

-클래식 청중 저변을 넓히기 위한 노력이 결실을 보고 있다고 생각하세요? 
“과거에 비하면 확실히 변화가 느껴져요. 요즘 클래식을 좋아하는 젊은이들이 많습니다. 외국인 중에 한국에 젊은 클래식 청중이 많은 걸 놀라워하는 분들이 있어요. 미국, 유럽 등은 여전히 중장년층이 많거든요. 이런 변화에 일조했다는 데 보람을 느끼죠.” 

-이번에 ‘F1963 서머페스티벌’ 예술감독도 맡으셨고, 지휘도 계속하고 계시죠?
“그럼요. 성남시립예술단 상임지휘자와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 음악감독도 맡고 있으니까요. 지난 15년 동안 매년 100회 가까이 지휘를 한 것 같아요. 많은 분들이 찾아주셔서 가능했죠. ‘위대한 지휘자’란 타이틀보다 ‘사랑받는 지휘자’라는 타이틀이 더 좋습니다.” 

금 동문은 지휘뿐 아니라 다양한 실내악 페스티벌을 기획하며 티켓예매 사이트 인터파크의 ‘골든티켓 어워즈’ 클래식·무용·전통예술 부문 ‘아티스트상’을 2017~2019년 3년 연속 수상하기도 했다. 대중에게 가장 인기 있는 클래식 예술가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이름이 독특한 만큼 늘 새롭고, 도전하는 삶을 살아오신 것 같습니다. KBS 교향악단에서 수원시향으로 옮길 때 의아해하는 분들이 많았지요.
“쫓겨난 거 아니냐는 소문이 있을 정도였죠. 오케스트라 규모, 급여가 큰 차이가 났으니까요. 저는 도전이었어요. 처음에는 수원에서 도와달라 해서 KBS도 일하면서 할 수 있겠다고 생각했어요. 1년에 3~4개월 정도 일하는 수준이었으니까요. 서양 지휘자들은 그런 경우가 많습니다. 그런데 KBS에서 제도적으로 그건 안 된다고 하더군요. 그럼 수원을 택하겠다고 했죠. 변화, 발전시킬 수 있는 부분이 훨씬 많다고 봤거든요. 수원시향에 가서 수원이 ‘갈비의 도시’ 뿐 아니라 예술의 도시로 인식될 수 있도록 해보자고 했어요. 그때 처음 삼성전자의 후원을 이끌어내 4억원씩 5년간 받기도 했습니다.

우리나라 제도권 예술단체들은 모두 세금 지원을 통해 운영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도 세금 지원에서 벗어나 기업 지원을 통해 독립할 수 있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습니다. 기업과 상생을 통해 예술단체가 독립할 수 있다는 확신을 얻으면서, 수원시향 그만둘 때 따라 나온 단원들과 벤처 오케스트라를 만들었죠. 그게 지금의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구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죠. 이후 삼성전자는 물론 CJ, 포스코 등과 후원 협약을 통해 독립 오케스트라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습니다. 우리를 필요로 하는 곳이면 어디든 달려가 무료로 공연해주고, 기업은 우리를 도움으로써 자연스럽게 문화 사회공헌 활동을 펼치게 되는 것이죠.”

-공연이 많으면 단원들이 힘들어하지 않나요?
“우리는 연주할 때마다 급여를 받는 시스템입니다. 많으면 많을수록 좋죠. 이 역시 기존의 틀을 깬 겁니다.”  

그의 도전은 공연 장소의 변화로까지 이어진다. 객석과 첨단 음향시설이 돼 있는 전문 공연장에서 탈피해 대기업 사옥과 호텔 로비 등에서 음악회를 개최했다. “오케스트라 연습공간을 마련하기 위해 테헤란로에 위치한 포스코 사옥을 찾았어요. 로비를 보니까 유리로 된 성당이 떠올라요. 서양에서는 성당에서 음악회를 종종 하지요. 아, 여기서 연주를 해도 좋겠다는 생각이 들어 포스코에 제안을 했더니 좋은 생각이라고 흔쾌히 함께 잘 해보자고 하더군요. 1999년 12월 31일 오후 10시 밀레니엄 제야의 음악회를 포스코 로비에서 했지요. 그 연주회가 대박이 났습니다. 베토벤 교향곡 전곡(9곡)을 그곳에서 연주하는 계약까지 체결되고, 광양, 포항까지 내려가 특별연주회를 하게 됐지요. 6년간 로비라는 공간을 문화의 공간으로 만들었어요. 제주 신라호텔 로비에서도 풍산, 삼양사 등과 후원 계약을 맺고 12년간 실내악 연주회를 열었고요. 예술의전당, 카네기홀 등에서 하는 것만 음악회는 아니거든요. 어디에서도 연주할 수 있다고 생각합니다.”

-최근 조성진, 임윤찬 피아니스트 덕에 클래식 음악이 주목받는 분위기입니다. 
“참 고마운 일이죠. 한편으로는 1등만 기억하는 분위기 때문에 그 외 우수한 음악 인재들이 묻히는 게 참 안타까워요. 이번 반클라이번 콩쿠르 준결선에도 네 명의 한국인이 올랐잖아요. 임윤찬 외에는 부각이 안 됐죠. 그런 젊은 음악인들이 너무 많습니다. 젊은이들이 꿈을 펼칠 수 있는 장을 우리 시니어들이 많이 만들어줘야 해요. 90년대는 클래식 청중을 모으는 일을 했다면, 2000년대는 젊은 연주자를 중심으로 한 실내악 붐을 일으켜야겠다는 생각이 큽니다. 부산의 GMC가 그 중심 역할을 할 수 있도록 노력하고 있습니다.   

오케스트라를 많이 만드는 일도 젊은 음악인들의 기를 살리는 일이 돼줄 겁니다. 현재 한 오케스트라에 150억원의 예산이 쓰인다면, 5개를 만들어 30억원씩 지원하면 되는 겁니다. 서울시향, KBS 교향악단 수준의 오케스트라를 많이 만들 수 있어요. 지원금을 나눠 쓰면 되는 겁니다. 각 오케스트라의 리더들이 열심히 발로 뛰어서 기업과 후원 계약을 맺으면 단원들 생활도 안정될 수 있어요. 기업들은 오케스트라를 다양한 방법으로 활용할 수 있습니다. 직원 교양강좌도 만들 수 있고, 기업 이미지 홍보에도 활용할 수 있죠.” 

-내년 미 라스베가스에서 국제전자제품박람회(CES)와 연계한 연주회도 열 계획이라고요.
“서울대 동문 가족음악회 후에 김종섭 회장에게 전화가 왔어요. ‘내친김에 미국까지 갑시다’ 그러는 겁니다. 연초 CES 열릴 때 서울대 동문 가족들을 비롯해 현지 유명 인사들을 초청해 근사한 음악회를 열자는 제안이에요. ‘CES에 참여한 기업들과 연계하면 좋은 기획이 나오겠구나’, 딱 아이디어가 떠올라요. 그래서 저도 ‘그래 한번 해보자’ 맞장구를 쳤죠. 얼마 전 BTS가 휩쓸고 간 곳인데, 한국이 클래식 음악도 잘한다는 걸 보여줘야죠.”  

-마지막으로  하고 싶은 말씀이 있다면. 
“서울대가 기부의 메카가 되면 어떨까요? 김종섭 회장도 기부를 많이 하는 기업인으로 알려졌듯이 서울대인들은 기부에 앞장선다는 이미지를 동창회가, 서울대가 만들어나가면 좋을 것 같습니다.”  금 동문은 서울예고 교장 시절 4년간 연봉 전액을 기부해 학생들을 위해 썼다.
정리=김남주 기자 

대담 : 홍지영 (불문89-93) SBS 선임기자


‘해설이 있는 000’ 원조…지휘자·예술감독 종횡무진 활동 
 
금 동문은 1947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서울예고와 모교 음대를 졸업한 후 베를린 음대에서 라벤슈타인을 사사했다. 모교 재학시절 음대 학생회장을 맡기도 했다. 1977년 최고 명성의 카라얀 콩쿠르 입상 뒤 유러피언 마스터 오케스트라 음악감독을 거쳐 KBS 교향악단을 12년간 이끌었고, 1992년 수원시립교향악단의 상임 지휘자로 부임했다. 연간 10회의 연주에 머물던 수원시향을 연간 60여 회 이상 연주하는 악단으로 발전시켰고, 이후 예술의전당 기획프로그램인 ‘해설이 있는 청소년 음악회’를 기획하여 6년간 전회 전석 매진을 기록했다. 

1998년에는 유라시안 필하모닉 오케스트라(현 뉴월드 필하모닉 오케스트라)를 창단해 ‘로비 음악회’, ‘도서관 음악회’, ‘갤러리 음악회’, ‘울릉도 음악회’ 등 장소에 구애받지 않고 전국 방방곡곡을 다니며 클래식 대중화에 앞장섰다. 

무일푼으로 시작한 오케스트라를 8년 만에 연간 135회 공연, 관객 12만명을 동원하는 국민 오케스트라로 발전시켰다. 2006~2010 경기필하모닉, 2010~2014 인천 시립교향악단을 거쳐 2015년부터는 성남시립교향악단의 상임지휘자 및 예술 총감독을 맡고 있다. 2015년부터는 한국경제신문사에서 창단한 한경필하모닉의 초대 지휘자 겸 예술감독으로도 위촉돼 기업의 문화예술참여의 새로운 모델을 제시했다. 
오케스트라 지휘 활동 외 다양한 페스티벌 예술감독으로도 활동하고 있다. 제주 뮤직 아일 페스티벌, 부산 챔버 뮤직 페스티벌, 성남 러브 페스티벌 등 국내는 물론, 맨해튼 챔버 뮤직 페스티벌, 유로-아시안 뮤직 페스티벌 등 해외에서도 다양한 콘셉트로 페스티벌의 영역을 넓혀나가고 있다. 

이러한 공로를 인정받아 2006년 한국 CEO 그랑프리 문화예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됐고, 2008년 계명대학교에서 명예철학박사 학위를 받았으며, 2011년 문화체육관광부로부터 세종상 예술부문 대통령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지은 책으로는 ‘금난새의 클래식 여행’, ‘모든 가능성을 지휘하라’, ‘CEO 금난새’, ‘아버지와 아들의 교향곡’ 등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