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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0호 2018년 3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길, 과연 열릴 것인가

윤영관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비핵화와 평화정착의 길, 과연 열릴 것인가



윤영관
외교71-75
모교 정치외교학부 명예교수·전 외교통상부 장관


한반도에서 중대한 정치적 격변이 시작되고 있다. 대북특사의 귀환 후 발표된 북한 김정은 위원장의 비핵화 의지 표명, 4월 남북정상회담, 5월 북미정상회담 발표 등 하나하나가 1주일 전까지만 해도 예상하기 힘든 놀라운 뉴스들이었다. 이러한 흐름들이 성공적으로 진행되기만 한다면 지난 20여 년의 고민거리였던 북핵문제의 해결뿐만 아니라 항구적인 평화정착도 모색할 수 있게 되었다. 작년 12월 이전까지만 하더라도 전쟁가능성이 ‘30퍼센트다, 50퍼센트다’라고 거론되었던 점을 고려한다면 참으로 다행이다.

여러 가지 점에서 지금의 이 상황은 전례 없이 놀랍다. 첫째, 2011년 집권 이후 김정은 위원장은 한 번도 비핵화 가능성을 언급하지 않았다. 많은 전문가들도 그가 리비아의 카다피, 이라크의 사담 후세인이 핵 프로그램 포기 후에 몰락한 것을 보았기에 절대로 핵을 포기하지 않을 것이라고 진단했다. 그런데 김정은 위원장은 “비핵화는 선대의 유훈”이라는 말을 처음으로 하면서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조건을 붙이기는 했지만 핵 포기 의사를 분명히 밝혔다. 이는 핵문제를 바라보는 그의 시각이 상당히 변했을 수 있다는 점을 암시해준다.

둘째, 우리 정부의 남북대화를 북미대화로 연결시키려는 비핵화 외교 노력이 성공했다는 점이다. 많은 전문가들과 국민들은 우리 정부가 핵문제를 둘러싼 심각한 국제정치 현실의 무게를 과소평가하면서 너무 이상주의적이고 감상적으로 접근하는 것 아니냐는 걱정이 많았다. 그런데 트럼프 대통령이 우리 특사단의 브리핑을 받는 그 자리에서 “5월 안으로 만나겠다”고 결정해버렸다. 만일 발표대로 된다면 최초의 북미정상회담이 열리는 것이다. 그 경우, 단순히 비핵화뿐만 아니라 한반도 냉전대결 구조를 해체할 수 있는 기회가 열린 셈이다. 국내정치적 논란과 리스크에도 불구하고 문재인 대통령이 꾸준히 북한당국에 보낸 신뢰감의 기반위에, 김정은 위원장과 트럼프 대통령의 현 상황 돌파의지가 서로 맞아떨어져서 이루어진 결과였다고 본다.

과연 이러한 외교적 노력들이 앞으로 성공할 수 있을 것인가? 그 가능성을 예측하는 데 있어서 중요한 것은 김정은 위원장의 입장 변화를 어떻게 보아야 하느냐이다. 즉 그가 핵을 더 이상 체제보장의 마지막 수단으로 보지 않고, 그것을 포기하는 대신, 안보·외교·경제적 지원을 받아낼 협상 카드로 보기 시작했다면 그것은 전략적 결단이 된다. 그러나 내심 핵보유는 끝까지 포기하지 않으려하면서 제재나 군사훈련을 약화시키고 시간벌기 수단으로 협상장에 나온다면 그것은 전술적인 조정이고 술책이 된다.

조심스럽기는 하지만 전자일 가능성에 무게를 두고 싶다. 첫째는 북한이 역사상 최초로 국제적 경제제재의 타격을 느끼기 시작했고 이것이 계속되면 엘리트 및 민심의 동요로까지 이어질 수 있다는 점을 고려했을 수 있다. 둘째로, 예측 불가능한 트럼프 대통령이 자주 군사적 옵션을 거론하면서 최신예 군사전략자산을 한반도에 집중 배치하고 코피전략 등을 검토했다는 사실을 심각하게 고려했을 수 있다. 이 두 가지 문제점들을 근본적으로 해결하기 위해서는 과거와 같이 전술적 조정만으로는 힘들고 핵을 협상카드로 사용하는 전략적 결정을 내려야 한다는 판단이 섰을 수 있다. 동시에 이미 “핵 무력의 완성”을 선언한 만큼 자신도 상당한 협상 레버리지를 확보했기에 받아낼 것을 충분히 받아낼 수 있다는 자신감이 작동했을 수 있다.

이러한 남북, 북미 간 정상외교의 성공을 위해서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우리 정부가 철저한 로드맵을 준비하는 것이다. 그와 관련해서 몇 가지 생각해 볼 점들이 있다. 첫째, 비핵화와 관련해서는 북한이 조건으로 붙인 “군사위협이 해소되고 체제안전이 보장된다면”이라는 부분이 구체적으로 어떻게 논의될 것이고 어떻게 북의 비핵화 과정과 상호 연계되어야 할 것인가이다.

군사위협 해소 및 체제안전보장 문제는 이른바 북이 말하는 미국의 “적대시”정책 해소, 한미군사훈련 중단, 한미군사동맹 문제와 관련된다. 과거 클린턴 행정부 말기 때처럼 커뮤니케 형식으로 상호 적대시정책의 종결을 선언할지, 아니면 다른 문서상의 협정, 예를 들어 평화협정을 서두를지는 두고 봐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시간이 걸릴 문서상의 조치 이전에라도 먼저 평양과 워싱턴에 연락사무소 개설이 가능할 것이다.

평화협정과 관련해서는 비핵화가 완성된 후에 체결할 것인가, 비핵화 추진과 동시에 진행할 것인가의 시점의 문제가 있다. 그리고 남·북·미 3국으로 할 것인가, 아니면 중국, 더 나아가 일·러 까지 포함시켜야 할 것인가 등의 참가범위 문제가 있다. 무엇보다 가장 핵심적인 이슈는 주한미군의 철수 문제이다. 그동안 북한은 미국이 대북 적대시정책을 해소하게 되면 주한미군도 더 이상 필요하지 않게 되니까 철수해야 되는 것 아니냐는 주장을 펼쳐왔다. 과연 이 주장을 김정은 위원장이 반복할지가 관건이다. 그런데 그 부분과 관련해서도 올 연초부터 보여준 김정은 위원장의 발언이나 통 큰 협상스타일을 볼 때, 6·15정상회담 때 김정일 위원장처럼 “주한미군은 철수할 필요가 없다”라고 말할 수도 있다고 본다. 예를 들어 대북특사와 미측에 전달한 “한미군사훈련의 지속은 우리도 이해한다”라는 그의 언급도 그런 방향으로의 추측을 가능하게 해준다.

북한은 아마도 여기에 추가하여 대북제재 완화나 경제지원을 요구할 것이다. 그러나 한국이나 미국의 입장에서 중요한 것은 비핵화에 상응하는 모든 대북지원을 철저하게 연동시켜 북한이 불가역적인(irreversible) 비핵화 조치들을 이행해나가도록 하는 것이다. 실제로 북한이 그렇게 하기 전까지는 대북제재를 지속해야 할 것이다.

마지막으로 앞으로의 협상 진행과정에서 한국 정부의 역할이 대단히 중요해졌다. 트럼프 대통령이 5월 정상회담을 결정했지만 그것을 이행할 미국 측 실무협상팀이 거의 공백상태이기 때문이다. 따라서 한국 정부가 철저하게 로드맵을 준비해서 미국 측과 긴밀하게 협조하면서 비핵화와 평화구축 외교를 주도적으로 이끌어가기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