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47호 2023년 10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중국·러시아 등져선 한반도 비핵 평화 구축 곤란

위성락 리셋 코리아 외교안보분과장·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중국·러시아 등져선 한반도 비핵 평화 구축 곤란


위성락
외교73-77
재단법인 한반도평화만들기 사무총장·전 한반도평화교섭본부장



북러 회담, 한미일 협력 반작용
한, 미중러에 통합대응 전략 세워야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이 지난 9월 13일 아무르주 보스토치니 우주기지에서 김정은 북한 국무위원장을 만났다. 두 정상은 회담과 연회를 통해 긴밀한 관계를 과시했다. 북한과 러시아는 두 정상의 말 그대로 전략적 협력 관계가 됐다.

원래 북러 관계는 전략적 협력 관계로 격상될 만큼 양국 간 협력 실적이 축적된 것은 아니었다. 미국이란 공동 위협이 한국, 일본과 연합해 아시아에서 그 세를 공고히 하는 것을 보고, 연대를 서둘렀음을 짐작해볼 수 있는 대목이다.

이로써 한러 간 전략적 파트너십은 지고, 북러 간 전략적 파트너십이 뜨게 됐다. 한러가 오랫동안 가꿔왔던 전략적 동반자 관계가 북러로 넘어갔다. 한국과 러시아 간의 우주, 방산 협력은 끝이 나고 이 사업이 그대로 북러 간에 전개될 판이다. 이미 최저점에 이른 한러 관계는 북러 정상회담을 계기로 지속되는 악순환에 빠질 가능성이 커졌다.

가장 우려되는 게 북러 간의 무기 거래와 군사, 우주 기술 협력이다. 북한과 러시아는 우주의 평화적 이용을 강조하면서 특정 위성 기술만 이전한 건 제재 위반이 아니라고 주장할 것이다. 러시아가 첨단 핵 미사일 관련 기술까지 북한에 넘길 가능성은 크지 않다. 예전부터 러시아는 핵과 미사일 기술의 비확산 국제 조약에 대해서는 충실히 임하는 경향을 보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우크라이나 전쟁 이후 러시아의 돌발 행동이 많아져 기술 이전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순 없다.
일각에선 북러 정상회담으로 인해 중국과 러시아 사이가 틀어질 수도 있다, 우리가 중국을 활용하자는 의견도 나오는데, 이는 아전인수식 해석이다. 한반도 문제를 둘러싼 중국과 러시아의 관점엔 다름이 없지 않으나, 미국이란 공동의 적을 상대로 최고 수준의 연대를 구축해왔다는 점을 간과해선 안 된다.

중국은 현 상황을 나쁘지 않게 본다. 중국과 러시아의 최우선순위는 미국이 주도하는 아시아 지역 안보 패권에 도전하는 것이다. 중러 관계는 전례를 찾아볼 수 없을 만큼 매우 좋다. 러시아가 먼저 북한과의 협력 강화를 시작했을 뿐 북중 관계도 북러 관계와 비슷하게 흘러갈 개연성이 더 높다. 북러 협력이 견제심리를 발동시켜 중러 연대를 상처낼 가능성은 적다. 최근 중국이 러시아의 세력권인 중앙아시아에서 영향력을 높였을 때도 중러 연대엔 별 지장이 없었다. 중국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지지하지도, 무기 지원도 하지 않았지만, 중러 연대는 약해지지 않았다.

장차 북한이 중국 무기를 사들여 러시아에 되파는 중개 무역도 가능하리라 예상된다. 북한이 러시아 무기 공급의 숙주가 되는 건데, 북한도 이득이 되는 장사다. 북한이 동의한다면, 한미일 군사협력에 대항한 북중러 군사 훈련도 불가능하지 않다. 한미일 대 북중러 대립 구도가 더욱 심화될 것이다. 이로써 북러 관계는 극적으로 격상됐고, 한러 관계엔 적신호가 켜졌다. 북핵 문제를 국제 협력으로 풀기도 어려워졌다.

그런데도 우리가 북러 협력의 잠재력을 경시하고 가능성이 희박한 중러 간 틈새 활용에 기대를 건다면 우리의 외교 대응에 중대한 착오가 생길 수 있다. 한중 관계마저 최저점에 있는 상황에서 어설픈 틈새 전략은 러시아의 반작용과 한러 관계의 추가 악화만 초래할 수 있다. 중러가 연대를 지속하며 향후 북중 협력도 더 커질 것이란 전제하에서 대처방안을 생각하는 게 합리적이다.

우리가 필요로 하는 한미일 공조는 불가피하게 한러, 한중 갈등이란 기회비용을 유발한다. 한미일 협력의 시대와 동시에 북중러와의 대립의 시대가 열린 셈이다. 중국, 러시아를 등지고서는 우리의 더 중요한 외교 안보 과제인 한반도 비핵화와 평화정착, 민족통일의 추구는 더 멀어진다. 이러한 흐름을 고려할 때, 당장 해야 할 일과 하지 말아야 할 일을 변별하는 게 중요하다.

하지 말아야 할 일은 중국 및 러시아와 대증적으로 치고받음으로써 관계를 계속 악화시키는 일이다. 이런 식이면 외교의 공간이 사라진다. 냉전 시기에도 미국과 일본은 중국, 러시아와 일정한 외교 관계를 갖고 있었던 걸 기억해야 한다. 그에 반해 한국은 미국 진영의 최전선 국가였으며, 중국 러시아와의 외교가 부재 상태였다. 그 결과 한국은 냉전 내내 어느 나라보다 더 분단, 긴장, 대립에 따른 비용을 지불해야 했다. 신냉전 시대에 한국이 그러한 상황으로 회귀해선 안 된다.

해야 할 일은 미국 중국 러시아에 대해 통합 조율된 대응전략을 세우는 일이다. 미중, 미러 대립 구도 속에서 운신하는 우리가 각각 별개의 대미, 대중, 대러 정책을 펼 수 없다. 그 전략 속에는 미중 사이에서 운신할 ‘한국형 전략 좌표’가 내장돼야 한다. 일본을 보면, 지금 상황에서도 기시다 총리는 김정은 위원장과 만날 용의가 있다고 말한다. 자국민 납치라는 일본만의 대북 의제가 있기에 그런 자세를 취하는 것이다. 미국이 내심 내키진 않더라도 나서서 반대하진 못한다. 상반되고 상충하는 목표를 조화시키는 게 외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