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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6호 2024년 7월] 뉴스 기획

느린 학습자, 폐지수집 어르신, 시각장애인…이들과 ‘동행’했다 

학생사회공헌단 성과공유회
 
느린 학습자, 폐지수집 어르신, 시각장애인…이들과 ‘동행’했다 
학생사회공헌단 성과공유회



모교 학생사회공헌단은 지난 학기 동행을 주제로 사회공헌활동을 펼쳤다. '다시만난 세대'팀이 기획한 지역 어르신과 아동의 나들이. 사진=학생사회공헌단


학생 주도 사회공헌활동 
지역기관·기업과 협업도  


“꽁꽁 얼어붙은 한강 위로 고양이가 걸어다닙니다~”. 뉴스 멘트를 리믹스한 빠른 템포의 음원에 맞춰 어르신과 어린이들이 몸으로 고양이 귀와 강물을 표현한다. 최근 유행하는 ‘한강 고양이’ 숏폼 챌린지다. 또다른 유행인 ‘잘자요, 아가씨’ 챌린지에서 어린이는 춤을 추고 어르신들은 잠자는 아가씨 역할을 맡았다. 청소년에게 폭발적 인기인 마라탕도 함께 먹었다. 젊은이들의 전유물로만 여기던 문화를 다른 세대와 함께 즐겨본 유쾌한 시도였다. 모교 학생사회공헌단 ‘다시 만난 세대’ 팀이 지난 1학기에 만들어낸 성과다.    

모교 글로벌사회공헌단 학생사회공헌단에선 매 학기 학생이 스스로 직접 서울대인의 지식과 전문성을 사회에 환원하는 프로젝트를 진행한다. 이 활동을 살펴보면 서울대생이 우리 사회에서 어떤 문제를 인식했는지, 또 어떻게 협업해서 그 문제를 풀어가는지 알 수 있다. 6월 24일 관악캠퍼스 글로벌사회공헌단 2층에서 한 학기 동안 학생사회공헌단의 사회공헌 프로젝트 활동을 공유하는 성과공유회가 열렸다. 

2024학년도 1학기 학생사회공헌단의 대주제는 ‘동행(同行)’. ‘함께 걷는 사회’를 만드는 것을 목표로 팀별 활동을 진행했다. ‘다시 만난 세대’, ‘배프’, ‘꿈꾸는 거북이’, ‘재생과 치유’, ‘컬러풀리’ 등 다섯 팀이 느린 학습자, 노인과 아동, 장애인 등 이동 취약자, 폐지 수집 어르신, 시각장애인 등 다양한 대상과 동행을 꿈꾸며 아이디어를 펼쳐냈다.   
 
아동과 어르신, 잊지 못할 봄나들이     

‘다시 만난 세대’ 팀은 지난 봄 지역 어르신과 아동이 함께하는 나들이를 여러 차례 다녀왔다. 이른바 ‘나들이 세대 교류 프로그램’. “돌봄 공백에 놓인 아동, 사회적 역할과 교류 상실을 경험하는 어르신들이 상호 보완적 관계를 구축할 수 있을 거란 믿음에서 출발했다”고 설명했다. 우리동네키움센터 관악 2호점, 대한노인회 관악구지회와 협력해 어르신·어린이·단원으로 한 팀을 구성했다. 

한 학기 동안 야외 나들이와 실내 활동을 통해 어르신과 어린이 세대의 문화를 번갈아 체험한 결과는 성공적이었다는 자평이다. 60~70년대 마을 풍경을 재현한 돈의문박물관마을은 어르신들의 추억의 장소로 방문한 곳. “구석구석을 함께 다니며 어르신들은 ‘이땐 이렇게 놀았지’ 설명하고, 어린이들은 새로운 문화를 접하며 서로를 이해할 수 있었다”는 설명이다.  

어린이들이 가고 싶었던 장소인 아쿠아리움과 한강 유람선에 갔을 땐 어르신들이 더 좋아했다. 조예진 팀장은 “마산 출신 어르신 한 분께서 ‘평생 한강 유람선 타보고 싶다고 남편에게 말해도 못 탔는데, 서울대 학생들이 태워준다’고 아드님께 자랑하시는 걸 보면서 개인적으로도 많이 뿌듯했다”고 말했다. 숏폼 챌린지와 어린이들의 간식도 어르신들이 생각보다 좋아하셨다며 “저희 안에서도 어르신들이 불편해 하시고 즐기지 못할 거란 편견이 있었는데 반성하게 되는 계기이기도 했다”고 말했다. 각 나들이 후엔 손 그림 나들이 책자 제작, 각 세대 문화 체험 등 실내 프로그램도 진행했다. 추후 어르신과 어린이의 교류 과정을 담은 영상을 제작해 공모전에 출품할 예정이다. 
 
학내 배리어프리 기획 하나로 모아  

“‘서울대는 정말 배리어(barrier·장애물)로 가득해’. 다쳐서 목발을 짚게 된 친구의 이 한 마디에서 저희 활동이 시작됐습니다.”(이혜진 팀장)  

‘배프’팀은 장애인, 노인을 포함한 이동 약자들이 일상에서 불편함을 경험하지 않도록 물리적인 장애물과 심리적 장벽을 제거하자는 ‘배리어프리’ 운동을 펼쳤다. 주요 활동은 배리어프리 전시, 배리어프리 인식 증진을 위한 캠페인, 교내 배리어프리 맵 제작 등. 

실로암시각장애인복지관, 중앙도서관과 협력해 4월 중앙도서관 관정관에서 진행한 촉각 전시 ‘감각의 전환’은 참신한 아이디어였다. 혼합재료로 만들어진 고흐의 ‘별이 빛나는 밤’,‘해바라기’, 몬드리안의 ‘구성A’ 등 명화를 직접 만져보며 감상할 수 있는 독특한 전시로 주목 받았다. 


'배프'팀이 기획한 촉각으로 명화를 감상하는 전시. 사진=학생사회공헌단   

‘배프’ 팀이 주력한 것은 학내 분산된 배리어프리 프로젝트의 통합. 각각 배리어프리 프로젝트를 기획하고 있던 모교 건축학과와 총학생회에 ‘하나의 프로젝트를 만들자’고 제안했다. 이혜진 팀장은 “같은 목적을 가지고 다른 활동을 하다 보니 자료는 쌓이는데 어느 곳에 활용되지 않는다는 문제의식을 공통으로 가지고 있었다. 통일된 배리어프리 가이드라인을 만들고, 본부에 제안할 서울대 캠퍼스 개선안을 만드는 프로젝트를 진행 중”이라고 했다. 

교내 순환 셔틀버스에 하차 정보를 시각적으로 제공하는 디스플레이 설치, 카카오맵 등 지도 앱에 ‘배리어프리’ 필터 개설, 관정도서관 내 실내 지도 서비스 등 학교 측과 외부 기관에 배리어프리 아이디어를 제안해 긍정적인 반응도 얻었다. 이혜진 팀장은 “배리어프리라는 주제를 실현하기엔 한 학기가 모자랐다”며 “장기 프로젝트로 전환해 다음 학기 활동을 구상 중”이라고 말했다.  


‘느린 학습자’ 위한 ‘쉬운 글’ 필요 

“경계와 속도에 구애받지 않고 느린 학습자가 자신의 꿈을 위해 나아가는 사회를 만들겠다는 뜻에서 팀명을 지었습니다.” ‘꿈꾸는 거북이’ 팀은 ‘느린 학습자’와의 동행을 꿈꾸며 탄생한 팀이다. ‘느린 학습자’는 비장애와 지적 장애 사이의 지적 지능인 경계선 지능을 가진 이를 달리 부르는 말. 전체 국민의 약 12%가 진행 중이지만, 발달장애인과 달리 국가 지원이나 복지에 소외돼 있다는 점에 착안했다. 

이들이 느린 학습자를 위해 마련한 프로그램은 독서-베이킹 융합 프로그램과 ‘쉬운 글쓰기’ 인식개선 캠페인 등이다. 독서-베이킹 융합 프로그램에선 대안학교인 사람사랑나눔학교의 느린 학습자 7명과 사회성, 대인관계를 주제로 한 책을 읽고 이야기를 나눴다. 그다음 팬케이크, 마들렌, 쿠키 등을 만들었다.  

‘쉬운 글’의 개념과 필요성을 알리는 데도 힘을 쏟았다. ‘쉬운 글’은 한자어, 외래어, 전문용어를 최대한 지양해 연령과 지적 능력에 구애받지 않고 누구나 정보를 이해할 수 있는 글. 느린 학습자뿐만 아니라 고령자, 어린이들에게도 필요하다. 꿈꾸는 거북이팀은 5월 열린 관악 봄 축제에 부스를 내고 시민들과 윤동주의 ‘별 헤는 밤’을 ‘쉬운 시’로 바꾼 버전을 함께 감상했다. 쉬운 글 도서 전문 출판사 ‘피치마켓’과 협업해 관악구 도서관 4곳에 ‘느린 학습자’를 주제로 북큐레이션을 진행하고, 관악중앙도서관에서 ‘쉬운 글 쓰기 특강’도 열었다. 강가림 팀장은 “일상에서 아무렇지 않게 접하는 정보도 누군가에겐 어려울 수 있음을 전달하기 위해 강연을 열었다. 한 번도 생각 못한 주제를 접할 수 있었다는 평이 많았다”며 “문해력에 상관없이 모든 사람의 정보 접근권을 보장하기 위해 지역사회에서도 자발적으로 쉬운 정보의 필요성을 인식하길 바란다”고 말했다.  


폐지 수집 어르신 마음 치유 

“그림 그리는 동안은 다리 아픈 것도 잊고 있었어~.” 예술 힐링 프로그램에 참여하던 ‘자원 재생 활동가’ 어르신의 한 마디가 ‘재생과 치유’ 팀원들의 마음을 뭉클하게 했다. 자원 재생 활동가는 재생과 치유 팀이 폐지 수집 어르신을 달리 부르는 말로 제안한 명칭. 이들은 한 학기 동안 자원 재생 활동가의 정서 지원 프로그램과 폐지 수집이란 노동의 가치를 알리는 활동을 했다.  

이같은 활동을 기획한 건 폐지 수집 어르신들의 우울감이 월등히 높다는 것을 알고서다. 참여자를 모집하기 위해 지난 2월부터 팀원들은 관악구 내 고물상이란 고물상은 모두 찾았다. 두세 시간씩 어르신들을 기다리고, 대화를 나눈 끝에 총 8명의 어르신을 모셨다. 4월 6일 첫 회를 시작으로 매주 토요일 모교 글로벌사회공헌단 건물에서 진행된 미술힐링 프로그램. 거동이 불편한 어르신들을 모교까지 모셔오기 위해 택시 2대로 ‘픽업 작전’까지 펼쳤다. 

어렵게 걸음한 어르신들을 위해 풍성한 프로그램을 꾸몄다. 함께 자화상을 그리고, 프로필 사진을 찍고, 캔버스에 어르신들이 좋아하는 시와 노래를 적고 어울리는 그림을 그리기도 했다. 이를 위해 팀원들과 미대 재학생으로 구성된 미술치료 팀은 전문가에게 별도의 코칭도 받았다. 장현진 팀장은 “이제 토요일마다 올 데가 생겼다는 어르신의 말씀이 기억에 남는다. 예상보다 미술 활동도 곧잘 하시고, 작품 발표도 좋아하셨다. 행운의 복주머니를 만들 땐 바느질 경험이 많으신 어르신들이 오히려 저희보다 더 능숙하게 만들어 주셨다”고 말했다. 



폐지 수집 어르신이 참여한 예술 치료 활동. 사진=학생사회공헌단   

학내에서 폐지수집 활동의 가치에 대해 알리는 홍보 부스도 운영했다. 폐지 수집 리어카에 광고판을 부착해 추가 수입을 지급하는 소셜벤처 ‘끌림’과 협업했다. “폐지 수집 어르신들이 환경적으로 큰 가치를 창출하고 있는 사회구성원이라는 점을 알리고 싶었다”는 설명이다. 7월 10~17일엔 신도림역에서 그간 자원 재생 활동가들과 만든 작품과 활동상을 담은 사진을 전시했다. 

 
시각장애인 위한 메이크업 정보      

‘컬러풀리’팀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메이크업 배리어프리를 주제로 3학기째 활동 중인 팀이다. 전체 시각장애인 인구 중 앞이 전혀 보이지 않는 전맹보다 저시력 시각장애인의 비중이 훨씬 높다. 점자를 능숙하게 사용하는 시각장애인의 비율이 낮은데도 최근 뷰티업계는 ‘배리어프리’ 제품이라며 점자 제품을 주로 출시하고 있다. 장효진 부팀장은 “최근 시각장애인의 사회 진출이 확대되면서 메이크업에 대한 수요가 증가하고 있다. 시각장애인에게 메이크업은 사치라는 부정적인 사회 인식, 시각장애인에 대한 정확한 이해 없이 무분별하게 이뤄지는 뷰티업계의 배리어프리를 문제로 인식했다”고 말했다. 

컬러풀리는 시각장애인을 위한 메이크업 클래스를 8회차에 걸쳐 진행했다. 참여자는 시각장애인 복지관을 통해 모집했다. 팀원들은 시각장애인을 위한 메이크업 강연을 해온 립바이 메이크업 스튜디오의 임천수 원장의 지도에 따라 참여자들에게 1 대 1로 스킨케어, 베이스 메이크업, 색조 메이크업 등 메이크업 방법을 알려줬다. 장효진 부팀장은 “3회차 종료 후엔 참여자들이 직접 메이크업을 하고 온 후 증명사진을 촬영했다. 촬영 후 진행한 인터뷰를 통해 ‘혼자서도 메이크업을 할 수 있게 되어 기쁘다’는 후기를 들었다”고 말했다.    



'컬러풀리'팀이 진행한 시각장애인 메이크업 클래스 사진=학생사회공헌단   

아쿠아크, 라사얀 등 뷰티 기업의 협력을 유치한 것도 고무적이다. 이들 기업은 메이크업 클래스에서 쓰는 제품을 지원했고, 아쿠아크는 스마트폰의 텍스트 읽어주기 기능을 활용해 사용방법, 성분표, 주의사항 등을 확인할 수 있는 QR 코드를 일부 제품에 삽입할 예정이다. 컬러풀리 팀이 시각장애인의 피드백을 받아 스크립트를 작성했다.

실로암 한마음축제에 파견한 부스와 학내에서 연 시각장애 인식 개선 부스 등도 성공적으로 진행됐다. 장효진 부팀장은 “학생사회공헌단 최초로 장기 프로젝트로 전환된 팀으로서 다음 학기에도 활동을 이어나간다. 뷰티업계의 배리어프리 구현에 더욱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