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482호 2018년 5월] 뉴스 본회소식

“댓글 난무하는 시대, 정론의 장 되찾겠다”

홍준호 동문 서울대언론인 대상 수상소감
서울대 언론인 대상 수상자 수상 소감

“댓글 난무하는 시대, 정론의 장 되찾겠다”


홍준호 
동양사76-83 
조선일보 대표

기사를 쓰지 않은 지 5년 정도 됐습니다. 기사를 쓰지 않으면서 신문사 생활을 할 수 있다는 것이 신기하기도 하고 송구스럽기도 했는데 이렇게 큰 상까지 받게 돼 민망합니다. 동창회에서 주는 상이니까 괜찮다 하시는 분도 있었는데 그 말씀을 듣고 돌이켜 생각해보니 저는 모교와 동문 여러분을 위해 한 일도 없었습니다. 회비를 내본 적도 없었죠. 때문에 ‘저는 상을 받을 자격이 없습니다’ 하는 게 당연한데 그러지 못하고 이 자리까지 왔습니다. 솔직히 제가 욕심이 좀 있었나 봅니다.

대학졸업 후 제 사회생활은 ‘신문기자’ 네 글자가 전부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닙니다. 기자로서 제 일생이 우리 동문들과 언론계 선후배들로부터 평균 이상으로 평가 받은 것 아닌가 그렇게 저 스스로를 위로하고 싶은 욕심이 있었던 것 같습니다. 그렇게 저 스스로를 위로할 수 있도록 자리를 마련해주신 동문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이번 수상을 계기로 제 삶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론 모교와 한국 언론의 발전을 위해 미력이나마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하게 됐습니다.

최근에 ‘드루킹’이라는 자가 기자출신 공직자를 지목하며 ‘기자나부랭이’ 운운했습니다. 그는 댓글부대를 이끌면서 여론을 조작하고 그 힘을 공공연히 과시했었죠. 그의 언행을 보면 댓글의 위력이 기사보다 위에 있고 기자와 언론사보다 댓글전사를 이끄는 자신들이 더 큰 영향력을 갖는다고 믿고 있는 것 같습니다. 그런 사람이 한두 명이 아니어서 수십 수백 명의 드루킹들이 공론의 장을 헤집고 다닌다고 합니다. 

세인들도 냉철한 기사보다 자극적이고 선동적인 댓글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이는 세상입니다. 선전선동이 난무하고 그것이 정론을 위협하고 있습니다. 그러잖아도 전통 언론은 사방에서 도전을 받고 있는데 드루킹 같은 사람한테까지 조롱을 받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얼마 전 최재천 교수의 글을 읽었습니다. 무려 499권의 명저를 남긴 다산 정약용이 18년간 유배생활을 하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하는 가정 하에 최 교수는 ‘한양의 바쁜 스케줄에 휘말려 후세에 기억되지 않는 인물이 되거나 당쟁에 휩쓸려 인생을 마감하는 등 둘 중 하나였을 것’이라고 썼습니다. 기자도 글을 쓰는 직업입니다. 불행히도 기자의 길은 위대한 저술가의 길은 아닙니다. 한양의 팍팍한 스케줄을 따라 때로는 너절한 사대부를 쫓아다니며 엿듣고 기록하고 옥석까지 가려야 하는 참으로 고단한 직업입니다. 자칫 탁류에 휩쓸리면 너절한 사대부와 함께 너절하게 인생을 마칠 수도 있는 매우 위태로운 직업이기도 합니다. 

30여 년간 글을 쓰면서 정론직필이 말처럼 쉽지 않다는 것을 절감했습니다. 하지만 아무리 어려워도 포기해선 안 된다고 가르치고 배우는 것이 정통 언론이라고 생각합니다. 지금 정통 언론과 그들이 추구하는 저널리즘의 본령이 거센 도전을 받고 있습니다. 일련의 일을 겪으면서 정론의 중요성을 새삼 재인식하지 않았을까 합니다. 그러한 희망 섞인 전망을 제시하면서 정통 언론을 지키고 빼앗긴 정론의 장을 다시 찾을 수 있도록 힘을 보태겠다는 말씀 드립니다. 감사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