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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07호 2020년 6월] 동정 기타

모교 도서관에 2억 쾌척한 고 정인식 형님

백기덕 동문이 전하는 추도문
삶과 추억
 
모교 도서관에 2억 쾌척한 고 정인식 형님
 
백기덕(상학58-64) 동문 기고


인식이 큰형님! 어찌 그리 황망히 떠나셨나요!

몇 해 전 수술했다는 소식을 듣기는 했지만, 요즘은 그 병은 병도 아니라고 위로 말씀을 드린 게 엊그제 같은데…. 상대 58회 입학 60주년 기념문집 ‘함께한 60년 삶의 발자취’에 보내주신 원고의 먹물이 채 마르기도 전에 어찌 그리 홀연히 떠나셨나요!

70~80년대 한국경제발전의 선발대로 뉴욕에 파견된 30여 명의 실업계, 금융계 58동기들이 맨해튼 밤거리에서 ‘돌아와요 부산항에 그리운 내 형제여’를 소리쳐 부르던 노래 소리가 아직도 귀에 생생한데 간다는 말도 없이 어찌 그리 표연히 떠나신 거요!

형님은 58동기들 모임에 빠지지 않으려 한해가 멀다 하고 매해 귀국하던 중 2년 전 동기들과 어울려 형님이 다니던 경복고등학교가 내려다 보이는 북촌 한옥마을과 인사동길을 거닐며 추억에 잠기시던 모습이 선한데 그게 마지막 모습이었네요. 

형님은 우리 58동기 누구보다도 먼저 60년대에 뉴욕 주재원으로 근무하시다가 당시 뉴욕 주재원들이 흔히 말하던 ‘만세’를 부르고 뉴욕에 주저앉아 삶의 터전을 잡으시어 맨해튼의 중심가에 ‘사랑은 자물쇠도 열 수 있다(Love laughs at locksmiths)’는 생각으로 열쇠 가게를 내고 뉴요커들의 열쇠쟁이(Locksmith)가 되었습니다. 

지금도 그렇지마는 뉴요커들은 열쇠 없이는 하루도 살 수 없다는 듯 허리춤에 열쇠를 줄줄이 달고 다니던 모습에 형님은 우리가 은행창구에서 달러를 세는 동안 상대 출신답게 야채가게 대신 열쇠장인이 되신 것입니다. 

말도 잘 통하지 않는 만리타국에서 고생고생하시며 이룬 조그만 열쇠 가게를 한국진출 기업은 물론 미국은행을 비롯한 각 금융기관의 금고설치와 관리 등 금고 전문회사(ALCO Lock & Safe, Inc)로 키워 맨해튼 중심부에서 우뚝 서시었습니다. 

인생이 끝나면 빈손으로 간다는데 형님은 이름을 남기시었습니다. 미국에서 전원주택을 하나 구입할 수도 있는 큰 돈 2억원을 후배들이 더 좋은 환경에서 학업에 정진할 수 있도록 서울대학교에 기부하시어 서울대 중앙도서관 관정관에 ‘정인식 박숙자’ 소극장이 생기게 되었습니다. 형님은 성낙인 총장 등이 참석한 감사패 증정식에서 “모교인 서울대가 국내 최고를 넘어 세계 무대에서 대한민국의 위상을 드높이고, 이번 도서관 기금으로 후배들이 문화예술적 감수성을 지닌 세계적 인재로 성장하길 바라는 마음을 전한다”고 기부 소감을 밝히기도 하였습니다.

인식이 큰 형님! 형님은 서울대 동문들의 모임인 뉴욕골든클럽 회장, 서울대 미주동창회 뉴욕지부장을 역임하는 등 꾸준히 모교 발전을 후원하였음은 물론 58동기들의 ‘뉸욕 큰형님(경상도 출신인 정 동문을 부르는 동기들의 애칭)’으로 그간 미국을 방문하는 동기들에 길잡이도 되어 주셨습니다. 

이제 뉴욕에 마지막 남은 형님이 떠나게 되니 찬란했던 58회의 뉴욕은 끝나게 되었으니 그 시절이 그립기만 합니다. 미국에 갈 때마다 맨해튼 34가 코리아 스트리트(Korea Street)에 있는 한국 음식점에서 매주 만나는 상대 선후배 모임에 불러 같이 마시던 막걸리 맛을 어찌 잊겠습니까! 이제 뉴욕에 가도 만날 사람도 기다려줄 사람 한 분도 없습니다. 

불가에서는 사람이 죽은 후 다음 생의 인연처(因緣處)를 정하는 49일째 되는 날 49재(四十九齋)를 올린다는데 형님이 눈을 감으신 4월 2일의 49일째 7제날인 5월 21일에는 부디 좋은 세상에 환생하시옵소서. 레오나르도 다빈치는 ‘죽은 자를 위하여 울지 마라 그는 휴식을 취하고 있을 뿐이다’ 하였다지요. 뉸욕 큰형님! 뉴욕에서 형님과 10년 가까이 지내는 동안 무덤에 갈 때까지 입 밖에 내놓지 않기로 모의한 일, 잊지 않으셨지요? 우리 다음 세상에서 만나 웃으며 이야기 하자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