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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3호 2022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전 과목 낙제 뒤 ‘위상수학’ 강의 들으며 마음이 조용해졌다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허준이 교수 인터뷰

전 과목 낙제 뒤 ‘위상수학’ 강의 들으며 마음이 조용해졌다
 
‘수학계 노벨상’ 필즈상 수상
허준이(물리02-07) 교수 인터뷰

한국계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 프린스턴대 교수가 7월 27일 모교 관악캠퍼스 상산수리과학관에서 필즈상 수상 기념 수학강연을 했다. (사진=모교 소통팀)



고급영어 3번 수강 20대에 영어와 친해져
‘오랜 나’를 간직해준 친구들에게 고마움
서울대가 ‘멋진 우연’ 일어날 수 있는 환경 마련해줬으면


“T. S. 엘리엇이 어느 장소로 돌아오는 것에 대해 쓴 구절을 알고 계신가요? 제겐 (관악캠퍼스) 27동과 상산관에서 지내는 오늘이 정말로 특별하게 느껴져요.”

‘수학계의 노벨상’ 필즈상 수상자 허준이(물리02-07 프린스턴대 수학과 교수·고등과학원 석학교수) 동문이 7월 27일 모교 상산관에서 열린 강연 첫머리에 한 말이다. 그는 서울대에서 보낸 8년을 ‘좋은 일도 많이 겪고, 좋지 않은 시간도 있었지만 가장 ‘인텐스(intense 열정적)’했기에 따뜻한 기억이 남았다’고 했다. 그에 대해 많은 얘기가 알려졌지만, 동문들을 위해 대학 시절 추억을 나눠 주길 바랐다. 이메일로 보낸 몇 가지 질문에 수학 증명을 눌러쓰던 그의 글씨처럼 정갈한 장문의 답변이 돌아왔다. 되도록 원문에 가깝게 정리했다.


-모두가 수학으로 전향한 것에 주목하는데, 물리천문학도 시절이 교수님의 삶에 남긴 흔적도 적지 않을 것 같습니다.
“물리천문학은 멋져 보여서 선택했어요. 어렸을 적에는 몇 없는 서울 하늘의 별을 보고 그 사이의 공간을 헤아리는 것만으로도 왜 그런지 눈물이 나곤 했어요. 당시에 생각하고 있던 과학 저널리스트로 먹고살기에 요긴해 보이기도 했고. 대학에 입학할 무렵의 제게 수학은 황량하고 형식적으로 보였었고, 물리와 천문학은 좀 더 ‘의미’ 있게 느껴졌었어요.”

-그렇지만 학부 땐 방황도 하셨다고요. 
“먹고 자는 문제가 어느 정도 해결된 사람을 가장 힘들게 하는 것 중의 하나가 ‘목표 없음’이 아닐까 싶어요. 대학 시절 저는 뚜렷한 목표가 없었어요. 좋아하는 책들을 읽으며 시간을 보냈던 것 같아요. 정해진 방향 없이 설렁설렁 공부하니 어려운 대학공부를 따라가기 어렵더라고요. 중고등학생 때부터 그랬지만, 수업 듣기 힘들어하는 것도 여전했었고요. 결국 3학년 1학기에 간신히 관리하던 우울증이 심해지며 모든 과목을 낙제해 버렸어요. 

다른 과목에선 그냥 아무 얘기 없이 사라졌는데, 당시 듣던 ‘태양계 천문학’ 수업의 홍승수 교수님이 마음에 걸렸어요. 특별히 존경하던 분이라 교수님껜 더는 수업에 참석하지 못하겠다는 이야기를 꼭 뵙고 말씀드려야 할 것 같더라고요. 연구실 앞 복도에서 한 시간 넘게 들어갈까 말까 고민했던 것이 생각나네요. 제 말을 잘 들어주신 후 ‘잘 쉬고 돌아오라’고 하셨던 것 같아요. 정신이 없어 제가 무슨 이야기를 했는지도 기억나지 않지만, 진심으로 귀 기울여 들어주신 것이 큰 위안과 힘이 됐었어요. 돌아가시기 전 ‘하늘을 디디고 땅을 우러르며’라는 책을 쓰셨으니 읽어보세요.”

늦깎이 수학자로 불리지만, 사실 수학은 꼭 필요한 타이밍에 그를 찾아왔다. 수학과의 만남 얘기가 이어졌다. 

“공학이나 자연과학 전공 학생이 흔히 듣는 기본적인 수학 수업 너머의 ‘순수 수학’을 접한 것은 김인강 교수님이 강의하신 ‘위상수학’이었어요. 4, 5학년 때 마음을 추스르고 공부하기 시작한 무렵이에요. 새 출발하는 의미로 예전과는 조금 다른 것들을 배우고 싶더라고요. 위상수학이라고 하면 흔히 커피잔이 도넛으로 변하는 기하학적인 과목이라고 생각하는데, 위상수학의 첫 부분은 일반위상(point set topology)이라고 매우 형식적인 주제를 다뤄요. 그때 ‘의미 과다’로 고생하고 있던 저에게 딱 필요한 공부였던 것 같아요. 머리를 비우고 도구처럼 사용하니 마음이 조용해졌어요. 
물리, 천문, 수학, 문학, 모두 썩 다르지만, 제가 그중 수학을 하게 된 건 순전히 우연이라고 생각해요. 아마 1학년 때 수학을 전공하려 했으면 3학년 때 쉬고 돌아왔을 때 물리나 천문으로 전공을 바꿨을 거예요.” 

특강 중 ‘인생의 방향을 바꿨을 때, 불안감에 어떻게 대처했냐’는 질문에 허 동문은 “근거 없는 자신감이 중요하다”고 했다. “근거가 있는 자신감은 언제든지 부서질 수 있다. 전공 과목에서 에이플러스 받았다고, 필즈 메달을 받았다고 스스로 확신이 들까. 근거 없는 자신감은 스스로에게 새로운 상황과 목표를 받아들일 수 있는 유연성을 부여한다”. 

-전공과목 외에 기억에 남는 수업이 궁금합니다. 시인이나 과학기자를 꿈꾸셨다니 관련 수업일까요. 
“영어를 세 번 수강했어요. 처음은 ‘고급영어:작문’이었어요. 한글을 쓰는 건 더 어려서부터 좋아했지만, 그 전엔 몰랐던 ‘알파벳을 쓰는 재미’를 이때 알았어요. 글의 내용은 크게 관심 두지 않았고, 캘리그래피처럼 글씨 쓰는 행위 자체에 빠졌죠. 중앙도서관 서고 어디에 제가 좋아하는 구석이 있었는데, 그곳에 앉아서 예이츠(Yeats) 같은 사람들의 시를 연습장에 베껴서 나중에는 그런 필사본이 여러 개 생겼어요. 한 번 앉았을 때 집중해서 필사할 수 있는 시간에 제한이 있으니, 너무 길지 않은 시들이 좋았어요. 두 번째 ‘고급영어:산문’은 소설 ‘반지의 제왕’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는 것이 유일한 목표인 독특한 과목이었어요. 이전에는 두꺼운 영어책을 처음부터 끝까지 읽어본 적이 없었는데, 한 번 하고 나니 그 다음부터는 쉽게 되더라고요. 많은 일들이 그런 것처럼 긴 글 읽기도 처음이 가장 어려운가 봐요. 

세 번째 ‘고급영어:연극’은, 짧은 일인극, 혹은 이인극을 외워서 학기말에 공연하는 과목이었어요. 전 우디 앨런 극 중 우디 앨런 역할을 맡았었는데, 영화 속으로 들어온 것 같아 재밌었어요. 이때 영어로 말하는 법을 배웠어요. 보통 언어는 어렸을 때 배워야 한다는데 제 경우엔 20대에 비로소 영어를 다룰 수 있게 됐죠. 같은 과목을 여러 번 듣게 해 주고, 또 같은 과목도 강사님에 따라 자유롭게 구성하게 해 줘서 좋았어요. ‘과학철학’, ‘상상력과 문화’, ‘문명의 기원’ 이런 과목들도 생각이 나네요.”

세계적인 수학자 히로나카 헤이스케 전 모교 초빙 석좌교수와의 만남이 그를 수학의 세계로 이끈 것은 유명한 얘기다. 히로나카 교수도 필즈상 수상자다. 그와 같은 석학을 모셔올 수 있었던 모교의 ‘노벨상 프로젝트’가 어쩌면 뒤늦은 결실을 맺은 셈이다. 

-히로나카 교수와의 만남을 혹자는 우연으로 치부하지만, 모교로선 고무적으로 받아들일 법해요. 서울대가 학생들에게 어떤 경험을 제공하면 좋을까요? 
“우연이 아닌 일이 있을까요? 대학생활 동안 멋진 우연이 일어날 법한 자유롭고 다채로운 환경을 서울대가 학생들에게 마련해 줬으면 좋겠어요.”

-대학에서 사람을 많이 얻어가신 듯해요. 부인 김나영(대학원07-09) 동문도 모교에서 만나셨고, 언론엔 대학 친구들의 애정어린 이야기가 쏟아졌지요. 
“네, 정말로 그래요. 이제 본래부터의 제 것이 거의 하나도 기억나지 않아요. 모두 친구, 선후배, 선생님들께 배우며 받은 조각조각들뿐이에요. 예전의 나와 지금의 나, 그리고 많이 변한 교정과 ‘테세우스의 배’가 뒤섞여서 이런저런 생각이 드네요. 선후배, 동기들과는 기회가 닿을 때마다 만나요. 우리나라에서 사용하는 한자가 중국에서 사용하는 한자보다 더 본래에 가깝다고 하죠? 예전에 자주 보던 사람을 만나면 더 오래된 나의 일부를 가지고 있을 때가 있더라고요. 오랜만에 보는 친구도 반갑고, 오랜만에 보는 그 속의 나도 반가워요.”

-공부하시던 상산관 외에, 캠퍼스에서 추억 많은 장소를 꼽아주신다면. 
“이런저런 글을 꾹꾹 눌러 베껴 쓰던 중앙도서관 서고 한 구석. 이제는 출입증 없이 갈 수 없는 곳이 됐네요. 밖으로 나가면 하염없이 서성이시던 네모 안경 할아버지가 계셨고. 중앙도서관과 약대 사이 버드나무 아래엔 긴 벤치가 있었어요. 지금은 관정관에 잡아먹힌 듯해요. 작은 진드기들이 위에서 가끔 떨어지는 것만 빼면 책 읽고 낮잠 자기에 참 좋았어요. 그때 좋아하던 책들을 펴보면 페이지 사이사이 눌려 죽은 눈곱만 한 벌레들이 화석처럼 남아있어요. 

조금 더 올라가면 소나무 사이의 솔밭식당. 양념장과 함께 주는 심심한 콩나물밥을 좋아했는데 지금은 없어졌다고 하더라고요. 그 옆, 고개를 숙인 옅은 전등이 촘촘히 심어진 계단, 올라가면 천문대. 눈부신 서울 밤하늘에 많이 보이진 않았지만 처음 경험한 토성의 고리만으로도 제 마음엔 충분하고도 남았어요. 옆으로 내려오면 버들골 노천강당, 이제는 멋지게 바뀌어서 예전의 꾀죄죄한 매력이 없어졌더군요.” 

기억 속 캠퍼스를 훑어가며 사라지거나 변한 곳들에 대한 단상이 이어졌다. ‘김태희씨(배우)가 가끔 온다는 말에 친구들과 한 번씩 가보던 깡통 식당, 후생관 안 이발소, 학생회관 안 앉아서 하염없이 졸던 음악감상실, 옆엔 구두 고쳐주시는 할아버지…’. 교정 큰길가 가장자리에 관악산 계곡으로 향하던, ‘생겼다 없어졌다 하는 개구멍’이 있었다며 “요즘은 어떻게 관악산에 가는지”도 물었다.  

허 교수가 특강 첫머리에 언급한 T. S. 엘리엇의 시는 ‘네 사중주(Four Quartets)’ 중 한 구절이었다. ‘우리는 탐험을 멈추지 않으리라. 모든 탐험 끝에 우리가 출발했던 곳 도달해, 처음으로 그곳을 알게 되리라(We shall not cease from exploration / And the end of all our exploring/ Will be to arrive where we started/ And know the place for the first time)’. 마지막 질문은 여기에서 착안했다. 

-다시 대학생으로 돌아간다면, 무엇을 하고 싶으세요.
“10대, 20대엔 간간이 돌아오는 우울에 자기 관리를 잘 하지 못했어요. 방황하며 허송세월 했던 대학시절을 후회하기도 했지만, 아마 다시 대학생이 되면 지금은 짐작할 수도 없는 다른 방식으로 고민하고 방황할 것 같아요. 

이제 아이가 있으니 예전부터 하던 이런 공상이 더 현실적으로 느껴져요. 제 아이도 십 년 후 어린 어른이 되면 롤러코스터를 탄 듯한 쾌락, 슬픔, 환희와 좌절을 경험할 텐데 유년시절에 제가 대신 준비해 줄 수 있는 게 너무나도 없어서 불안해요. 아마 지금의 제가 어린 시절의 저보다 더 현명해지지 않았기 때문이겠죠. 그래도 그 롤러코스터를 한 번 더 타보고 싶은 기분이 드네요. 다시 한번 풍덩 하고 뛰어들어보고 싶어요.”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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