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보기

Magazine

[535호 2022년 10월] 인터뷰 동문을 찾아서

“54년간 변함 없는 ROTC 28개월, 이제 줄일 때 됐다”

박식순 KS그룹 회장·ROTC중앙회 회장

“54년간 변함 없는 ROTC 28개월, 이제 줄일 때 됐다”


박식순 (농업교육77-81)
KS그룹 회장·ROTC중앙회 회장




모교 출신 두 번째 ROTC중앙회장…23만 회원의 중심
국방장관 만나 전역자 취업 지원 업무 협약
지원 경쟁률 8년 만에 6 대 1서 2.4 대 1로
건축시행업, 차 냉연 강판, 벽지 사업체 등 운영


모교 출신 두 번째로 ROTC중앙회장을 맡은 박식순 KS그룹 회장을 10월 6일 서울 반포동 ROTC중앙회관에서 만났다. 모교 출신 첫 ROTC중앙회장은 허진규(금속공학59-63) 일진그룹 회장이다. 1990년 창립된 ROTC중앙회는 학군 장교 출신 23만명의 구심체 역할을 하고 있다.

박식순 회장은 최근 코스모스벽지를 인수해 화제를 모으기도 했다. 작년 7월 KS벽지(구 에프티벽지), 제일벽지에 이은 세 번째 인수다. 자동차용 냉연강판 가공 사업을 주력으로 해 왔으나, 코스모스벽지까지 인수함에 따라 벽지업계에서도 LG하우시스, 개나리벽지, 신한벽지 등과 경쟁하는 위치에 오르게 됐다. 개인 사업과 ROTC중앙회 활동 외 20여 년간 거주 중인 경기 시흥시 발전을 위해서도 다양한 봉사활동을 펼치며, 왕성한 60대를 보내는 박 동문에게 성공하는 삶에 대해 묻고 들었다.



대담 : 오정환 (공법83-87) MBC 부장


-ROTC중앙회장을 맡으신 지 1년여가 흘렀습니다. 그동안 어떤 활동을 해 오셨는지요.
“‘국가에 충성하고 국민에게 봉사하는 ROTC상’을 만들기 위해 노력했습니다. 중앙회관 옥상에 대형 태극기 게양대를 설치한 일이 기억에 남습니다. ROTC 2기이신 윤용혁 디에스리퀴드 회장님의 기부로 이뤄졌습니다. 반포 사평대로를 이용해 출퇴근하는 분들은 오가면서 태극기를 보며 나라 사랑의 마음을 되새길 수 있을 겁니다. 또 지난 8월 이례적인 폭우로 생활 터전을 잃은 이재민을 돕기 위해 사회복지공동모금회에 5000만원을 기부했고, 관악구 일대 침수 200가구에 도시락을 배달하는 봉사활동도 펼쳤습니다. 러시아 침공에 맞서 결사 항전 중인 우크라이나 국민들에게 희망을 주고자 모금 운동을 전개해 1억원을 주한 우크라이나 대사관에 전달했습니다.”

-현재 ROTC 최대 현안이 복무기간 단축과 취업난 해소라고 들었습니다.
“2014년 6 대 1이었던 ROTC 지원 경쟁률이 지난해 2.4 대 1이었습니다. 그동안 후보생 정원을 대폭 축소했는데도 일부 대학은 정원 미달 사태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모교 등 수도권 대학은 그 정도가 더 심각하고요. 우수한 초급장교 확보에 비상이 걸렸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가장 큰 이유는 긴 복무기간과 취업난 때문입니다. 병사의 복무기간은 54년간 7번 변경돼 50% 감소된 18개월인 반면, ROTC 복무기간은 54년 동안 28개월을 그대로 유지하고 있습니다. 또한 최근 병사들의 월급 인상으로 모든 훈련을 마친 4학년 후보생들이 중도 하차하는 일까지 발생하고 있습니다. ROTC중앙회는 매년 국회 세미나를 열어 우수 초급장교 확보를 위한 제도 개선을 지속적으로 요구하고 있습니다. 지난 9월 13일 윤석열 대통령께서 공약하신 ‘ROTC 복무기간 단축’을 이끌어내고자 국방부장관과 환담을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단기복무 간부 취업 지원’을 위한 업무협약을 맺었고, ROTC 복무기간 단축과 미래의 군 인재인 ‘주니어 ROTC 법제화’에 대해 협의했습니다. 참고로 주니어 ROTC는 2014년 한민고에 처음 창단했으며, 현재 20여개 고등학교에서 동아리 형태로 운영중입니다.”

-ROTC 지원 동기는 어떻게 되십니까.
“남자로서 일반 병사로 군 복무하기보다, 장교가 되고 싶어 ROTC를 선택했습니다. 제 인생 최고의 선택이었다고 생각합니다. 전공 학문을 공부하면서 군사학 공부, 훈련을 병행하는 것은 쉽지 않았습니다. 그러나 이런 경험은 강인한 정신력과 체력을 키워주었고, 많은 ROTC 선후배들과 동기들을 만나게 해주었습니다. 4학년 때는 중대장 후보생을 맡아 학군단장 및 훈육관, 그리고 소대원들을 연결해 주는 역할도 해 군 생활과 향후 사회생활에 밑거름이 됐습니다.”

-학군 19기로 임관해 39사단 117연대 2대대 인사장교로 전역을 하셨습니다. 군 경험을 인정 받아 대기업에서도 인사 분야에서 일하게 되신 건가요.
“그런 면이 없지 않아 있습니다. 럭키소재 인사과장, 한라중공업 인사기획팀장 등을 맡았습니다. 이런 일을 하면서 많은 사람들을 만났고, 기업에 적합한 인물의 특성과 성향을 파악할 수 있었습니다.”

-안정적인 대기업을 그만두고 건축시행업, 제조업까지 도전합니다. 전혀 생소한 벽지회사까지 인수하고요. 도전적이라는 인상을 받습니다.
“새로운 일 하는 것을 좋아합니다. 뭔가를 시작할 때 최악의 경우를 생각하고, 투자한 게 손실 나지 않겠느냐 판단하고, 그렇지 않겠다는 확신이 들면 바로 결정합니다. 매사 긍정적이고 창조적으로 생각하려고 합니다.”

-남편이 모험적인 결정을 할 때 대개 부인이 말리지 않습니까.
“아내가 목회(시흥 군자대현교회 담임) 하는 사람이다 보니, 사업에 대해 잘 모릅니다. 제가 말하면 대부분 지원해주고 격려해 주는 입장입니다. 지금까지 사업하면서 큰 문제도 없었고요. 제가 직장 생활하면서 인사 파트 외 영업 관리, 총무 일도 해 봤어요. 사업할 때 큰 도움이 됐습니다. 보면 얼추 그림이 그려지거든요. 회사를 인수할 때는 몇 달간 잠 못 자고 고민도 하지만요.”

-KS그룹의 주력이었던 철강자동차·부품은 첨단 산업인데 비해, 벽지산업은 전통 산업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벽지회사를 인수하게 된 배경이 궁금합니다.
“우리가 처음 인수한 에프티벽지(구 거북 벽지)는 세계적인 나노섬유와 필터 전문기업인 에프티이앤이의 자회사였습니다. 이 회사가 어려워지면서 자회사를 매각하기로 한거죠. 그 회사의 감사로 있던 친구가 관심을 가져보라고 하더군요. 알아볼 겸 에프티벽지의 공장장을 만나 설명을 들어보니 인수해도 괜찮겠다는 확신이 들었습니다. 인수 후 흑자 전환하고 그 다음 해 제일벽지도 어렵다는 이야기를 듣고 인수하게 됐죠. 지난 8월 코스모스벽지도 매물로 나와 우연찮게 세 개의 벽지 회사를 거느리게 됐습니다. 인테리어 산업은 주택 경기와 연동돼 현 상황은 썩 좋진 않지만, 장기적으로는 나쁘지 않다고 봐요. 코로나 기간에도 인테리어에 관한 관심이 커져, 벽지산업은 괜찮았습니다. 인테리어 산업은 일종의 패션 산업이라, 오너가 신경을 많이 써야 됩니다. 트렌드를 읽고 앞서가야 하거든요. 디자인 경쟁력이 곧 제품 경쟁력이라 해외 시장 동향도 살피고, 디자인연구소도 설립했습니다. 재미있습니다.”

-벽지 사업이 자동차 강판 제조와는 많이 다를 것 같습니다.
“벽지는 제조 공정에서 불량률이 높아요. 반면 강판 제조는 불량률이 0%에 가깝습니다. 벽지는 색깔, 문양, 두께 등이 고르게 나와야 하는데 그게 쉽지 않거든요. 벽지공정의 길이가 약 60미터입니다. 그 공정 중에 조색불량도 있고, 오염도 되고 핀트가 맞지 않는 경우가 있습니다. 불량률을 줄이는 게 원가 절감으로 이어지지요. 12% 나던 불량률을 현재 5~6%로 줄였어요.”

-경영 철학을 들려주세요.
“회사가 조금 커지면 내 회사가 아니더라고요. 구성원이 함께 일구는 삶의 터전이라고 생각하고, 권위적인 기업문화를 배격하고 수평적 리더십을 강조합니다. 성과가 나면 직원들과 고르게 나누려고 노력합니다. 생산직, 사무직, 학력, 남녀 차별도 없습니다. 시장을 중심에 두고 개인성과보다는 팀중심의 성과를 중요하게 생각합니다.”

-한창 사업을 할 때 자녀분이 고등학생이었던 것 같은데, 공부를 무척 잘했던 모양입니다. 지금 차병원 교수님이시죠? 자녀 교육법이 궁금합니다.
“중학교 2학년 때 서울대 영재 1기로 선발이 됐어요. 화학 영재로요. 이 아이가 공부를 좀 하겠구나 싶어 자기주도 학습하는 방법을 많이 강조했습니다. 새 학기가 시작되면 연말까지 계획표를 작성해 시간 관리 습관을 갖게 했고요. 잘 따라와줬고, 저도 주말이면 신경을 써서 지도를 해줬지요. 아이가 늦게까지 공부하면, 저도 자지 않고 책을 읽거나 하면서 아이가 잘 때 같이 잤습니다. 안산 동산고 입학 배치고사를 수석하고 졸업 할 때는 교육감상을 수상한 후 차의과대학교에 전액 장학금을 받고 들어가 지금은 대구차여성의학연구소 교수로 열심히 활동하고 있습니다.”

-사모님이 목회자이신데, ‘교회 오빠’로 만나신 건가요?
“(웃음)친구 소개로 만나, 야학 활동하면서 친해졌어요. 교회는 제가 전도했습니다.”

-어떤 인터뷰에서 ‘절벽에서도 눈을 뜨고 있으라’는 말씀이 인상적이었습니다. 지금까지 살아오시면서 가장 큰 위기는 언제였고 어떻게 극복하셨습니까.
“제가 첫 건축 시행사업을 시작했을 때 IMF를 맞았습니다. 골조가 2층 정도 올라간 상황인데, 시공사가 부도가 날 것 같아 가봤더니 정말 짐을 싸고 있더라고요. 방법을 총동원해 어렵게 시공사를 변경하고 건축을 잘 마무리 했고, 분양도 순조롭게 됐습니다. 위험한 순간이긴 했지만, 이후 큰 위기는 없었던 것 같습니다. 뭐든지 하면 된다는 의지가 강했고, 어떻게 보면 하나님의 은혜라고 생각합니다.”

-마지막으로 후배들에게 한 말씀 들려주십시오.
“군대에 격려 차 가보면, 우리 때와는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능력 있는 친구들이 참 많아요. 제가 뭐라 안 해도 잘할 것으로 봅니다. 도전할 만한 분야는 무궁무진하니, 자신을 믿고 과감하게 뛰어들었으면 합니다.”정리=김남주 기자


박 회장은

1957년 충북 괴산에서 태어났다. 청주농고와 모교 졸업 후 1981년 ROTC 19기로 임관해 39사단 117연대 2대대 인사장교로 전역했다. 럭키소재 인사과장, 한라중공업 인사부장·영업관리부장·인사기획팀장 등을 지냈다.

1997년 시흥시 정왕동에서 상업용지를 분양받아 건축 시행사업을 시작했다. 이후 거짓말탐지기, 프로젝터 램프 제조, 방충망 사업 등을 펼치다 2009년 KS그룹의 모체인 케이앤피이노텍을 설립, 자동차용 냉연강판을 가공해 현대 기아차에 납품하는 중견기업으로 성장시켰다. 또한 자동차에 장착되는 지능형배터리센서(IBS)를 생산하는 자동차용 전장품 제조 기업인 케이에스더블유를 설립했다. 케이에스더블유는 2019년 KS벽지, 2020년 제일벽지, 2022년 코스모스벽지를 각각 인수해 추가했다. 그밖에 케이엔피이노텍의 원자재를 운송하고, 운송면허와 주선면허까지 보유한 케이엔피물류도 경영하고 있다.

대외 활동으로 사)대한민국ROTC통일정신문화원 이사장, 재)ROTC장학재단 감사를 맡고 있고, 경기평화통일포럼 운영위원장 등을 역임했다.

군자대현교회 이희수 담임 목사가 부인이며, 아들 박동수 차병원 교수는 대구차여성의학연구소를 영남권 최대 난임연구소로 발전시킨 주역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