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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18호 2021년 5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경계 없는 미래 대학의 출발점

차상균 모교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경계 없는 미래 대학의 출발점



차상균
전기공학76-80
모교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장


2013년 범대학 차원 빅데이터硏 설립 
데이터사이언스대학원 준비로 이어져 
실리콘밸리 방문 후 설립 당위성 확신
데이터·인공지능 전 라이프사이클 연구
작년 개원, 신규교수 28명 등 전폭 지원 


팬데믹과 미중 패권 대결로 가속화되고 있는 디지털 대전환은 규모와 속도, 타이밍의 게임이다. 역동적인 혁신 생태계를 갖춘 실리콘 밸리가 이 게임에서 앞서 가고 있다. 한때는 스타트업이었던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같은 빅테크 기업과 새로 생겨나는 스타트업이 스탠퍼드, 버클리 같은 혁신 대학과 어우러져 이 생태계를 만든다. 2013년 6월 오연천 총장은 임지순 물리학과 교수가 이끌던 미래연구위원회의 제언에 따라 데이터 시대를 선제적으로 준비하기 위해 범대학 차원의 빅데이터연구원을 설립하기로 결정했다.

이준식 연구부총장과 성노현 연구처장은 필자를 이 신설 연구원의 설립추진위원장으로 추천했다. 실리콘 밸리 창업과 M&A, 글로벌 SW 기업 SAP의 새로운 디지털 플랫폼 개발과 시장 개척 경험을 살려 서울대에 봉사하라는 부름에 주저없이 수락했다. 실리콘 밸리 친구들이 제2의 창업을 권유하던 때였다.

2014년 4월 10일 총장, 교육부 및 미래창조부 차관, 해외 석학 등 400여 명의 학내외 인사들이 참석한 가운데 빅데이터연구원이 설립됐다. 서울대의 각 단과대학장들이 추천한 40대 초반의 교수들이 설립추진위원이 되어 연구원 설립을 이끌었다. 이 젊은 지성들은 자유 토론을 통해 범대학 차원의 경계 없는 초학제적 빅데이터연구원 설립안을 만들었다. 연구원이 설립되자 국내외에서 협력 요청이 쇄도했다. 과제 수주가 지수적으로 늘어 4년차에는 연 100억 규모가 되었다.

2015년 데이터 기반 패러다임이 모든 학문과 산업으로 확산될 것이라는 확신이 들었다. 누구든 데이터사이언스를 공부하고 연구할 수 있는 체계를 대학에서 어떻게 만들지 고민하기 시작했다. 학부과정에 변화를 주기에는 수도권 정원 규제 등 장애물이 너무 많았다. 허브 성격의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을 혁신의 컨테이너로서 설립하면 좋겠다는 결론을 내리고 학내에서 대학원 신설을 위한 논의를 시작했다. 2016년 9월 성낙인 총장의 실리콘 밸리 출장에 동행해 구글, 엔비디아, 테슬라 등 빅테크 기업에서 근무하는 20여 명의 젊은 연구원, 기술자와 만남의 시간을 만들었다. 구글에 근무하는 미대 졸업생 등 참석자 모두로부터 디지털 혁신의 생생한 목소리를 청취한 성낙인 총장은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설립의 시대적 당위성을 확신하게 됐다.

다음 문제는 대학원 설립을 위한 신규 교수 정원과 재원 확보였다. 마침 고용노동부가 비학위 과정의 4차산업혁명 인력 예산을 만들고 있음을 알게 됐다. 지리학과 이건학 교수가 고용노동부에 4차산업혁명 인재양성의 틀을 만들어 제공했다. 2017년 6월 연구원 부원장 이상구 교수가 사업단장을 맡아 서울대 4차산업혁명 아카데미를 시작했다. 이어 경제학부 류근관 교수가 책임자가 되어 빅데이터 핀테크 과정을 추가로 시작했다.

다양한 전공의 SKY 재학생, 졸업생 등 150여 명의 청년 구직자가 아카데미에 입학했다. 고려대 영문학과 재학생이 수료 후 고려대 컴퓨터공학과 대학원에 진학해 이듬해에 저명 인공지능 컨퍼런스에 논문을 게재했다. 이 프로그램은 누구든 열정만 있으면 학부 전공에 상관없이 데이터사이언스 전문가로 변신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

데이터사이언스는 데이터와 지식의 모델링, 수집, 정제, 저장, 기계학습, 디지털 솔루션 개발 및 적용 등 데이터와 인공지능의 전 라이프사이클을 다루는 학문이다. 현재의 데이터 기반 패러다임은 컴퓨팅(C)의 획기적 발전이 가능하게 만들었다. 이 컴퓨팅의 발전 때문에 빅데이터(B) 수집과 저장, 처리가 가능하게 됐고 인공지능 알고리즘(A)의 개발과 구현도 가능하게 됐다.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은 첫 학기에 위에서 열거한 ABC 파운데이션 교육에 집중한다. 이 기간에는 지도교수도 정하지 않는다. 후속 과목으로 컴퓨터 비전, 자연어처리, 인과추론 같은 과목은 물론 인공지능 윤리, 데이터 혁신 및 창업 같은 과목도 제공한다. 모든 학생들은 교수별로 쪼개진 공간 대신 하나의 열린 공간에서 학습하고 연구한다.

ABC를 깊이 연구해 데이터사이언스 파운데이션 전문가가 될 수도 있고 경제학이나 의학 같은 특정 도메인(D)에서 파괴적 혁신을 이끌 수도 있다. 노벨 경제학상이나 과학상은 경제학과 과학에 데이터사이언스를 접목한 연구에서 나올 가능성이 높다. 한편 미국에서는 2012년 무어, 슬론 재단이 데이터사이언스를 통한 대학 혁신 실험을 위해 3,800만 달러의 기금을 조성했다. 2013년 버클리와 NYU, 워싱턴 대학교가 이 기금을 받아 혁신 실험을 시작했다.

5년간의 이 혁신 실험이 끝날 무렵 버클리에서는 범대학 차원의 혁명적 데이터사이언스 교육 체계가 들어섰다. 데이터사이언스 파운데이션 과목은 필수가 아니지만 2,800명의 대학 신입생이 수강한다. 이 과목 때문에 자연과학, 사회과학 등 모든 분야의 과목들이 따라 변하게 됐다. 버클리의 이 변화에 감동한 익명의 독지가가 2억5,000만 달러를 기부했다. NYU는 서울대처럼 허브 성격의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을 만들고 학부 과정으로 확장했다.

2018년 8월 버클리의 혁명적 변화를 이끈 데이비드 컬러 초대 데이터사이언스 학장을 지인의 소개로 만났다. 다른 환경에 있었지만 데이터사이언스를 통해 대학의 사일로를 허무는 공통의 가치를 추구해온 우리는 금방 동지가 됐다. 1년 뒤 2019년 8월 실리콘 밸리를 방문한 오세정 총장에게 컬러 학장을 소개했다. 그는 이렇게 말했다. “선도대학의 존재 이유는 과감한 교육 실험을 통해 다른 대학들이 쉽게 따라올 수 있게 하기 위한 것이다. 서울대와 버클리는 선도대학이 아닌가?”

2000년부터 16년간 스탠퍼드를 이끈 존 헤네시 총장은 재임 중 스탠퍼드의 획기적 도약을 이끈 것으로 평가받는다. 퇴임 후 구글 이사회 의장을 맡은 그는 스탠퍼드의 성공적 도약 요인으로 학문간 경계는 물론 대학과 실리콘 밸리 간 경계를 자유롭게 넘는 학풍을 꼽았다. 스탠퍼드는 이 유연성 때문에 버클리와 같이 사일로를 깨기 위한 각고의 노력을 할 필요가 없었다.

기계학습 분야의 대부인 마이클 조던 버클리 교수는 작년 11월 한국을 방문해 데이터사이언스는 이제 누구나 알아야 하는 교양이라고 선언했다.

변혁의 시기에는 과거의 관성에서 먼저 벗어나는 자가 리더가 된다. 정부는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 설립을 통해 서울대가 선도할 수 있도록 28명의 신규 교수 정원을 지원했다. 이 숫자는 MIT나 스탠퍼드가 새로운 기금을 조성해 추가로 확보하려는 교수 숫자와 같다. 2020년 3월 서울대 내부의 석사 40명, 박사 15명의 정원으로 데이터사이언스 대학원이 개원했다. 1년 동안 6명의 신임 교수가 부임했다. 구글 본사와 겸직하는 교수도 생겼다.

서울대의 변화는 시작됐다. 세 분의 총장과 서울대에 희망을 건 수많은 동문과 학내외 지지자들의 공감과 도움이 없었으면 불가능한 일이었다. 이 축적된 변화의 모멘텀을 살려 서울대와 한국의 미래 모습을 만들 책임이 우리에게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