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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7호 2016년 4월] 뉴스 본회소식

과학적 이성으로 혁신을 선도할 지도자 양성

서정화 회장 특별기고



과학적 이성으로 혁신을 선도할 지도자 양성

서정화 회장 특별기고



13세기에 최초로 설립된 유럽의 대학들은 중세의 모순을 극복하고 근대라는 새 시대를 맞아들이기 위해 노력한 서구인들의 결실이었다. 구한말 우리 조상들은 전래의 구습을 타파하고 민족의 개화를 도모하기 위해 법관양성소를 위시한 고등교육기관을 설립했다. 요컨대 본래 대학이란 국가의 미래를 통찰하고 혁신을 선도하는 지도자를 길러내는 지성의 전당이다.
그런데 대학에서 수학하는 인재들이 국내외의 비관적인 상황에 짓눌려 리더로서 마땅히 가져야 할 호연지기(浩然之氣)를 상실한 채 위축돼가는 것은 우리만의 현실이 아니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 또한 동일한 문제에 직면하고 있으며, 이를 해결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미국 하버드대는 현실세계에서 발견한 문제들을 자신의 아이디어로 돌파할 수 있는 혁신 실습 프로그램을 개설해 학생들에게 시행하고 있다. 이 프로그램은 하버드 학생들에게 가장 인기있는 강의 중 하나로 자리 잡았으며, 프로그램에 참여한 학생들은 개인의 문제뿐만 아니라 환경, 실업, 범죄 등 미국 사회의 현실적인 문제들에 대해 창의적 사고에 기반한 대안들을 제시하고 이를 실행해보는 경험을 얻게 된다. 이는 대학의 사회적 공헌을 촉진하는 동시에 학생들의 창업활동으로 자연스럽게 이어지는 효과를 낳는다.
서울대는 성낙인 총장이 취임한 이후 능력과 인품을 겸비하고 공동체와 함께 성장하는 ‘선한 인재’를 서울대 학생의 모범으로 제시했다. 선한 인재들이 그 가치에 걸맞은 역량을 발휘하기 위해서는 리더로서 마땅히 보여야 할 진취성을 먼저 갖춰야 한다.  그들이 배운 지식과 가치를 활용해 사회를 변화시켜보는 경험을 제공하는 구체적인 프로그램이 마련돼야 한다. 이를 통해 축적된 자신감은 학생들로 하여금 안주를 넘어 혁신과 도전을 선택하게 만들 것이다. 사회 전반이 만성적인 정체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는 작금의 대한민국이기에, 현실을 개혁해내고야 말겠다는 야성(野性)을 갖춘 리더가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현대 사회를 평화와 번영의 길로 이끌 수 있는 지도자를 양성하기 위해서는, 과학지식과 과학적 사고능력을 갖춘 인재들이 대학에서 배출돼야 한다. 스마트폰은 세계사 속에서 나타난 어떤 기술보다도 인류의 생활양식과 사고방식에 강력한 영향을 끼쳤다. 인간의 두뇌를 초월하는 인공지능기술, 인간의 노동력을 가볍게 능가하는 로봇기술은 인간의 정체성 자체를 재구성할 필요를 세계에 제기하고 있다. 요컨대 21세기 인류는 과학기술이 국가의 발전동력이며 과학적 사고방식이 사회의 운영원리가 되는 ‘과학기술중심사회’로 확고히 나아가고 있다.
따라서 오늘날 국가의 지도자들이 개혁의 비전을 제시하기 위해서는 과학에 기반한 합리적 사고와 첨단기술에 대한 높은 수준의 이해를 갖고 있어야만 한다. 과거에는 통치나 경영 등 권력활동이 인문사회학의 영역이었다면, 오늘날에는 과학기술을 장악한 집단이 곧 조직과 국가를 지배하게 됐다. 시대의 중심이 이동하고 있는 지금, 대학의 교육 또한 그에 걸맞게 변화해야 한다는 주장이 오래 전부터 제기된 바 있다.
세계 고등교육의 중심에 서있는 미국의 대학들은 이미 그러한 생각을 실행에 옮기고 있다. 경제학, 정치학, 철학 등 인문사회학을 강조하는 학풍으로 유명한 프린스턴대는 2016년 1월에 이공계 정원의 대대적인 확충, 정보기술(IT) 분야에 대한 과감한 투자, 대학 내 창업환경 개선, ‘프린스턴 정신에 입각한 기업가’ 양성 등을 골자로 하는 새로운 대학발전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세계 최고의 대학 중 하나로 인정받아왔으나 이공계 분야에서는 매사추세츠 공과대학(MIT), 캘리포니아 공과대학(CALTECH), 스탠퍼드 등에 뒤쳐졌던 하버드는, 지난 2015년 대규모 공과대학 캠퍼스를 새로 건축하고 막대한 투자를 통해 컴퓨터과학, 로봇공학, 생명공학 등의 첨단 과학을 적극 발전시킨다는 계획을 발표했다.
한편 하버드의 전통적인 강점이었던 인문학은 최근 인터넷 기술을 이용해 하버드 학생뿐만 아니라 전 세계인들에게 높은 수준의 인문학적 교양을 공유하는 방향으로 발전해왔다. 나아가 교수, 학생, 그리고 대중이 첨단 기술을 통해 직접 소통하면서 사회학, 문학, 철학, 예술 등의 영역에서 보다 풍부하면서도 실제적인 연구와 교육이 가능해졌다. 또한 전례 없는 속도로 발전하는 현대 과학기술발전의 인문학적 의미를 분석하고 바람직학 기술발전의 방향을 제시하는 기술철학연구 또한 하버드 인문학 연구·교육의 장점 중 하나다. 요컨대 과감한 투자를 통한 이공학 연구 및 교육 진흥, 그리고 이공학과 인문학을 접목시켜 사회에 공헌하는 새로운 프로그램을 만들어내는 것이 바로 오늘날 세계 일류 대학들의 보편적인 발전 전략이라고 정리할 수 있다.
대한민국은 정부의 주도 하에 사회의 노동력 수요를 충족한다는 취지에서 이공계를 지원하는 정책을 시행하고 있다. 서울대 안에서도 시대의 변화상에 발맞춰 보다 선제적인 개혁을 시도해야한다는 목소리가 높다. 이와 관련해, 하버드의 혁신을 뒷받침했던 막대한 기금에 주목할 필요가 있다. 하버드 경영대학원 졸업생이자 미국 금융계의 명사인 존 폴슨 폴슨앤드컴퍼니 회장이 4억 달러를 기부했기 때문에 하버드대는 이공계 발전을 위한 개혁안을 수립할 수 있었다. 대학이 자구적으로 기금을 조성해 운영하는 한편 학교 조직을 혁신해 창의적인 경영에 성공해야만 고등교육 본래의 취지에 걸맞은 혁신이 가능하다. 이는 비단 서울대 교직원들만의 사명은 아닐 것이다.
세계 유수의 대학들은 모두 동문조직을 통해 막대한 연구기금을 조성해 다양한 연구 및 교육 프로그램을 운영하고 있다. 이것이야말로 굴지의 학교들이 인류의 미래를 개척할 기술을 개발하고 인재들을 양성할 수 있는 비결의 요체다. 서울대는 법인화 이후 서울대학교발전기금을 조성해 연구기금을 확충해 왔으며 총동창회 또한 이에 적극 협력해왔다. 그러나 아직 그 규모 면에서 세계 일류 대학들과는 격차가 있는 것이 현실이다. 특히 국외 대학들이 역량을 집중하고 있는 과학분야에 대한 선도적이며 체계적인 투자가 아직 미흡한 것은 모교의 미래뿐만 아니라 대한민국의 앞날을 위해서도 우려스러운 지점이다.
향후 국제사회의 중심부는, 세계시장을 선도할 수 있는 첨단기술을 개발할 뿐만 아니라 그러한 기술을 자유롭게 활용하며 사회 전체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과학적 사고력을 가진 인재들을 배출하는 국가가 장악할 것이다. 대한민국이 지금까지 피땀 흘려 이뤄온 업적을 후대에 물려줄 수 있는 길도 바로 여기에 있으며, 서울대인은 대한민국 지성의 중추로서 혁신적 통찰을 실행에 옮길 능력과 책임을 갖고 있는 집단이다. 모교를 사랑하는 것이 곧 국가에 공헌하는 길임을 깨닫고 앞장설 제현(諸賢)들의 동참을 기대하는 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