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04호 2011년 11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신풍제약 장용택 회장, 세계적 신약,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한국 위상 맞게 해외 원조 늘려야"
신풍제약 장용택(약학 55-61) 회장

세계적 신약, 말라리아 치료제 개발 "한국 위상 맞게 해외 원조 늘려야"
"사실 시간이 이렇게 오래 걸릴 줄 몰랐습니다."
국내 제약회사 최초 글로벌 신약으로 개발한 말라리아 치료제 '피리맥스(Pyramax)'를 바라보는 신풍제약 장용택(약학 55-61) 회장의 감회는 남달랐다. '피리맥스'는 지난 8월 17일 식품의약품안전청으로부터 국내 신약 16호로 허가받은 항말라리아제로, 국내 신약으로는 처음으로 유럽의약청(EMA)의 신약 허가를 기다리고 있는 상태다. (2011년 10월 14일 기준)
1999년 세계보건기구(WHO)와 손잡고 신약 개발을 논의한 것이 어느새 12년. 우리나라를 포함해 아프리카 및 아시아 19개국 23개 지역에서 약 3천7백 명의 피험자를 대상으로 임상시험을 수행했으며 연구개발, 설비 투자, 공장 신축 등 쏟아부은 돈만 700억 원이다. 스스로 생각하기에도 "미련할 만치 고집스러웠다"고 말한 그는 지난 일을 되짚어보며 그간의 에피소드를 하나씩 풀어놓기 시작했다.
치료율 99%ㆍ복용 간편ㆍ약가 저렴
"우리 회사에서 개발한 구충제를 저개발 국가에 납품하는데 그쪽에서 말라리아 약을 만들어주면 안 되겠냐고 부탁하더군요. 말라리아 발생 지역이 대부분 못 사는 나라들이라 돈이 안 된다고 생각한 다국적 기업들은 이미 신약 개발을 포기한 상태였거든요. 기존의 치료제는 내성이 생겨 신약 개발이 시급한 상황이었는데, WHO에서 이를 맡아줄 기업을 물색한다는 얘기가 들리더라고요. 그래서 우리가 연구비만 대주면 하겠다고 나섰어요."
이후 2000년 정식으로 WHO와 신약 개발 프로젝트 협약을 체결한 신풍제약은 말라리아 퇴치를 위한 비정부기구(MMV)로부터 7천만 달러를 지원받고 본격적인 신약 개발에 착수했다.
그러나 순탄할 것만 같았던 신약 개발은 예상치 못한 곳에서 복병을 만났다. 국내에서 의약품 허가를 받으려면 반드시 국내 임상시험을 거쳐야 하는데 우리나라는 말라리아 발생 지역이 아니라서 환자 구하기가 쉽지 않았다. 더욱이 환자 중 60세 이상과 군인은 제외해야 했다.
"해외 임상시험은 3천7백 명을 대상으로 2년 안에 다 끝냈는데 우리나라의 경우 30명의 대상자를 찾는 데만 3년이 걸렸어요. 막상 환자를 찾아도 본인이 싫다고 하면 그만이었죠. 그래서 시간이 더 오래 걸렸어요."
어렵사리 수행한 임상시험이었지만 결과는 성공적이었다. 임상 3상의 시험 결과는 99% 이상의 치료 효과를 보였다. 특히 열대열 말라리아와 삼일열 말라리아 모두에서 우수한 치료 효과를 나타냈다. 현재까지 두 말라리아를 모두 치료할 수 있는 치료제는 없다. 3상 임상 보고서는 세계적인 의학 전문지인 란셋(The Lancet)에 실리기도 했다.
장 회장이 말라리아에 관심을 갖게 된 것은 의약품을 연구한 사람으로서 갖는 도의적인 책임 때문이었다. 말라리아는 WHO 추산 매년 약 3~5억 명이 감염되고, 그중 약 1백만 명의 목숨을 앗아간다. 사망자의 85%는 5세 이하의 어린이다.
현재 전 세계 인구 69억 명 중 40%인 27억 명이 아프리카, 서ㆍ동남아시아, 라틴아메리카 등 말라리아 발병 지역에 살고 있으며, 이들 지역 대부분은 의료환경이 열악한 저개발국이다. 이런 까닭에 WHO는 말라리아를 에이즈, 결핵과 함께 세계 3대 질병으로 구분한다.
"1880~90년대부터 우리나라에 외국 선교사들이 들어오면서 서양의 의료기술을 전파했잖아요. 당시 그들이 우리에게 전해준 약으로 많은 사람들의 병을 고쳤는데 이제는 우리가 그걸 갚아야죠. 그동안 우리의 의료기술은 많이 발전했고, 또 세계로 나아가는 입장이니까 우리의 위상에 걸맞게 해외 원조에 적극 나서야 해요."
평소 장학사업에도 관심이 많은 장 회장은 지난 2010년 장학빌딩 건립기금으로 2억 원, 모교 신약개발센터 건축기금으로 5억 원을 쾌척했다. 이에 대해 그는 "동문인 한 사람으로서 모교를 돕는 일에 참여하는 것은 당연하다"고 말했다.
장학빌딩 2억ㆍ신약센터 5억 쾌척
기업이념을 '민족의 슬기와 긍지로 인류의 건강을 위하여'로 정할 정도로 민족애와 인류애를 중시하는 그는 1970년대 초 제대로 먹지 못해 건강하지 못한 국민들이 영양분마저 기생충에게 뺏기면 원천적으로 병을 치유하는 게 힘들다고 판단, 구충제를 만들었다. 우리나라에 있는 기생충을 완전히 없애겠다는 당시 그의 일념은 이제 전 세계에서 말라리아를 추방하고 싶다는 열망으로 이어졌다.
"하늘이 필요한 약이니까 하늘이 도와줘 신약 개발이 성공한 것 같아요. 약을 필요로 하는 곳이 가난한 국가니까 약가는 최대한 낮출 생각입니다. WHO와 협의된 내용이기도 하고요. '피리맥스'는 하루 1번, 연속 3일 동안 먹으면 되니까 기존 약에 비해 복용이 간편합니다. 반면 치료 및 재감염 예방에 효과적이죠. 우리 기업들이 해외에서 자원과 기술 개발을 유치할 때 의료 지원도 해주겠다고 하면 그쪽 사람들의 호감을 사는 게 더 쉽지 않아요? 30~40만 달러로 10만 명 분의 약을 사서 공급하고 몇 백억 달러짜리 사업을 따낸다면 사업자에게도 이득인 셈이죠."
그러면서 그는 자신의 경험담을 소개했다. 예전 국가 프로젝트 중에 이집트 델타 강 유역을 개발하는 사업이 있었다고 한다. 당시 델타강 유역은 디스토마의 발병(주혈흡충)으로 심각한 상황이었는데 그가 한국 대사관을 통해 전해준 약으로 상당한 효과를 봤다. 처음에는 긴가민가하던 그들도 나중에는 이집트 대사를 통해 약을 더 달라고 요청했다. 그는 한 번에 5만 명 분씩, 총 10만 명 분을 이집트에 전달했다. 그 후 이집트 정부는 델타 프로젝트라 하여 세계개발은행 및 아프리카개발은행에서 막대한 자금을 지원받아 이 지역의 감염률을 70%에서 20% 정도로 낮추고 주혈흡충 구제의 모범적인 성공사례로 칭송받았다. 그때 민간 외교 사절단 역할을 톡톡히 했다고 한다.
내년부터 국내에서 본격적인 시판에 들어가는 '피리맥스'는 현재 서부 아프리카 및 동부 아프리카 34개국, 서아시아 및 동남아시아 16개국, 라틴아메리카 6개국 등 총 56개국에서 제품 등록을 추진하고 있다. 이들 국가에서의 제품 등록이 완료되면 적은 비용으로도 열악한 환경에 처한 환자들을 치료할 수 있게 된다. 인류애를 강조하는 그의 소신처럼 '피리맥스'가 빈곤과 질병으로부터 고통받는 사람들을 구원하는 계기가 되기를 기대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