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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8호 2023년 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정치인들의 선심정책은 사탕발림일 뿐…공짜는 반드시 보복한다”

박병원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정치인들의 선심정책은 사탕발림일 뿐…공짜는 반드시 보복한다”
 
박병원 (법학71-75) 안민정책포럼 이사장



 
‘국민이 같은 걸 바란다’는 착각에서 해방돼야
 진짜 개혁은 땅과 사람을 자유롭게 하는 것
‘英雄本學萬人敵’이 나를 경제관료로 이끌어
불어·일어·이태리어·러시아어 등 외국어 공부


박병원 동문은 삶의 스펙트럼이 참 다양하다. 경험의 폭도 넓다. 법대를 나와서 법조인이 아닌 경제관료를 했다. 보수-진보 정권에서 두루 기용됐고 민-관을 넘나들며 역할을 해 왔다. 석사 학위만 법학, 경제학, 산업공학 3개이다. 외국어도 영어 이외에 일본어, 프랑스어, 이탈리아어, 러시아어를 공부했다. 일벌레 형 같지만 시, 클래식, 식물, 사진 등 취미도 다양하다. 취미 차원을 넘어서 전시회를 열 정도의 전문가급이다. 깊이와 다양함 모두 가히 넘사벽 (넘을 수 없는 4차원의 벽) 수준이다. 

화려한 경력과 달리 성품은 털털하다. 옷차림도 정장보다는 실용적 복장에 운동화 착용이 많다. 차량도 6년 된 미니를 운전하고 다닌다. 인터뷰를 하러 간 필자를 부르는 호칭 또한 격식 없이 ‘문신이 형’이었다. (11년 후배에게 형이라니? 생각하겠지만 박병원 동문 특유의 호칭법이다) 허물없이 대화하면서도 할 말은 하는 스타일 때문에 ‘쓴 소리 소신꾼’, ‘구원 투수’, ‘규제개혁 전도사’, ‘해결사’ 등 언론이 이름 지어 준 별칭도 다양하다. 

인류의 탄생 이래 경제가 중요하지 않은 시대는 없었지만 올 한 해는 특히 경제의 향방이 최대 관심사다. 대한민국뿐 아니라 전 세계적 화두가 돼 있다. 신년 인터뷰 대상자를 박병원 동문으로 정한 것은 올해 경제 문제가 워낙 중하고 커 보이기 때문이었다. 금리, 부동산, 금융 등 개별 이슈는 물론 경제에 얽힌 이해관계 분별법, 경제에 숨겨진 거짓말 찾아내는 법 등 박병원 동문 특유의 경제 철학을 함께 들을 수 있었다. 
 
-최근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서비스산업 발전TF 민간위원장 등을 맡게 됐다. 왜 ‘박병원’을 찾는 것이라고 생각하시는지?
“잘 모르겠다(웃음). 애써 좋게 해석한다면 경제 문제를 규제로는 풀 수 없다는 문제의식 때문 아닐까? 대한민국 제조업은 세계 최고인데 대한민국 농업과 서비스업은 왜 시대에 뒤처져 있을까 비교해 보라. 대한민국의 제조업은 보호와 지원으로 출발했지만, 수입개방과 규제개혁을 하면서 진화해 왔다. 반면에 농업, 서비스 분야는 아직도 규제의 질곡에 묶여 있다. 그 결과가 세계 일류의 제조업, 시대에 뒤진 농업-서비스업으로 나타난 것이다. 농업, 서비스업에 종사하는 국민이 특히 더 무능하거나 게을러서 그런 게 아니다. 대한민국과 북한의 수준 차이가 남쪽 국민은 우수하고 북쪽 국민은 무능하기 때문일까? 개인의 문제가 아닌 체제의 차이, 선택의 결과물이다. 문제 해결의 첫 단추를 무엇으로 삼느냐에 따라 결과는 엄청나게 달라진다. 이 본질을 제대로, 정확하게 건드려 주는 게 진짜 개혁이다.” 

-그런 관점에서 대한민국 경제에서 가장 중요한 것 하나를 꼽는다면? 
“‘경제에서 공짜는 없다’는 것을 국민들 스스로 깨닫게 하는 것이 가장 중요하다. 정치인들은 표를 얻기 위해 거짓말도 서슴지 않는 성향이 있다. ‘이것도 공짜로 해주고 저것도 공짜로 해 주겠다’는 식이다. 다 사탕발림이고 거짓말이다. 지금의 물가, 금리, 환율 상승은 나랏돈 펑펑 써댔던 데 대한 대가이다. 그 부담은 다음 세대도 아닌 바로 지금 현 세대가 치르게 되어 있다. 이른바 보편적 복지라는 이름으로 이뤄졌던 공짜 선심 정책들이 모두 부메랑으로 돌아오고 있다. 그 부메랑은 저소득층을 더 세게 공격하고 없는 자를 더 힘들게 하는 특징이 있다. 인플레, 고금리로 누가 더 손해보고 있나? 못사는 사람에게 더 혹독하지 않나? 공짜는 없는 법이다. 이 상황을 보고도 ‘공짜가 가능하다’고 떠들어 댔던 그 누구 하나 책임지려 하지 않는다. 전 세계적인 인플레는 전 세계 정치인들의 공짜 공세가 만들어낸 대가이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더해져 속도가 빨라졌을 뿐이다. ‘공짜는 반드시 보복한다. 그 보복은 없는 사람을 더 집중 공격한다’ 이것이야말로 반드시 기억해야 할 경제 원칙이다. 경제가 정치로부터 해방되려면 국민들이 정치인의 이런 거짓말에 속아서 표를 주지 말아야 한다.”  


대담·글:방문신 (경영82-89) SBS문화재단 사무처장 

-이런 문제를 정책으로 해결할 방법은 있는지?
“우리 무의식 세계에 스멀스멀 자리 잡은 고정관념이 있다. 모든 근로자가 똑같은 이해관계를 갖고 있을 것이라는 생각, 모든 농민이 바라는 게 한가지라는 생각이 그것이다. 착각이다. 노동계층을 보더라도 민노총 가입 노동자와 일반 노동자, 실업자는 입장과 이해관계가 전혀 다르다. 취업을 갈망하는 청년과 정년을 앞둔 근로자의 바람이 어떻게 똑같을 수 있겠는가? 농민의 경우도 농사를 계속 짓고자 하는 농민과 탈농을 간절히 원하는 농민을 어떻게 한 잣대로 평가할 수 있겠는가? 모든 근로자, 모든 농민, 모든 국민이 똑같은 걸 원하지 않는데 이를 무시한 채 단 하나의 획일적 잣대, 정책으로 해결하려고 한다. 이것이야말로 착각이고 독선이고 경직된 전체주의적 발상이다. 다양한 선택지를 가능하게 하는 것이 규제혁파의 핵심이다.”

-여러 규제 중 가장 먼저 해결돼야 할 최우선 순위는?
“경제의 3대 요소는 돈(자본), 땅(토지), 사람(노동)이다. 이 가운데 땅에 대한 규제를 푸는 것이 가장 시급하다. 아까 농민도 각양각색의 생각을 갖고있다고 말씀드렸는데 예를 들어 도시 주변부에 사는 농민들의 소원이 그 땅에서 계속 농사짓는 것일까? 그 농지를 팔아서 그 돈으로 무언가를 하고 싶은 사람도 있지 않을까? 물론 농민이 농지를 못 팔게 하는 규제는 없다. 그러나 농민이 아니면 농지를 못 사게 하는 규제는 있다. 원인이 어디에 있든, 결국 농지를 팔고 싶은 농민이 농지를 팔 수 없게 되는 건 마찬가지 아닌가? 쌀은 계속 남아돌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는 판인데 탈농을 원하는 사람에게까지 강제로 농사를 짓게 해 국민 모두가 손해를 보고 있는 것이다.  땅이 필요할 때 농지와 임야를 더 헐어 쓸수 있어야 하는데, 이 땅들을 꽉 묶어 놓고 토지 공급을 원천 봉쇄하니까 집값은 올라가고 공장을 짓고 일자리를 만들기가 더 어려워지는 악순환에 빠지게 되는  것이다. 1960년대 이후 쌀, 밀, 옥수수의 단위면적당 생산량이 2, 4, 6배 늘어나서 맬더스의 인구론 자체가 옛날 얘기가 되었는데도 아직도 식량 안보와 국내 농지보전에 매달려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식량 안보는 달러를 얼마나 잘 확보하느냐의 능력이지 국내 농지를 잘 보전하는 능력이 아니라는 것을 아직도 깨닫지 못한 주장이다.”

-금리와 부동산이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 국내 경제, 세계 경제의 향방은?
“세계 경제를 진단할 능력이 없다(웃음). 국내 경제 이슈들은 나름 생각하는 바가 있지만 전망이 어떻게 된다고 해서 지금 우리가 해야 할 일이 달라지지는 않는다. 노동개혁과 교육개혁, 토지 이용규제 개혁으로 사람과 땅을 자유롭게 해야 한다.”   

-본인의 경제관 또는 경제철학을 한 단어로 요약한다면?
“자유와 자치다. 개인에게 선택의 폭을 넓혀 문제를 해결하려고 해야 한다. 그게 자유의 힘이고 시장의 힘이다. 자유에 기반한 경제 논리를 힘과 규제로 대체하려는 정치인들 때문에 경제가 망가지는 것을 수 없이 봐 왔다. 문재인 정부 경제정책에 비판적이었던 것은 그 점 때문이었다. 해야 할 일을 안 하는 건 그렇다 치고 ‘해서는 안 될 일을 골라서 했기 때문’이었다. 집값이 올라가면 집주인 때문이고, 임대료가 올라가면 건물주 때문이라는 식의 얄팍한 정치논리, 집값 잡겠다고 했다가 집값에 불붙였던 수많은 규제들, 약자 편이라며 최저임금 급격히 올렸다가 가장 약자를 실업자로 전락시켰던 일방주의 등등. 그 정책들의 결말이 어떠했는가? 말이 마차를 끄는 게 아니라 마차가 말을 끌고 가는 비합리가 불러온 참담한 결과였다. 규제의 참담한 결과를 깨닫게 하는 것이 ‘자유와 자치’의 경제철학을 실천하는 출발점이라고 생각한다.”   

-관료 시절, 그 경제철학을 실천한 사례는? 가장 보람있었던 경험은? 
“노무현 정부 때 경제정책국장, 차관보, 차관을 차례로 거치면서 했던 일들이 기억에 많이 남아 있다. 서비스산업의 혁신, 규제 혁파와 관련된 일들이었는데 업종으로 보면 골프장 규제를 푼 것이 가장 큰 성과였던 것 같다. 한미 FTA를 비롯한 자유무역협정은 규제혁파를 위한 좋은 수단이었다. 노무현 대통령은 ‘의료, 교육을 개방하지 못해 가장 아쉽다’는 말을 남겼다. 서비스업 개방을 못해 아쉽다는 소회로 들렸는데 핵심을 짚은 지적이었고 지금도 유효하다. 80년 이후 역대 대통령 중 경제논리를 가장 잘 들어줬던 사람은 전두환, 노무현인 것 같다.”

-법대를 나와 법조인 대신 경제관료의 길을 선택한 이유는?
“판사, 검사, 변호사가 하는 일은 본질적으로 개인의 과거사를 캐는 일이다. 나는 많은 사람들을 위한 일, 세상의 미래를 설계하는 일을 하고 싶었다. 영웅이라는 말이 걸리지만 항우가 말한 영웅본학만인적(英雄本學萬人敵: ‘무술은 한 사람을 상대하지만, 병법은 만인을 상대한다’는 뜻)에 공감했다.” 

-경제관료를 하지 않았다면 어떤 일을 했을지?
“문화평론가나 여행평론가를 했을지 모르겠다. 젊었을 때도 그 일을 하고 싶은 생각은 있었는데 솔직히 그때는 그런 일을 해서 먹고 살아갈 수 있는 세상이 오리라는 생각을 못했다.”

-석사 학위만 법학, 산업공학, 경제학 3개인데 공부하는 게 재미있는가?
“‘공부가 제일 쉬웠어요’라는 책을 쓴 사람도 있는 것으로 기억한다(웃음).”

-시, 식물, 클래식 등 관심 분야가 다양한데 업무 외 영역에서 내 삶을 가장 풍성하게 해 준 것 하나를 꼽는다면?
“여행이다. 그 모든 것을 가능하게 해주기 때문이다. 여행을 하면 미술관, 식물원을 반드시 들른다. 그리고 반드시 걷는다. 걸어야 보이는 것이 많기 때문이다. 차를 타고서는 꽃을 볼 수가 없다. 2011년 캘리포니아, 14년 한국, 17년 알프스의 야생화 사진을 가지고 전시회를 열어 북한에 어린이 전염병 예방 주사약을 보내는 데 돈을 보탤 수 있었던 것도 다 여행 덕분이었다. 여행은 책 이상의 독서이다. 내 정신세계를 풍요롭게 만들어준 원동력이었다.”


박병원 이사장은
1952년 부산에서 태어났다. 경기고와 모교 졸업 후 17회 행정고시에 합격해 경제정책과 예산 분야 요직을 두루 거쳤다. 1996년 재정경제원 예산총괄과장, 2001년 재정경제부 경제정책국장, 2005년 재정경제부 1차관, 2007년 우리금융지주 회장, 2008년 대통령실 경제수석비서관, 2011년 전국은행연합회장, 2013년 국민행복기금 이사장, 2015년 한국경영자총협회장을 역임했고, 문화예술위원회 위원, 한국화랑미술제 조직위원장 등 문화예술계 일도 맡았다. 2019년부터 안민정책포럼 이사장을 맡고 있으며, 최근 금융위원회 금융규제혁신회의 의장, 총리실 규제개혁추진단 자문위원, 재정경제부 ‘서비스산업발전 TF’ 민간팀장 등으로 활동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