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전통문화학교 김봉건 총장
석굴암… 세계문화유산 등재 이끌어내
전통문화라고 하면 흔히 ‘보수적이다’, ‘고리타분하다’고 생각할지 모른다. 특히 각박한 현실 속에서 먹고사는 문제와 씨름하다 보면 전통문화의 가치는 쉽게 잊히기 마련이다. 그러나 역사적으로 봤을 때 문화가 없는 민족은 결코 오랫동안 번성할 수 없었다. 문화를 지키고 가꾸는 일을 경제적인 개념으로만 따질 수 없는 이유다.
영국, 프랑스 등 문화유산이 풍부한 나라들은 자신의 문화를 지키기 위해 부단히 애를 썼다. 우리나라도 현대에 들어서는 우리 고유의 전통문화를 보전하기 위해 많은 노력을 기울였는데, 그 중심에 김봉건(건축 74-78) 동문이 있다.
역사도시 경주 지킨 일, 큰 보람
지난 10월 19일 한국전통문화학교 제5대 총장으로 취임한 김 동문은 1983년 국립문화재연구소에서 근무하면서 문화재와 인연을 맺었다. 20여 년의 세월 동안 유난히 굵직한 일들을 많이 맡았는데, 문화재연구소 미술공예실장으로 있을 때는 불국사, 석굴암, 창덕궁 등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하는 데 필요한 실무를 맡아 성공시켰다.
또 용산에 국립중앙박물관을 지을 때 국내에서는 처음으로 세계건축기협회(UIA)와 함께 국제 공모전을 개최해 우리 문화를 세계에 알리는 데 기여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의미가 있었던 일은 1990년대 초 정부가 발표한 경주 고속전철 건설계획을 수정하게 한 일이었다. 당시 정부는 경주의 도심 한가운데를 지나는 고속전철 건설계획을 발표했는데, 김 동문이 이끄는 연구팀이 끈질긴 연구와 노력 끝에 이를 백지화하도록 만든 것이다.
“세계적으로 천 년 가까이 수도의 자리를 지킨 도시는 흔치 않아요. 그런 면에서 경주는 역사적으로 굉장히 중요한 도시죠. 그런 도시의 심장을 관통하는 고속전철이 생긴다니 학계는 물론 언론에서도 반대를 많이 했어요. 그런데 아무런 대안 없이 무조건 반대만 해선 안 되잖아요. 그래서 문화재연구소에 있던 우리 팀이 6개월 정도 야근하면서 경주 외곽으로 고속전철을 돌리는 방안을 만들어 제시했어요. 학계와 언론이 지지를 많이 해줘서 결국 우리가 만든 계획안이 정부안으로 채택됐죠.”
이 사건은 개발과 보존이라는 논쟁에서 최초로 보존의 손을 들어준 사건이자, 문화재에 대한 인식을 바꾼 의미 있는 일이었다.
“우리가 제시한 계획안은 하나의 도시 전체를 문화유산으로서 인정하고 보존하도록 한 최초의 정책이었는데 그것이 성사돼 정말 기뻤어요. 문화재 관련 일을 하면서 가장 보람된 순간이기도 했죠.”
전통문화 지키는 힘, 일상 속 작은 전통에서
지금은 누구나 인정하는 문화재 전문가이지만, 김 동문이 문화재에 관심을 갖게 된 계기는 우연한 기회에서 시작됐다. 1985년부터 2년간 영국에서 유학생활을 하던 시절, 그는 주말이면 오픈마켓에 자주 갔다.
그때 유독 사람들이 줄을 길게 서 있던 생선가게가 있었는데, 백 년 전통을 자랑하는 가게였다. 생활의 작은 부분에서조차 전통과 역사를 중시하는 영국인의 태도에 큰 문화적 충격을 받았고, 이는 문화재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귀국 후에는 우리의 문화재를 관리하고 보존하는 일에 전념하게 되었다.
“현장 실기교육 강화할 것”
이후 김 동문은 문화재와 관련된 다양한 일을 하며 한국전통문화학교 설립에도 참여했다. 학교의 근거법인 ‘설치령’을 제정하고 마스터플랜도 직접 설계했다. 그렇게 설립된 학교에 10여 년 만에 다시 돌아와 총장으로 취임한 그는 “아마도 제가 계획했던 일들을 마무리하라는 의미로 큰 임무를 주신 것 같다”며 감회를 밝혔다.
막상 학교에 돌아와 보니 문화재 관련 전문 인력을 육성한다는 당초의 취지와 달리 실기교육이 다소 부족하다는 점이 눈에 들어왔다. 그는 앞으로 실기 중심의 현장교육을 강화해, 기존 대학들과 차별화된 전문 인력을 길러낼 계획이라고 밝혔다.
“전통문화를 공부한다고 해서 국내에만 머무르는 것이 아니라, 글로벌한 인성을 가진 인재로 성장할 수 있게 돕는 것이 제 목표입니다.”
종묘, 가장 좋아하는 문화재
그가 꼽은 최고의 문화재는 ‘종묘’다. 종묘대제를 통해 지금도 본래의 기능을 수행하는 종묘는 과거와 현재의 삶이 함께 얽혀 있는 문화재라는 점에서 가장 의미 있다고 했다.
“왕실의 제사를 지내는 종묘는 평소에 사용하는 공간이 아닌, 죽은 자들을 위한 곳이에요. 건축을 잘 모르는 사람도 종묘 앞에 서면 경건함과 엄숙함을 느낄 수 있죠. 수평적으로 길게 뻗은 공간만으로도 절제의 미를 느끼게 하는 종묘는 유교 건축의 백미입니다.”
그는 진정한 문화재란, 오래된 하드웨어로서의 유형문화와 사람들의 삶과 문화가 담긴 무형문화가 조화를 이루는 것이라고 강조했다. 과거를 품되 늘 새로운 시선으로 미래를 향해 나아가는 그의 행보에 앞으로 어떤 변화가 펼쳐질지 기대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