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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022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서병륜 로지스올 회장, “2034년 매출 10조 글로벌 1위 물류회사 목표”



“2034년 매출 10조 글로벌 1위 물류회사 목표”

서병륜 (농공69-73) 로지스올 회장농업생명과학대학동창회 회장



세계 최대 파렛트 회사, 계약서 안 쓰는데 회수율 99%
돌아오는 빈 컨테이너, 4분의 1로 접는 기술 개발

농생대동창회장 맡아 동문에게 인생2모작 기회 제공
어려운 일 있을 때마다 책에서 해답 찾아
사내에 7천권 소장 물류전문도서관 운영



대담 : 임석규 (언어84-91) 한겨레신문 선임기자


서병륜 동문은 우리나라에 물류 시스템을 도입하고 구축한 ‘물류 개척자’로 불린다. 40여 년간 물류 외길을 걸어오며 파렛트와 컨테이너 등을 활용한 공동물류시스템을 도입해 물류비 절감과 기업 경쟁력 향상에 기여했다. 그 공을 인정받아 2018년 한국물류대상 시상식에서 이 분야 최고 영예인 은탑산업훈장을 받았다. 그의 경험을 기록한 저서 ‘물류의 길(삼양미디어 간)’은 물류 분야 필독서로 꼽힌다.

7월 1일 마포 도화동 본사에서 만난 서병륜 회장은 “12년 후 창립 50주년 되는 날 매출 100억 달러를 달성해 물류 분야 글로벌 챔피언이 되는 게 목표”라고 했다. 현재 이 분야 세계 1위는 호주의 물류 기업 ‘체프’로, 연 매출은 5조원 안팎이다. 지난해 로지스올 그룹의 연매출액은 2조원 수준. 12년 뒤 5배의 성장을 이뤄내겠다는 게 서 회장의 야심찬 포부다.

서 동문은 최근 농생대동창회장에 연임되기도 했다. 그가 3년 전 동창회장으로 취임하면서 시작한 아그로푸드플랫폼(Agro Food Platform) 사업에 박차를 가할 예정이다. AFP는 동문들에게 ‘인생2모작’ 기회를 제공하고 이를 통해 동창회 활성화도 꾀하는 1석2조 효과를 노린다. 농업 관련 분야 퇴임 동문을 영입해 기술자 영농 인력, 농업재배기술 개발, 농업 빅데이터 구축, 자동화·무인화 농업기술 개발, 유통과 관련된 회사를 설립하는 일이다. 30개 회사 설립을 목표로, 현재 6개의 회사를 만들었다.

글로벌 챔프를 향한 그의 물류 인생 이야기와 농생대동창회장으로 펼치고 있는 AFP 사업에 대해 책과의 인연을 중심으로 묻고 들었다. 그는 사내에 7000여 권을 소장한 물류전문도서관을 운영할 정도로 책을 좋아한다.

-책을 통해 물류를 배우고, 사내에 물류 전문 도서관까지 지었습니다. 책과의 인연이 어떻게 시작됐는지 궁금하군요.
“아버님이 책을 좋아하셔서 집에 책이 많았습니다. 대부분 일본 책이었는데 일본어도 잘 모르는 어린아이에게도 흥미를 일으키는 사진, 그림 등이 많이 있었어요. 중고등학교에 올라가면서 일본어도 어느 정도 읽을 줄 알다 보니 재미있는 게 참 많았어요. 순천고등학교 다닐 때 도서관 사서 선생님의 권유로 도서관 아르바이트를 했습니다. 그러면서 책을 많이 읽었던 것 같습니다.”

-대우에서 지게차 엔지니어로 활동하시다가 물류계로 진출한 것도 책 때문이라고 들었습니다.
“당시 지게차가 안 팔리니까 회사에서 지게차 마케팅팀을 만들었습니다. 제가 팀장으로 차출됐어요. 엔지니어로 일하다 새로운 일을 시작하려니 처음엔 두려웠죠. 책에 길이 있다는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책을 찾았지요. 을지로에 있는 동남서적의 외국도서 코너를 방문해 해외자료를 뒤졌습니다. 그때 제 삶을 물류의 길로 이끈 ‘하역과 기계’라는 일본 물류 전문 잡지를 만났습니다. 일본의 하역연구소 히라하라 소장이 발행하던 물류 월간지입니다. 이분이 나중에 저의 물류 스승이 됩니다. 히라하라 소장은 일본 산업현장에서 운반 하역작업을 기계화하는 계몽운동과 연구활동을 열심히 하던 분입니다. 그 중심이 지게차와 파렛트풀 시스템(화물의 받침대인 파렛트를 표준규격으로 통일해 기업 간에 공동으로 이용하는 제도)이었고요. 그분의 글을 읽으며 지게차를 많이 팔기 위해서는 파렛트 시스템이 정착돼야 한다는 깨달음이 왔죠.”

이 대목에서 서 동문은 누렇게 빛이 바랜 옛 문건 하나를 보여줬다. 파렛트풀 시스템화에 대한 사내 결재 서류였다. 그는 과장 시절 작성한 이 문건으로 당시 대우중공업 윤영석 사장 등으로부터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가 이 일에 매진하는 계기가 된 문건이다.

“1년 동안 외국 서적을 들여다보며 물류 시스템화 및 파렛트풀 제도를 정리한 일종의 기획서였죠. 상무, 전무님이 저를 예뻐하고 윤영석 사장님이 저를 영웅으로 만들었어요. ‘당신한테 전권을 줄 테니 파렛트풀 시스템을 정착시키라’는 지시를 받았어요. 이 서류 때문에 오늘의 제가 있게 된 거지요.”



파렛트는 상품적재용 깔판이다.


-그렇게 회사에서 신임을 받으셨는데, 한창 때 퇴사를 하셨습니다.
“생각만큼 쉽게 진척되지 않았습니다. 물류 활동의 중심역할을 할 물류협회 결성이 우선 쉽지 않았고, 파렛트풀 회사의 설립도 정부 주도로 추진되도록 설득했으나 역부족이었습니다. 3년여 기간 동안 성과를 내지 못하자 회사 측에서도 관심이 적어지고, 저 역시 타 부서로 이동하게 됐습니다. 이대로 포기해야 할까 고민을 거듭하던 끝에 ‘진정으로 하고 싶은 일을 하지 못한 채, 겁쟁이가 돼 한 평생을 후회하느니 차라리 물류의 길에 한 몸을 던지고 후회하지 않도록 최선을 다해야겠다’ 마음 먹고 사표를 제출했습니다.”

-퇴사 후 파렛트풀 회사가 아닌 물류연구원부터 설립을 하셨지요.
“물류협회 창립부터 시도했으나 사단법인을 만드는 요건이 까다로웠습니다. 그래서 연구원부터 시작했습니다. 1984년 9월 1일입니다. 연구원의 첫 컨설팅 용역이 오리온이었어요. 당시 제 이야기를 들은 담철곤 회장님이 흔쾌히 일을 맡겨주셨고, 용역 결과에도 흡족해하셔서 다른 회사도 여러 군데 소개해 주셨습니다. 그렇게 여러 회사에 물류 시스템화 및 파렛트풀 제도에 대한 필요성을 설파해가며 물류 전문가로서 입지를 다져갔지요.”

-그러다 파렛트풀 사업을 하게 된 계기는 어떻게 되십니까.
“앞서 말씀드렸지만, 파렛트풀 사업은 정부가 주도해야 하는 사업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여기에도 책과의 인연이 중요하게 작용했어요. 일본 통상산업성이 1976년 2월 1일 발행한 ‘물류 시스템화 입문’이란 책을 입수했는데, 거기에 일본 정부가 산업계의 물류시스템을 개선하기 위해 파렛트풀 시스템을 국가 차원에서 추진하는 방안이 제시돼 있었습니다. 이 책을 연구해서 한국파렛트풀 주식회사를 만들어야 한다고 정부를 설득했지만, 잘 안 됐습니다. 물류연구원을 운영하는 중 일본의 파렛트풀 회사인 JPR에서 ‘한국내에서 독자적인 파렛트풀 사업의 착수가 어렵다면 교역 물동량이 많은 한국과 일본 간의 한일 국제 파렛트풀 사업을 먼저 착수해 운영하다 이를 토대로 다음 단계인 한국 내에서 파렛트풀 사업을 확대해 보자’는 제안이 왔습니다. 그렇게 해서 1985년 10월 2일 한국파렛트풀을 설립했습니다. 당시 파렛트 500매로 시작했는데 현재 2500만 매에 달합니다. 파렛트풀을 이용하는 고객도 식품, 석유화학, 유통 등 전 산업 분야에 걸쳐 25만여 곳에 이릅니다.”

-파렛트가 여기저기 이동하는데 수거는 어떻게 하는지, 분실할 경우 손해 배상은 어떻게 되는지 궁금합니다.
“그런 문제 때문에 미국, 유럽의 물류회사들은 계약서를 작성합니다. 책임을 분명히 해두려는 거죠. 그런데 우리나라는 계약서 없이 파렛트풀 시스템이 정착됐습니다. 이런 이유로 호주의 체프 등 글로벌 파렛트 회사들이 우리나라에 들어오지 못합니다. 계약서 없는 사업, 믿어지세요? 저희는 파렛트 임대업체인데, 저희 입장에서는 발송 화주 고객과 도착 화주 고객 등 모두가 파렛트를 분실하지 않도록 철저하게 관리해야 합니다. 그런데 A라는 설탕 회사가 B라는 제과 회사에 설탕을 넘기는 과정에서 파렛트가 분실됐을 때, 우리는 처음 임대해 준 A사에 책임을 물을 수밖에 없는데 A사는 고객 회사인 B사에서 분실되는 파렛트에 대해 변상을 시키게 할 수 없다는 입장이 강했어요.

당시 모든 업계가 같은 입장이었습니다. 결단을 내려야 했습니다. 법률적 책임은 묻지 않되, ‘회수 관리에 적극적으로 협조해 달라’는 안내문을 보내고 업체들의 도장을 받았습니다. 당시는 인력에 의존하는 경향이 많던 때라 파렛트풀 시스템의 편리성을 크게 깨닫지 못했지만, 시간이 지나 정착이 되면 모든 업체가 기꺼이 협조해 주리라는 믿음이 있었습니다. 처음 몇 년은 회수 불능 파렛트가 대량으로 발생하는 등 맘고생이 많았습니다.

그러나 어느 순간 파렛트풀 시스템이 아니면 인력 하역을 해야 한다는 부담 때문에 회수 관리에 참여하는 고객 업체들이 급속도로 확산하기 시작했어요. 직원들의 노력도 한몫해 현재는 회수율이 99%를 넘어서고 있습니다. 계약서 없는 사업에 도전해 30여 년 만에 세계에서 제일 큰 규모의 플라스틱 파렛트풀 시스템을 운영하는 회사가 됐습니다.”

-해외 진출 계획은 있으신지요.
“중국에서 한국 파렛트풀 시스템에 관심이 많습니다. 중국 정부로부터 공식적으로 한국의 시스템을 이식해달라는 요청을 받았습니다. 제가 일본으로부터 배운 것처럼 중국에 파렛트풀 시스템을 전수하고 있습니다. 또 RRPP(Recycled Reusable Plastic Pallet) 풀 시스템을 만들어 세계 시장에 진출하고 있습니다. RRPP는 여러 번 사용이 가능한 파렛트로 ‘저비용 초경량’ 파렛트입니다. 친환경적이고요. 이 파렛트를 이용해 국가 간 이동된 폐파렛트 처리 문제와 특히 물류비용 중 1회용 파렛트의 구입, 파렛트 이적 작업 등에 드는 불필요한 비용을 절감할 수 있습니다. 그 파렛트 안에 RFID(Radio Frequency Identification)를 장착해 자동 정보 시스템을 구축했습니다. RRPP 글로벌 풀 사업을 삼성전자, 현대차 등에서 인정해줘서 그 회사들을 따라 다니다 보니 전 세계 11개국에 16개 회사를 두게 됐습니다.”

-또 다른 계획이 있으시다면.
“접히는 해상용 컨테이너를 제작하고 있습니다. 저희가 파렛트 외에 컨테이너도 다룹니다. 해상용 컨테이너의 경우 아시아 존에서 북미나 유럽으로 많이 가는데 회수가 쉽지 않습니다. 올 때는 빈 깡통이라고 보면 되는데, 부피를 너무 차지하다 보니 순환이 잘 안 됩니다. 돌아올 땐 부피를 4분의 1로 줄일 수 있는 폴드형 컨테이너를 포스코 등과 손잡고 제작하고 있습니다. 해외 진출은 초기 단계라 매출이 1000억원 밖에 안 됩니다. 그러나 성장 가능성이 커 세계를 한번 놀라게 하고 싶습니다. 창립 50주년이 되는 2034년에는 글로벌 1위 회사인 체프를 넘어 현재 매출의 5배인 100억 달러를 달성하는 게 목표입니다.”

-최근 농생대동창회장에 연임이 되셨습니다. 아그로푸드플랫폼 사업을 취임 때부터 펼쳐오셨다고 들었는데, 어떤 사업인지 설명해 주십시오.
“2019년 5월 동창회장에 취임하기 전 수석부회장으로 3년 동안 재직했습니다. 그때부터 동창회를 유심히 지켜봤는데, 참여하는 회원이 3만명 가운데 200여 명이 채 안 돼요. 그것도 연세 지긋한 동문이 많았죠. 내가 회장을 맡으면 점점 더 줄어들겠다는 걱정이 컸어요.

이번에도 역시 책에서 길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농업의 미래에 관해 쓴 일본 책을 3년간 70여 권 읽었습니다. 그 깨달음의 결실이 AFP 사업입니다. 퇴임한 동문과 농생대 교수 등을 끌어들여 미래 농업과 관련된 벤처회사를 30여 개 만들자는 계획이었지요. 동창회 활성화는 물론 농식품 산업의 선진화에도 기여하자는 이중 포석이었지요. 각 회사 창립금은 로지스올에서 일부 투자하고, 뜻있는 동문들도 동참하고 있습니다. 외부 펀딩도 받고요. 동창회 산하 상록재단과 대학 측 학술연구재단 도움도 받습니다. 현재 추진위원회, 전문위원회 조직이 구성돼 있고 6개 회사가 만들어졌습니다.

현재 농업에 급속한 변화가 오고 있습니다. IT 기술, 종자 기술, 배양 기술이 급속도로 발전하면서 농업에도 혁명이 예고됩니다. 귀뚜라미 분말을 활용한 고기 패드는 소고기 맛과 유사하고, 무인화 기술을 활용해 사람 없이 작물을 키울 수 있는 시대입니다. 소는 이산화탄소를 많이 배출해 퇴출될 가능성이 큰 가축입니다. 또 농업에 깊은 노하우를 가진 분들의 지혜도 데이터로 담아 대대로 상속까지 될 수 있는 시스템도 만들어야 합니다. 서울대 동문이 만든 신선한 농산물을 유통할 수 있는 온라인몰도 필요하고요. 각 회사는 주로 옛 수원캠퍼스를 활용하게 됩니다.”

-퇴직한 동문에겐 ‘인생2모작’ 기회가 될 수 있겠네요.
“이제 농업이 혁신 산업입니다. 우리 동문들이 얼마나 훌륭한 지식을 갖고 있습니까? 이를 활용해야지요. 동창회가 그런 플랫폼 역할을 하겠다는 겁니다. 지속적으로 이 사업이 진행될수 있도록 제 개인 사재를 털어 AFP재단 설립도 생각하고 있습니다. 현재 250여 동문이 참여하고 있습니다. 이게 성공하면 전 세계 동창회 역사에서 한 획을 긋지 않을까 하는 생각도 듭니다(웃음).”

-공존공영(共存共榮)이 사훈인가요? 한가운데 걸어놓으셨네요.
“잘 보셨어요. 제 인생 철학입니다. 대우중공업에서 퇴직금 800만원을 받고 나왔습니다. 연구원 설립을 위해 공간 마련하고 집기 사니까 돈이 뚝 떨어졌어요. 뭔가 할 여력이 없지요. 그때 그동안 사귀어온 안태호 교수님을 비롯해 열두 분에게 부탁을 드렸어요. 같이 이 일을 해달라고요. 그분들이 함께해 주셔서 물류연구원이 물류협회로 성장할 수 있었습니다. 또 파렛트풀 사업을 할 때 일본 파렛트 회사의 도움 없이는 불가능했습니다. 국가가 해야 할 일을 내가 한다는 사명감으로 투자자들을 만나니까 기꺼이 투자 자금도 유치할 수 있었고요. 초창기부터 나 혼자가 아닌 함께 하는 회사로 로지스올을 시작했습니다. 공존공영이란 말이 어느 순간 제 몸에 딱 왔습니다. 딸, 아들에게도 ‘아빠가 주고 싶은 유산은 공존공영 정신 하나다’ 해서 저 액자를 만들어 나눠줬습니다.”

정리=김남주 기자


서병륜 회장은

서 동문은 1949년 9월 3일 전남 광양에서 태어났다. 순천고등학교와 모교 농공학과를 졸업했다. 명지대 산업대학원 산업시스템공학과에서 석사, 공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대우중공업 지게차 영업과장으로 근무하다, 1984년 한국물류연구원을 설립하여 물류 개척의 길에 몸담은 이래, 삼성전자, 롯데칠성음료 등 30여 건의 물류 컨설팅을 담당했으며, 1989년 사단법인 한국물류협회를 설립해 초대 사무국장을 거쳐 10여 년간 회장을 역임했다. 국제 활동으로는 아시아·태평양물류연맹(APLF) 회장, 아시아파렛트시스템연맹(APSF) 회장 등을 역임했다. 또 한국파렛트풀, 한국컨테이너풀, 한국로지스풀 등을 설립, 공동 물류사업을 중심으로 하는 로지스올 그룹을 창업했다.

2008년 10월 21일 지식경제부가 주최하는 ‘세계 표준의 날’ 행사에서 물류표준화에 기여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산업포장을 수상했다. 2018년 11월 1일, 26회 물류의 날 행사에서 글로벌 물류 발전과 국가 물류 위상 제고에 노력한 공로로 정부로부터 은탑산업훈장을 수상했다. 현재, 로지스올 그룹 회장이며 한국파렛트컨테이너협회 회장, 한국식품콜드체인협회 회장, 아시아파렛트시스템연맹(APSF) 명예회장이다. 본회 부회장과 농생대동창회장으로 봉사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