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90호 2010년 9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노래와 무협지로 당뇨 추방 나선다 — 당뇨병 전문의 오연상
노래와 무협지로 당뇨 추방 나선다 — 당뇨병 전문의 오연상(의학 75-81)

1987년 민주화 항쟁의 기폭제가 된 ‘박종철 고문치사 사건’을 기억하는 동문이라면, 오연상(의학 75-81) 내과 원장의 이름이 낯설지 않을 것이다. 박종철(언어 84입) 동문이 고문으로 사망했을 당시, 사망 선고를 내린 의사이자 대공분실 509호의 실상을 언론에 공개해 ‘박종철 사건’의 실체를 밝히는 데 결정적 역할을 했다. 그해 오 원장은 한국기독교협의회가 제정한 제1회 인권상 수상자로 선정되기도 했다.
당시 중앙대병원 전임강사였던 그는 이후 교수로 재직하며 당뇨병 예방에 헌신해왔다. 2000년부터 2006년까지 WHO 아시아·태평양 당뇨병 예방사업 단장을 비롯해 중앙대병원 당뇨센터장, 대한당뇨병학회 총무이사 등을 역임했고, KBS 건강 프로그램 ‘비타민’에도 출연했다.
그런 오 원장이 최근에는 노래와 무협지를 당뇨 치료와 예방 수단으로 활용해 화제를 모으고 있다.
박종철 사건 실체 공개한 인권 의사
지난 8월 20일 서울 흑석역 인근 개인병원에서 만난 오 원장은 지인들에게 나눠줄 당뇨 예방 노래 CD ‘힘내라 당뇨인’을 직접 굽고 있었다. 기자에게도 CD를 한 장 건넨 그는, 어떻게 노래를 만들게 됐는지를 묻자 곧바로 반주 음악에 맞춰 흥겹게 노래를 부르기 시작했다.
“인생 백세 길다 하지만, 골골백세 정말 힘들어.
백 평짜리 아파트 살면 뭐 하나, 내 몸속은 엉망인걸.
당뇨 체질에 속상해 말고, 나의 하루 되돌아보세.
건강, 불행, 행복의 선택 내게 달렸네…”
오 원장은 이 곡이 대만의 국민가요 ‘애평재회영’을 개사한 것으로, 아시아에서 1억 장 이상 팔린 노래라며 “한 번 들으면 무의식적으로 흥얼거리게 되는 중독성이 강한 노래”라고 소개했다.
“논문 발표나 진료만으로는 당뇨 환자가 줄지 않아요. 예방이 핵심인데, 이를 위해서는 국민의 공감과 참여가 필수죠. 그래서 중독성 있는 노래로 다가가게 됐습니다.”
당뇨는 가족 당 한 명 꼴… “마음을 움직여야 습관 바뀐다”
오 원장에 따르면, 국내 전체 인구의 10%는 당뇨 환자이며, 또 다른 10%는 당뇨병 위험군에 속한다. 인슐린 부족으로 생기는 당뇨병은 고혈당 상태가 지속될 경우 실명, 신장 기능 장애, 신경병증 등 심각한 합병증을 유발할 수 있다. 고열량·고지방·고단백 식단, 운동 부족, 스트레스 등이 주요 원인이다.
“당뇨만큼 생활습관과 밀접하게 관련된 질병은 없어요. 한 입 먹는 것에 따라 몸이 바뀌죠. 결국 마음이 움직여야 습관이 바뀌는 법입니다. 그래서 노래와 무협지를 떠올렸어요.”
그가 언급한 무협지 『대당쾌전기』는 현재 시니어 포털 사이트 ‘유어스테이지(www.yourstage.com)’를 통해 연재 중이다. 오 원장의 중앙고 선배인 오현길 작가가 집필했고, 오 원장은 캐릭터 설정과 스토리 구성에 자문 역할을 맡았다.
등장인물 이름도 흥미롭다. 당뇨 치료제 인슐린을 따온 ‘인수린’, ‘자생력’, ‘무가당’, ‘적정량’이 주인공이며, ‘함박아’, ‘피자’, ‘소시지’ 등은 당뇨를 유발하는 적으로 등장한다. 이름은 유쾌하지만, 소설은 기본적인 무협 장르의 형식을 유지하면서 당뇨 정보와 혈당 관리 요령이 자연스럽게 녹아 있다.
“당뇨를 이겨내려면 무협 소설 속 주인공처럼 강한 의지가 필요하죠. 독자들도 건강에 흥미를 갖길 바라는 마음에서 무협이라는 장르를 택했습니다.”
“환자 줄어들면 오히려 내가 손해”
지난해 초 25년간 재직한 중앙대병원을 떠나 개인병원을 개원한 오 원장. 일부는 그의 활동을 ‘튀려는’ 시도로 보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는다.
“대학 강의 때는 10분도 안 돼 학생들이 졸아요. 환자들도 수십 년 간의 습관을 바꾸라는 말에 반발하죠. 다른 방식이 필요하다고 느꼈어요. 그래서 노래와 무협지를 선택한 겁니다. 상업적 목적은 전혀 없습니다. 사실 당뇨 환자가 줄어들면 의사인 제가 손해를 보죠.”
앞으로 오 원장은 병원 홈페이지(www.oys.kr)를 통해 ‘전자 당계부’ 서비스를 시작할 예정이다. 환자가 직접 하루 일과(기상 시간, 식사 시간, 식사 내용 등)를 입력하면, 이를 바탕으로 맞춤형 진료를 받을 수 있도록 하는 시스템이다.
“『대당쾌전기』의 결말에서 인수린이 당뇨 무리를 소탕하지만, 본인도 당뇨에 걸립니다. 그때 스승 지바고 도사가 백지 책자를 주며 ‘그 안에 네 하루를 적어보라’고 하죠. 그것이 전자 당계부의 실현입니다. 당뇨 치료는 결국 자기관리입니다.”
조만간 병원 홈페이지에서는 오 원장이 직접 출연하는 뮤직비디오 ‘힘내라 당뇨인’도 공개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