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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78호 2018년 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동문 맛집을 찾아서: “떡집 고유 로고 만들어 짝퉁과 차별화했습니다”

김승모 낙원떡집 대표

동문 맛집을 찾아서

“떡집 고유 로고 만들어 짝퉁과 차별화했습니다”
김승모(체육교육90-95) 낙원떡집 대표



지난 12월 28일 오후 1시 50분. 점심을 먹기엔 다소 늦은 시간. 낙원떡집의 문을 밀고 들어섰을 때 매장에 직원 두 명은 식사 중이었다. 김승모(체육교육90-95) 낙원떡집 대표와의 인터뷰 약속시간은 오후 2시. 외근을 나간 그가 10분 후 돌아올 때까지 문턱이 닳도록 찾아드는 손님들로 직원들은 밥숟가락을 다시 들 새도 없이 바빴다.

김승모 동문은 15년 전 4대째 가업을 이어 낙원떡집의 대표가 됐다. 떡집의 역사는 1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1910년 한일병합조약이 체결되면서 수라간 나인들이 궁 밖으로 쫓겨났고, 이들에게서 떡 만드는 기술을 배운 김 동문의 외증조모가 낙원동에 가게를 연 것이 시작이었다. 간판 옆에 ‘Since 1920’이라는 문구가 있긴 하지만 실제로 떡을 만들어 팔기 시작한 때는 그보다 더 오래됐을 것으로 추측된다. 개업 당시엔 일제강점기 시대였고 사업자등록이나 상표권과 같은 인식은 근래에 와서야 정착됐기 때문이다.

“제가 가업을 이어받으면서 낙원떡집을 대표할 로고를 만들었습니다. 점포명 또한 상표권 등록하려고 했고요. 그 과정에서 ‘낙원떡집’이란 간판을 걸고 영업 중인 점포가 전국에 400여 곳에 이르는 것을 알게 됐습니다. 다른 떡집에 떡을 주문해놓고 낙원동으로 찾으러 오는 웃지 못할 일도 흔했죠. 너무 많기도 했고 소상공인이 운영할 것이 뻔한 다른 떡집에 차마 소송을 걸 수 없었습니다. 대신 한입 먹을 분량으로 낱개 포장하고 저희 가게 고유의 로고가 박힌 쇼핑백에 담아 판매하는 것으로 차별화했어요.”

김 동문의 어머니이자 낙원떡집 3대 대표인 이광순 씨는 국내 최고 명문대학인 모교를 졸업한 아들이 고된 가업을 이어받겠다고 하는 게 처음엔 마땅치 않았다. 그 자신이 평생 떡을 만들고 파느라 양쪽 고관절과 허리수술을 여러 차례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시장상황과 점점 더 까다로워지는 소비자들의 취향에 대응하려면 똑똑한 아들이 운영하는 게 좋겠다고 판단, 대표직을 맡기게 됐다. 모교 동기생 중 14명은 교수가 됐고 2명은 장학사가 됐다. 같은 과 1년 후배인 아내 박이정(체육교육91-95) 동문 또한 교직에 종사하고 있다. 얼마든지 다른 일을 할 수 있는 좋은 학벌 두고 떡집을 물려받은 이유는 뭘까.

“장사꾼 피가 있었던 것 같습니다. 특별한 계기는 없어요. 졸업 후 기업컨설팅 쪽에 종사하기도 했고 비즈니스호텔을 운영하기도 했지만 떡에 끌렸습니다. 어린 시절 연탄불로 떡을 찌던 화로 옆에서 일손을 거들었던 기억이 생생해요. 떡집 운영은 일이 아닌 일상에 가까워서 자연스럽게 가업을 잇게 됐습니다.”

김 동문은 100년 가까이 낙원떡집이 존속할 수 있었던 이유로 꾸준함을 꼽았다. 적절한 규모를 유지해 불경기의 영향을 최소화하고, 떡맛을 지킬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최대한 저렴하게 판매한다. 각종 신문·방송에 소개돼 유명해져도 인절미는 여전히 1개 1,000원이고 송편도 1㎏당 1만원 그대로다. 백화점에도 입점했었고 프랜차이즈 제안을 받기도 했지만, 품질을 떨어뜨릴 수 있어 모두 거절했다. 잘 나간다고 섣불리 덩치를 키우지 않은 덕분에 요즘처럼 어려운 상황에서도 건재하다.

“예전엔 결혼식이나 아이 백일, 돌 때면 무조건 떡을 맞췄지만 요즘엔 웨딩홀이나 뷔페 같은 데서 행사를 치르다보니 떡 수요가 많이 줄었습니다. 사람들 입맛이 빵과 케이크에 익숙해진 영향도 크고요. 저희 가게는 전통과 명성 덕분에 버티지만 다른 떡집은 더 힘듭니다. 30년 전만 해도 열네다섯 곳의 떡집이 있던 이곳 낙원동 거리에 지금은 단 네 곳만 영업 중이죠. 우리 것을 소중히 여기는 인식이 확산돼야 합니다. 문화는 상류층이 주도해 나가는 것이므로 모교 동문들이 전통을 지키고 가꾸는 데 앞장서주셨으면 좋겠어요.”

낙원떡집은 김 동문의 아버지 김정귀 씨가 칠순을 맞은 지난 2012년부터 올해로 6년째 지역 소외계층에 500만원 상당의 쌀을 기부하고 있으며, 서울을 대표하는 미래유산으로 선정된 바 있다.

나경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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