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20호 2021년 7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工돌이 아빠, 農순이 엄마, 美순이 딸이 가꾸는 평창 허브나라
서울대 가족 이호순·이두이·이지인 동문
왼쪽부터 이지인·이두이·이호순 동문.
工돌이 아빠, 農순이 엄마, 美순이 딸이 가꾸는 평창 허브나라
이호순·이두이·이지인 동문
국내 첫 허브 테마 농원
정보문화 교류 허브 역할도
이효석의 ‘메밀꽃 필 무렵’의 무대 강원도 평창군 봉평면 허브나라 농원은 서울대 동문 가족 3명이 30년 가까이 함께 일구고 있다. 이호순(조선항공61-68) 원장, 이두이(농학66-70) 대표, 이지인(서양화92-96) 기획실장이 주인공이다. 1993년 한국 최초로 허브를 테마로 한 관광농원으로 문을 연 허브나라는 선후배 동문이자, 한 가족인 이들의 땀과 눈물과 혼이 곳곳에 배어 있다.
여름 문턱에 들며 잔뜩 흐린 6월 17일 낮, 3년 전부터 자문위원을 맡아, 매년 참석해온 평창국제평화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는 길에 허브나라에 들러 세 가족을 만났다.
이들이 이곳에 뿌리 내린 데는 사연이 있다. 이두이 대표 말이다. “애들 키우고 38세에 대학원 가니 여러 가지 배우는 게 좋더라. 49세 되던 해 저이더러 쉰 되면 시골 가자 약속했다. 대학 시절 만난 우리는 신혼 초 세 가지 약속을 했다. 내 집 짓기, 자동차 마련, 그리고 나이 오십에는 자그마한 시골농장에서 살기였다.”
이두이 대표는 “다 이뤘다”며 “이제는 내 행복 찾기에 몰두하려고 한다”고 했다. 이곳으로 와 얼마 안 돼 ‘여성동아’에 “잘 나가던 서울대 동문 커플이 시골 가 산다”고 첫 소개된 후 KBS ‘6시 내고향’ 등에 나와 유명세를 탔다. “2000년부터 한 10년간은 어린이날 같은 때는 하루 1만명이 올 정도로 레전드였다.”
학교 다닐 땐 허브가 뭔지 잘 모르던 그는 밤늦게까지 관련 서적으로 공부한 후 새벽 일찍 일어나면 밭으로 달려가 허브 보살피기를 30년, 허브나라에서 숙박한 후 이른 아침 이두이 대표 모습을 발견한다. 긴 장화에 농사 옷으로 완전 무장하고 농장에서 직원들과 허브를 돌보는 장면이다. 이 대표는 “꽃이며 잎이며 자연의 소생들은 어느 하나 똑같은 게 없어, 안 질린다”며 어미가 자식 어루만지듯 어느새 굵직한 손길이 꽃들을 매만지며 향을 맡고 있다.
허브나라 야외 전경
허브나라 야외무대에서 공연하는 가수 이문세씨.
이호순-이두이 부부와 농장 한편을 둘러보는데 딸 지인씨가 합류했다. 지인씨는 “엄마 아빠가 허브나라 씨앗을 뿌린 건 성공했지만, 지속가능하기 위해선 새로운 경영방식이 필요해 구원투수로 나선 셈”이라고 한다. “우리 가족은 삼박자가 잘 맞아요. 공돌이 아빠, 농순이 엄마, 미순이 딸, 모든 것이 우리 가족의 머리와 손에서 해결돼요.”
지인씨는 “엄마 아빠가 30년 전부터 고생고생해 세우고 가꾸신 허브나라 농원이 그 이름대로 점점 ‘나라’의 모양을 갖춰가는 것 같아 뿌듯하다”고 했다.
허브(Herb)나라는 평창 지역의 정보문화 인적교류의 허브(Hub) 역할도 맡고 있다. 허브나라는 평창 관내 중고생에게 초기부터 장학금을 지급해 왔다. 또 평창군과 일본 도야마현 도가촌, 그리고 이효석문학선양회와 일본의 전면협(일본 전국면류문화지역간 교류협의회)과 자매결연을 맺어 매년 20여 명이 교환방문하는 가교 역할을 자임했다.
코로나 발생으로 잠시 중단 상태지만, 허브나라 별빛무대는 평창 일대에서 꽤 알려져 있다. 가수 이문세, 노영심씨가 700석 규모의 야외공연장 무대에 오르면 함성이 좀처럼 그치지 않는다.
2018년 동계올림픽을 개최한 평창은 서울보다 5~6도 기온이 차다. 하여 겨울철이 길어 11월부터 이듬해 4월까지 반년 가량은 동토(凍土)에서 새싹을 틔울 준비 기간이다. 5월 내내 봄꽃이 만개하고 7월 말부터 다시 여름꽃과 가을꽃이 손님을 맞는다. 특히 평창군 일대에서 메밀꽃 축제가 열리는 9월 초순부터는 이곳에 해바라기, 털여뀌, 루드베키아 등 갖가지 꽃들이 절정을 이룬다.
반년이나 되는 동한기(冬閑期)엔 스무명 가까이 되는 직원들 급여는 어떻게 하냐고 묻자, 이두이 대표가 씩 웃는다. “‘두이찬’을 만들어 판매해요. 이곳 평창에서 나오는 브로콜리, 양배추, 오이가 아주 싱싱하고 깨끗해. 피클로 담그고 오이지도 만들고 김치를 담가 나눠줬는데, 작년부터는 온라인 판매도 해요. 찾는 사람이 많아 손이 달릴 정도죠.”
그는 “코로나가 반찬을 만들어 판매하도록 아이디어를 가져다줬다”고 했다. 이두이 대표는 “나는 받기보다 퍼주는 스타일이라 내 주변에 친한 사람치고 나한테 안 받아본 사람 없을 거”라며 소리 내 웃는다.
이두이 대표는 아주 오래된 습관이 있다. 일기 쓰기다. 농장 일기, 개인 일기, 반찬 일기, 장부까지 쓴다. 최근에 ‘오늘의 행복찾기’ 노트도 추가됐다. 그는 “나를 행복하게 하는 것, 감사와 기쁨을 기록해놓는 노트”라고 했다.
그는 법정 스님은 언제까지라도 못 잊을 거라 했다. “집을 다 둘러보시더니 낙엽송과 참나무를 베어 내지 않으려고 지붕 끝을 오려낸 걸 보시고는 ‘자네는 산에 살 자격이 있네’ 하고 칭찬하셨다”고 했다.
허브나라 식사 얘기를 빼놓을 수 없겠다. 허브나라 식당으로 안내한 이호순 원장이 지인 실장에게 비빔밥에 샐러드, 전을 주문했다. 비빔밥에 한련(旱蓮) 꽃잎 7~8장이 얹혀 있었다. 맛이 쌉싸름했다. 새천년맞이로 들떠 있던 2000년 둘째 날 미수를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가 가장 좋아하시던 꽃이 바로 그 한련이었는데…. 그윽한 향이 전해왔다.
글=이상기(서양사81-87) 아시아엔 발행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