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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51호 2015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민경갑 한국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은 창조경제 기반… 불요불급하단 생각 버려야”


민경갑 한국화가·대한민국예술원 회원
“문화예술은 창조경제 기반… 불요불급하단 생각 버려야”


4학년때 국전 특선, 파리에서 유네스코 초대전 개최
팔순 넘어서도 끊임없는 창작… 후배작가들의 귀감




“국립현대미술관 관장 자리를 10개월 이상 공석으로 두는 게 말이 됩니까? 관계주무부서에 특별한 사정이야 있겠지만 미술을 불요불급하다고 생각하니까 이런 일이 생기는 거예요.” 지난 9월 16일 개학 120주년 기념 미술전시회에서 유산(酉山) 민경갑(회화53-57) 화백이 축사를 통해 쏟아낸 정부를 향한 쓴소리이다. 민 동문은 여든이 넘은 나이에도 꾸준히 창작 활동을 해 오는 한편 틈틈이 언론을 통해 미술계 현안에 대해 고언을 해오고 있는 예술계 원로다. 지난 9월 21일 서울 연희동 자택 겸 작업실인 유산화실(酉山畵室)을 찾았다.



국립현대미술관장 문호를 외국인에게까지 넓혔어요. 미술계에서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습니다.
“능력있는 한국인이 나오면 좋겠지만, 외국인 관장은 반드시 안 된다고 생각할 필요도 없을 것 같아요. 오히려 학연, 파벌에서 자유로워 공정한 정책을 펼칠 수 있다고 봅니다. 다만 국립미술관장으로서 한국인의 정서를 얼마만큼 이해하고 국내 작가, 국민들과 소통할 수 있느냐 그 점이 중요하겠지요.”


민 동문은 이번 일을 계기로 국립현대미술관장 자격을 격상시켜야 한다는 논의가 시작된 것은 환영할 만한 일이라고 했다.


“프랑스는 국회의장을 지낸 분이 관장을 맡곤 하죠. 우리의 경우 한국의 미술계를 대표하는 자리지만 국장만도 못한 대우를 받아왔던 게 사실입니다. 국립중앙박물관장처럼 차관급으로 격상해야 합니다.”


그렇게 될 수 있을까요.
“지켜봐야죠. 10개월간 국립미술관장을 공석으로 둔 수준이라면 쉽지는 않아 보입니다. 한 나라의 미술을 대표하는 기관장을 잉여농산물 정도로 생각하는 거잖아요. 다른 기관 같으면 상상이나 할 수 있습니까. 문화 예술은 불요불급하다는 생각을 버려야 합니다.”


계속해서 정부의 문화 정책에 대한 질책이 이어졌다.


“이번 정부에서 초대 문화융성위원장을 맡은 김동호(행정56-61) 씨가 2년 임기를 마치고 하시는 말씀이 실제 여러 가지 사업을 펼치기에는 터무니없는 예산이 걸림돌이라고 하더군요. 정말 문화융성에 대한 의지가 있다면 소관 부서도 문체부가 아닌 청와대 직속으로 했어야지요. 창조경제를 이야기 합니다만, 예술 문화의 토대 없이는 어려운 일이라고 봅니다. 문화 예술은 그 나라 국민의 정신 수준을 말해주는 거 아닙니까.”


민 동문은 아닌 건 아니라고 분명히 말하는 스타일이다. 생활 속에서도 예의에 어긋나는 행동을 하는 사람들을 보면 따끔하게 질책한다.


“요즈음 어른들은 점점 입을 닫고 있어요. 험악해지는 세태 속에서 어쩔 수 없는 일이지만 저라도 역할을 하려고 노력합니다.”


민 동문은 한지수묵화에 자연을 주제로 구상과 비구상의 경계를 넘나들며 한국인의 정체성을 담고자 노력했다. 올해 허리수술을 받은 이후에도 붓을 놓지 않으며 본인 스스로를 ‘그림에 미친 사람’이라고 말할 정도로 창조적 열정이 대단하다.


“작가란 자학을 하는 사람들인지도 몰라요. 내일을 생각 않고 지금 이 순간에 몰두하죠. 예술은 미완의 교향곡으로 끝날지는 몰라도 죽을 때까지 해야지요.”



민경갑 화백의 작품 잔상(殘像)



작품관을 들려주세요.
“제가 재학생으론 처음으로 국전에 특선했을 때만 하더라도 젊은 패기에 40세만 되면 최고가 되겠다는 생각을 한 적이 있어요. 그런데 아니더라고요. 60대가 되고, 80세가 넘은 지금에도 만족할 수가 없어요. 내가 그토록 목마르게 찾고 있는 세계는 벌써 내 손에 미치지 못하는 곳에 가 있는 것 같아요.”


잠깐 그림을 살펴봤습니다만, 서양화 느낌의 추상화도 그리셨던데요.
“대학 졸업 후에는 저도 서양풍의 그림을 그렸어요. 1950~60년대 서구의 엥포르멜(추상표현주의)의 영향을 받았죠. 한 7, 8년 그리다 보니까 남의 말을 타고 달리는 느낌이에요. ‘내 것이 아니구나’ 싶어 딱 중단했어요. 2002년 프랑스 파리에서 가졌던 UNESCO 초대 개인전에서 ‘자연 속에서’라는 명제로 전시를 했습니다. 이는 내가 한국인이라는 자부심과 우리의 정체성을 알리려는 의도도 있었지만 더 나아가서는 자연을 사랑하는 내 마음 속의 진정성을 보여주고 싶었던 것 같습니다. 자연을 주제로 우리의 얼과 정서가 담긴 정체성을 찾는 작품 제작에 몰두하고 있어요.”

작품들에 산이 많이 등장하는 이유군요.
“꼭 그렇지는 않지만 지금은 작품 소재에 연연하지는 않고 있습니다. 데뷔시절에는 주로 인물화를 그렸습니다만, 인간도 자연의 일부분이지만 산만큼 움직임이 없으면서 많은 이야기를 담고 있는 것을 발견하지 못했습니다.
제 작품에 나타난 산은 어떤 특정한 산이 아닙니다. 마치 분열하기 이전의 태고의 모습으로 다시 조합된 듯한 산으로 환원되지요. 그 산이 어디에 있는 무슨 산인가는 별 의미가 없어요. 다만 산의 아름다움이나 신비한 모습을 영적인 교감을 통해 재현시킬 따름입니다.”


홈페이지를 보니 영문까지 정리가 잘 돼 있습니다. 질서있는 삶이 느껴졌어요.
“리듬이 깨지면 오래 못 갑니다. 작업도 늘 규칙적으로 합니다. 작업실이 2층에 있긴 합니다만, 9시면 작업실에 출근해 6시에 퇴근하고. 점심시간은 12시를 지킵니다. 시간 관리에 철저한 편입니다.”


이날 기자와의 시간 약속도 정확히 지키며 10분 전에 온 기자에게 “제가 늦은 게 아닙니다. 그렇죠?”라며 동의를 구했다.


팔순 때 전시회를 여셨는데, 언제 또 전시회를 볼 수 있을까요.
“작품집을 두 권 냈는데, 한 권 더 내야죠. 살아있는 한 창작활동은 계속 될 터이니 때가 되면 새로운 주제의 전시회를 열 수 있을 겁니다.”


마지막으로 화가의 길을 걷고 있는 후배들에게 한 말씀 부탁드립니다.
“대학시절에는 진지하게 파고드는 것이 있어야 할 텐데, 요즘 후배들을 보면 한 번의 기회를 노려서 너무 빨리 뜨려는 경향이 있어요. 이솝우화 속의 개미보다 베짱이를 선호해서 힘 안들이고 하루 아침에 수십억, 수백억을 만들려는 조급한 생각을 갖고 있는 후배들이 자주 눈에 보여요. 젊을 때는 무엇보다 기초가 중요하다고 봅니다. 그래야 오래도록 흔들리지 않고 작업을 계속 할 수 있기 때문입니다.”






·민경갑 화백은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만년 청년


김윤섭 동국대 문화예술대학원 겸임교수는 화가 민경갑 동문에 대해 “항상 새로움에 목말라 있는 만년 청년의 표본”이라고 평했다. 3학년 재학시절 국전에서 특선을 하고 1960년대에는 한국화 분야에서는 처음으로 국전에 추상작품을 출품해 추천작가가 됐다.
대한민국예술원 회원이며, 영남대 동덕여대 원광대 교수 등을 역임했으며 본회 부회장과 관악대상 운영위원장으로 봉사하고 있고 또 지금은 단국대학에서 석좌교수로 후학을 지도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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