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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022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3D로 보여주는 공간검색, 국산기술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안성준 커브서프 대표 인터뷰
“3D로 보여주는 공간검색, 국산기술로 보여드리겠습니다” 
 
안성준 (기계설계81-85) 커브서프 대표  

‘커브서프’의 기술로 구 형태의 사물을 실시간으로 판독하고 표면에 회사 로고를 띄웠다.

실시간 3D데이터 처리기술 개발
자율차·스마트공장 등 용도 많아


‘센서 기술의 발전에 따라 3D 카메라의 등장은 이미 예견된 일이다. 그 카메라는 단시간에 수많은 측정 지점을 생성해 낼 것이다’.

안성준 커브서프 대표가 2004년 독일 슈투트가르트대에서 출판한 박사논문의 첫 구절이다. 모교에서 자동화를 공부하고 카이스트에서 석사학위를 받은 그는 1990년부터 15년간 독일의 생산자동화 연구소 프라운호퍼 IPA에서 3차원 측정과 데이터 처리를 연구했다.   

7월 4일 판교 커브서프 사무실에서 만난 안 대표는 자신의 아이폰 뒷면을 보여줬다. “여기 3D 센서가 있다”며 후면 렌즈부를 가리켰다. 요즘 휴대폰엔 왜 이렇게 렌즈가 많을까, 영문도 모르고 썼던 부분이다. 그가 “20여 년 전 내 박사논문에서 등장을 예견했던 고성능 3D 카메라가 이젠 주머니 속에 들어오는 시대가 됐다”며 씩 웃었다. 

커브서프는 3D 안경 같은 하드웨어나 앱 같은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회사가 아니다. 그 중간의 ‘미들웨어’, 즉3D 카메라에 들어갈 앱을 개발자가 만들 때 가져다 쓸 수 있는 원천기술을 보유했다. 3D 카메라마다 정보를 수집하는 방식이 모두 다르지만, 어떤 방법을 쓰든 포인트 클라우드(point cloud)로 귀결된다. 방 안에 3차원 좌표를 갖는 점들을 골고루 뿌린다고 가정해보자. 평평한 벽과 기둥, 원탁, 의자 등에 촘촘하게 점들이 달라붙어 형상을 만들 것이다. 

무수히 많은 이 측정 지점들, 즉 포인트 클라우드의 관계 데이터를 해석해 길이와 지름, 곡률, 기울기, 기하학 형태 등을 빠르고 정확히 산출하는 게 관건이다. “그런데 원기둥과 원뿔처럼 곡면이 있거나, 비스듬히 쌓인 상자처럼 기울어진 형태를 정확히 알아채는 기술은 아직 미비하다. 우리 기술이 이 점에서 월등하다”고 그는 설명했다. ‘커브서프(curve+surface)’라는 사명의 연유다. 

그는 박사논문에서 ‘최단거리 최소제곱법’이란 수학적 원리를 고안해 문제를 해결했다. 200여 년 전 가우스의 ‘최소제곱법’을 발전시킨 아이디어다. 

“독일에서 초반엔 3차원 측정 장비를 만드는 일을 했어요. 성공적으로 동작해서 데이터가 나왔는데 쓸 데가 없는 겁니다. 가령 책을 사진으로 찍고 거기서 글자 형태를 뽑아내는 것, 그 글자를 이해하는 건 하늘과 땅 차이잖아요. 측정한 3D 데이터에서 유의미한 정보를 얻을 수 있는 수학에 몰두하게 됐죠.”

스스로는 이론의 완벽함을 확신했지만 아직 때가 아니었다. “논문에서 쓴 포인트 클라우드의점 개수가 7만개예요. 100만 개로 올려 컴퓨터에 걸었더니 하나 처리하는 데도 1분이 걸리는 겁니다. 우린 로봇이 알아서 물건을 집고 용접도 하는 걸 꿈꾸는데 그 속도론 어림도 없죠. 한 20년 기다려야겠다 싶어 서랍 깊숙이 넣어뒀죠”. 

귀국해 성균관대에서 컴퓨터공학을 가르치던 중이다. 2012년 미국에서 3차원 측정 장비 소프트웨어 전시회에 들렀다가 눈을 의심했다. 쏟아져 나온 3D 장비와 소프트웨어들, ‘학수고대하던 그때’가 왔음을 직감했다. 1년 후 사직을 하고 사재를 털어 회사를 차렸다. “뒤통수에 늘 기술 생각만 있었으니 당연했죠. 겸업하면 이도 저도 안 될 것 같았어요. 누구에게 맡겨선 경쟁이 어렵다고 생각했고요. 회사를 차린 직후 마이크로소프트가 ‘홀로렌즈’를 내더니 1년에 하나씩 3D 기기들이 나오더군요. 전 그게 어떻게 쓰일지 아니까 신이 났죠.”  

안 동문이 커브서프 기술을 적용한 스마트폰 카메라 앱으로 사무실 한편의 커다란 공을 비췄다. 촘촘한 점들이 화면을 뒤덮더니 몇 초만에 구 모양을 추출하고 구 표면을 따라 흐르는 듯한 글씨도 띄워 보였다. ‘이 기술로 실제 광고판 하나 없이 세상에 광고를 붙일 수 있겠구나’ 생각이 들었다. 

당장 산업 현장에서 3차원 공간 구조를 자동 인식하고 측정하는 기술의 수요가 많다. 증강현실·가상현실, 자율주행차의 디지털 맵 제작에 필요하고, 로봇의 눈 부분에 들어가 작업물을 인식하는 데도 필수다. BIM(빌딩 정보 모델링), 물류 자동화, 건축·인테리어·토목 분야에도 긴요하다. “공장을 지으면 설계도와 실제 공장 도면을 비교해 잘 지었는지 확인하고 싶겠죠? 공장 파이프 하나하나가 원기둥이잖아요. ‘애즈-빌트(As-built)’, 즉 완공 상태 그대로 건물의 3D 도면을 만드는 데 우리 기술이 바탕이 될 수 있죠.” 일반인에겐 어떤 쓸모가 있을까. “1차원 텍스트 검색, 2차원 이미지 검색에 이어 3차원 공간검색의 시대가 올 겁니다. 지금은 상상이 어렵지만 무궁무진하게 활용될 거예요.”

문외한인 기자가 답답할 법한데도 그는 장시간 끈기 있게 설명을 했다. 그만큼 자기 기술에 자부심과 열정이 대단했다. 펀딩 형식으로 초기 투자를 받았는데, 이젠 ‘우리 기술이 더 광범위하고 가치 있게 쓰일 기회를 찾고 있다’고 했다. 이케아에서 스웨덴 주택의 ‘ㅅ’자 지붕 경사면에 태양광 발전판을 설치하는 시뮬레이션을 만들고 싶다며 문의해온 적 있다. 물류 자동화 기술을 개발하던 인텔에서 관심을 보이기도 했다.

“포인트 클라우드의 쓰나미가 곧 몰려옵니다. 익사할 건지 서핑할 건지는 얼마나 정보를 빠르게 처리하고 버리는지에 달려 있죠. 세상 모든 물체와 공간을 인식하는 복잡한 수학을 사진 한 장보다 작은 300킬로바이트로 구현했습니다. 호주머니 속 3D 카메라에 요긴하게 쓰일 겁니다.”                             
박수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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