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62호 2016년 9월] 오피니언 느티나무광장
정재권 본지 논설위원 칼럼
1000원의 식사, 나눔과 공감
1000원의 식사, 나눔과 공감
정재권
(국문82-87)
한겨레 선임기자 본지 논설위원
8월 말 서울대 학생식당에서 저녁을 먹었다. 학교에 볼일이 있던 김에 호기심이 많았던 ‘1,000원의 식사’를 경험하고 싶어서였다. 지난해 6월 재학생을 위해 시작한 ‘1,000원의 아침’이 큰 호응을 얻자 3월1일부터 저녁으로 확대된 식사다.
1980년대 학창시절 뻔질나게 드나들던 곳에서의 한 끼는 이런저런 추억을 떠올리게 했다. 150원이었던가. 크게 호주머니 걱정 않고 먹었던 지하식당 라면(달걀도 있었다!)의 맛은 지금도 잊혀지지 않는다.
‘외부인’이라 2,500원을 냈다. 푸짐한 양의 밥에 사골우거지국 그리고 달걀부침, 오이무침, 깍두기. 1,000원으론 편의점 삼각김밥 하나도 아슬아슬한 시대에 어디에서도 먹을 수 없는 식사라는 학생들의 반응에 고개가 끄덕여졌다.
맛은 솔직히 그저 그랬다. 30년 가까운 사회생활에 입맛이 ‘고급’이 된 탓인지도 모른다. 하지만 먹는 내내 고맙고 마음 따뜻했다. ‘1,000원의 식사’에 담긴 나눔과 배려가 고스란히 느껴졌기 때문이다.
서울대 생활협동조합의 설명을 들어보면 이 식사는 원가가 2,500원이다. 학생 한 사람당 1,500원이 적자다. 1학기인 지난 3~5월에만 연인원 2만1,500여명이 먹었다니, 그 기간 동안 3,200여만 원의 적자가 난 셈이다.
그 손해를 나눔이 메운다. ‘1,000원의 식사’를 운영하며 생기는 부족분은 매달 서울대발전기금이 충당해준다. 졸업한 동문 한 사람 한 사람의 정성이 밥 한 끼를 통해 얼굴도 모르는 후배들과 이어지는 것이다. 한 끼 식사 값도 고민하고 주저하는 청춘들을 위한 나눔이자, 그들의 처지에 대한 공감이다.
원가 2,500원 잘 팔릴수록 손해
동문들 발전기금으로 적자충당
얼굴 모르는 후배 위한 나눔이자
포기의 늪에 빠진 청춘에 대한 공감
요즘 청년들을 설명하는 대표적인 키워드는 ‘포기’다. 3포, 5포, 7포를 넘어 ‘10포 세대’라는 신조어까지 등장했다. 연애, 결혼, 출산, 대인관계, 내집 마련, 취업, 건강, 외모 관리, 희망, 삶이 그 10가지란다. 포기하는 것이 자꾸 늘어나 아예 ‘N포 세대’라고도 불린다. ‘포기한다 고로 존재한다’라는 자조적인 말로 스스로를 규정하기도 한다.
서울대생이라고 해서 딴 세상에 살고 있다고 자신하기 어렵다. 요행히 자신은 자유롭더라도 형이나 언니, 동생 그리고 친구가 포기의 늪에서 허우적거리고 있다. 청춘들이 늪에서 고통받으니 부모라고 행복할 리가 없다. 기성세대가 이들을 나약하다고 나무라거나 ‘코뿔소처럼 돌진하라’고 다그쳐선 안 된다. 작은 것에서부터 손을 내밀고 청년들의 짐을 덜어줘야 한다. ‘1,000원의 식사’만 해도 학생들에게 제공되는 곳이 서울대, 부산대, 전남대 등에 불과한 실정이다.
지난 한 달여 동안 어느 자리에서든 화제가 된 식사가 있다. 청와대가 여당의 새 지도부를 불러 내놓은 ‘송로버섯 오찬’이다. 그 화려한 식사를 들며 당청은 서민들의 ‘전기세 폭탄’을 논의해 여론의 뭇매를 맞았다. 대통령의 한 끼 때문에 송로버섯을 모르는 사람이 없어졌다. 이제 세상 사람은 송로버섯을 맛본 사람과 맛보지 못한 사람 두 종류라는 우스개가 나돌 정도다. 아직 먹어 보지 못해 맛을 알 길이 없지만, 오찬 참석자들의 입맛을 흡족하게 만들었을 게 분명하다. 세계에서 손꼽히는 비싼 식재료에 최고 요리사의 솜씨가 더해졌을 테니 말이다.
그런데 그 오찬이 ‘1,000원의 식사’처럼 고맙고 따뜻한 느낌이었을까? 거기에 기꺼운 공감이 있었을까? 참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