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55호 2024년 6월] 인터뷰 화제의 동문
없애고 싶은 뱃살? ‘똑똑’한 지방조직에 비만 해결 열쇠 있어요
김재범 모교 생명과학부 교수
없애고 싶은 뱃살? ‘똑똑’한 지방조직에 비만 해결 열쇠 있어요
김재범 (동물84-88)
모교 생명과학부 교수
지방조직 내 자가보호 기제 밝혀
“안정적인 기초과학 지원 필요”
‘이것 좀 없앴으면’. 불룩 나온 뱃살을 보면 드는 생각. 지방도 쓸모가 있을까? 보기도 안 좋고, 몸에도 나쁜데.
생물학자인 김재범 모교 생명과학부 교수의 눈에 지방조직은 미련하게 에너지만 쌓아두는 곳이 아니다. 우리 몸의 면역반응과 내분비 작용, 에너지 대사를 관장하는 ‘똑똑한’ 인체 조직이다. 역할과 기능도 다양해서 에너지원을 열로 전환해 주는가 하면(갈색지방조직), 같은 백색지방조직도 내장이 아닌 피부 밑 지방조직은 오히려 우리 건강에 이로운 일을 담당한다. 대체 지방조직에서 무슨 일이 일어나기에 건강을 좌우하는 걸까? 30여 년간 분자생물학과 세포생물학 연구를 통해 지방조직과 지방세포의 비밀을 밝혀온 그가 최근 네이처 커뮤니케이션스에 ‘나쁜 지방세포를 제거하는 면역세포 발견’이란 논문을 발표했다. 이메일로 인터뷰했다.
“지방조직은 여러 종류의 세포로 구성된 조직체입니다. 40~50%로 가장 수가 많은 지방세포는 에너지 저장을 담당하죠. 나머지 절반은 면역계세포, 혈관세포, 섬유아세포, 지방조직 유래 성체줄기세포 등 여러 종류의 세포가 차지하고요. 오랫동안 저희 연구진은 지방조직 내 세포들의 상호작용은 뭔가 좀 다를 거라 의심했어요. 일반적으로 면역반응에서 단백질 조각인 펩타이드 항원을 사용하는데, 이와 달리 지방조직은 가지고 있는 다량의 지질과 지방대사물을 사용해서 교신하지 않을까 하고 추정했죠. 그래서 면역계세포 중에서도 특이하게 지방대사물을 항원으로 인지하는 ‘불변성 자연살해 T세포(이하 iNKT 세포)’에 주목을 했습니다.”
‘합리적 호기심’은 적중했다. 10여 년간 연구 끝에 김 교수 팀은 지방조직 내 특정 iNKT 세포가 ‘나쁜 지방세포’를 선택적으로 골라서 죽일 수 있음을 발견했다. ‘나쁜 지방세포’는 정상적 기능을 잃어버린 지방세포. 크기도 큰데다 비만 상황에서 지방조직에 쌓여 염증을 일으키고 대사질환을 일으키는 문제아다. 나쁜 지방세포를 제거한 후 또다른 종류의 iNKT 세포는 지방조직 줄기세포의 분열을 촉진해 ‘건강한 지방세포’를 생성하기까지 했다. 비만에서 스스로를 지키려는 자가보호 기능이다. 암을 공격하는 면역세포로 알려진 iNKT는 흉선과 간에도 있지만 오로지 지방조직 내에서만 이런 특성을 보였다.
지방세포 수나 크기를 줄이는 데만 치중하던 비만치료 분야에 새로운 표적이 생긴 셈이다. 획기적인 비만 치료제를 기대하면 너무 섣부를까. 그는 “치료제를 염두에 두고 한 연구는 아니지만 지방조직 내 iNKT세포가 충분히 좋은 타깃이 될 수 있다”고 했다. “지방조직 내 문제가 없는지 살펴보고, 고장난 지방세포를 발견해 제거하는 iNKT는 진화적 관점에서 지방조직의 항상성을 유지하고 개체의 건강한 생존을 돕는 ‘수호자’인 셈이죠. 아직 이유를 모르지만 비만이 되면 iNKT 세포 수가 감소해서 ‘나쁜 지방세포’들이 축적됩니다. 지방조직 특이적 iNKT 세포를 활성화하고, 수적으로 유지하는 약물 개발도 고려해볼 수 있겠죠. 기초학문은 응용학문과 달리 이윤을 만들진 못하지만, 인류에게 제공하는 지식들이 언제 어떻게 사용될지 누구도 예상할 수 없어요.”
근시안으로는 기초과학의 가치를 볼 수 없다. 지금은 전 세계가 비만 해결과 지방세포 연구에 열을 올리지만 1990년대 초 그가 하버드대 박사과정에서 연구를 시작할 때만 해도 소위 비인기 분야였다. “저는 그다지 똑똑하지 못하고, 여러 면에서 느려요. 그래서 치열하게 경쟁하는 걸 싫어하죠. 많이들 관심없는 ‘지방세포 분화’라면 제 페이스대로 천천히 연구할 수 있을 것 같았어요. 30년 넘게 연구해도 여전히 모르는 게 많아서 늘 새롭게 다가옵니다. 그래서 ‘지적 호기심’을 추구하는 기초과학자에겐 너무나 매력적인 주제예요.”
만인의 고민인 ‘나잇살’만 해도 아직 충분히 연구되지 않았다. 나이가 들며 근육량이 감소하고, 지방조직에 저장된 에너지원을 덜 쓰게 돼 지방조직이 느는 것이라고 설명할 뿐이다. 내심 비만 전문가의 몸 관리법이 궁금했는데 “골고루 영양소를 섭취하고, 과식과 너무 달달한 음식은 피한다” 같은 ‘정석 답변’이 돌아왔다. “지방조직과 지방세포가 ‘똑똑하다’ 말할 수 있는 이유 중 하나는 지방조직과 지방세포가 개체의 생존을 위해 다른 조직, 세포들과 끊임없이 교신하면서 항상성 유지를 위해 노력하기 때문이에요. 그 과정을 아직도 다 이해하지 못했으니 ‘지방조직의 비밀 풀기’ 연구는 계속돼야 합니다.”
연구자 인생에서 힘들었던 때를 묻자 그는 기초과학 지원이 감축됐던 25년 전 IMF 시기와 지난해를 꼽았다. 연구비의 많고 적음을 떠나 일반 대중에게 기초과학의 가치가 폄훼되는 것이 안타까웠고, “지적 호기심을 키우고, 밝혀가는 삶도 큰 의미가 있다”고 말해줘야 할 학문 후속세대들에게도 낯이 서지 않았다. “과학은 기술의 ‘친구’이지만, 먹거리를 창출하는 기술을 위해서 과학이 존재하는 건 절대 아닙니다. 고무줄처럼 지원을 늘렸다 줄였다 하면 누가 감히 큰 꿈을 가슴에 품고 순수한 호기심을 따라 기초과학자의 길로 접어들까요? 특별한 지원과 관심을 기대하는 게 아닙니다. 적어도 소위 과학선진국들처럼 안정적으로 예산을 예측할 수는 있어야죠. 흔들림 없는 국가 연구비 지원체계를 꿈꿔 봅니다.”
지난한 연구에 필요한 마음가짐은 ‘진인사대천명’. ‘다음 목표’를 묻는 말에 이렇게 답했다. “기초과학자로서 제게 중요한 건 목표나 결과가 아니에요. 지적 호기심에서 시작해 흥미로운 발견을 거쳐 새로운 지식을 추구하는 과학자의 여정, 그 긴 여정을 함께할 친구, 후배, 동료 연구자들, 내가 걸어가려는 방향을 잃지 않는 게 가장 소중하죠. 하루하루 성실히 임할 뿐입니다.”
박수진 기자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