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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91호 2019년 2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항암 신약 ‘레이저티닙’ 유한양행 통해 1조 4천억원어치 수출합니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인터뷰

항암 신약 ‘레이저티닙’ 유한양행 통해 1조 4천억원어치 수출합니다


고종성 제노스코 대표



고종성(화학교육75-79) 제노스코(GENOSCO) 대표가 개발을 주도한 폐암신약물질 ‘레이저티닙(Lazertinib)’이 유한양행을 통해 최근 존슨&존슨 제약사 얀센과 12억5,500만 달러(약 1조4,200억원) 기술수출 계약을 체결했다. 한미약품이 2015년 사노피와 5조원대 기술수출을 한 지 3년 만에 나온 조 단위 계약이다. 고 동문은 국내 첫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를 개발한 주역이기도 하다. 


고 동문은 LG생명과학에서 16년간 재직하며 HIV 프로테아제 억제제를 비롯한 약물 발견에 공을 세웠으며 이후 2008년 미국 보스턴으로 건너가 제노스코를 설립해 신약 개발에 매진하고 있다. 전화와 이메일로 고 동문을 인터뷰했다.


-이번에 개발한 레이저티닙은 언제쯤 상용화 될 것으로 보나.

“얀센의 기업비밀이라 말하기 어렵다. 더 빨리 많은 매출을 올리고 싶은 것이 기업의 속성이기 때문에 몇 년 내 상용화 될 것으로 본다.”


-레이저티닙의 효과와 개발 스토리를 들려 달라.

“폐암치료제다. 아시아 사람들 폐암 중 45%가 EGFR(상피세포 수용체)이라는 유전자의 돌연변이로 생긴 암과 뇌로 암이 전이돼 사망에 이르는 암인데, 이를 치료하는 약이다. 레이저티닙은 EGFR 정상유전자는 억제하지 않고 암을 유발하는 돌연변이만 억제해 암을 치료할 수 있는 고도의 디자인 기술이 접목돼 있다. 부작용이 적고 뇌전이 환자에게 강력한 치료 효과를 낼 수 있다. 보스턴에서 신약 개발을 안 했으면 레이저티닙도 탄생하지 못했을 거다. 연구개발 고비마다 이곳에서 접한 정보들이 원포인트 레슨이 됐다. 보스턴에서 얻은 최신 정보를 활용한 최고 물질의 탄생, 협업 파트너들의 스피디한 개발, 훌륭한 한국 임상시험 의사들의 헌신 덕분에 여기까지 왔다. 한국은 임상을 위한 암 환자 모집 및 빠른 임상 개발 속도, 높은 정확도로 전 세계 제약사들이 주목하고 있다.” 


레이저티닙의 경쟁 약은 아스트라제네카의 ‘타그리소’인데, 타그리소가 독점하고 있는 비소세포폐암 시장은 3조원에 달한다. 폐암 신약후보 레이저티닙이 타그리소보다 암세포 사멸 효과가 더 높을 뿐만 아니라 피부 관련 부작용도 적을 수 있다는 동물실험 연구 결과가 최근 암 연구 국제학술지 온라인 판에 게재됐다. 


-제노스코는 무슨 뜻인가? 크지 않은 회사 같은데 이런 신약 개발을 했다는 게 놀랍다. 

“환자치료를 위한 고유한 과학 기술 창출이란 뜻이 담겨있다. 직원은 11명이다. 레이저티닙은 제노스코에서 고도의 디자인을 통해 얻은 물질로 오스코텍, 유한과 협업을 해 얀센과 글로벌 개발을 하게 된 것이다. 남은 임상 3상 성공을 위해 기도하고 감사하는 마음으로 일하고 있다. 신약 개발을 할 때 임상의들의 의견을 반영해 확실한 목표를 정해 공유한다. 그래야 구성원이 북극성을 향해 같이 갈 수 있다. 두 번째는 연구원의 창의성이 발휘되는 분위기를 조성하는 일이다. 숨어 있는 1인치를 찾는 일은 창의성에서 나온다. 연구원이 한마디라도 더 의견을 낼 수 있도록 분위기를 만들어야 한다. 세 번째는 단계별로 잘하는 집단과 협업이 중요하다. 레이저티닙은 이러한 과정에서 나온 산물이다.”


국내 첫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도 개발

바이오텍 성지 보스턴에서 11명 직원 합심  

관절염·백혈병 신약 개발…코스닥 상장 계획


-LG생명과학에서 개발한 당뇨병 신약 제미글로가 지난해 국내 매출액 850억원을 예상한다고 들었다.

“한국 신약 개발 역사상 처음으로 국내에서 개발한 신약으로 큰 자부심을 느낀다. 제미글로는 경쟁사 약보다 약효가 좋고 안전하다. 당뇨환자의 콜레스테롤을 낮추며 췌장을 튼튼하게 하는 장점도 있다. 매출기록보다는 당뇨환자에게 좋은 치료를 주고 몸담았던 회사에 경제적 이익을 줘서 좋다. 특히 후배들에게 지속적으로 신약 개발에 대한 열정을 심어 줘 기쁘다.”


-두 신약을 개발하기 전에 실패했던 경험을 들려준다면.

“LG생명과학에서 주로 새로운 질병 및 기술분야를 개척하는 일을 했다. AIDS 치료제, 심장순환치료제, 항암제, 당뇨치료제 등 신약 후보 물질을 찾아내 전임상 또는 임상 1상까지 하다 실패하는 경우가 허다했다. 10여 년 실패를 하다 보니 우리가 신약 개발이 가능한지 의구심도 생겼다. 특히 실패의 충격이 큰 프로젝트는 LB-42908이라는 항암제 신약 후보였다. 당시 미국 NCI와 공동연구 및 연구비 지원을 이끌어 연구 개발 중 세계적 기업인 노바티스까지 큰돈을 지원해 라이센스 하겠다고 해서 상당히 고무적이었다. 하지만 생각지도 못했던 신경독성이 나오는 바람에 신약 개발에 실패했다. 아직도 그 계약서를 갖고 있다. 당시 미국 연구책임자가 너는 잠도 안 자느냐고 물었던 기억이 난다. 실패로부터 많은 것을 배웠다. 우선 신약 개발에서 어떤 문제가 있으면 실패 하나를 배웠고, 의료현장이 기대하고 니즈에 부합하는 높은 수준의 신약 개발 후보를 만들어야 한다는 것을 깨달았다. 신약 후보 물질에 조금이라도 문제가 발견되면 과감히 일찍 포기하고 새로운 프로젝트를 시작해야 돈을 아낄 수 있다. 또 실패를 용인하는 분위기의 중요성을 절감했다. 연구자들이 두려움이 없어야 창의성을 발휘해 최고의 물질을 만드는 데 기여할 수 있다.”


-사범대학을 졸업했다. 교직에 대한 생각은 없었나.

“대학 때는 교육에 관심이 많았다. 교생실습시 대표 수업도 했다. 4학년 때 학문과 산업에 대한 관심이 높아져 한국과학기술원(KAIST)에 들어가면서 과학자의 길을 가게 됐다. 교직을 이수한 덕분에 주위 사람들로부터 잘 가르친다는 소리를 종종 듣는다. 후배 과학자들이 더 좋은 능력을 갖도록 각별한 현장교육을 실시하곤 한다.”


-카이스트에 입학할 당시만 해도 한국은 신약에 대한 관심이 크지 않았다. 신약 개발에 대한 꿈은 언제부터 시작됐나.

“1980년대 한국은 신약의 불모지였다. 심상철 전 카이스트 원장님의 실험실 학생 시절 미국암연구소(NCI) 암 관련 프로젝트를 하면서 신약 개발에 대한 꿈이 생겼다. KIST 실장이셨던 최남석 박사(전 LG화학연구원장)께서 럭키연구소로 이직하면서 함께 신약 개발을 해보자고 했던 게 결정적이었다. 심상철 교수님, 최남석 박사님은 인생의 멘토셨다. 당시 카이스트 동기들은 국립연구소나 대학으로 가기를 원했다. 기업 연구소로 가는 모험을 해서 이 자리까지 오게 된 것 같다.”        


-LG화학에 남아서 연구를 계속할 수도 있었는데 창업을 했다. 

“2007년 LG생명과학(전 LG화학)이 신약 개발 분야를 대폭 축소하던 차에 김우식 과학기술부총리께서 국가신약사업을 혁신적으로 해보라고 부르셔서 글로벌항암사업단장직을 맡았다. 국가사업단장을 하면서 쓴 계획서가 현재의 항암사업단 및 범부처 신약 개발 사업단 설립과 운영에 일조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국가사업단장을 하면서 나의 DNA는 역동적으로 돌아가는 회사라는 것을 다시 깨달았다. 정부의 연구개발시스템은 신약 개발에 필요한 유연성과 속도가 떨어지는 부분이 있다. 사표를 내고 새로운 도전을 감행했다. 결대로 살아야 재미있다. 신약 개발 역량의 밑거름이 된 사랑하는 LG에서 실패와 제미글로를 성공시킨 많은 역경과 성공경험을 살려보자고 생각했다. ‘신약 개발은 규모의 경제보다 아이디어의 경제일 수 있다, 작지만 유연한 조직을 만들어 스마트하게 연구하면 신약 성공의 꿈을 이룰 수 있다’는 희망을 갖고 회사를 설립하기로 했다. 그때 대학 교수직을 그만두고 오스코텍을 창업한 김정근(치의학78-84) 대표와의 만남이 제노스코의 시발점이다. 자본과 기술이 만나 신약 개발이라는 아름다운 꿈을 같이 실현하는 비전을 갖고 전세계 바이오텍의 심장부인 보스턴에서 사업을 시작했다.”



제노스코 직원들과 기념촬영. 11명의 일당백 직원들이 똘똘 뭉쳐 제노스코를 강소회사로 만들었다. 


-한국의 신약 개발 인프라는 어느 정도의 수준이고 문제점이 있다면.

“지금 보면 제가 한국을 떠난 10년 전보다 기초과학 발전, 병원의 이행성연구 활성화, 대형 신약 개발 성공체험을 통한 자신감, 바이오텍을 창업하려는 과학자와 기업가들의 수요 증가로 조만간 글로벌 경쟁력이 생길 것 같다. 보완해야 할 부분이라면 대학교와 국립연구소는 기초적인 연구를 되도록이면 향후 바이오텍 산업으로 연결될 수 있는 분야에 선택과 집중을 하고, 산업계는 병원 임상 현장과 공동연구 및 소통 확대, 한국 내에서만의 연구를 떠나 글로벌 혁신이 이뤄지는 장소에서 연구와 사업개발팀을 둬 혁신문화(Innovation culture)에 익숙하게 만들고 글로벌 플레이어들과 자주 교류해야 한다. 실리콘밸리에 삼성과 LG같은 IT기업이 연구센터를 둬 다양한 인재영입과 혁신문화를 통해 글로벌 경쟁력을 확보한 제품을 상품화 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모교 졸업식에서 축사할 기회가 주어진다면 후배들에게 어떤 이야기를.

“블루오션에 뛰어들 것을 먼저 말하고 싶다. 또 서울대인은 사회에 새로운 것을 만들어야 할 사회적 책임이 있다. 주어진 환경에 순응해 살기보다 꾸준히 자신을 개발하는 인생을 살자. 서울대인은 서울대라는 배경에 안주하면 안 된다. 빛의 삼원색 RGB가 어우러져 아름다운 총 천연색 영상을 만들듯 각자의 개성을 갖고 조화로운 사회를 만드는 데 기여했으면 한다. 자기능력을 연마하면서 다른 사회 구성원과 융화를 잘 해야 한다.”


-앞으로 계획은.

“현재 제노스코에서 관절염치료제가 임상 2상, 급성백혈병치료제가 임상 1상을 하고 있다. 이 부분을 계속 이끌어 가면서 앞에서 말한 레이저티닙의 조속한 항암치료제 상용화에 관심을 쏟겠다. 또 신약 개발 임상 비용을 조달하기 위해 회사 상장을 할 계획이다. 상장을 통해 10여 년간 기다려준 투자가들에게 보답하고 싶다. 기술수출자금과 상장 자금으로 세 번째 신약 개발 성공을 위한 혁신적 신규 항암제 연구개발에 매진하겠다.” 김남주 기자


고 동문은 


강원 원주고와 모교 화학교육과를 졸업했다. 대학시절 학회장을 맡아 학생운동에 참여하기도 했다. 4학년 시절 스터디 그룹을 결성, 카이스트 석사과정에 많은 동기들이 입학하는 통로가 됐다. 카이스트에서 석사 후 1990년 미국 칼텍(Caltech)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했다. 1996년 LG화학(생명과학)에 입사 후 신약연구소장 등을 맡아 신약 연구와 개발을 주도했다. 이때 개발한 신약이 당뇨병 치료제 ‘제미글로’다. 

고 동문은 한국과학기술원 항암센터장과 글로벌 항암사업단장을 역임한 후 2008년 세계적인 바이오 중심지인 보스턴 근교 케임브리지에 제노스코(GENOSCO) 회사를 설립해 항암제 신약 개발에 전력투구하고 있다. 2015년 대웅-재미제약인협회가 수여하는 공로상을 수상했다. 아들(고상순 경영02-08)이 동문이다. 취미로 테니스를 즐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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