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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2021년 8월] 문화 신간안내

92세 불문학자의 고백 “읽지 않고 가르쳐 온 게 부끄러웠다”

'프루스트를 읽다' 정명환 모교 명예교수
화제의 책

92세 불문학자의 고백 “읽지 않고 가르쳐 온 게 부끄러웠다”


프루스트를 읽다

정명환 모교 명예교수
현대문학


“프루스트의 ‘잃었던 때를 찾아서’(‘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로 알려졌지만, 저자는 이렇게 명명한다. ‘때’가 ‘시간’보다 포괄적이라는 판단에서다)를 완독하지도 않고 다 아는 것처럼 학생들을 가르쳐 온 게 부끄러웠어요. 부끄러움과 뻔뻔함을 조금이라도 해소하지 않고서는 편히 눈을 감을 수 없겠더라고요.”

정명환(불문48-54) 모교 불어불문학과 명예교수가 말년에 난해하고 방대한 분량의 이 소설을 꼼꼼히 읽고 감상문 격인 ‘프루스트를 읽다’를 쓴 이유다. 통렬한 반성에서 시작된 프루스트 읽기는 2016년 초부터 5년여의 시간이 걸렸다.

‘잃어버린 시간을 찾아서’는 국내 2개 번역본 모두가 12권씩으로 구성된 대하소설이다. 분량도 그렇지만 문장이 만연체인데다 사건 위주의 줄거리 전개를 거부하기 때문에 난해한 고전 소설의 대명사로 꼽힌다. 노학자의 고단한 노력 덕분에 독자들은 비교적 쉽게 프루스트를 만날 수 있게 됐다.

프루스트 소설의 중요성은 현재의 입장에서 과거를 해석하고 평가한다는 점에 있다. 저자 역시 프루스트의 텍스트와 그 텍스트로 인해 재생된 자신의 과거를 교차시키며 자기반성을 이어나간다. 책의 부제가 ‘겸하여 나의 추억과 생각을 담아서’인 이유다.

저자가 유독 제일 먼저 손꼽는 것은 ‘잃었던 때를 찾아서’에서 가장 많이 회자되는 마르셀의 잠자리에 들기 전, 어머니의 키스에 대한 이야기이다.

정 동문은 이 이야기에 덧대 자신의 조부모님 기일을 제사 대신에 저녁 식사 전의 기도 형식으로 바꿀 것을 어머니께 권했던 마흔 살 자신의 과거를 되살려내며 ‘어머니에게 최초의 패배로 각인될 것’이었다는 자각과 반성을 어머니에 대한 통렬한 회한으로 공감한다.

또한 문학과 예술의 본질, 그 기능에 대해서 인문학적 박학의 경험과 비판정신으로 프루스트의 사유의 한계까지 날카롭게 분석한다. 가령 “개인적, 주관적 체험만이 중요하다”는 프루스트의 문학관에 거부감을 드러내며, “실존적 연대 의식이 부재하고 자기중심주의에 빠졌다”고 비판하는 식이다.

그밖에 에밀 졸라, 도스토옙스키, 앙드레 말로, 보들레르 등의 많은 작가들을 소환시켜 비교 분석의 장을 넓힘과 동시에 프루스트와 자신의 문학적 지향과 사유방식의 차이점에 대한 소회도 명쾌하게 밝힌다.

이 책의 백미라고 할 수 있는 예술론을 다룬 마지막 장은, 이 소설의 가장 중요한 테마로서 예술론을 강조함과 동시에, 작가의 인생관, 세계관으로 펼쳐지는 요소마다 알기쉽게 설명을 붙여 저자의 과업을 다한 대장정의 마지막을 장식하게 된다.

제자인 김화영(불문61-66) 문학평론가는 추천사에서 “90이 넘도록 장기간에 걸친 고산준령이나 심해의 탐험을 마다하지 않으며 거기서 매 순간 명철한 의식과 균형을 잃지 않는 비판정신을 유지하며 삶을 부감한다는 것은 실존적 은총”이라고 말했다.

정 동문은 1929년 서울에서 태어나 모교 졸업 후 서울대, 한국외국어대 등에서 불문과 교수를 역임했으며, 저서로 ‘한국 작가와 지성’, ‘졸라와 자연주의’, ‘문학을 찾아서’, ‘이성의 언어를 위하여’, ‘젊은이를 위한 문학 이야기’외 프랑스어로 쓴 ‘Entre litterature et philosophie’(2012)가 있으며, 역서로 ‘20세기의 지적 모험’, ‘문학이란 무엇인가’ 등이 있다.
김남주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