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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021년 11월] 뉴스 본회소식

조찬포럼: 모든 세대가 고통 속에 몸부림…경제 성장 외엔 답 없다

김태유 모교 명예교수 강연
 
모든 세대가 고통 속에 몸부림…경제 성장 외엔 답 없다

김태유  모교 명예교수 강연




OECD 회원국 중 자살률 1위
노인 빈곤·청년 취업난 극심
 
지식인이 산업혁명 본질 꿰어
정치인에 올곧은 목소리 내야

“청년들이 우리나라를 ‘헬조선’이라 부르며 자조하는 이유? 경제가 성장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초고령화 사회에 청년층 등골 뽑아 노인 부양한다? 그렇게 되지도 않을뿐더러 그렇게 해서도 안 됩니다. 자식들 허리 부러져요. 경제 성장 외엔 다른 방법이 없습니다.”

11월 11일 서울 중구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본회 조찬포럼에 김태유(자원공학70-74) 모교 공대 명예교수가 ‘코로나 이후의 신세계’를 주제로 연단에 섰다. 오로지 국가 발전이라는 한 우물을 파기 위해 여러 학문을 두루 공부했다고 말하는 김태유 동문은 청년과 노인, 그 사이에 끼어 은퇴를 맞은 베이비부머 세대까지 그들이 처한 각기 다른 어려움을 냉정하게 진단하면서도 내놓은 해결책은 경제 성장, 단 하나였다.

“지난 30년간 역대 정부를 거치면서 우리나라의 경제 성장률은 대세 하락을 지속하고 있습니다. 이건 대한민국 경제가 성장 동력을 상실하고 있다는 뜻이에요. 간혹 ‘국민소득 3만 달러를 돌파해 선진국이 됐으니 그들처럼 성장률 낮아지는 게 무슨 문제냐’ 질문하시는데, 그렇지 않습니다. 청년들이 연애·결혼·출산을 포기하고 있어요. 일부 기성세대는 ‘밥값보다 비싼 커피 마시면서 뭐가 힘드냐’ 꾸짖지만, 인간의 행복은 오늘로부터 시작합니다. 국민소득 1000달러 시대에는 지금 당장은 가난해도 오늘보다 나은 내일이 기다리고 있었고, 취직도 승진할 기회도 많았습니다. 오늘날 젊은이들은 흙수저로 태어났다면 금수저가 될 기회조차 없어요. 지옥이나 다름없죠.”

한국에선 노인들도 행복하지 않다. OECD 평균 노인빈곤율의 4배, 압도적 1위를 달리고 있기 때문. 먹지도 입지도 즐기지도 않고 돈을 모아 자식들 교육에 쏟아부었건만, 쪽방으로 밀려나 끼니를 거르기 일쑤다. 옛날엔 자식을 몇 명씩 낳아 길러 십시일반 부모 부양하는 게 그리 어렵지 않았다. 평균 수명이 70세 정도였으니 10년 정도 모시면 돌아가셨다. 반면 오늘날엔 평균 수명이 80세로 늘었고, 형제자매는 많아야 두 명, 외동딸 외동아들도 흔하다. 노인 부양 부담이 몇 배로 늘어난 셈. 최근엔 베이비부머 세대의 은퇴가 맞물리면서 노인 문제는 물론 청년층 취업난까지 가속화될 전망이다.

“돈 많다고 행복한 건 아니니까 경제가 성장하지 않아도 된다? 그건 착각이자 오해고 잘못된 발상입니다. 경제 성장은 인류 문명사적 측면에서 보면 산업혁명이에요. 8000년 이어온 농업사회를 현대 산업사회로 바꿨죠. 수천 년간 세계 인구는 일정했습니다. 산업혁명을 기점으로 수직 상승했죠. 평균 키, 평균 수명, 1인당 소득 모두 치솟았어요. 산업이 생기고 고용이 창출되면서 10%의 소수 특권층과 90%의 절대 빈곤층 사이에 중산층이 형성됐습니다. 농업사회에선 더 노력해도 보상이 일정 수준을 넘지 못한 채 수천 년이 흘렀는데, 산업사회에선 기술의 발달과 규모의 경제에 힘입어 더 노력한 만큼 더 큰 보상이 따라왔습니다. 요즘 흔히 얘기하는 4차 산업혁명은 3차 산업혁명과 함께 지식 산업사회로 바뀌어 가는 것을 뜻합니다. 디지털 산업이 추가되면서 노력에 따른 보상이 더욱 폭발적으로 증가하죠. 지금 세대가 어떤 결단을 내리느냐가 중요합니다.”

 
 
11월 11일 더플라자호텔에서 열린 본회 조찬포럼에 동문 60여 명이 참석해 성황을 이뤘다.
 
김 동문은 서구의 통상 요구에 서로 다른 결단을 내린 흥선대원군과 요시다 쇼인(吉田松陰)을 비교하면서 근대화를 거쳐 선진국으로 도약한 일본과 쇠망의 길을 걸어 일제의 식민지로 전락한 조선의 역사를 견주었다. 서구와의 기술 격차를 인식한 일본은 ‘혼만 빼고 다 바꾼다. 일본은 없다’는 자세로 상투도 자르고 옷도 갈아입었던 반면, 조선은 위정척사를 주장함으로써 산업혁명에 실패했다. 그 불행한 결단이 누대에 걸쳐 후손들에게 고통을 물려줬다는 것. 김 동문은 “조국을 강대국으로 성장시킨 선각자라는 점에서 요시다 쇼인을 존경하는 동시에 남의 나라를 짓밟아 자기 나라를 발전시키겠다는 악독한 발상의 주창자라는 점에서 그를 증오한다”며 존경심에서도 증오심에서도 요시다 쇼인을 이기겠다는 일념으로 연구에 매진한다고 고백했다.

“우리만 유독 일본을 우습게 아는데 정말 큰 저력을 가진 대단한 나라입니다. 선진국과 후진국을 가르는 건 말 그대로 국가의 수준이에요. 국가의 수준을 가르는 건 정치의 수준이고요. 정치의 수준은 국민의 수준을 따라가는데, 국민의 수준은 곧 지식인의 수준입니다. 저와 여러분들이 바로 대한민국의 지식인입니다. 상관이 실무를 모르면 부정이 끼고 부패하는 것처럼 우리 국민이, 우리 지성인이 산업혁명과 국가 발전의 원리를 모르면 정치가 잘 되려야 잘 될 수가 없습니다. 흥선대원군처럼 우리 후손들에게 고난의 시간을 물려주실 겁니까. 아니면 4차 산업혁명을 성공시켜 평화롭고 행복하고 자랑스러운 시간을 물려주실 겁니까. 기로에 선 조국을 위해 옳다, 그르다, 말하는 데 주저하지 않으시길 바랍니다.” 

코로나19 방역 지침으로 인해 4개월 만에 다시 열린 이날 조찬 포럼엔 이희범 회장, 오세정 모교 총장을 비롯해 동문 60여 명이 참석했다. 본회는 김태유 동문의 책 ‘한국의 시간’과 와인을 참석 동문 전원에게 선물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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