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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21호 2021년 8월] 뉴스 기획

‘다국적 연합군·골 때리는 그녀들’…대학여자축구 우승도 했죠

모교 여자축구부 탐방


서울대여자축구부 SNUWFC 탐방

‘다국적 연합군·골 때리는 그녀들’…대학여자축구 우승도 했죠

창단 11년 “그냥 좋아서 공찬다” 
부원 30명 중 체육과는 4명뿐





학업과 운동을 병행하는 모교 여자축구부 SNUWFC. 코로나19가 유행한 이후로는 마스크를 끼고 학기 중 주2회 정기훈련을 하고 있다. (SNUWFC 제공)



‘저희 훈련 때 직접 오셨으면 좋았을 텐데, 너무 아쉽습니다ㅠㅠ’.

하필이면 훈련이 없는 혹서기였다. 여대생들의 챔피언스리그라 불리는 ‘퀸컵(K-WIN)’ 8강까지 갔다는 소식을 듣고 서울대 여자축구부 SNUWFC에 연락했다. 여름 훈련이 끝나 8월 말에 재개된다며 이시진(물리교육 19입) 주장이 보낸 문자 메시지에 진한 아쉬움이 묻어났다. ‘뒷북’이 미안하지만 서면으로라도 얘기하자 했다. 질의서를 보내고 며칠 후 10쪽이 넘는 분량의 답변서가 왔다. 국제학생(외국인) 부원까지 한 바닥씩 말을 보탰다.

SNUWFC는 올해로 창단 11주년을 맞는 모교 유일의 여자축구부다. U-17 여자축구 국가대표팀이 우승컵을 든, 지소연 선수의 활약으로 여자축구 열풍이 불었던 그해가 원년. 현재 부원 약 30명 중 체육교육과가 4명이고 대부분이 다양한 학과의 체육 비전공자다. 코로나로 인해 지금은 줄었지만 평소엔 학부·대학원생과 교환학생, 어학원생까지 국제학생 부원이 4분의 1을 차지하는 ‘다국적 팀’인 것도 특징.

‘서울대 운동부’라면 약체를 떠올리지만 SNUWFC는 강팀으로 꼽힌다. “체대생 아닌 타과생이 대부분인데도 강한 모습을 보여주는 우리 팀에 자부심이 있다”는 부원들. 지난 5월 열린 한국대학스포츠협의회(KUSF) 클럽챔피언십 전국예선 1차전에서 조1위로 진출했고, 공동 3위에 올랐다.

가장 최근 대회인 퀸컵은 1승 1패로 조2위에 머물렀지만 전 우승팀인 이화여대와 접전을 벌였다. 하루 안에 본선을 치러야 해서 조1위만 올리는 시스템이 아니었다면 더 높이도 노려볼 만했다. 2018년엔 한국체대를 꺾고 전국 대학여자축구대회 ‘샤컵’에서 우승을 차지했으니 결코 만만한 팀이 아니다.

왜 축구일까. 최근 화제의 예능 ‘골때리는 그녀들’에 출연한 어느 여성 연예인은 ‘여자도 팀스포츠가 간절하다. 다 같이 운동하고 끝나면 같이 밥 먹는 남자들이 부러웠다’고 했다. SNUWFC 부원들도 축구의 매력은 단연 ‘팀워크’라고 입을 모은다. 모두의 발을 거쳐 한 골 한 골을 만드는 기쁨이다.

김도은(체육교육 21입)씨는 “모든 팀원이 하나의 골을 만들기 위해 넘어지든 밟히든 굴하지 않고, 파이팅을 외치며 실수해도 괜찮다고 격려한다. 이렇게 솔직하고 협력적인 의사소통이 매력”이라고 했다. 공이 있으면 어디서든 할 수 있고, 겉돌기만 하던 공이 발끝에 ‘착’ 붙는 경험을 겪어보면 축구에서 헤어나올 수 없다.

성장 과정 동안 축구에 목말랐던 소녀들은 SNUWFC에서 소원을 이뤘다. 정서본(전기정보공학 21입)씨 등 여러 부원이 “초등학교 땐 남자아이들과 나란히 공을 찼지만 점점 신체 차이가 커지고, 같이 축구를 즐기는 여자 친구가 적어져서 마음껏 축구를 하지 못한 게 아쉬웠다”고 했다. 서울대 여자축구부의 존재를 알고 나서 더욱 공부 의지를 불태워 합격할 수 있었다는 후문이다.

김도연(노문 21입)씨는 축구장과 먼저 사랑에 빠졌다. “겨울 면접날 캠퍼스 사방이 흑백인데, 새로 공사한 축구장만 푸른 빛이 도는 게 너무 예뻐 보였다. 저기서 꼭 뛰어야겠다고 생각했다”.

국제학생들은 축구 경험이 많은 편이다. 차기 주장인 강보선(자유전공 20입)씨는 “국제학교에서 ‘1인 1스포츠’가 원칙인 학창시절을 보내며 축구로 스트레스를 풀었다”고 했다. 코스타리카에서 온 소피아(기계공학 석사과정)씨는 학업 때문에 멀어졌던 축구와 공부의 병행을 이곳에서 시도하고 있다. 강민주(작물생명과학 18입)씨는 “남녀 할 것 없이 축구를 즐겼다는 국제학생들의 얘기를 들으면 여학생이 축구 하기 힘든 건 신체 차이가 아니라 편견 때문임을 느낀다”고 했다.

축구 종주국 영국에서 왔지만 “예전에 못 느꼈던 축구의 매력을 서울대에서 찾았다”는 에밀리(언론정보 18입)씨는 “한국인 친구도 사귀고, 축구 기술도 좋아지길 기대하고 들어왔다. 잘할 수 있는 포지션을 찾고 성장하면서 축구의 재미를 느꼈다”고 했다. 훈련 중, 한국어가 서툰 부원이 지시를 이해하지 못하면 누구나 옆에 가서 도와준다.




SNUWFC 훈련 모습 (SNUWFC 제공)


SNUWFC는 학기 중 월·목요일 오후 5시 반부터 8시까지 정기훈련, 방학엔 주3회 훈련을 한다. 모교 운동부답게 학업을 소홀히 하지 않지만 매학기 수강 시간표를 짤 땐 연습시간부터 사수하는 이들이다. 휴학생, 졸업생도 연습엔 빠지지 않는다. 지난 폭염에도 마스크를 끼고 뻘뻘 땀 흘리며 공을 찼다.

권성호(체육교육92-96) 지도교수(체육교육과)의 대학원 제자이자 대학 축구부 출신인 이승주 감독과 양경진 코치가 무보수로 훈련을 이끌고 있다. 이승주 감독은 “축구를 해본 학생과 처음 해보는 학생을 함께 지도하려니 고민이 있었는데, 코치 영입 후 기본기 훈련이 수월해져 초보 학생도 2~3달이면 따라온다. 대회에 앞서 전술 훈련에 집중한다”고 했다. 선전 비결로는 승부욕을 꼽으며 “훈련 시간도 절대적으로 부족하고, 체대 중심의 타팀과 겨뤄야 하지만 그럴수록 ‘꼭 이기자’고 똘똘 뭉친다. 대회 때마다 ‘원팀(One Team)’이라는 것을 강하게 느낀다”고 설명했다.



여자축구선수, 더군다나 아마추어가 뛸 수 있는 대회는 그리 많지 않다. KUSF의 클럽챔피언십, K리그 퀸컵, SNUWFC 창단멤버 이지현(체육교육08-13) 동문이 만든 한국여자축구클럽연맹(KWFCF)주관 대회가 지속적으로 열리고 있다. 그나마도 코로나19 유행 이후로 열린 대회는 단 4개뿐. 서울대 여자축구부가 만들고 국내 40여 대학 여자축구팀이 참여하는 대회 ‘샤컵’도 2년째 쉬어갔다. 예산과 지원금 없이 부원들이 섭외부터 후원까지 직접 준비하는 행사라 애정이 남다르다.

샤컵도, 팀도 힘들게 지켜왔음을 알기에 OB들과 돈독할 수밖에 없다. 여름마다 ‘오비전’을 열어 함께 풀코트를 뛰고, 이번 퀸컵에서는 OB 선배가 ‘와일드카드’로 나서 수비라인을 지켰다.

초창기엔 공도 남자축구부에서 빌려 썼다. 넉넉하진 않지만, 모교 스포츠진흥원의 지원으로 한결 환경이 나아졌다. 각종 대회 상품으로 탄 축구용품도 쏠쏠하다. 최근엔 서브 유니폼이 없어 대회에 조끼를 걸치고 뛰는 모습을 본 권성호 지도교수가 사비를 털어 고유의 파란 유니폼을 한 벌 더 맞춰줬다.

권 교수는 대회 생중계를 챙겨보고 직접 축구를 알려주면서 부원을 살뜰하게 챙긴다. 감독과 코치 모두 “이기는 것도 좋지만 다치지 않고, 즐거운 마음으로 ‘행복 축구’ 하자”며 따뜻이 격려해줘서 부원들은 더욱 힘이 난다.



2021년 퀸스컵 출전 기념사진. (SNUWFC 제공)


“대학에 와서야 이 즐거움을 알게 돼 아쉽다”고, 부원 윤하영(자유전공 19입)씨는 말했다. 여자축구를 다룬 에세이 ‘우아하고 호쾌한 축구일기’에 이런 구절이 나온다. ‘인간은 모일수록 좋은 것 같다. 적어도 축구공 앞에서, 특히 여자들은. 무엇보다 축구는 재미있으니까. 너무 재미있으니까’. 여름이 지나면 다시 공 앞에 모인다. 이들의 활약은 또 누군가의 꿈이 될 것이다.

“많은 선배님께서 서울대에도 여자축구부가 있는 걸 모르실 것 같아요. 공부도 운동도 잘하는, 축구에 열정이 엄청난 부원들이 매일 성장하면서 행복하게 축구하고 있습니다. 코로나가 끝나고 ‘샤컵’이 다시 열리는 날, 아주 소소한 관심이라도 선배님들께서 보여주시면 감사할 거예요. 멋진 경기 할 수 있게 응원해 주시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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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