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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96호 2011년 3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대강양조장 조재구 대표 "4대째 이어온 명품주를 만듭니다"





대강양조장 조재구 대표 "4대째 이어온 명품주를 만듭니다"

술에도 명가가 있다. 각 지방을 대표하며 대대로 내려온 장인 정신은 뿌리 깊은 역사와 전통 속에 지역의 브랜드가 되고, 자부심이 된다. 요즘 술자리에서 대세라는 막걸리 역시 지역마다 저마다의 이름을 자랑하는 명가가 있다. 90여 년의 전통을 자랑하며 충북에서 4대째 내려오고 있는 대강양조장도 그중 한 곳이다.

술맛 좋기로 소문난 양조장에서 태어난 조재구(산림자원 83-90) 동문은 가업을 잇기 위해 잘 다니던 회사까지 그만두고 고향으로 향했다. 술을 한 잔만 마셔도 금세 얼굴이 빨개져 연구용 외에는 절대 술을 마시지 않지만 막걸리를 사랑하는 마음만큼은 어느 주당 못지않다는 조 동문을 지난 2월 17일 제천에서 만났다.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세 떨쳐 조 동문은 언제나 '술' 생각뿐이다. 흑마늘 막걸리, 복분자 와인, 쌀과 황기로 만든 소주 등 그의 머릿속은 항상 새로운 상품에 대한 아이디어로 넘친다. 특히 하루 1천 병이 팔린다는 '검은콩막걸리'는 국내 특허까지 낸 그의 히트 상품이다. 2년 전부터는 '세상의 모든 술을 다 만들어보자'는 야심찬 계획 아래 제천에 현대식 시설의 공장까지 지었다. 이곳에서 그는 국내 최초로 '쌀 맥주'를 개발했고, 현재 출시를 눈앞에 두고 있다. 이 맥주는 맥아가 아닌 쌀을 주재료로 한 게 특징이다.

"우리나라 맥주의 맛이 천편일률적이잖아요. 그래서 수입 맥주에 많이 밀리는 상황이고요. 외국의 경우 알코올 도수에 따라 하드비어와 소프트비어로 나뉘는데, 우리나라는 모두 소프트비어죠. 비슷한 상품으로 기존의 맥주 회사들과 경쟁하는 건 아무래도 무리가 있으니 알코올 도수를 8도 정도로 해서 하드비어를 개발했어요. 말하자면 틈새시장을 노린 건데, 소비자들은 기호에 맞게 다양한 상품을 선택할 수 있어 좋고, 농민들은 쌀 소비가 촉진되니 일석이조죠."

이 외에도 막걸리에 함유된 비타민 B2 성분이 피부 미용에 좋다는 점에 착안해 화장품 벤처회사를 하는 친구와 함께 막걸리 천연 화장품 개발을 고려 중이고, 막걸리 식초도 개발해보고 싶다고 했다. "할 건 많은데 능력이 없어 다 못할 것 같다"는 게 걱정이라면 걱정이다.

조 동문이 아버지의 뒤를 이어 양조장을 맡은 것은 IMF로 모두가 힘들어하던 1998년이었다. 당시 '한진'에서 8년간 근무하던 그는 부인의 만류에도 불구하고 가업을 위해 고향으로 향했다. 2남 2녀 중 장남이라 어릴 때부터 가업을 물려받아야 한다는 의식이 강했고, 남동생이 의사라 자신이 아니면 가업을 이을 사람이 없었기 때문이었다.

막상 고향에 내려오긴 했지만 처음에는 적응하는 데 어려움이 많았다고 한다. 서울에 있는 가족과 떨어져 지내야 하는 것도 문제였지만, 규모가 작은 회사다 보니 영업과 생산, 연구까지도 맡아야 했다. 여기에다 주위의 부정적인 시선 또한 그를 힘들게 했다. "제가 이쪽 사업에 뛰어든다고 하니 친구들 모두 대기업을 다니다 왜 그런 걸 하냐, 요즘에는 다들 와인을 먹지 누가 막걸리를 먹느냐며 말이 많았어요. 내 주변 사람 중에 80% 정도는 반대를 했던 것 같아요."

그래도 그는 결심을 바꾸지 않았다. 성공할 자신이 있었기 때문이었다. "우리 막걸리가 지명도가 있고 맛이 좋으니 충분히 성공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더욱이 막걸리는 우리 민족이 5천 년 넘게 마셔온 술이잖아요. 우리나라 사람의 피와 뼈에는 막걸리 DNA가 있는데, 막걸리 사업이 쉽게 망할 일은 없다고 생각했어요."

최근 국내를 넘어 해외에서도 막걸리 붐이 일자 부정적이었던 시선은 금세 부러움으로 바뀌었다. 얼마 전 한 소비자로부터 '명품주'를 만들어줘서 고맙다는 전화를 받고 무척 기뻤다는 그는 "바쁘지만 행복하다"고 말했다.

총동창회 행사에 막걸리 협찬 충북 안에서 맛있기로 소문난 술이었던 '대강막걸리'가 전국적으로 이름을 알리기 시작한 것은 지난 2005년 노무현 전 대통령이 농촌 체험을 위해 단양을 방문하면서부터다. "당시 이장님이 양조장에 와서 며칠 후에 높은 분이 오시니까 술을 잘 만들어달라고 했어요. 높은 분이라길래 군수나 도지사 정도라고 생각했지 대통령일 줄은 꿈에도 몰랐죠. 그날 저녁 뉴스에 대통령이 하농림부 장관과 각 기관장들이 우리 막걸리로 건배하는 장면이 나왔는데 그렇게 뿌듯할 수가 없었어요."

이후에는 청와대에 정식으로 막걸리를 납품하며 '청와대 만찬주'로 유명세를 떨쳤다. 당연히 매출도 늘었다. 지금은 이와 연계해 전국의 이마트와 롯데마트 등 대형 유통업체에 납품하고 있고, 지난해부터는 일본으로도 수출하고 있다. 대기업이 아닌, 지역 양조장이 이룬 성과이기에 더욱 의미가 컸다.

평소에도 뭔가에 도전하길 좋아한다는 그는 모교 재학 시절 학생운동으로 학사경고를 받기도 했고, 동아리 '야생조류연구회' 활동으로 겨울 방학 때마다 통통배를 타고 여러 섬을 다니며 야생조류를 연구하기도 했다.

학교에 대한 추억이 많아서일까. 그는 총동창회 행사에도 협찬을 많이 하는 편이다. 2005년 '홈커밍데이 겸 서울대 가족 친목 등산대회'를 시작으로 신년교례회, 정기총회 등 많은 행사에 막걸리를 협찬했다. "살면서 모교 덕을 많이 봤어요. 그래서 저도 어느 정도는 학교에 보답을 해야겠다는 생각을 갖게 됐죠. 좀 더 욕심을 낸다면 산학연구로 '서울대 막걸리'를 개발해보고 싶어요. 거기서 나오는 수익금 전액은 모교 발전기금으로 내고요. 만약 잘되면 서울대에 또 하나의 브랜드가 생기는 거니 좋잖아요."

앞으로 그의 목표는 '문화가 있는 술을 만드는 것'과 '대한민국 상위 1%의 엘리트로서 사회적 책임을 다할 수 있는 사람이 되는 것'이다. 외국처럼 술만 가지고서도 축제를 할 수 있는 문화를 만드는 것은 술을 만드는 사람으로서의 바람이고, 어려운 이웃을 돌아보고 봉사하며 살겠다는 것은 국가에서 혜택을 받은 만큼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는 서울대인으로서의 바람이다.

"앞으로 회사를 좀 더 키워 지금보다 더 많이 나눌 수 있는 사람이 되려고 합니다. 제가 돈이 많은 것도 아니고, 우리 회사가 대기업도 아니지만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안에서 사회적인 책임을 다하려고 해요. 그게 서울대인으로서 국가에 보답하는 길인 것 같아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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