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36호 2022년 11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평창 시니어타운 플랜만 잘 짜면 성공”
1세대 디벨로퍼…평창 시니어타운 조율
동문 기업인
“평창 시니어타운 플랜만 잘 짜면 성공”
“평창 시니어타운 플랜만 잘 짜면 성공”
문주현 (ACPMP 6기)
엠디엠그룹 회장
그는 한때 10여 개의 회장 타이틀을 갖고 있었다. 서울시탁구협회장,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장, 한국부동산개발협회장, 엠디엠 대표이사 회장, 한국자산신탁 회장…. 당연히, 한국의 1세대 대표 디벨로퍼인 문주현 회장이다. 문 회장은 현재 서울대 공대 건설산업최고전략과정(ACPMP 6기)총동창회장을 2년째 맡고 있다. 서울대 공대 최고산업전략과정(AIP 21기)과 서울대 국제대학원 글로벌리더십과정(GLP 10기)에서도 회장 제의가 들어오고 있다. 여기다 서울대 생활과학대 웰에이징·시니어산업 최고위과정(AWASB)을 짧게 다닌 것까지 감안하면, 경희대 출신인 문 회장은 누구보다 진한 서울대인의 피를 이어받은 동문이다.
문 회장을 서울 강남구 테헤란로 집무실에서 11월 10일 만났다. ACPMP총동창회장을 맡고, 서울대 최고위과정을 여러 개 나와서만은 아니었다. 그는 서울대 총동창회가 최근 가장 신경 써서 추진하고 있는 평창 시니어타운 조성에 큰 역할을 할 예정이다.
서울대는 강원 평창군에 그린·바이오 과학 허브를 표방하며 2014년 캠퍼스를 열었지만 아직도 캠퍼스 주변은 미개발지가 많아 글로벌 인재를 끌어모으기에 역부족인 상태다. 캠퍼스 주변에 최고의 병원, 기숙형 국제학교 등과 함께 시니어타운을 개발하면 노년·장년·청년층이 공존하는 공간이 조성돼 지역 발전과 더불어 인재 흡수에도 큰 도움이 될 수 있을 것이라는 기대가 큰 상황이다. 그 첫걸음으로 서울대병원이 평창에 분원을 내는 방안도 검토되고 있다.
디벨로퍼는 단순히 땅을 싸게 사서 건물 몇 개를 넣어 비싸게 파는 사람이 아니다. 개발되지 않은 땅을 사서, 거기에서 살 사람들이 가장 원하는 라이프 스타일을 누릴 수 있도록 개발 플랜을 짜서 이를 구현하는 일을 하는, 어찌 보면 플래너에 가까운 사람들이다. 그런 점에서 한때 주거형 오피스텔 트렌드를, 얼마 전엔 뷔페식 식사 제공은 물론 수영장, 체육관 등 시설을 구비한 커뮤니티형 주거시설 트렌트를 이끌고 있는 문 회장이 들여다보고 아이디어를 낸다고 하니 평창 시니어타운에 대한 기대가 커지고 있다.
-올해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 50위권으로 올라왔다. 자수성가한 토종 디벨로퍼로서 자랑스러울 것 같다.
“공정거래위원회 발표로 작년 69위에서 올해 대기업집단 기준 57위가 됐다. 나도 예상하지 못했던 결과다. 이 사회와 함께한 임직원들에게 감사하다. 얼마 전 뉴스위크지에 인터뷰 기사도 나갔다. 미국에 투자를 많이 하니까 해외에서도 관심이 높은 것 같다.”
사실 문 회장의 자수성가 스토리는 그 시절 자녀만 많은 대한민국 가난한 가정의 비(非)장남에게 일어나는 흔한 일들로 구성돼있다. 전남 장흥군에서 9남매 중 다섯째로 태어나 중학교 졸업 뒤 농사를 지었다. 나중에 검정고시를 거쳐 스물일곱에 대학에 들어갔고, 서른이 넘은 나이에 나산그룹 공채 1기로 입사했다. 이런 이력 덕분에 250만 동문을 거느린 전국검정고시총동문회장을 지금도 맡고 있다. 물론 1997년 IMF로 잘 다니던 그룹이 부도가 난 뒤 실업자 신세일 때 그가 ‘창업’이라는 길을 모색하고 도전하지 않았거나, ‘미친’ 에너지를 발휘하지 않았다면 그의 성공 스토리는 쓰이지 않았을 것이다.
-에너지가 대단한 것 같다. 회장직도 여러 개 맡으시고.
“내가 회장을 많을 때는 10개 정도 맡았는데 월급은 딱 한 군데서만 받고 돈을 오히려 쓰면서 했다. 저녁에 늦게 들어가면서 힘들어 하면 아내가 나보고 미쳤다고 했다. 내가 봐도 미친 것 같다. 그런데 세상은 미친 사람들이 끌고 간다. 누군가의 봉사가 필요하다. 그런 사람들이 모래 속에서 시멘트 역할을 하는 거지. 나도 오래는 안 하고 싶다. 기틀을 다지고 후배들에게 물려주려고 한다.”
문 회장은 1958년 개띠로 올해 한국 나이로 65세다. 나이에 비해 상당히 젊은 외모를 갖고 있기에 그 비결을 물었더니 술·담배를 하지 않고 일찍 자고 일찍 일어나며, 하루 1만보 이상 걸으려 노력한다 했다. ‘말술’ 할 것 같은 외모와 상당히 다르게 모범생이었다.
-평창 시니어타운은 우리 동창들의 최대 관심사이기도 하다. 진행은 잘 되고 있나.
“얼마 전 시장조사를 다녀왔다. 나는 한국에서 가장 유망한 산업군이 실버라고 본다. 경제적으로 보자면 부자 실버와 가난한 실버가 있을 것이고, 신체적으로 보자면 케어가 필요한 실버와 건강한 실버가 있을 것이다. 내가 보는 관점은 도심형 실버와 자연 친화형 실버다. 흔히들 노인은 공기 좋은 곳에 살면 좋아할 것이라 생각하는데 그렇지 않다. 병원 시설이 중요하고, 자녀들이 쉽게 오갈 수 있는 입지가 중요하다. 그런 점에서 보자면 평창은 서울대병원이 들어오기로 해서 중요한 걸 갖췄다.”
실제 도심형 실버타운은 큰 인기를 끌고 있다. 서울 광진구 자양동 ‘더 클래식 500’이 대표적으로 이곳에 입주하려면 2년을 기다려야 한다. 문 회장은 얼마 전 경기 의왕시 백운호수 인근에 비슷한 개념의 실버타운 착공에 들어갔다. 부동산 경기가 좋아질 때 즈음 ‘숲속의 아침’ 분양을 시작할 계획이다.
“접근성도 굉장히 중요하다. 자녀들이 사는 곳과 너무 멀면 전화해서 ‘아버님 괜찮으시죠’ 한 번 하고는 안 온다. 가까이 있으면 부모님께 애들 맡겨놓고 부부가 영화를 보러 가거나 장을 본다. 그럼 할머니 할아버지는 손주도 보고 용돈도 주고 얼마나 좋나. 교통이 편리하고 백화점, 병원이 있는 도심과 가까운 곳에 실버타운이 있어야 한다.”
-평창은 도심형이라고 보기엔 무리가 있지 않나.
“평창은 자연친화형이다. 여기는 이 때문에 종합개발을 해야 한다. 노인들만 모여 있으면 활력이 떨어진다. 어제까지 같이 놀던 노인들이 하나, 둘 사라지기 시작하면 두려움 밖에 더 생기겠나. 삶의 순환고리인 대를 잇는다는 개념이 거기엔 빠진 거다. 아이들 소리가 나야 한다. 골프장을 만들어 누구는 즐기고, 누구는 골프장 관리하며 월급을 받아야 한다. 또 평창 주민에게 개방해 중장년층도 오갈 수 있고 젊은 사람들도 거기서 먹고 마시게 해야 한다. 그런 점에서 평창은 플랜을 잘 짜야 한다. 국제학교를 유치하겠다는 김종섭 총동창회장의 아이디어가 그래서 좋다고 볼 수 있다. 국제학교가 있으면 주변에 준도시가 생긴다. 학부모들이 세컨드 하우스를 사고, 학원 등이 생기고 방학에 애들 살게 하다가 학기에는 기숙사로 들여보낸다.”
1세대 디벨로퍼…평창 시니어타운 조율
모교 특별과정 3개 수료, ACPMP총동창회장도
자산총액 기준 재계 순위 57위 올라
-병원, 사람도 중요하지만 할 일이 있는 게 좋은 것 같다. 평생의 경험을 지역사회에 돌려주려는 노력을 하는 풍토가 조성돼야 할 것 같다.
“정말 맞는 말이다. 언제 한번 광주교대에서 교장, 교감 선생님들을 대상으로 강의를 한 적 있다. 당시 내 강의 주제가 ‘새로운 시작’이었다. 은퇴하고서 산에 다닐 생각만 하지 않냐고 했더니 맞다고 하더라. 그래서 세계적으로 60 넘어 성공한 사람들 이야기를 해줬다. 문화해설사가 되거나 젊었을 때 하고 싶었던 풍수지리를 공부하거나 숲 해설가가 되거나 지역사회 봉사자가 되거나. 어떤 사람은 글을 쓰고, 어떤 사람은 폐교를 사서 특용 작물을 재배하는 농부가 되기도 했다. 우리가 평생 갈고닦아온 지식, 경험치를 누군가에게 나누는 것은 진짜 중요한 일이다. 그런 점에서 평창 시니어타운은 전략을 잘 짜야 한다.”
-부동산 개발업이라는 게 단순히 좋은 땅 골라서 건물 짓는 게 아니라는 철학이 느껴진다. 전체 문화생활까지 같이 설계하는 것이라고 보면 되나.
“싱가포르 리콴유 총리처럼 국가를 개발하는 사람도 광의의 디벨로퍼다. 작은 어촌 마을에 같은 건물이 하나도 없게 만드는 식으로 디벨로퍼 마인드로 국가를 개발했다. 작은 의미의 디벨로퍼는 땅에 생활문화를 입혀 마케팅하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개발하는 수원 영통구 광교 레이크시티 땅은 10년 동안 팔리지 않았던 땅이다. 이걸 수의 계약해서 1만 평 되는 땅을 사들이고, 여기에 호텔에 준하는 서비스를 넣었다. 집은 단순히 잠만 자는 곳이어선 안 된다. 예전에야 집이 부족하니까 그냥 막 지어서 공급해도 다 팔렸다. 이제는 생활, 문화 모든 게 들어가야 한다. 가치를 파는 거지. 삼시 세끼 밥도 해주고, 수영장 스포츠센터도 있어야 하고, 심지어 실내 체육관까지 만들었다. 이게 현재 우리나라 공유 아파트 문화를 선도하고 있다. 안 팔렸던 땅에 아이디어를 넣어 그 대가로 비싼 집을 파는 사람들이 디벨로퍼다. 마케팅도 결국 아이디어니까. 내가 맨손으로 창업했지만, 부동산 마케팅으로 시드머니를 만들고, 고객의 니즈에 맞는 좋은 상품을 만들어 가격이 아닌 가치로 승부해 모두 성공할 수 있었다.”
-그렇다면 부동산 가격이 폭락하는 요즘, 부동산의 핵심 가치는 뭔가.
“요즘 부동산은 트렌드가 다 죽었다. 지금은 아무것도 안 된다. 그나마 살아있는 큰 트렌드는 한강 뷰 정도라고 해야 할까. 요새 좁은 땅에 아파트 넣다 보니 다닥다닥 붙어서 서로 사생활 침해받는다. 호수나 강 끼고 있으면 사생활이 보호된다. 변하지 않는 부동산의 핵심가치는 입지다.”
-그럼 언제 집 사야 하나.
“집값 예측은 귀신도 못한다. 미국 금리정책에, 공사비 재료비 상승에 여러 가지 요인이 있다. 전 정부가 잘못해서 집값 올라간 거 아니다. 저금리에 돈을 막 뿌리는 게 세계적 추세였고, 이 돈이 부동산으로 몰린 것도 세계적 흐름이었다. 마찬가지로 지금은 정부가 잘해서 집값 떨어지는 게 아니다. 세계가 돈을 쪼여버리니 거품이 빠지는 거다. 집값은 정부 정책에 따라 달라진다. 정부는 과열될 때 식혀주고, 어려울 때 부양해줘야 한다. 이런 조절기능을 기대하고 있다. 부동산도 주식도 바닥일 때 사면 제일 좋겠지만, 그 바닥은 아무도 모른다. 다만, 시그널은 있을 수 있다. 부동산 거래 시장에서 급매가 소화되는 순간이다. 무엇보다 정부정책에 대한 공부를 많이 해야 한다.”
-부동산 시행업이 성공하면 큰돈을 벌지만 실패하기도 쉽다. 지금까지 거의 실패없이 많은 프로젝트를 성공시킨 노하우가 궁금하다.
“디벨로퍼는 시대를 읽는 통찰력과 기획력으로 도시를 만드는 기획자다. 부동산개발 사업은 짧게는 3~5년, 길게는 10여 년 정도 걸린다. 그래서 디벨로퍼는 세계와 국내 경기 흐름, 사회 변화, 소비자의 트렌드 등을 예측할 수 있는 통찰력이 있어야 한다. 내가 지금까지 단 한건의 실패도 없이 성공할 수 있었던건 대단한 노하우가 있어서가 아니고 시장의 트렌드 변화를 잘 분석하고 소비자가 필요로 하는 상품을 만들고자 하는 원칙을 잘 지켜왔기 때문이다.”
-지금의 성공을 이루기까지 지켜온 삶의 철학이 있을 것 같다.
“첫째는 고객만족이다. 제일 중요하고, 아무리 강조해도 지나치지 않는 가치다. 둘째는 기업의 사회적 역할이다. 기업의 본질은 이윤추구에 있다. 하지만 국가가 있고, 소비자가 있어 기업이 존재할 수 있다. 그래서 더불어 사는 사회를 만드는 데 앞장서는 것도 중요하다. 기업이 성장해서 고용을 창출하고 직원들의 복지를 증진하는 것도 중요하다. 사회적 약자를 위한 지원도 중요하게 생각하고 있다.
사회공헌 활동의 일환으로 창업 후 3년만인 2001년에 문주장학재단을 설립해 현재까지 장학사업도 활발히 하고있다. 현재 출연재산만 583억원으로 4231명의 학생들에게 87억원의 장학금을 수여했다. 예전에 뒤늦게 대학을 갈 때 독지가의 도움을 받았던 걸 돌려주는 셈이다. 구호같지만 더불어 사는 사회를 위해 각자가 노력해야 한다.”
대담·글 : 하임숙 (영문91-95) 채널A 보도제작에디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