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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4호 2019년 5월] 뉴스 모교소식

23년 차이 선후배 교수 8명 갑론을박 “지금 한반도는…”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가전략 학술회의서 열띤 토론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가전략 학술회의
23년 차이 선후배 교수 8명 갑론을박 “지금 한반도는…”




지난 4월 23일 열린 ‘서울대 통일평화연구원 창립 13주년 기념 학술회의’에서 발표자 및 토론자와 행사 관계자들이 기념사진 촬영을 했다. 앞줄 왼쪽부터 강원택 정치외교학부 교수, 박명규 사회학과 교수, 윤영관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 이지순 경제학부 명예교수.



모교 통일평화연구원(원장 임경훈)이 지난 4월 23일 관악캠퍼스 아시아경제연구소에서 창립 13주년 기념 학술회의를 개최했다. ‘한반도 평화를 위한 국가전략’에 대해 정치·사회·외교·경제부문으로 나눠 선배 교수들이 견해를 밝히면, 후배 교수들이 이를 비판하거나 새로운 의견을 제안한 후 선배 교수들이 다시 이에 답하는 형식으로 진행됐다.

강원택(지리81-85) 모교 정치외교학부 교수·박명규(사회74-78) 모교 사회학과 교수·윤영관(외교71-75)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이지순(상학68-72) 모교 경제학부 명예교수가 발표를, 김근식(정치83-88) 경남대 정치외교학과 교수·김태균(사회91-98) 모교 국제대학원 국제학과 교수·이동선(비동문97졸) 고려대 정치외교학과 교수·주병기(경제89-93) 모교 경제학부 교수가 토론을 맡았다.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북미 관계의 향방에 관심이 쏠리고 있는 만큼 외교 안보부문에서 특히 열띤 공방이 오갔다. 이동선 교수는 “근래에 비로소 미국과 북한이 합리적 의심을 드러내는 ‘정상적인 상태’로 돌아왔다”며 지난해 상반기 시작됐으나 최근 주춤하고 있는 평화·화해 국면에 대해 “남·북·미 최고지도자들이 ‘값싼 말’(cheap talk)에 의존하여 상대방을 믿거나 믿는 척했던 ‘이상한 시기’”로 규정했다.

숙적 관계인 북한과 미국이 신뢰를 쌓으려면 ‘값비싼 신호’(costly signal)가 오갔어야 했는데, 북한의 핵미사일 시험 중단이나 미국의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값싼 말에 불과하다는 것. 핵무력을 완성한 북한에게 핵미사일 시험은 이미 필요 없었고, 한미 연합훈련 중단은 미국 내 정치적 이익과 비용 절감의 영향이 크다는 게 이동선 교수의 해석이다.

“비핵화 프로세스 관련해선 과거에도 대화·합의에 도달한 적이 있습니다. 합의 이행을 강제할 ‘끝수’를 생각하지 않고 대화 재개란 ‘첫수’에만 매달린 문재인정부의 대북 정책은 필연적으로 ‘패착’일 수밖에 없었죠. 우리의 외교 자원이 ‘고래들’ 사이에서 ‘돌고래’ 수준이라면 이를 활용하는 외교 전략은 ‘새우’ 수준에 불과하므로 북미로 하여금 비현실적인 기대를 품게 하지 말고 목표를 소박하게 잡아야 할 것입니다.”

김근식 교수 또한 리비아, 우크라이나, 남아공 등 비핵화에 성공한 나라는 모두 내부에 견제 세력이 있었다며 북한의 독재체제가 건재한 이상 핵 포기는 현실적으로 어렵다고 말했다. 따라서 핵을 보유하되 못 쓰게 하는 전략으로 옮겨가야 한다는 것이 김 교수의 주장. 그는 또 “문재인정부가 이젠 중재가 아닌 선택을 해야 할 때”라며 “북미 어느 한쪽의 편에 서서 상대방을 설득해야 한다”고 말했다.


선배교수측의 토론 모습. 왼쪽부터 강원택·박명규 교수, 윤영관·이지순 명예교수


후배 교수측의 토론 모습. 왼쪽부터 김근식·이동선·김태균·주병기 교수



이동선 “북미에게 비현실적 기대 품지 않도록”
김근식 “북핵 인정하되 못쓰는 전략으로 옮겨가야”
윤영관 “쿠바 미사일 위기의 평화적 해결 주목해야”
박명규 “정권 떠나 지속가능한 전략 내야 할 때”


윤영관 교수는 두 젊은 교수의 의견을 반박했다. 빅터 차 주미대사 후보가 지명 철회됐던 당시 상황을 예로 들며 “전쟁은 충분히 가능한 일”이라고 못 박았다.

“백악관의 ‘코피전략’은 두 가지 가정을 전제로 합니다. 하나는 ‘김정은이 미국의 일회성 타격을 전면전과 분별할 수 있을 것’이라는 점이고, 다른 하나는 ‘설령 공격당한다 해도 감히 보복하지 못할 것’이라는 점이죠. 추후 군사전문가들은 이 두 가정이 모두 틀렸다는 분석을 내놨어요. 미국이 북한을 공격한다면 북한은 한국에 보복할 것이고, 한국도 가만히 있을 순 없을 겁니다.
경제적 관점에선 전쟁이 승패와 관계없이 막대한 피해를 야기하므로 가능성을 낮게 보지만, 이지순 교수의 발표에서 보듯 상당수의 전쟁이 우발적으로 발발한다는 데 많은 학자들이 의견을 같이 합니다. 전쟁 위협이 엄연한 만큼 문재인정부의 대화 재개를 경솔한 정책이었다고 생각하지 않습니다.”

한국의 외교 전략과 관련해선 “보유 자원이나 역량이 강대국에 못 미친다는 이유로 목표를 낮게 잡아야 한다는 주장에 동의할 수 없다”며 “한국이 마치 미국이나 중국인 것처럼 착각해서도 안 되지만 우리가 가진 외교 자원을 과소평가하거나 그 활용 가능성마저 포기해선 안 된다”고 말했다.

독재체제 하의 북한은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는 주장에 대해서도 “김정은 위원장이 경제발전을 이루지 못하면 통치의 정당성을 확보하기 어려운 상황”이라고 짚으면서 핵 포기를 대가로 체제 안전과 제재 해제를 얻을 수 있다는 확신을 준다면 불가능하지만은 않다고 봤다. ‘합리적 의심’ 수준에서 한 걸음 나아가 북한의 입장에서 한미의 선택과 행동을 어떻게 받아들이고 해석할지 고민해야 한다는 것. 윤 교수는 상대방의 ‘인식(perception)’을 파악하려고 노력한 성과의 예로 1962년 쿠바 미사일 위기의 평화적 해결을 꼽았다.

“트럼프 대통령은 클린턴 이후 처음으로 북한의 입장에서 미국의 언행을 살피고 있습니다. 제재는 하되 정치적 커뮤니티를 통해 관계를 개선하고 그럼으로써 김정은이 핵에 대한 집착을 버리도록 유도하고 있죠. 북한 내부에서도 의미 있는 변화가 일어나고 있습니다. 2000년경 20% 수준이었던 북한의 대외의존도가 지금은 거의 50%에 육박합니다. 엄청나게 개방경제가 됐다는 거고 무역이 없으면 체제 유지가 안 되는 구조적 한계에 직면해 있어요. 제재의 해제가 절실한 상황이죠.
때문에 핵을 갖고 타협할 가능성이 높아졌습니다. 과거에 5%쯤 됐다면 지금은 20% 정도는 된다고 생각해요. 그 가능성을 20%에서 50%, 50%에서 100%로 끌어올리는 방안에 대해 고심해야지 애당초 북한은 핵 포기 의사가 없으니 헛일이라고 여기는 건 바람직한 접근이 아닙니다.”

강원택 교수는 최근 한국의 정치 지형이 좌우 양극단으로 치닫는 현상을 꼬집었다. 설문을 통해 국민 개개인의 이념성향을 조사해보면 중도층에 밀집된 정규분포를 그리는데, 정치권에선 거대 양당이 각자의 이익을 위해 갈등과 분열을 조장하고 있다는 것. 그는 현실과 동떨어진 인위적 양당제가 1990년 3당 합당 이후 지역주의 및 이념 갈등을 거치면서 공고화됐다고 말했다.

“양당제적 속성이 지속된 데는 대통령제의 영향도 큽니다. 승자독식의 대통령 선거는 과당경쟁을 부추겼고 극단적 편 가르기를 초래했습니다. ‘너의 불행이 나의 행복, 너의 행복이 나의 불행’이 되는 제로섬적 갈등으로 인해 평화 같은 초당파적 현안조차 서로 협력할 수 없게 됐죠. 정권 바뀔 때마다 정책이 단절되니 장기적 국가과제를 설정하거나 적절히 추진하기도 힘듭니다. 시민의 요구를 따르지 않으면 정치가 생존할 수 없는 ‘시스템’의 구축이 절실합니다.” 시스템보단 적대적 악순환을 끊어낼 ‘철인’이 필요하다는 김근식 교수의 문제 제기에 대해선 박근혜 전 대통령과 문재인 대통령을 비교하면서 “대통령 한 명에 의존해 뭔가 큰 변화를 만들어낼 수 있을 거란 기대는 이제 버려야 하지 않나”하고 다른 의견을 냈다.

박명규 교수는 하노이 회담 결렬 이후 교착상태에 빠진 남북관계를 짚으면서 “비핵화와 대북제재 완화를 둘러싼 남·북·미의 타협이 장기적인 프로세스가 될 공산이 크다”며 “정권 차원의 손익계산을 떠나 지속 가능한 국가전략 위에 진행돼야 한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박 교수는 톱다운 전략으로 인해 약화된 민간 교류를 강화하고, 다원주의의 큰 틀 안에서 서로를 관용하며, 단순 병립이 아닌 더 높은 단계의 통합을 지향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촛불혁명을 강조하는 문재인정부가 위로부터의 타협을 중시하는 대북정책을 펴는 것은 모순적입니다. 다양한 시민들의 자율적 판단과 참여가 확보될 때 정치적 지지도 얻을 수 있고 화해 협력의 시너지도 강화될 거예요. 롤러코스터 같은 부침도 방지할 수 있고요. 민족 정서에 호소하는 성급한 통합보단 ‘다름’을 인정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민주시민으로서의 역량을 높이는 것이 중요합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