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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89호 2018년 12월] 오피니언 동문칼럼

단순·반복적인 것의 힘

김규원 모교 약대 명예교수

단순·반복적인 것의 힘


김규원 (제약72-76) 모교 약대 명예교수



얼마 전 미국 MIT의 로봇공학자가 내한해 미래의 직업에 대해 인터뷰한 기사가 떠오른다. 그 기사 내용은 단순·반복적인 직업은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 대체해 인간은 무의미하고 지루한 작업으로부터 벗어나고 그 대신 좀 더 고차원의 창의적인 새로운 일들을 하게 될 것이라고 했다. 그런데 단순·반복적인 일들이 과연 지루하고 허드렛일만 해당이 되어 다 버려야 할까? 그렇지 않다는 생각이 든다. 왜냐하면 번잡하고 불안한 마음으로부터 안식과 평온을 주는 종교적 수행들이 다들 단순·반복적이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불교의 108배와 같은 절은 매우 단순하고 반복적인 행위다. 단지 일어나고 엎드리는 아주 단순한 행위를 계속 반복하는 것이다. 이보다 더한 것은 가만히 앉아서 수행하는 좌선이다. 이 수행에서는 몸의 다른 움직임들은 다 정지하고 들숨, 날숨만을 관찰하거나 화두라는 큰 의문에 집중하는 것으로 지극히 단순·반복적인 행위다. 뿐만 아니라 이슬람교에서 매일하는 경배와 단식, 천주교의 금식과 묵상 등과 같은 종교적인 수행들도 단순·반복적이어서 꼬리를 무는 번잡한 생각을 가라앉혀 평안과 안식을 얻는 데 매우 탁월한 수행법이다.

즉, 인간이 가진 너무나 많은 생각과 그로부터 파생된 수많은 감정적 파편들-불안·근심·두려움·절망·번민·욕망 등을 해소할 수 있는 훌륭한 방법이 단순·반복적인 행위다. 운동 중에도 걷기, 달리기와 같이 단순하면서도 반복적인 육체운동이 우울증이나 불안감을 해소하여 정신건강에도 좋다는 사실은 이미 잘 알려져 있다. 신체와 정신이 분리되지 않고 서로 긴밀하게 연결되어 있으니 정신이 번잡하고 여러 가지 고민이 많을 때는 단순·반복적인 신체운동으로 해소가 가능하다. 이러한 신체운동들은 명상 못지않은 효과가 있어서 실제로 명상수련에서는 걷기가 중요한 수행방법으로 시행되고 있다.

지금의 시대에는 인간의 심리나 마음을 점점 더 번잡하고 들뜨게 만든다. 이제는 TV에서 영화나 드라마 한편도 느긋하게 마음을 놓고 볼 수가 없게 되었다. 중간에 짧은 광고들이 자주 출몰하여 정신과 마음을 흔들고 산란하게 한다. 우리가 들고 다니는 스마트폰도 끊임없이 새로운 정보를 쏟아내고 있으니 잠시 쉬기도 쉽지 않은 세상이다.

이럴 때 단순·반복적인 걷기나 명상·절 이런 것들이 얼마나 우리에게 평온함과 자유로움 그리고 안식을 주는지 실제 경험해 보면 절로 수긍이 갈 것이다. 그리고 앞에서 MIT 로봇공학자가 언급한 고차원의 창의적인 새로운 일들이 과연 인간에게 평화와 행복을 줄 것인가 다시 깊게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왜냐하면 인류 역사상 수많은 창의적인 예술작품들을 보면 정작 그것을 창조한 예술가 자신은 극히 불행하고 심각한 정신적인 고통을 받은 경우가 많다는 사실이 이미 잘 알려져 있기 때문이다.

이렇게 단순·반복적인 행위들이 인간에게 평온을 주는 이유는 인간이 살아가는 데 있어서 가장 근원적인 것들이 다 단순·반복적인 형태를 띠고 있기 때문이다. 예를 들면 매일 반복적으로 음식을 먹거나 물을 마시는 행위, 매일 밤 잠자기, 사는 동안에는 끊임없이 들숨·날숨을 반복하는 숨쉬기 그리고 끊임없이 작동하는 심장의 수축·이완 작용과 같이 우리의 생존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행위들이 지극히 단순·반복적이다.
따라서 생명의 근원에는 단순·반복적인 사이클이 가장 기본이 되는 것으로 보인다. 이런 관점에서 보면 우리가 가진 많은 생각이나 감정도 생명유지에 절대적으로 필요한 단순·반복적인 행위들을 안정적이고 원활하게 유지하고 계속 변화하는 외부환경에 적절히 대응하기 위해 두뇌 속에서 작동하는 것으로 여겨진다. 즉 미래의 위험을 회피하려는 생각이나 두려움, 불안을 느끼는 감정들도 생명의 기본 사이클을 잘 유지시키기 위해 인간의 진화과정에서 발달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된다.

이러한 단순·반복적인 일들은 당연히 인간보다 로봇이 훨씬 잘 수행할 수 있다. 전혀 육체적인 고통 없이 그것도 물결치듯 이는 감정의 변화를 가진 인간보다 무감정한 로봇이 훨씬 장기간 혹독한 종교적인 수행을 더 잘 감당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수많은 경전들, 특정 종교에 국한하지 않고 모든 종교들의 성전을 데이터베이스로 내장하고 인공지능을 갖춘 로봇이라면 어느 인간 성직자보다 해박하고 정확한 경전의 말씀을 다양한 어려움에 처한 인간에게 즉시 제공해줄 수 있을 것이다. 그래서 불행이나 난관에 봉착한 인간에게 그 상황에 적절한 경전의 내용을 설파하고 충고해줄 수 있는 로봇 성직자라는 새로운 직종이 생길지도 모른다. 이렇게 인간의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영역마저 로봇에게 양보해야 되겠는가.

그래서 단순·반복적인 일들이라고 해서 로봇에게 다 넘겨주지 말아야 한다. 그것은 우리 인간이 계속 간직하고 있어야 할 소중한 자산이다. 자칫하면 꼬리를 무는 생각과 잡다한 망념에 빠져 허우적거릴 인간이 단순·반복적인 것의 힘으로 본래 가지고 있는 생명의 본성과 공명할 수 있는 우리의 몸과 마음에 숨겨진 귀중한 보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