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25호 2021년 12월] 뉴스 본회소식

“취지 선하다고 정책 밀어붙이면 곤란”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강연
조찬포럼

“취지 선하다고 정책 밀어붙이면 곤란”
 
권태신 한국경제연구원장



무거운 세금·과한 복지 정책
개인의 자유·근로 의욕 꺾어


권태신(경제68-72) 한국경제연구원장이 12월 9일 본회 조찬포럼 연단에 섰다. 1976년 행정고시에 합격, 공직자로 사회생활을 시작한 그는 노태우·김영삼·김대중·노무현 등 네 명의 대통령 임기 동안 청와대에 파견돼, 부처 이기주의를 떠나 정부 전체의 입장에서 국가의 장래를 조망하는 안목을 키웠다. 그런 권태신 동문이 제시한 코로나 이후 우리 경제의 핵심 해법은 ‘노력한 결과 얻은 개인의 재산을 존중하고 더 열심히 노력하도록 장려하는 제도와 정책을 갖추는 것’ 즉 자본주의 시장 질서의 확립, 그것이었다.

“1955년 제가 7살 때 경남 사천에서 서울로 이사했습니다. 차 지나갈 다리가 없어 버스와 승객을 여러 척의 뗏목에 나눠 태워 강을 건넜죠. 당시 저희 아버지가 공군 중령이었는데 좁은 단칸방에 네 식구가 살았습니다. 거리엔 고아와 거지들이 득실거렸고요. 6·25전쟁이 끝나고 2년이 지나도록 조금도 나아지지 않았습니다. ‘한국이 다시 복구되려면 적어도 100년은 걸릴 것’이라고 한 맥아더 장군의 전망이 타당해 보였지요. 그런데 불과 60년 만에 국민 평균 수명이 54세에서 83세로 30살 늘었습니다. 수출 규모는 1만2500배 증가했고요. 경제뿐 아니라 사회적 정치적으로도 기적을 일궈냈죠.”

권 동문이 꼽은 기적의 비결 첫 번째는 민주주의를 바탕으로 한 굳건한 안보 체제의 확립이다. 권 동문은 이승만 전 대통령이 헌법과 민주주의를 도입하고 한미 상호방위 조약을 체결함으로써 함부로 침략해 들어올 수 없는 안보 체계를 확립했다고 짚었다. 두 번째 비결은 박정희 전 대통령. 국가 주도의 경제계획하에 시장 경제를 도입함으로써 체계적인 발전을 도모했다는 것이다. 권 동문은 “박 전 대통령이 전개한 새마을 운동이 가난과 자포자기 상태에 빠져 있던 우리 국민에게 의지와 자신감을 심어줬다”고 말했다.

“세 번째 비결은 이병철 삼성그룹 창업 회장, 정주영 현대그룹 창업 회장, 박태준 포스코 명예회장 등 도전 정신으로 무장한 기업인들을 꼽을 수 있습니다. 한 분 한 분마다 1시간 이상의 강의 자료가 필요할 만큼 한국 경제 발전에 지대한 공을 세웠죠. 이 세 가지 비결의 밑바탕엔 결국 자본주의 시장 경제가 있었고요. 개인의 신변과 재산을 보호하면서 자유를 부여하자 창의적인 아이디어가 샘솟았습니다. 역사는 산업혁명이 일어나고 자본주의가 도입되면서 인류의 삶이 평등하고 윤택해졌음을 증명하고 있어요.”

그러나 2011년을 기점으로 우리나라 경제성장률이 세계 평균에 밑돌고 있다. 권 동문은 현재 2%대의 잠재경제성장률이 10년 내 0%대로 떨어질 것이라고 말했다. 그가 꼽은 첫 번째 원인은 급속한 고령화. 2018년부터 생산가능인구가 감소 추세에 들었고, 2020년부터 절대 인구가 줄기 시작했으며, 올해 합계 출산은 0.7명으로 하락, 2100년이 되면 전체 인구가 1900만명에 그칠 것이라고 전망했다. 인구는 적더라도 열심히 일하려고 하면 한시름 덜 텐데, 노조의 힘이 비대해지면서 기업 환경 또한 악화되고 있다고.

“이 와중에 코로나19가 겹쳐 2020년 외국인 직접 투자는 2016년 이후 최저 수준을 기록했습니다. 방역 위기가 경제 위기로 전이되는 것을 막기 위해 대규모 지원 정책을 펴면서 지나친 국가 개입주의로 치달을 우려가 커졌죠. 대선 정국과 맞물리면서 기본소득, 재난지원금 같은 부자에게 더 많은 세금을 거둬 빈자에게 나눠주자는 정책이 회자되고 있습니다. 부자에겐 정당한 제 몫이 억울하게 줄어, 빈자에겐 일하지 않아도 일정한 제 몫이 생겨, 근로 의욕을 해치게 될 겁니다. 취지가 선하다는 이유만으로 정책을 밀어붙여선 안 돼요. 노동시장을 유연화하고, 새로운 산업이 출현할 수 있게 규제를 풀고, 교육의 수월성을 높여 우수한 인재가 많이 배출되도록, 그리하여 자본주의 시장 질서가 확립되도록 해야 합니다.”

이날 포럼에 정윤철(화학공학72-76) 동문이 참석하면서 특별한 인연이 회자됐다. 6·25전쟁 때 피난민이었던 정 동문 부모님을 권태신 동문 부모님이 극진히 대접했던 것. 서울대 동문으로 만난 두 사람은 그저 빙긋이 미소지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