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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5호 2016년 12월] 뉴스 모교소식

포럼 : “미·중 갈등 속 한국, 확고한 원칙과 일관된 행동 필요”

모교 주최 ‘미-중간 한국의 딜레마’ 라운드테이블 참석한 이규형, 신각수, 정재호 동문



“미·중 갈등 속 한국, 확고한 원칙과 일관된 행동 필요”


모교 주최 ‘미-중간 한국의 딜레마’ 라운드테이블


혼란스러운 정치 상황으로 인해 한국 외교력이 공백 상태에 직면해 있다. 도널드 트럼프가 미국 대통령으로 당선되면서 국가 간 이익을 놓고 외교 전쟁이 벌어지고 있지만 미중 간에 낀 한국은 방향도 잡지 못하고 있다.

이런 가운데 지난 11월 23일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영원홀에서 ‘미-중 간 한국의 딜레마 : 해법은 무엇인가’를 주제로 라운드테이블이 열렸다. 모교 아시아연구소 ‘미중관계 프로그램’ 디렉터를 맡고 있는 정재호(국어교육79-83) 정치외교학과 교수와 이규형(외교70-74) 전 주중대사, 신각수(법학73-77) 전 주일대사가 패널로 참석했다. 주변 4강 외교 문제에 정통한 세 동문은 이날 사드배치,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환태평양경제동반자협정(TPP),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아시아교류신뢰구축회의(CICA) 등의 이슈를 놓고 한국 외교의 문제, 방향에 대해 전문가다운 통찰력을 보여줬다. 이들의 의견을 사드를 중심으로 정리했다.





이규형 “사드 반대할 명분 없어”
신각수 “中 민감할 때 발표 아쉬워”

정재호 “대중국 외교채널 취약”



이규형 : 지난 9월 국립외교원에서 열린 한반도 정세전망 세미나서 한 중국학자가 이런 말을 하더라. ‘한국에 왔더니 사드배치 문제는 양국 간에 없는 것 같다. 중국은 지금부터 시작해 계속 갈 텐데’. 한한령 등이 그 후속 조치로 보인다. 중국은 사드배치를 미군의 MD 편입 중간단계로 이해한다. 한국 방어에 아무 도움이 안 되는데 미국의 뜻에 의해 결정했다고 본다.

또 사드배치 결정 시기가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의 중재재판(패소) 시점과 맞물리면서 감정적으로도 상당히 반감을 갖고 있다. 사드배치가 미군을 보호하는 것은 맞지만 국가 안보의 상당부분을 미군에 의존하는 입장에서 우리가 그것을 반대할 명분도 까닭도 없다. 사드배치는 국익을 위한 올바른 선택이었다고 본다.


신각수 : 사드배치는 한미동맹을 유지하기 위한 불가피한 조치였다. 다만 줄곧 ‘3NO’(미국의 요청, 협의, 결정도 없었다) 정책으로 일관하다 갑작스런 발표에 반감을 가질 수는 있을 것 같다. 북한의 핵 무기가 고도화되는 상황에서 주한미군 보호를 위해 들여오는 것을 하지 말라고 하는 것은 주한미군을 철수하라는 것과 같은 이야기이기 때문에 처음부터 입장을 정하고 조치를 취했어야 한다. MD 편입에 대한 우려를 사전에 차단하는 노력을 기울였어야 했다.

이 대사님도 말씀하셨지만 발표 시점이 안 좋은 점도 있었다. 발표시점이 중국이 남중국해 영유권 분쟁 문제를 놓고 중재재판에서 패소하기 직전이었고 황교안 국무총리가 시진핑 주석을 방문한 직후였다.


이규형 : 중국 사람들은 전략적 사고에 아주 능하다. ‘저 사람이 왜 저랬을까’, 오비이락 이지만 ‘우리가 약해지니까 사드배치 발표를 했구나’ 이런 식으로 생각한다. ‘낙정과석’이란 말까지 한다. ‘우물이 무너졌는데 돌을 던진다’. 그게 감정을 상하게 한 것 같다.


정재호 : 올해만 사드 관련 회의를 20여 차례 한 것 같다. 중국 가서 한 회의는 제목만 다르지 모두 사드 관련 회의였다. 트럼프 당선으로 내년부터 우리는 굉장히 큰 철학적 질문을 놓고 고민해야 할 것 같다. 동맹이란 무엇인가. 사드는 미군을 보호하기 위해 미국이 돈을 내는 것으로 알고 있다. 소파 규정에 따르면 우리가 제공하는 땅이 미군기지가 되면 거기는 우리 땅이 아니다. 이 지점에서 우리가 중국에 말할 수 있는 명분이 있다. 미국의 땅에, 미국의 돈으로, 미군 보호하기 위해 하는 것인데 우리가 뭐라 할 수 있나. 물론 트럼프 정부가 우리에게 돈을 내라고 한다면 이 명분도 애매해지지만.
두 번째는 기본적으로 대중국 외교가 취약하다고 생각한다. 이 중요한 이슈를 협의할 채널이 없었다. 중국 외교담당 국무위원과 청와대 안보실장이 만들어 놓은 기재가 2013년 이후 한 번도 작동한 적이 없다. 그런 것들이 작동했더라면 충분한 시간을 두고 사드 배치를 논의할 수 있지 않았을까.
중국의 가장 큰 우려는 사드배치가 미국의 MD와 연결 또는 편입되는 것이다. 우리는 지속적으로 아니라고 이야기 하지만 그걸 알 수 있는 사람은 내가 만난 사람 중에는 없었다. 100% 확인할 수 있는 방법이 없다. 사드 운영을 미군이 하고 전시작전권 문제도 있기 때문이다. 중국에서 이런 말을 들었다. ‘군자의 보복은 10년이 걸려 해도 문제되지 않는다’. 과연 군자라 할 수 있는가 질문을 하지만, 이번 일을 계기로 중국의 진면목을 보게 되지 않을까 우려가 된다.


이규형 : 그럼 앞으로 어떻게 해야 할까. 지난 10월 중국에서 중국 학자들을 만나 이렇게 말했다. ‘기분 좋을 리 없겠지만, 우리는 죽느냐 사느냐의 문제다. 너희는 기분 나쁘고 아니고 문제 정도 아니냐. 기분 나쁜 거 아는데 적당히 표현했으면 좋겠다.’

중장기적으로 중국도 한국과 틀어지는 것을 원하지는 않는다. ‘둘 관계 안 좋으면 누가 좋을까’, 한 중국학자는 이런 질문을 던지고 이렇게 자답하더라. 미국 북한은 좋지만 손해 보는 것은 중국과 한국이라고. 국제회의 가서 중국학자들 만나면 멀리 보고 가자고 열심히 이야기하고 있다.


신각수 : 앞으로 미중 갈등은 끊임없이 일어날 것이다. 상수가 될 텐데, 미중 갈등에 운신할 나름대로의 원칙을 확고히 갖고 그것에 따라 일관되게 움직이는 것이 중요하다. 참고로 우리와 지정학적 여건이 비슷한 네덜란드의 외교원칙 3P를-평화(peace)·이익(profit)·원칙(principle)- 새겨볼 필요가 있다.
기본적으로 한미동맹이 한중 전략적 협력관계보다 우선한다고 생각한다. 그런 대전제하에 동맹이라고 해서 항상 의견이 같을 수 없고 할 말은 해 나가면서 관리해 나가야 한다. 두 번째는 멀리 보고 중장기적 이익에 신경써야 한다.

세 번째는 우리 스스로 주인의식을 갖고, 덩치 큰 나라들과 부딪혀 보는게 몸에 배야 한다. 네번째는 한중 간, 미중 간 다양한 사안이 있다. 하나만 보지 말고 전체적인 맥락에서 하나의 사건을 봐야 한다. A란 사안에서는 우리가 양보하지만 B안에서는 얻는. 마지막으로 우리 사회가 너무 단순성을 추구하는 경향이 있다. 현대 외교는 복잡하다. 한 가지 사항도 다양하게 연결돼 있기 때문에 우리 외교도 철학적으로 접근해야 한다.


이규형 : 아시아인프라투자은행(AIIB) 설립과 관련해 미국이 반대하는 것을 보고, ‘모든 나라가 자기 국익 측면에서 결정을 내리는구나’ 새삼 깨달았다. AIIB 설립 취지·목적을 보면 미국이 반대할 명분이 없었다. 그러나 미국은 세계경제 질서를 중국에 맡길 수 없다는, 소위 패권적 발상을 한다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강대국은 핵심이익에 대해 누구보다 강하게 밀어붙이고 대국적 의식을 갖고 있다.

우리는 남북대치 상황이라는, 외교문제에서 결정적인 약점을 갖고 있다. 크지 않은 나라들도 이런 이유로 우리를 얕잡아 보고 공갈도 치고 위협도 한다. 또 하나 복잡한 것은 국제 경제 문제에서 미국 등 서방 국가보다는 기본적으로 중국, 러시아 등 신흥 발전국의 입장을 따라가야 할 때가 많다는 점이다. 우리의 독특한 환경 속에서 우리가 추구해야 할 방향은 어디인가, 무엇이 현명한 길인가 늘 고민해야 한다.


신각수 : 외교 방향과 관련해 잘 된 외교의 한 본보기인데 알려지지 않아 아쉬운 사례를 덧붙이고 싶다. 2014년 5월 상하이에서 CICA 4차 회의가 열렸다. 그 회의에서 시진핑 주석이 ‘아시아의 안보는 아시아인 힘으로’라는 의제를 제안한다. 그 제안을 문서에 넣는 것을 한국이 유일하게 반대했다. 미 동맹국인 태국, 이스라엘, UAE, 터키는 한 마디도 안했다. 우리가 유일하게 목소리를 내 결과문서에 채택이 안됐다. 그런데 이런 일에 대해 잘 알려지지 않았다. 일본 학자들에게 이런 이야기를 했더니 상당히 놀라더라. 당시 일본 내에서는 한국의 중국경사론을 많이 이야기 할 때였다. 이런 사례들을 주변국이나 국민들에게 적극 알려야 우리 외교에 신뢰를 쌓을 수 있다.


정재호 : 제 생각에도 CICA에서 우리가 보여준 행동은 잘한 케이스였다. CICA 회의 후 중국 내부에서는 다양한 논의와 비판이 있었다고 한다. 상하이 CICA 회의 때 대통령 와 달라는 요청이 있었지만 못 간다 했더니 외교부장관을 요청했다. 당시 우리는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회의에 참석했다. CICA의 경우 많은 분들이 이 이슈를 미중 간 이슈로 보지 않지만 앞으로 ‘아시아인에 의한 아시아의 안보’라는 이슈가 증폭될 거란 생각이 든다.


이규형 : 마지막으로 하나만 더 말하고 싶다. 중국의 전승절에 박 대통령 참석 이후, 미국의 반대를 무릅쓰고 갔기 때문에 갔다 온 결과를 미국에 설명하는 제스처를 취해야 하지 않았을까. 물론 워싱턴 채널, 서울 채널 통해 했겠지만. 미국 체면 살려준다는 차원에서 차관보를 보낸다든지 해서 박 대통령이 참가 결과를 동맹국에 알려주는 조치를 했더라면 하는 아쉬움이 있다. 외교에서 이런 부분이 상당히 중요하다.
또 우리가 서방일원에서 유일하게 참석했는데 실제 얻은 것은 없었다. 전승절 참여 교섭할 때 손에 잡히는 것을 요구하고 약속 받았어야 한다. 추상적인 것은 의미가 없다. 전승절 참석 후 1월 6일 북한 4차 핵실험 했는데, 시진핑 주석과 통화는 한 달 뒤에나 이뤄졌다. 정부, 언론이 뭐가 이뤄질 것처럼 부풀리기만 했다. 실리외교를 해야 한다.


정리=김남주 기자





·이규형(외교70-74) 동문은

1974년 외교통상부에 입부 후, 1980년부터 駐유엔대표부, 중앙아프리카, 일본, 중국 및 방글라데시 대사관에서 근무하였고, 본부에서 유엔과장, 국제기구 국장 대변인과 제 2차관을 거쳐 주러 대사, 주중 대사 등 주변 4강 국가 중 두개 대사를 역임했다. 현재 삼성경제연구소 고문이며 시인으로 시작 활동도 열심이다.






·신각수(법학73-77) 동문은

모교 대학원에서 법학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제9회 외무고시 합격 후 일본과장, 조약국장, 주유엔 차석대사, 주이스라엘 대사, 1·2차관, 주일 대사 등을 역임했다. 현재 국립외교원 국제법센터 소장이며 법무법인 세종 고문, 울산대 겸임교수로 재직중이다. 신 동문은 실질적 경험과 학술적 지식을 갖춘 외교 전문가로 활발한 강연 활동을 펼치고 있다.






·정재호(국어교육79-83) 동문은

브라운대학교 역사학 석사, 미시건 대학교 정치학 박사 학위를 취득 후 홍콩과기대에서 조교수, 브루킹스연구소 CNAPS 펠로우를 역임했다. 미중 관계연구론(엮음), 중국연구 방법론, FTA 이해와 활용(공저) 등을 저술했으며, 2009년 서울대 학술연구상을 수상했다. 모교 중국연구소장을 역임했으며 현재 모교 정치외교학과 교수로 재직 중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