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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68호 2017년 3월] 뉴스 본회소식

서정화 회장 특별기고 서울대 폐지론의 허구성

프랑스처럼 하향 평준화 우려 법인 체제 정착에 힘 실어줘야
서울대 폐지론의 허구성

특별기고 서정화 회장



박원순 서울시장이 지난 1월 12일 “대학 서열화와 교육 파행의 주범이 서울대”라며 서울대를 없애는 대신 국공립대를 통합해 서울대와 동일한 교육서비스를 받도록 하겠다고 주장했다. 서울대 폐지론은 선거철마다 한 번씩 거론되는 단골 메뉴다. 극심한 학벌주의를 없애기 위해 서울대를 없애야 한다는 주장은 1990년대부터 제기돼 왔다. 

프랑스처럼 하향 평준화 우려

2004년에는 대통령 직속 교육혁신위원회에서 서울대 폐지론을 공론화하기도 했다. 민주노동당은 서울대 폐지를 4·15 총선 공약으로 내걸기도 했다. 2012년에는 당시 야당이었던 통합민주당이 ‘서울대 명칭을 없애고 지방 국립대를 하나로 통합하자’고 주장했다.

서울대 폐지론자들이 내세우는 근거는 크게 세 가지다. 첫째, 대학 서열화와 줄 세우기를 없애기 위해서는 학벌주의의 정점에 있는 서울대부터 없애자는 주장이다. 프랑스나 독일식의 대학 평준화를 통해 지옥 같은 사교육 현실과 학벌의 폐해를 일거에 해결하자는 것이다. 

서울대 폐지론의 당위성은 거의 모든 분야의 요직을 독점하고 있는 현상에 대한 문제의식도 포함된다. 폐지론의 두 번째 근거는 창의적 인재 육성에 걸림돌이라는 점이다. 학생들의 능력과 잠재력, 현재의 인성과 미래의 기대치를 점수라는 도구로 순위를 매기는 방식은 기성세대가 미래세대를 제도의 관점에서 평가할 수 있는 간편한 도구로서 기능한다고 주장한다. 마지막으로 서울대 폐지를 통해 수도권에 집중된 국가의 역량을 분산시킬 수 있다는 믿음이다. 

그러나 우리는 서울대 폐지를 통한 하향평준화를 우려한다. 오히려 일류대가 더 많아져야 고질적인 학벌과 줄 세우기의 병폐를 줄일 수 있다. 예컨대 서울대 수준에 견줄 수 있는 카이스트나 포스텍 같은 대학의 발전으로 한국 이공계 대학의 국제 경쟁력이 한층 올라갔듯이 더 많은 ‘서울대’의 육성이 필요한 때다. 
학벌주의의 병폐 역시 서울대를 폐지한다고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서울대가 없어지면 제2, 제3의 다른 사립대학이 정점을 차지할 것이다. 대학 간의 엄연한 질적 차이를 무시하고 서열화가 없어질까. 차라리 경쟁력 있는 지역 대학을 집중 육성해 서울대 수준으로 끌어올리는 것이 국가와 지역발전을 위해 바람직한 방향이다. 폐지론자들이 예를 드는 프랑스의 대학들은 1968년 대학을 파리 1∼13대학으로 개편한 후 하향평준화로 골머리를 앓고 있다. 대학 경쟁력이 갈수록 떨어져 국가 차원에서도 경쟁력 회복에 안간힘을 쓰고 있다.

법인 체제 정착에 힘 실어줘야 

현 시점은 서울대 폐지보다 법인화 안착에 힘을 쏟고 있는 서울대를  응원해야 할  때이다. 
서울대가 국립대학법인으로 전환된 것은 정부 소속기관에서 벗어나 스스로 권리와 의무의 주체가 되는 공법인으로 전환되어 공적 책무를 수행하는 방식에 있어 국가 주도 방식에서 ‘자율’과 ‘창의’에 입각한 법인 주도의 방식으로 변화된 것을 의미한다. 미국의 주립대학들과 영국의 옥스퍼드대, 케임브리지대 등이 설립 당시부터 법인으로 출발한 것은 서울대 법인화에 큰 의미를 부여한다. 

고등교육에 대한 국가적 책임을 강조해 온 유럽에서도 독일 괴팅겐대, 프랑크푸르트대, 오스트리아 비엔나대 등이 법인으로 전환했다.  아시아에서도 일본이 2004년 89개 전체 국립대학을 동시에 법인화했고, 싱가포르국립대는 2006년 국가의 전폭적인 지원 아래 법인화했다. 현재 세계 10위권 대학 중에서 독립된 법인격을 갖추고 있지 않은 대학이 없다는 사실은 우리의 현실에 시사하는 바가 크다. 

서울대 법인체제의 발전을 위해 과제를 정리하면 첫째, 법인체제 기능 안정화 측면이다. 대학법인의 운영 성과에 대한 평가는 독립적이고 전문적인 기관에 의해 이루어지고 있다. 그 결과는 매년 공표되며, 객관적이고 투명한 방법을 통해 그 성과를 평가 받고 있으며, 그 결과는 서울대에 대한 행정·재정 지원에 반영되고 있다. 

둘째, 몇 가지 보완점으로 나타나고 있는 것은 국제화시대의 창의적 리더의 육성, 연구 부문의 선도적 학술가치의 창출, 사회공헌 측면의 공생 발전을 위한 사회기여, 인프라 측면의 자율과 책임운영 체제 구축 등이 요청된다. 

셋째, 연구비 확보 측면이다. 우리나라의 대학경쟁력이 낮은 이유 중의 하나는 정부의 지원이 OECD 평균에 미치지 못하는 점도 한 요인이 된다. OECD 평균은 정부고등교육비 부담률의 약 1.5∼3배에 해당된다. 민간의 부담률은 OECD 평균의 약 4∼7배를 유지하고 있어 국민이 대학경쟁력을 유지해 주고 있는 실정이다. 대학의 재정 건전성 확보와 전략적 예산사용을 위해 주기적인 성과 점검 및 법인 국립대학으로서 유연한 재정투입체계를 운영할 필요가 있다. 

넷째, 서울대의 국제경쟁력 확보 측면에서 우리의 문화를 수출하여 국제화시키기 위해서는 문화 자체의 국제 경쟁력을 키우는 것이 급선무이다. 세계화는 문화적 차이를 해소하는 것이므로 정체성이 확립되지 않을 경우, 외국 문화의 영향에 압도될 수 있다. 따라서 문화의 정체성을 확립하기 위해서는 서울대법인 정체성 확립이 필요하다. 보편적 원칙과 가치를 지키며 다양한 문화를 흡수하고 소화할 수 있는 능력을 길러야 한다.

마지막으로 지금까지 추진된 국제화가 영미권 명문대 따라가기에 가까웠다면 이제는 서울(한국)대학 국제화 본래의 취지인 다양성 추구와 서울대만의 국제화로 이어져야 한다. 보편적 원리 창출은 연구자가 속해 있는 지역에서 찾아야 한다. 그곳이야말로 연구자가 가장 깊이 있게 이해할 수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