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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4호 2021년 11월] 뉴스 모교소식

김화진 교수 “부실 기업의 ESG경영, 면죄부 될 수 없다”

대학서 연구하고 결과 제시해야 
 
“부실 기업의 ESG경영, 면죄부 될 수 없다”
 
김화진 교수 특강


10월 28일 ‘ESG는 유행인가’를 주제로 열린 김화진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강연 캡처.


대학서 연구하고 결과 제시해야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친환경·사회적 책임·지배구조 개선)가 바람직한 방향인 건 맞다. 그러나 ‘S’의 경우 정치의 기업 영향력이 높아지거나 부실한 기업이 사회적 책임을 다한다며 ‘워싱’할 우려가 있다. 절대적인 지향점으로 삼는 것은 무리가 있다.” 

들불처럼 번지는 ESG 열풍 속 맥을 짚어주는 강연이 모교에서 열렸다. 10월 28일 ‘ESG는 유행인가’를 주제로 김화진(수학79-83)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진행한 통일평화연구원 ‘평화학 포럼’ 강연이다. 독일 뮌헨대 법학부, 하버드대 로스쿨을 졸업한 김 교수는 상법과 기업 지배구조 전공으로  ESG 연구에 일찌감치 천착해왔다. 

김 교수의 얘기는 유명한 ‘포드 자동차 판결’에서 출발했다. 1919년 미국 미시간주 대법원은 “영리 회사는 원칙적으로 주주들의 투자수익을 위해 조직되고 운영된다”는 판결을 내렸다. 판례가 현행법인 미국에서 이 판결은 밀턴 프리드먼이 제시한 ‘이익을 많이 내는 것이 기업의 사회적 책임’이라는 이념적 좌표와 결합해 100년 간 공고한 원칙처럼 여겨졌다. 

미국 기업들이 ESG를 표방하면서 정관 개정 등 ‘실속’은 차리지 못한 이유다. 김 교수는 “모든 걸 선도하는 미국에서 그 원칙이 바뀌려면 1, 2년으론 어렵다. 수많은 소송이 나오고, 판결이 쌓여야 한다”며 난망을 예상했다.  

그러나 기업 이익을 최우선시하는 기조는 많은 폐단을 낳았고,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를 거치며 분위기가 환기됐다. 2018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래리 핑크 회장이 투자하고 있는 회사들에 “밀튼 프리드먼의 생각은 재고돼야 한다”는 서한을 보내면서 기업들에게 ESG는 거부할 수 없는 흐름이 됐다. “전체 주주의 이익이 아닌, 주주 포함 이해관계자 전체의 행복을 위한” 기업 지배구조의 재편이 불가피해졌고, 주주들도 ‘이익이 줄더라도 사회적 가치를 지향하자’는 마인드를 장착하기 시작했다. 

‘이익’은 명쾌하지만, ‘행복’은 모호하다. ESG의 공감대를 형성했어도 구체적인 방안은 중구난방인 이유다. 김 교수는 “ESG 중 E(친환경)는 우리에게 와닿고, G(투명 경영, 지배구조 개선)는 30년 간 학계 연구로 잘 정리됐다. 가장 어려운 분야가 S(사회적 책임)다. 과거와 달리 지금의 사회적 책임은 회사 바깥이 아닌 내부를 향한다”고 했다. 일례로 내년부터 2조원 이상 기업 이사회에 여성을 의무 포함해야 하지만 여성 인재 육성이 선행되지 않았기에 기업들의 고충이 크다. 

그는 “사회적 책임은 정치와 분리가 힘들고 순환 논리의 위험이 있다”고도 했다. ESG가 기업에 기회도, 위험도 될 수 있다는 것. 부실 기업이 ESG 경영으로 인정받는 ‘ESG 워싱’도 경계해야 한다. “중소기업은 ESG 경영을 할 여력이 없어 ESG는 큰 기업에 의도치 않게 경제력 집중을 초래할 수 있다는 모순이 있다. 소유 집중을 유발할 가능성도 높다.”

그는 결국 ESG란 화두는 ‘G’, 즉 기업 지배구조로 집약된다고 했다. ‘G’의 골자인 투명경영, 준법경영, 윤리경영은 오랜 시간 학술 연구를 통해 재무적 성과를 입증했다. 최근 학계와 실무에서는 이사회 중심 경영이 기업지배구조 개선의 핵심임에 합의하고 실전에 도입하는 추세다.

ESG에서 사회적 책임을 아예 배제하자는 뜻은 아니라고 했다. ESG의 궁극적 목표는 주주와 다른 이해관계자의 이익을 배려하기 위한 지속가능 경영이었다. 그는 프랑스 식품회사 다논의 엠마뉴엘 파버 회장이 ESG 경영을 추진하다 실적 부진으로 경질된 사례를 들며 “지금의 ESG는 이익 훼손까지 해가면서 사회 기여를 하라는 분위기다. 본말이 전도될 정도로 지나친 ESG 추구는 회의적”이라고 했다. 

국내는 미국과 달리 ESG를 저지하는 성격의 법이 없다. ESG를 반영하기 위해 정관을 개정하고, 위원회를 설치하는 기업도 늘고 있다. 김 교수는 “몇 년 안에 가시적 성과가 나올 텐데, 회사가 법률적 책임을 지려면 ESG 관련 정보를 기업공시에 반영하게 해야 한다”면서 “관건은 ESG가 글로벌 회계 원칙에 어떻게 반영되느냐다. IFRS(국제회계기준)가 나오는 데도 진통을 겪었던 회계학이 ESG를 제대로 요리할 수 있을지 확신이 없다”고 봤다.

대학의 역할도 강조했다. “ESG는 강력한 설득력을 가진 도구다. 기업 아닌 학교와 공공기관에서도 ESG에 관심이 큰 지금, 대학에서 힘을 모아 연구하고 결과를 제시해야 한다”고 했다.   

‘ESG는 유행인가’에 대한 김 교수의 답은 이렇다. “현재로선 유행인 것 같다. 우리가 쓸데없는 일을 하고 있는 것일까? 그렇진 않다. ‘사물을 폭넓고 정밀하게 보는, 색다른 안경의 등장’으로 ESG를 비유하고 싶다. 앞서 말한 한계들로 ESG가 세상을 확 바꾸기는 어렵다. 그렇지만 좋은 안경을 쓰고 세상을 한번 봤으니 앞으로 기업과 우리 행동이 달라지지 않겠는가. ESG는 세상을 바꾼 유행이 될 것이다.” 

▷유튜브 ‘서울대학교통일평화연구원’ 채널에서 강연 다시보기: https://youtu.be/33a05ZgRSZ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