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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9호 2023년 2월] 기고 에세이

모교에서: 양변기와 서울대 패딩

홍찬숙(영문82-86) 모교 여성학협동과정 강사
모교에서

양변기와 서울대 패딩
 
 


홍찬숙
영문82-86
모교 여성학협동과정 강사
 
 
얼마 전 캠퍼스 정문 공사를 대대적으로 했다. 40년 전 캠퍼스 낭만의 상징으로 여겨진 ‘길 건너 집’ 가는 길이 막힌 지는 이미 더 오래되었다. 지금은 서울대 출판문화원 쪽에서 그곳의 멋진 경치가 시원하게 잘 보인다. 캠퍼스에는 새로운 건물들이 들어차 ‘감골’ 같은 정겨운 마당이 사라졌고, 시내버스가 다니고, 본부 앞 잔디밭 밑에 지하 주차장이 들어섰다. 요새는 조경에도 힘을 써서 겨울 외에는 항상 아름다운 꽃들을 볼 수 있다. 정말 분주하고 꽉 찬 캠퍼스 느낌이다.
 
40년 전 필자가 학부생일 때와 비교하면, 가장 큰 차이는 아마도 학생과 교직원 외에 캠퍼스에서 볼 수 있는 사람들이 달라졌다는 사실일 것이다. 과거에는 중무장한 전투경찰이 어디에나 있었다면, 요즘은 알록달록 등산객들과 택시 기사분들을 종종 마주친다. 그러나 눈에 보이지 않는 변화도 크다. 요즘 청년 자살률이 증가하면서, 캠퍼스에서도 상담 수요가 엄청나게 커졌다고 한다. 학교 분위기는 ‘낭만’이라는 말과 결별한 듯 보인다. 낭만은커녕 학생들에게는 서로 얼굴을 마주하고 대화를 나눌 시간도 공간도 없고, 편한 대화의 전제인 어떤 동질감, 신뢰 같은 것도 찾기 어렵다.
 
우리가 40년 전 캠퍼스에서 이물감을 느끼고 신뢰하지 못한 것은 서양식 좌변기였다. 당시에는 서울서도 신식 건물 말고는 양변기가 드물어서, 교내 화장실마다 그 사용법이 붙어 있었다. 그러나 양변기가 원래 있던 생필품처럼 느껴지는 요즈음에는, 오히려 당시에는 너무 당연했던 ‘학우’의 개념이 사라진 것 같다. 언젠가부터 캠퍼스 필수품이 된 서울대 점퍼나 패딩만이, 사라져가는 그 단어를 붙들려는 것 같다. 학생들은 서로가 벗이기보다 경쟁자가 되었고, 그래서 너무 불안하고 외로워졌다. 물론 ‘학우’가 아름답게만 쓰인 말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래서 더 좋아져야 할 일이지, 없어져야 할 일은 아니지 않은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