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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2호 2022년 7월] 뉴스 본회소식

해적과 내전의 나라, 소말리아는 왜 실패했을까 

수요특강  황규득 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 
 

해적과 내전의 나라, 소말리아는 왜 실패했을까 

수요특강 
황규득 한국외대 아프리카학부 교수 





단일 종족이지만 씨족 갈등 심해
중앙집권화된 통치 시스템 부재


내전, 기아, 해적. 우리 머릿속에서 아프리카 국가 소말리아와 강한 연어(連語) 관계를 맺는 단어들이다. 영화 ‘블랙 호크 다운’, ‘모가디슈’와 국제 구호단체의 사진에서 접한 참상, ‘아덴만 여명 작전’에서 접한 잔인한 이미지에, 오랜 식민지배와 무정부의 역사까지. 소말리아는 왜 ‘실패한 나라’의 늪에서 헤어나오지 못할까? 

세계의 저명한 아프리카 전문가들은 비슷한 관점을 견지한다. “서구 시민 제국주의 세력이 식민 통치를 하기 전, 아프리카가 강력한 중앙집권화된 통치 기반을 가지고 있었다면 결과는 달라질 수 있었다”. 차근차근 소말리아의 역사를 되짚어 본 결과다. 황규득 한국외국어대 아프리카학부 교수가 본회 수요특강에서 이 관점을 설명했다. 황 교수는 남아공 프레토리아대에서 국제 관계와 아프리카 정치·경제 연구로 정치학 박사 학위를 받고 대한민국 정부의 아프리카 정책자문 위원으로 활동했다. 

소말리아는 보츠와나와 함께 아프리카에 단 둘뿐인 단일 종족국가다. 그런데 발전 국가로 손꼽히는 보츠와나와는 정반대의 길을 걸었다. 안으론 연이은 실정과 씨족의 반목, 바깥으론 서구 열강의 식민지배와 냉전시대 외줄타기, 환경적 재앙이 복잡하게 얽혀 만든 결과였다.

“1884년 베를린 회담을 통해 서구 열강들이 아프리카를 분할할 때, 다양한 종족과 언어를 고려하지 않고 자신들의 이익을 우선적으로 생각해 마구잡이로 땅을 분할했죠. 한 국가 안에 여러 종족 집단들이 조화롭게 어울리기가 어려웠어요. 소말리아도 단일민족 아래 다양한 씨족이 있었는데, 식민제국주의 세력의 통치가 씨족 간 반목과 대립의 중요한 기폭제가 됩니다.”

1969년 무혈 쿠데타로 권력을 잡은 시아드 바레 장군은 ‘하나의 민족’을 강조하며 분열을 촉진하는 씨족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문제는 시아드 바레의 언행 불일치였다. “자신이 속한 씨족인 ‘마레한(Marehan)’에게 정부 요직을 몰아주고, 토지법을 만들어 몰수한 토지도 자신의 씨족에 나눠줬습니다. 경제는 하락하고, 차별 받은 씨족들의 반란이 우후죽순 생겨났죠.” 

시아드 바레는 정당성과 지지도 회복을 위해 실지회복주의(失地回復主義, irredentism)에 기반한 전쟁을 벌인다. 소말리족이 살지만 영국과 미국 각각의 이해관계로 에티오피아에 넘겨진 땅 오가덴을 전쟁을 통해 찾으려 했다. 당시 미소 냉전이 한창이었다. 소말리아는 소련의 무기 지원을 통해 전쟁의 90%를 이기고도 에티오피아에 패배한다. “소련은 소말리아가 서방 세계, 소련과 사이 좋지 않은 중동 국가와 관계 유지하는 것이 눈엣가시였고, 피델 카스트로도 ‘소말리아를 포기하더라도 에티오피아를 붙잡는 게 유리하다’고 했죠. 결국 소련과 쿠바가 합심해 에티오피아를 지원합니다. 시아드 바레 정권은 더욱 추락해 내전으로 치닫게 되는 빌미가 됩니다.”

시아드 바레의 실정으로 벌어진 내전은 많은 나비효과를 낳았다. 파라 아이디드 등이 이끄는 ‘통일소말리아회의(USC)’가 시아드 바레를 축출했지만, USC 내 권력다툼이 계속되면서 무정부 상태가 시작됐다. 엎친 데 덮친 격으로 내전 중 소말리아 대기근이 들었다. 국제사회에서 막대한 식량 원조와 파병을 지원했지만 실권을 우려한 파라 아이디드는 이를 마다하며 제국주의 타도를 외쳤다. 급기야 소말리아에 파견된 유엔 다국적군 중 미군 병사 18명을 사살하기에 이르고, 이는 미국이 아프리카에 적극적 군사 개입을 단념하는 계기가 된다. 

해적 또한 소말리아에 정부가 없던 사이 등장해 사회에서 강한 영향력을 갖게 된다. “처음엔 순수한 취지였습니다. 내전으로 무정부 상태가 된 것을 틈타 서방세계가 마구잡이로 조업하며 소말리아 어장을 황폐화시켰고, 바닷가 연안에 거주하던 소말리아인들이 이를 막기 위해 결성한 자경단이었죠. 그런데 점차 배를 납치하면 돈이 된다는 걸 알게 됐고 어마어마한 부를 창출했어요. 서방 세계가 15년 가까이 정부가 없는 소말리아에 해양 쓰레기를 무단 투기한 걸 알게 되면서 소말리아 어부들의 해적 행위는 더욱 정당화되고 영웅시됩니다. 주민 사이에 해적이 일등 신랑감으로 꼽힐 정도였어요.”

이슬람 과격 세력의 확산도 소말리아 역사와 얽혀 있다. 해적이 성행할 때 엄격한 샤리아법을 따르는 이슬람 법정연대(UIC)가 집권해 잠시 해적행위를 억제했지만, 미국을 등 뒤에 둔 에티오피아에 의해 축출된다. 불만 세력이 더 과격한 이슬람 세력으로 변화해 ‘알샤바브’라는 무장단체가 됐다. 알샤바브 퇴치를 위해 아프리카연합이 소말리아 평화유지군 임무 ‘아미솜’을 조직했지만 갈수록 지원이 어려운 상황. “2012년 아프리카연합이 수도 모가디슈에 소말리아 연방 정부를 세우지만 유명무실한 상태예요. 소말리아 대다수 주민은 소말리아 국가의 정당성을 소말리아 연방 정부보다 알샤바브에 부여하는 측면이 강합니다. 알샤바브와 해적 간 일정 부분 공조가 이뤄진다고도 보입니다.”

아프리카의 많은 나라들처럼 취약 국가를 넘어 실패국가, 붕괴 국가까지 경험한 소말리아의 사례는 많은 학자들의 연구 대상이 됐다. 나름대로 중앙 집권화된 통치 시스템을 가지고 있었다면 식민지배를 경험하면서도 독 아닌 득이 되는 면을 창출할 수 있었을 텐데, 소말리아 등 아프리카 국가들은 상당히 느슨한 정치 연합체를 가지고 있었다. “소말리아는 소말리족이라는 하나의 종족임에도 너무 많은 씨족들, 혈연 관계로 사회를 운영해 나갔습니다. ‘왜 국가는 실패하는가’ 저자 대런 애쓰모글루는 이를 가리켜 ‘포용성이 떨어지는 사회’라고 했어요. 포용적이지 못한 국가가 중앙집권화된 통치 시스템을 경험하지 못했을 경우, 서구 식민주의세력들이 식민지배를 통해 분열과 분리를 주장했을 때 통치가 작동하지 않는 사회로 전락할 수 있다는 게 여러 학자들의 공통된 입장이고 저도 이에 공감합니다.” 

소말리아의 향후 전망을 묻는 질문에 그는 ‘상당히 암울하다’고 답했다. “2007년부터 아프리카연합이 서방세계 지원을 받아 소말리아의 국가 건설을 도왔지만 10년간 발전한 게 없어요. 게다가 알샤바브같은 이슬람 급진 세력이 성행하며 반제국주의와 반 서방세계 입장과 이미지를 더 고착화시키는 측면에서 볼 때, 소말리아 정국 개선 가능성이 그렇게 밝지만은 않습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