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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2호 2015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김명자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前환경부 장관

“校歌의 ‘이 세상의 사는 진리’는 나눔이라 생각”


“校歌의 ‘이 세상의 사는 진리’는 나눔이라 생각”
김명자 그린코리아21포럼 이사장·前환경부 장관


여성 리더로는 10번째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과학자로서 학계·행정부·입법부 거치며 독보적 발자취







김명자(화학62-66) 전 장관은 헌정사상 최장수 여성장관(1999-2003), ‘국민의 정부’ 최장수 장관 등의 기록을 세우며 환경부를 최우수 부처로 이끌었다. 국회의원(2004-2008)으로서 국방위원회 간사와 국회윤리특별위원장을 지냈다. 현재 한국여성과학기술인지원센터 초대이사장, 카이스트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등 40여 개 직책으로 여전히 현역인 대표적 지도자다. 최근 김 동문은 과학기술 훈장 창조장(1등급)과 제25회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에 선정됐다. ‘과학혁명의 구조’ 번역(1980년)으로 ‘패러다임’이란 용어를 유행시킨 그는 제러미 리프킨의 ‘엔트로피’도 효자 노릇을 했다면서 웃었다. 11월 3일 서울대 호암교수회관에서 김 동문을 만났다.



자랑스러운 서울대인상 수상을 축하드립니다.
“공직을 내려놓은 지 7년인데, 금년에 창조장 훈장 등 세 가지 훈장·표창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모교에서 받는 상이 가장 기쁩니다. 91년 이후 작년 24회까지 58명 수상인데, 여성이 9명, 자연대 출신이 2명이더군요. 60년대 동숭동 캠퍼스를 나와 오늘에 이르기까지 서울대인으로서의 자부심과 책임의식은 항상 저를 이끌어준 힘이었습니다. 그러나 99년까지 여자대학교의 교수생활을 하다 보니 어쩐지 울타리가 없는 것 같아 허전하고 그리웠다는 것도 솔직한 고백입니다. 이번에 자연대 학장 등 여러분이 저 몰래(?) 자료를 꾸미느라 애쓰신 덕분에 상을 받고 보니 ‘음덕에 힘입어 산다’는 걸 다시 깨닫게 됩니다. 그동안 누린 보람과 혜택을 우리 사회의 불행을 줄이고 행복을 키우는 일에 바치고자 합니다. 우리 교가에 나오는 ‘이 세상의 사는 진리’는 나눔이라고 생각합니다.”


장관다운 장관으로 일한 여성 각료라는 평가와 닮고 싶은 과학인 1호 선정 등 여성 리더십의 표본으로 불리는데, 비결이라면.
“1999년도에 교수에서 장관으로 임명돼 ‘진인사대천명’(盡人事待天命)으로 일하다 보니 예상 밖의 기록이 따라 붙었습니다. 시쳇말로 ‘힘없는’ 부처가 장관 재임기간이 길어지며 대접이 달라지는 것도 느꼈습니다. 언론 인터뷰에서 장수비결을 물으면 ‘덕을 많이 입었기 때문’이라고 답했습니다. 또한 과학 교육과 훈련을 받은 것이 사회 현상을 분석하고 솔루션을 찾는 데 도움이 됐다고 느낍니다.”


장관과 국회의원 시절 기억에 남는 일이라면 무엇이 있을까요.
“44개월 재임으로 에코-2 프로젝트, 4대강 수계 특별법, 천연가스 버스 보급, 수도권 대기질 개선 특별대책, 차세대핵심환경기술개발사업, 2002년 환경 월드컵, 한중일 3국 환경장관회의 정례화 등을 추진하면서 사후처리 방식에서 사전예방 기조로 바꾸는 일을 했습니다. 17대 국회에서는 전통적인 여성 분야에서 더 확장해야 한다는 평소의 믿음 때문에 국방위원회를 택했고, 간사로서 군인복지기본법 제정과 국방 R&D 활성화, 병영문화개선단장, 고령화사회대책단장 등을 맡았습니다.”


퇴임 후 언론에서 “섬세함과 치밀함이라는 여성의 장점이 작용한 것도 사실이지만, 적극적인 협상력, 개혁적인 행정 마인드, 신중한 결정과 강한 추진력 등이 대표적 특성이고, 상반되는 의견을 조정하는 과정에서 조직관리 능력이 아낌없이 발휘됐다”고 평가한 것을 보았습니다. 자신의 리더십에 대해 어떻게 말씀하시겠습니까.
“비례대표 국회의원 때 제 슬로건이 ‘합리성과 감성의 거버넌스 리더십’이었습니다. 여성의 리더십이 따로 있다고 보진 않습니다. 다만 따뜻한 마음과 냉철한 이성의 리더가 되기를 원했습니다. 리더에게는 남의 도움을 이끌어내는 능력과 통 크게 보는 통찰력이 주요 덕목이라고 생각합니다. 공무원들에게는 자기 자리에서 가장 일 잘하는 사람이 되고 항상 비상대책을 갖고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국회의원 시절 어느 날 여의도 의원실로 프리지아 꽃다발을 든 두 분의 신사가 찾아왔습니다. 당시 중앙인사위원회에서 조사를 했는데 ‘다시 왔으면 하는 장관’이라고 해서, 어떤 사람인지 궁금해서 찾아왔다면서요. 가슴이 뭉클하고 고마운 마음뿐이었습니다.


세상을 최대한 선의로 보려고 합니다. 초선 의원이면서도 국회윤리특별위원장을 지냈으니, 동료의원들도 고맙습니다.”


왕성한 저술활동과 강연으로 과학 대중화에 크게 기여했는데, 계기가 있는지요.
“대학에서 화학과 과학사를 가르쳤습니다. 과학적 성취가 낳은 문명사적, 사회적 변동에 관심이 컸습니다. 과학지식이 단순히 학문적 활동에서 그치는 것이 아니라 인류사회의 번영과 공존을 위해 기여할 수 있어야 한다고 믿습니다. 과학기술 혁신이 이런저런 부작용을 유발하는 상황에서. 과학기술의 사회문화적, 가치관적 충격이 더욱 커질 것이기 때문에 과학기술의 사회적 책임이 크다고 봅니다. 그런 관점에서 최근 4년간 네 권의 책을 썼습니다.”


김 동문은 80년대 출간된 칼 세이건의 ‘코스모스’ 얘기를 꺼냈다.


“코스모스가 13부작 영상으로 나왔을 때 그걸 편집해서 자연과학개론 강의 부교재로 썼습니다. 2014년에 새로 제작됐는데 오바마 대통령이 TV 홍보를 했어요. 특히 젊은 세대가 봐야 한다고. 지적 호기심을 키우는 것은 삶에 활력을 불어넣는 것 같습니다.”


호스피스·완화의료 국민운동본부 대표를 맡은 웰빙 웰다잉 전도사라는 기사를 읽었습니다.
“3년째 국회의원실과 학술단체가 공동으로 바이오포럼을 하고 있는데, 호스피스 제도도 그 중 한 주제였습니다. 급속한 고령화에도 불구하고 우리 사회의 ‘죽음의 질’은 하위권입니다. 웰다잉을 위한 법적, 제도적 장치가 시급합니다. 민간의 자발적인 봉사활동으로 사회적 수요를 감당하기에는 역부족입니다. 국회 입법이 어떻게 되려는지, 정부 종합대책 수립은 어찌 되려는지, 모두가 합리적 결단을 내려주기를 기대합니다만….”


해마다 노벨상 시즌만 되면 한탄하는 소리가 들립니다.
“노벨 과학상은 인류사에서 과학의 프론티어를 개척하는 연구에 주어집니다. 장기적으로는 새로운 산업 영역을 창출하겠지만 당장의 경제적·산업적 유발효과를 따져서는 곤란합니다. 교육과 연구에서도 이미 알고 있는 규칙 속에서 문제풀기 선수를 키우는 방식으로도 어렵습니다. 프론티어의 특성인 오리지널리티(originality)를 갖추어야 합니다.”


과학기술계의 미래를 어떻게 보십니까.
“최근 우리 과학기술계와 산업계는 위기국면을 맞고 있습니다. 주력산업과 수출품목의 경쟁력이 흔들리는 가운데 대체할 신성장동력이 보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고 지금까지의 압축성장 방식의 과학기술 전략을 대번에 버릴 수는 없습니다.


그러나 새로운 관점에서 패러다임 시프트(paradigm shift)를 해야 돌파구가 열릴 수 있습니다. 과거의 미션 지향적 과학기술 발전 전략의 관성을 극복하고 퍼스트 무버(first mover)로 변신해야 합니다. 프론티어는 불확실성과 위험성을 수반하므로 그것을 헤쳐 나갈 역량을 갖추어야 합니다. 과학기술 전략에서부터 연구개발 문화, 행태, 관리에 이르기까지 새로운 혁신가치 창출을 위한 전략과 시스템으로 바뀌어야 합니다. 창의성과 자율성이 중요합니다.”


기후변화 문제가 전 세계적인 화두가 되고 있는데, 어떻게 전망하십니까.
“21세기 인류문명이 직면한 가장 심각한 리스크가 기후변화입니다. 국제적인 화두가 된지 수십년이지만, 논쟁의 홍수 속에서 상황은 더 심화돼 복합적인 위기가 예고되고 있습니다. 2030년경 식량부족·물부족·유가변동의 최악 폭풍에 직면하고 기후변화 와 대량 난민사태가 복합돼 대격변이 일어날 것이라고 합니다. 이런 비관적인 전망에서 벗어날 길이 잘 보이질 않습니다.”


한국의 상황은 어떻게 보시는지요.
“한국의 기온 상승과 해수면 상승은 지구 평균치의 두 배입니다. 금년에 겪고 있는 가뭄도 심상치 않습니다. 정체를 모르는 바이러스성 질환에 대한 사회적 공포도 일회성이 아닙니다. 기후변화 적응과 감축의 두 가지 과제는 갈수록 심각한 국정과제가 되고 있는데, 정치권이나 사회 일반의 관심은 거기에 미치지 못하고 있습니다. 국제사회에서 우리나라는 선진국·개도국을 아우르는 신기후체제 구도의 중심에 놓여 있습니다. 우리의 역할에 대한 기대가 커서 정책적 대응이 주목을 받게 될 것입니다.”


기후변화 이외에도 우리 앞에는 풀어야 할 과제가 참 많은데요.
“그렇지요. 우선 저출산·고령화가 세계적으로 가장 심각합니다. 가장 낮은 출산율(1.15명)에 가장 높은 고령화 속도로 경제, 사회, 노동, 복지 등 모든 분야가 시한폭탄을 안고 있는 상황입니다. 그 가운데 한국의 자살률은 11년째 OECD 회원국 중 1위입니다. 하루 40명꼴로 스스로 세상을 등집니다. OECD 평균은 12명이고 일본은 19명입니다. 특히 노인과 청소년의 자살률이 높습니다. 급격한 고령화 속에서 정신과적인 원인 28%, 질병 21%, 경제적 궁핍 19% 등입니다. 노후 빈곤, 고독, 질병에 대한 물질적, 정신적 대비가 사회적 난제가 되고 있습니다. 청년층 일자리, 복지는 물론 빈부 격차는 갈수록 심각한 사회문제가 될 것입니다.”


어떻게 풀어야 할까요.
“궁극적으로 국가의 운명을 가르게 될 장기적 차원의 충격적인 리스크가 여럿입니다. 그런데 우리 사회는 사사건건 양극단으로 갈려 분열과 갈등의 늪에 빠져 있습니다.


누가 누구를 탓할 수 있는 상황이 아니라 우리 모두가 공동의 책임과 참여를 해야 헤어날 수 있다고 봅니다. 그러나 역시 이니셔티브(initiative)는 리더십에 있다고 봅니다. 리더 그룹이 그 역할을 제대로 할 때 신뢰도생기고 새로운 질서와 통합의 길이 열릴 것입니다. 그 어느 때보다도 각 부문의 리더 역할이 중요합니다.”


대학생, 청년 등을 대상으로 특강도 하실 텐데, 강조하는 말씀은 무엇인지.
“글로벌 트렌드 예측과 앞으로 나아갈 길에 대해 강조합니다. 젊은이들에게 '이런 일자리가 있으니 희망을 가지라'고 속 시원하게 말하지 못하는 현실이 안타깝습니다.


일본은 최근 대졸자 취업률이 97%랍니다. 일자리 만들기는 기술혁신과 사회변동의 성격상 앞으로 더 어려워질 가능성이 있습니다. 급변하는 경제·사회·문화적 변동에 대해 예측하고 새로운 가치혁신을 창출하는 것이 시급합니다. 시야를 넓히고 멀리 보면서 새로운 프론티어를 찾아야 합니다. 지적 호기심과 뜨거운 열정을 가지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여학생들에게는 특히 외형적인 미보다 내면적인 성숙함을 갖추라고 말하고 싶습니다.” <김남주 기자>






·김명자 동문은


헌정 사상 최장수 여성장관, 통합적 리더십의 모델


경기여고, 모교 화학과를 졸업, 27세에 미국 버지니아대학원에서 이학박사 학위를 받았다. 1972∼1999년까지 서울대, 숙명여대에서 화학과 과학사를 강의했고, 2003년 이후 명지대 석좌교수, 서울대 기술정책대학원과정 CEO 초빙교수를 거쳐, KAIST 과학기술정책대학원 초빙교수로 있다. 사회복지공동모금회 이사, 아산사회복지재단 이사, 김대중평화센터 이사, 대한민국 헌정회 고문, 한국여성의정 이사, 기획재정부 KSP 수석고문,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감사, 서울대총동창회 부회장 등을 맡고 있다.


80년대부터 사회통합위원, 국가과학기술자문위원, 국가과학기술위원회 민간위원, 과학기술원로정책자문위원, 국민경제자문위원, 동북아경제중심추진위원, 정책기획위원, 중앙교육심의위원, 여성정책심의위원, UNESCO 한국위원, 한국대학교육협의회 편집자문위원장 등을 지냈고, 한국과학기술한림원, 한국환경한림원, 국제미래학회, 한국과학사학회에서 활동하고 있다. 청소년건전인터넷문화 국민운동본부 공동대표, 녹색소비자연대 공동대표, 저탄소 녹색성장 국민포럼 공동대표, 환경복지포럼 대표 등 3백여 개 위원회에서 활동하며 백여 개의 정책 리포트를 냈다. 90년대부터 KBS 객원해설위원, 조선일보, 동아일보, 서울신문 등 다수 언론매체의 집필을 맡았고 현재는 중앙시평을 쓰고 있다.


저역서로는 ‘원자력 딜레마’, ‘사용후핵연료 딜레마’, ‘인터넷 바다에서 우리 아이 구하기’, ‘원자력 트릴레마’, ‘에덴의 용’, ‘과학혁명의 구조’, ‘동서양의 과학전통과 환경운동’, ‘현대사회와 과학’ 등 20여 권을 펴냈다. 2004년 청조근정훈장, 1994 대한민국과학기술상 진흥상 대통령상, 2013년 아시아정당국제회의(ICAPP) 10주년 공로 표창, 1985 과학기술 진흥 유공 대통령 표창 등을 받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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