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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9호 2016년 6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외국인 첫 서울대 국문과 교수 나수호 동문 인터뷰

한국문학 진가, 세계에 알린다


외국인 첫 모교 국문과 교수인 나수호 동문이 그의 연구실에서 포즈를 취했다.


한국문학 진가, 세계에 알린다

외국인 첫 서울대 국문과 교수 나수호 동문


“번역은 낯선 곳으로 다리 놓는 작업”
김영하 ‘검은 꽃’ 옮겨 한국문학번역상 수상



소설가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을 계기로 한국 문학 번역에 대한 관심이 높다. 나수호(Charles la shure·那秀昊 대학원99-11) 모교 국어국문학과 교수는 한국 문학 번역에 앞장서고 있는 대표적인 외국인 학자다. 2003년 한국문학번역 신인상에 이어 2013년 김영하 작가의 ‘검은 꽃’으로 한국문학번역상을 수상했다.


국내 첫 외국인 국문과 교수이기도 한 그를 5월 30일 관악캠퍼스 연구실에서 만났다. 한국에 온 지 21년 됐다는 나 교수의 한국말은 차분하고 유창했다. 나 교수는 문학 번역을 “낯선 곳으로 다리 놓는 작업”이라며 “문학은 문화 전반을 담아내는 글이기에 번역가는 원작의 문화와 사상뿐 아니라 번역하려는 언어의 문화와 사상도 깊이 이해하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한국 온 지 21년이면 한국인 다 됐겠다. 국적도 한국인가.
“영주권자로 국적은 미국이다.”


-서울대는 어떻게 오게 됐나.
“빙엄턴대학교(뉴욕주립대)에서 영문학을 전공했다. 당시 부전공 수준으로 일본학을 공부했다. 졸업 후 진로를 고민하던 중 지인의 소개로 한국의 영어학원 강사로 오게 됐다. 일본에 가기 위한 중간 지점으로 생각했다. 1995년의 일이다. 당시 서로 영어와 한국어를 가르쳐주던 한국인 친구(현재 부인) 덕분에 오래 머무르게 됐고 서울대 국문과에서 구비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취득했다. 학부시절부터 공부를 하고 싶었다.”


-나 교수만한 번역가도 드물 것 같다. 한강의 맨부커상 수상 소식을 듣고 어떤 생각이 들었나.
“잘 됐구나(웃음). 그 번역가와 약간의 친분이 있다. 서강대에 안선재(Brother Anthony) 교수라고 계시는데, 번역의 대부라고 부를 만한 분이다. 고은 시인의 작품을 주로 번역했다. 그분이 종종 번역가들을 불러 모임을 열곤 한다. 그 모임에서 데버러 스미스를 만났다. 강의, 집필 등으로 바빠 축하인사도 못했는데, 이메일이라도 보내야겠다.”


-책은 읽었는지.
“부끄럽지만 아직. 연구 분야가 구비문학이다 보니 현대 문학보다는 옛날 책을 많이 읽는다. 물론 문학 흐름을 놓치지 않으려고 틈틈이 현대 작품도 읽지만, 요즘 좀 분주했다.”


-이를 계기로 한국 문학이 주목을 받을 수 있을까.
“프랑크푸르트 북 페어에 이어 런던 북 페어의 주빈국이 됐다는 것은 이미 주목받고 있다는 의미가 아닐까. 한국문학번역원, 대산재단 등에서 번역지원 활동을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한국 문학에 대한 관심은 계속 커질 것으로 보인다. 지난 학기 미국의 주간지 ‘뉴요커(The New Yorker)’의 기자가 한국문학 번역 관련 취재를 하고 싶다고 해서 안선재 선생님을 소개해드리고 인터뷰에 응했다. 올해 초 기사가 나왔는데, 기사가 의도와는 달리 노벨상 집착에 초점을 맞춰 당황스럽기도 했지만 그 역시 한국문학에 대한 관심이 아닐까 싶다.”


-국내에 외국인 번역가가 얼마나 되나.
“안 선생님이 모임을 열면 번역가는 20명 정도 모인다. 그 외에도 좀 있을 것 같다. 국내보다는 해외에 많을 듯싶다.”


-해외 한국문학 번역가들과 정기적인 교류는 있는지.
“개인적으로 교류를 하고 있지만 공식적인 교류는 많지 않다.”


-번역가들 사이에서 많이 거론되는 작품이 있나.
“한국적인 질문인데(웃음), 그런 것은 없다. 물론 재미있게 읽은 작품들에 대해 이야기는 하지만 제각각이다. 관심 분야가 다 달라서다. 지원 단체에서 번역 작품 리스트를 만드는데, 아이디어를 얻을 수는 있겠지만 좋은 번역 작품은 번역가가 좋아서 했을 때 나온다고 생각한다. 한강의 ‘채식주의자’도 지원받아 번역된 작품이 아니다. 김영하의 ‘검은 꽃’을 읽고 제일 먼저 든 생각이 ‘나도 이런 소설을 쓰고 싶다’ 였다. 감동이 있으니까 자연스럽게 번역으로 이어질 수 있었다.”


-한국 사람도 잘 모르는 구비문학을 연구한다고 했다. 동기가 궁금하다.
“미국에서 영문학을 공부할 때도 베어울프(영국의 가장 오래된 영웅 서사시), 셰익스피어 등 고대, 중세 문학에 관심이 많았다. 옛것을 좋아하는 취향이랄까. 대학원에서 고전문학을 선택하고 세부전공으로 무엇을 해야 할까 고민하다 구비문학을 선택했다. 재미있을 것 같았다. 특히 설화를 주로 연구했는데, 주인공이 뛰어난 기지를 발휘해 상황을 모면하는 내용 등 재미있는 이야기가 많더라.”


-판소리 번역은 좀 돼 있지 않나.
“지금은 고인이 되신 하와이대 마셜 필 교수님이 판소리 연구를 많이 하셨다. ‘이야기를 노래하는 한국의 소리꾼(The Korean Singer of Tales)’이란 책이 대표적이다.”


-번역한 작품으로 알려진 것은 김영하 씨의 ‘검은 꽃’, 박지원의 ‘예덕선생전’ 등이다. 하나는 현대 문학이고 하나는 한문 소설인데.
“검은 꽃에는 구비문학적인 요소가 많이 들어있다. 대화가 이어지는 장면들에선 판소리 양식이 묻어난다. 김영하 작가가 의도한 부분이었다고 한다. 연암 선생의 한문 소설은 딱딱할 줄 알았는데 재미있고 교훈적이라 번역했다. 한문 원전을 영어로 번역하면서 한글본은 참고만 했다. 설화 번역은 책으로 나올 정도로 하지는 못했다. 한국 설화를 주제로 한 논문을 준비하고 있다.”


- 미국에서 ‘검은 꽃’에 대한 반응은 어떤가.
“‘검은 꽃’은 미국의 대형 출판사인 호튼 미플린 하코트(Houghton Mifflin Harcourt)에서 출간됐다. 2쇄 들어갔다고 편집자로부터 메일을 받았다. 2쇄 정도면 괜찮다고 생각한다.”


- 무엇이 와 닿았나.
“김영하 작가의 소설을 좋아한다. 이야기를 끌어가는 능력이 대단한 분이다. 문체가 시원하고 읽기 쉬었다. 내용면에서는 한국인의 멕시코 이민사를 다룬 점이 흥미로웠다. 소설의 공간인 멕시코는 미국 독자에게도 친숙하다.”


- ‘예덕선생전’도 같은 출판사에서 나왔나.
“‘예덕선생전’은 아직 출간되지는 않았다. 빙엄턴대학교의 교수님 한분이 한국 문학 중 잘 알려지지 않은 작품 선집을 준비하고 있는데, 원고를 넘긴 상태고 출간 시기는 잘 모르겠다. 연암 박지원 단편 소설집은 경희대 임마누엘 페스트라이쉬(Emanuel Pastreich) 교수가 번역한 책이 있다. 나중에 알았는데 그 책에 예덕선생전 등이 담겨있다. 그분 번역이 전통적이라면 나는 쉽게 이해시키려고 노력했다.”


- 번역을 할 때 중점을 두는 부분이라면.
“단어 하나하나까지 완벽하게 이해시키려 하기보다 문화적 특성을 전달하는 데 중점을 둔다. 한국인 독자가 작품을 읽으면서 느끼는 것들을 외국인 독자가 그대로 느낄 수 있다면 그보다 완벽한 번역은 없겠지만 현실적으로 불가능에 가깝다. 그래서 나의 경우는 단어가 아닌 문장을 기본 단위로 삼는다.”


- 서울대에서 강의하는 과목은.
“외국인 교환학생을 대상으로 한국어와 한국문학을 강의한다. 또 대학원생 세미나 과정을 지도하고 있다.”


- 학생들에 대한 느낌은 어떤가.
“좀 수동적인 느낌? 수강생이 많은 수업은 조용한 편이다. 특히 첫 시간에는. 그룹 수업의 경우에는 시간이 흐르면서 상당히 열기를 띤다. 대학원 그룹 수업은 토론이 너무 활발해 중간에 나서기도 미안할 정도다.”


- 미국도 인문학도의 취업이 어렵나.
“미국, 한국, 유럽 모두 비슷한 상황이다. 인문학은 늘 위기였던 것 같다. 나도 학부 졸업 무렵 무엇을 해야 할지 막막했다. 그런데 다시 생각해보면 콘텐츠 사업 등 인문학도가 진출할 수 있는 분야도 많은 것 같다. 시야를 넓게 볼 필요가 있다.”


- 앞으로 계획은.
“계획을 세우며 사는 스타일이 아니다. 계획을 세워봤자 어떻게 될지 모르니까. 학부 때만 해도 내가 서울대에서 학생들을 가르칠 거라 상상도 못했다. 유연하게 살려고 노력한다. 굳이 말하자면 한국의 설화를 외국인들이 이해하기 쉽게 재창조하고 싶다. 또 외국에서 교재로 활용할 수 있는 한국문학 학술서도 집필하고 싶다.” 김남주 기자



나수호 교수 프로필

구비문학 전공, 영문·국문에 능통

1973년 미국 뉴욕에서 출생했다. 뉴욕주립대 중 하나인 빙엄턴대학교에서 영문학 전공 후 1995년 한국에 와 모교 국문과에서 구비문학 전공으로 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2008년부터 한국외국어대 통번역대학원에서 학생들을 가르쳐 왔으며 서울대에는 지난 2015년 부임했다. 2003년 한국문학번역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본격적인 번역활동을 시작해 김영하의 ‘검은 꽃’을 비롯해 김남천의 ‘대하’, 권여선의 ‘사랑을 믿다’, 조동일의 ‘한국문학통사’ 등 다양한 작품을 영어로 번역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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