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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4호 2023년 7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민식 초대 국가보훈부장관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국가의 품격은 누구를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다”
 
박민식 (외교84-88) 
초대 국가보훈부장관 


일곱살 때 부친 박순유 중령 월남전서 전사 
“보훈부 승격, 대한민국 내적 가치와 국가 근본 바로잡는 계기”
 
 6·25 전몰 서울대 선배 영웅들 기념사업 적극 지원
 현충원, 시민들 즐겨찾는 공간으로 만들겠다 


지난해 7월 25일(현지시간) 워싱턴DC의 미국 알링턴 국립묘지에 헌화 참배한 박민식 국가보훈처장은 곧바로 무명용사의 묘역으로 자리를 옮겼다. 때마침 폭우가 쏟아졌지만 박 처장은 거수경례를 한 미군과 함께 섰다. 빗속에서 무명 용사들을 기린 그 장면을 언론들은 “굵고 거칠게 쏟아지는 비를 온몸에 맞으며 이름없는 영웅들의 묘에 헌화했다”고 전했다.
박민식(외교84-88) 동문이 지난 6월 5일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에 취임했다. 대통령실 인근 삼각지에 있는 국가보훈부 서울지청 집무실에서 박 장관을 만났다. 집무실 한쪽 벽면에 ‘영웅을 기억하는 나라(Honoring Heroes)’라는 커다란 글씨가 눈에 들어왔다.

박 장관은 “한국의 최고 대학, 서울대학 출신으로 6·25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바친 선배 영웅들의 희생을 우리는 기려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서울대 문화관에는 6·25 참전 재학생 전몰자 추념비가 있다. 문화관 재건축을 계기로 서울대 6·25 참전 희생자 추념사업을 추진하자는 여론이 있다. 박 장관은 “국립 서울대의 정신적 성장에도 큰 기여를 할 것”이라고 거듭 강조했다.

-얼굴을 마주하니 정말 얼마나 열심히 일하시는지 그냥 느껴지네요. 요즘 몇 시간 주무시나요?
“원래 잠을 적게 잡니다. 초저녁잠이 많아서 대략 새벽 3시 반쯤이면 일어납니다. 어릴 때부터 버릇이죠. 출근할 때까지 여러 가지 정리를 하는데, 요즘은 당연히 보훈부 일을 어떻게 해야 하나에 집중합니다. 모든 에너지와 생각이 전부 보훈과 관련된 일에 꽂혀 있습니다.”
-건강은 좀 챙기십니까.
“운동은 매일 합니다. 매일 6시부터 7시까지. 얼마 전 자전거 타다 사고가 나서 손을 많이 다쳤습니다. 아직 회복이 안 됐습니다.”

-보훈처장으로 활동하시다 초대 장관이 되셨는데, 소감이 남다르실 것 같습니다.  
“지난 1년여간 국가보훈처장을 맡아온 제가 다시 초대 국가보훈부 장관의 대임을 맡게 되어 무척 영광스러우면서도 무거운 책임감을 느낍니다. 저는 그 조직의 위상이나 크기가 커졌다는 의미보다 부의 승격을 통해 대한민국의 가치를 각인시키는 의미가 더 크다고 봅니다. 사람에게 인격이 있듯이 나라에도 국격이 있고, 그것은 누구를 기억하느냐에 달려 있습니다. 보훈부 승격은 대한민국이 명실상부한 선진국으로서의 내적 가치를 갖추고 국가의 근본을 바로잡는 계기가 될 것입니다.

특히 그동안 많은 분들이 도와주신 덕분에 여야 만장일치로 된 것이 큰 의미가 있습니다. 지난 60년간 진보든 보수든 어느 정부에서도 이런 일을 못 했는데 윤석열 대통령의 보훈에 대한 철학이 워낙 확고합니다. ‘국가가 끝까지 책임지는 일류보훈’, ‘국가와 국민을 위해 희생한 분을 존중하고 기억하는 나라’를 책임 있게 완수하라는 뜻으로 생각합니다.” 

-작년 7월 미국 워싱턴 D.C ‘추모의 벽’ 준공행사에 대한민국 정부를 대표해 참석하셨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무명용사 참배 모습이 인상적이었는데. 
“(탁자 사진 가리키며) 이 장면입니다. 폭우가 쏟아지고 있었죠. 그런데 사전에 좀 알아보니까 그곳은 24시간 올드 가드라고 해서 24시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그 무명용사들을 지킨다고 합니다. 무명용사들이 나라를 지키기 위해 헌신한 것을 지키는 것이죠. 저도 감정이입이 되더라고요. 자연스럽게 빗속에서 참배를 하게 된 겁니다. 한 나라의 국립묘지를 방문했을 때, 영웅을 기억하고 예우하는 모습에서 그 나라의 품격을 느끼게 됩니다. 알링턴 국립묘지에서 쏟아지는 비를 맞으며 이름 없는 영웅들의 묘에 참배를 했던 시간은, 저에게 국가를 위해 희생하고 헌신하신 분들께 최선을 다해 보훈 정책을 펼칠 것을 다짐했던 뜻깊은 순간이었습니다.”

-알링턴 국립묘지 가보면 미국의 가치가 저절로 느껴집니다. 최근 국립 현충원에서 패션쇼가 열려 화제가 됐습니다.
“국가보훈부 출범과 함께 국방부가 관할하던 국립서울현충원 이관이 68년 만에 성사되어, 전국 12곳의 국립묘지를 통합관리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립묘지의 의미를 생각해봐야 합니다. 호국보훈의 성지입니다. 우리가 왜 그곳에 가서 참배를 합니까. 국가의 정통성이 거기에 있습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으로는 너무 엄숙주의, 폐쇄주의와 연결되는 측면이 있습니다. 365일 중에서 364일은 잠들어 있고 6월 6일 현충일 하루만 반짝해서는 안 됩니다. 호국의 성지로서 진정한 역할을 해야 합니다. 죽음의 공간을 넘어 생명의 공간으로 재창조해야 합니다. 국민들이 경건함을 유지하면서도 누구라도 자주 찾아올 수 있는 공간, 살아있는 공간이 돼야 합니다. 우리 국민들이 미국 워싱턴을 방문하면 알링턴 국립묘지는 꼭 방문합니다. 

현충원에서 제복 패션쇼를 한 이유는 재창조 프로젝트의 첫 신호탄입니다. 6월 한 달간 서울현충원에서 음악회, 어린이 뮤지컬, 돗자리 영화제와 토크콘서트, 밀리터리-한복 패션쇼 등 ‘국민과 함께하는 Amazing Cemetery’ 문화특집 행사를 개최하여, 많은 시민들이, 특히 부모님과 아이들이 손잡고 현충원을 찾아주셨습니다. 현충문 앞 광장이 매우 넓습니다. 국민들이 언제든 현충원을 찾아와 문화의 향기도 느끼고 돌아갈 때는 ‘내가 우리 가족하고 이렇게 누리는 자유가 여기 묻혀 있는 수많은 분들의 희생 덕분에 가능했구나’라고 생각하도록 해야 합니다. 현충원을 살아있는 보훈 교육의 공간으로 만들어 보고 싶습니다.”

-부친께서 월남전에 참전했다가 순국하셨습니다. 부친 박순유 중령(갑종 69기)은 어떤 분이었는지요. 
“네, 선친께서 베트남 전쟁에 참전하여 제가 7살 때 전사하셨습니다. 당시 어머니가 36살이셨는데, 생활전선에 뛰어들어 홀로 6남매를 어렵게 키우셨죠. 제가 전사자의 아들로서 보훈부 장관이 된 것은 의미가 있다고 봅니다. 저는 사실 어렸을 때, 아버지가 나라를 위해서 희생했다는 데 대해서 자부심보다는 부끄러움이 많았어요. 많은 국가 유공자들의 자녀들도 그랬을 겁니다. 공짜로 뭘 좀 도와줘야 될 사람이다. 그때만 하더라도 보훈정책은 돕고 보살핀다는 시혜적인 개념의 ‘원호(援護)’가 전부였습니다. 그래서 원호처라고 하지 않았습니까.

1984년도에 보훈처로 변신했습니다. 보훈이라는 것은 어떤 공훈에 대해서 보답한다는 뜻입니다. 정부의 책무입니다. 국가를 위해 희생하신 분들이 자긍심을 갖고 살 수 있도록 문화와 제도를 만드는 것은 저의 오랜 소명이었습니다. 지난 1년여간 국가보훈처장으로서 그 오랜 소명을 실현하기 위해 발로 뛰며 노력했습니다.”

-최근 6·25 참전 영웅들에게 제복을 선물한 것이 큰 반향을 일으켰습니다. 
“기존에는 6·25 참전용사에게 규격화된 제복이 없고, 참전유공자회 복장 규정상 여름 약복, 일명 ‘안전조끼’로 불리는 상의를 회원들이 사비로 구매해서 입었는데, 공식행사에서 입기에 부족한 면이 많았고 일각에서 참전용사들의 조끼를 비하하는 일도 발생했습니다. 참전용사의 희생과 헌신에 걸맞은 사회적 존경심과 상징성을 담은 제복이 필요하다는 생각에, 작년 6월 국내 정상 패션 디자이너 등과 협업하여 ‘제복의 영웅들’ 프로젝트를 추진했습니다. 

다행히 국민들께서 그 취지에 공감하여 뜨거운 반응을 보내주셔서 올해 정전 70주년을 맞아 6·25 참전유공자 전원에게 ‘영웅의 제복’을 드릴 수 있게 되었습니다. ‘국가에서 우리를 잊지 않고 멋들어진 제복을 잘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감사 인사를 많이 받았습니다. 국가보훈부로도 감사편지와 전화가 쇄도하고 있다고 합니다. 제복이 단순한 근무복이 아니라, 제복을 입은 사람들은 우리가 위기에 처했을 때, 우리를 대신해서 먼저 자기 목숨을, 또 자기를 희생할 준비가 되어 있는 사람들이었다는 의미가 있음을 알리고 싶었습니다. 제복은 우리 사회 영웅의 징표입니다.”

-6·25 전사자 발굴사업은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요? 또 안중근 의사 유해 찾는 문제 등도 궁금합니다.  
“6·25 전사자 발굴사업은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에서 추진하고 있습니다. 안중근 의사 유해발굴은 국가보훈부 소관으로, 그동안 정부는 사형집행보고서 등 자료조사를 통해 사형 당시 정황과 매장방식 등을 확인했고, 작년에는 ‘하얼빈산 소나무관’이 장례에 사용되었다는 귀중한 단서도 발견했습니다. 앞으로 중국, 일본 등 주변국과의 긴밀한 협력을 통해 정확한 매장 추정지를 밝혀낼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아울러 외교적 노력을 통해, 여순감옥 인근 매장 추정지 일대에 대한 현지 조사 및 발굴이 성사될 수 있도록 힘쓰겠습니다.”

-외무고시에 합격해 외교관으로 일하다 사법고시 본 뒤 법조로 방향을 틀었고, 다시 정치인의 길을 걷다가 이렇게 국무위원이 되셨습니다. 인생 역정을 걸으면서 어떤 기준이랄까 가치관이 있다면 말씀해주시죠.
“대학 다닐 때부터 좌우명이 장 폴 사르트르의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가는 그 이외의 아무것도 아니다.’였습니다. 말인즉슨 사람의 길은 뭔가 정해져 있는 게 없다는 뜻 아니겠습니까? 사람은 스스로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뜻인데, 의사결정이 쉽지는 않았지만, 항상 자기가 만들어 가는 것이라는 생각을 해왔습니다. 결정적인 순간에 안주하는 것보다는 좀 맞서 싸우는 쪽으로 선택했습니다. 또 다른 좌우명은 고등학교 때부터 간직해온 말인데 ‘말 못 하며 쫓기는 짐승이 되지 말고 싸우는 영웅이 되라’는 롱펠로우의 시의 한 구절입니다. 선거에 떨어졌을 때나 어려운 순간, 선택의 순간에 늘 곱씹으면서 생각해왔습니다. 저도 지난 몇 년 동안 고생 많이 했습니다(웃음).”

-서울대 문화관 안에 전몰비가 있습니다. 그런데 좀 초라한 감이 있습니다. 보훈부 차원에서도 관심을 가져야 할 사안으로 생각됩니다.
“당연히 가져야죠. 적극 응원하고 지원하겠습니다. 이런 건 외국에는 다 있습니다. 이번에 윤석열 대통령도 미국 가셔서 의회 연설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때 거명했던 분 중의 한 분이 해밀턴 쇼라는 분입니다. 보훈부가 이번에 6·25 10대 영웅으로 선정을 했죠. 해밀턴 쇼가 하버드대학 박사과정에 있던 학생인데, 부모한테도 말 안 하고 한국전쟁에 참전했습니다. 이름도 모르는 나라에, 얼굴도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서 하버드대 학생이 고귀한 희생을 한 겁니다. 한국의 최고 대학, 서울대 출신으로 전쟁에 참전해 목숨을 바친 그 희생을 우리는 기려야 합니다. 전쟁을 피해서 얼마든지 출세할 사람들도 있었을 텐데 참전해서 전사했다는 것은 우리가 기억하고 기려야 할 일입니다. 보훈부에서도 6·25 참전 용사들과 관련된 자료가 있을 겁니다. 참전 영웅들의 스토리도 넣고 해서 기려야죠. 그건 진보나 보수 그런 것과 상관이 없는 것입니다. 내년이라도 빨리 해야 합니다. 국가보훈부 장관으로서 적극 응원하고 지원하겠습니다.”
 
박 동문은
 
1965년생. 모교 외교학과 졸업, 외무고시(제22회)·사법시험(제35회) 합격. 외무부 국제경제국 사무관, 서울·창원·여주 지방검찰청 검사, 서울중앙지검 특수1부 수석검사, 국회의원(제18·19대), 최동원기념사업회 이사장 역임.


대담·글 : 이우탁 (동양사84-88) 연합뉴스 선임기자·본지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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