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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2021년 8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중국선 학자 120명 동원 국책 사업, 혼자 나섰다

괴테 전집 한글로 옮기는 전영애 모교 독문과 명예교수


중국선 학자 120명 동원 국책 사업, 혼자 나섰다

괴테 전집 한글로 옮기는
전영애 모교 독문과 명예교수


“독일 바이마르 도서관에 가면 세계 각국의 괴테 전집이 쫙 꽂혀 있습니다. 그 가운데 한국어판 괴테 전집이 없다니 안타까울 뿐 아니라 자괴감마저 들었어요. 저라도 해야겠다고 생각했죠.”

18세기 독일의 대문호 요한 볼프강 폰 괴테.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으로 일찍이 이름을 떨친 그는 1만2111행의 대작 ‘파우스트’를 평생에 걸쳐 썼고, 소설 ‘빌헬름 마이스터’, ‘친화력’, 희곡 ‘타소’, ‘에그몬트’, ‘이피게니에’ 같은 문학서 외에도 ‘색채론’, ‘식물론’ 등 자연과학서와 방대한 분량의 자서전 ‘시와 진실’을 집필했다. 바이마르판 괴테 전집은 본문만 143권. 중국에선 120명의 학자가 동원되는 국책 사업을 한국에선 전영애(독문69-73) 모교 독문과 명예교수가 홀로 몰두하고 있다.

7월 22일 경기도 여주에 있는 여백서원에서 전영애 동문을 만났다. 여백서원은 2014년 전 동문이 사재를 털어 세운 후학과 시를 위한 공간이다.

“쉽고 어렵고를 떠나 괴테는 참 많이 썼습니다. 문학 작품만 해도 다채롭기 그지없는데 해부학, 식물학, 광물학, 색채학까지 연구하고 저술했죠. 바이마르 공국에서 오늘날의 국무총리에 해당하는 직책을 맡았고요. 종이 시대의 가장 생산적인 문인으로 꼽히는 괴테를 하나도 빠짐없이 완역한다는 건 불가능할뿐더러, 오늘날의 독자들에게도 쓸모가 있으려면 전체를 조감하는 안목을 갖고 선별해내는 일이 중요하다고 생각했습니다. 대략 20권 분량으로 추려 괴테의 저서를 엮고 괴테에 대한 저의 연구서를 4권 보탤 요량으로 일하고 있어요. 명리(名利)를 꾀한다면 할 수 없는 일이죠.”

독문학을 전공한 전 동문이 괴테를 따라 자연과학을 공부했다. 색채론, 식물론 관련 저술을 옮기자니 관련 지식이 필요했던 것. 어려운 고비부터 넘기자 속도가 붙었다. 2016년 정년 퇴임할 무렵, 본격적으로 시작한 번역 작업이 절반 가까이 진행됐다. 5년 안에 나머지 절반을 옮기고 뒷정리하는 시간을 넉넉히 잡아 2031년쯤 마무리 짓는 것을 목표로 하고 있다. 2019년 ‘파우스트1, 2’로 시작한 전집의 출간도 그 무렵 완결되길 희망하고 있다.

괴테 전집의 번역, 출간 시도가 국내에서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초장에 무산된 적이 한 번 있고, 여러 사람의 힘으로 상당 부분 진척된 적도 있었으나, 힘만 들고 돈은 안 되는 글이라 오늘날 출판 현실에서 책이 되어 나오지 못했다. 전 동문이 번역한 ‘괴테 시 선집’도 번역엔 3년이 걸렸지만, 12년 동안 출판사에서 잠들어 있었다.


총24권 2031년 번역 완료 예정
“콩나물값 아껴 후원한 분도…”


“번듯해 보이는 학벌과 달리 저는 어려운 여건에서 공부했습니다. 어렵사리 구한 책들이 너무 귀해 일일이 번역해 가며 읽었고, 읽은 책에 대해 글을 썼고, 쓴 글이 모이면 연구서로 묶으며 살아왔어요. 출간을 보장받고 쓴 적은 거의 없죠. 그런데 이번 괴테 전집은 뜻밖의 큰 지원을 받게 됐습니다. 젊은 벤처 사업가 한 분이 전국의 도서관에 비치될 수 있도록 상당량을 선구매 해주시겠다고 해요. 이런 독지가가 우리나라에도 있다는 게 참으로 기쁘고 감사합니다.”

콩나물값 아낀 돈이라며 거액을 보내온 주부, 자신이 읽은 책의 정가만큼 꾸준히 후원해주는 제자, 강연 끝에 잠깐 언급한 포부를 흘려듣지 않고 ‘그 꿈 꼭 이루시라’며 돈 봉투를 건넨 생면부지의 외국인 독지가까지. 제아무리 아쉬울 때도 평생 어디다 손 벌려 본 적이 없는 전 동문에게 벌린 입을 다물 수 없는 순간이 이어졌다.

전 동문은 이렇듯 소중한 정성을 모아 여백서원 한쪽에 ‘괴테 마을’을 조성 중이다. 기부가 이어진들 정말 마을을 꾸릴 만큼 되겠냐마는, 젊은이들에게 꿈을 가지라는 추상적인 말 대신 뜻을 가지면 사람이 얼마나 크고 높은 경지에 이를 수 있는지, 그런 사람은 어떻게 자기 자신을 만들어 가는지, 괴테를 통해 구체적으로 보여주고 싶다고.

“내로라하는 천재는 괴테 외에도 즐비하지만, 200여 년 전 쓴 희곡으로 현대의 이슈들을 그려낸 점은 가히 독보적입니다. 여러 학문 분야를 넘나들었던 터라 자연과학 서적에 인문학적 통찰이 녹아있기도 하죠. 막상 그의 문학을, 특히 시를 읽어보면 위인이라는 선입견 때문에 빚어지는 압도감과는 전혀 다른 꾸밈없는 소박함에 놀라게 됩니다. 교회의 힘이 여전히 막강했던 시대에 ‘이슬람이 신에의 귀의를 뜻한다면 이슬람 가운데서 우리 모두 살고 죽는다’고 말할 정도로 사고의 유연성, 개방성 또한 대단했죠. 서원에 난데없이 웬 괴테냐고 의아해하는 사람들이 적지 않습니다. 그러나 괴테의 사상은 동양적 깨우침과도 맞닿아 있어요. 인구 6만의 작은 공국 바이마르가 괴테 하나로 독일의 문화적·역사적 자부심이 된 것처럼, 우리나라에도 그런 걸출한 인물이 자라나길 소망합니다.”

전 동문은 2011년 동양인 여성 최초로 바이마르 괴테학회가 수여하는 ‘괴테 금메달’을 받았다. 최근 괴테의 편지 1만5000통을 선별해 세 권의 책으로 옮긴 그는 번역하는 동안의 소회를 담아 ‘꿈꾸고 사랑했네 해처럼 맑게’를 펴냈다. 괴테의 문장에 전 동문의 사유와 경험을 엮어, 쉽고 친근하게 괴테를 접하는 입문서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