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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22년 9월] 뉴스 본회소식

수요특강: 우크라이나 사태, 한반도 국제관계의 전환기적 사건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

수요특강
우크라이나 사태, 한반도 국제관계의 전환기적 사건

위성락(외교73-77)
전 러시아 대사



미·서방 대 러·중국 대결 속
한국, 외교정책 좌표 정해야


“우크라이나 사태는 한반도의 국제관계 전반을 바꿔놓는 전환기적 사건입니다. 미국에 기울어지되 중국·러시아와도 그리 멀지 않은, 새로운 균형점과 리스크 헤징 대책을 세워야 해요.”

8월 24일 위성락 전 러시아 대사가 ‘우크라이나 사태와 한반도’를 주제로 본회 수요특강 연단에 섰다. 위 동문은 옛 소련의 일부로서 같은 체제 안에 있었던 러시아와 우크라이나 간의 뿌리 깊은 갈등의 역사를 조망하는 한편, 미국을 비롯한 민주주의 진영과 러시아로 대표되는 전제주의 진영 간의 대결 양상을 통시적으로 고찰함으로써 한국 외교가 나아갈 방향을 제시했다.

“역대 정부는 미·중·러 사이에서 사안 별로 다소 편의적인 대처를 해왔다고 할 수 있습니다. 뚜렷한 정책적 좌표나 지향점 없이 강한 압력이 들어오면 이를 들어주는 일이 흔했죠. 그러다 보니 미·중·러로 하여금 원하는 게 있으면 더 큰 압력을 가하도록 자초하고 말았습니다. 국가 정체성에 맞는 기준점을 세우고 이를 바탕으로 외교 관계의 균형점을 찾으면, 우리 정책의 일관성, 일체성, 예측가능성과 지속가능성이 커지고, 미·중·러 모두 한국에 대한 기대 수위를 조정하게 될 겁니다.”

미국이 우리를 3시 방향으로 끌어당기려 하고, 중국이 우리를 9시 방향으로 끌어당기려 한다고 가정할 때, 위 동문이 제시하는 한국형 좌표는 1시에서 1시 반. 진보 정부가 들어서면 1시, 보수 정부가 들어서면 1시 반 정도가 적당할 것으로 내다봤다.

“일본은 2시 정도의 행보를, 호주는 2시 반 정도의 행보를 보여왔습니다. 그러니 한국이 1시에서 1시 반을 유지하면 러시아나 중국의 관점에서 볼 때, 한국은 서방측 국가 중에서도 상대적으로 온건한 입장을 띠는 나라로 비칠 것입니다. 이를 기초로 러시아·중국과 협조할 영역을 찾아야 해요. 그렇게 일정한 협력 공간을 확보한 후 한반도의 평화 안정, 비핵화 등 국제사회의 공동 이해에 해당하는 의제에 관해선 사안을 별개화 하여 미·러 대립이나 미·중 대립으로 인한 악영향을 가급적 덜 받도록, 나아가 미·러, 미·중이 대화와 협력을 하도록 노력해야 합니다.”

위 동문은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을 우크라이나의 친서방화를 저지하기 위한 노력의 일환이라고 말했다. 동유럽의 구 바르샤바 조약 기구 회원국이 대거 나토에 가입하고 옛 소련의 일부였던 우크라이나마저 가입이 논의되는 상황을 심각한 국가안보위협으로 판단했다는 것. 옛 소련의 영향권에 있던 국가들이 자유화, 민주화되는 파고 속에 체제안보위협까지 더해지면서 단기간에 우크라이나를 패배시켜 중립국으로 묶어 두려는 시도로 이번 사태를 보는 견해가 지배적이라고.

“러시아의 대서방 정책은 이견을 부추겨 분열시키는 방향이었습니다. 트럼프 행정부 땐 미국과 유럽이 이견을 노출했고, 영국이 EU를 탈퇴하는 상황이었죠. 그런데 우크라이나 사태 이후 미국과 유럽 간, 영국과 EU 간 공조가 강화됐습니다. 중립국인 스웨덴과 핀란드가 나토 가입신청을 하는 지경에 이르렀죠. 러시아는 단합을 이룬 서방에 대처하고 전방위적인 국제제재를 견뎌야 하는 난국에 처했습니다. 결과적으로 미국과 서방을 중심으로 한 ‘The West’와 러시아와 또 다른 전제주의 대국인 중국 등 나머지 국가들 ‘The Rest’ 간의 갈등이 더욱 심해질 전망입니다.”

우크라이나 사태가 한반도에 끼치는 영향이 적을 리 없다. 미국의 동맹국이자 세계 10위권 무역국 한국의 운신 공간은 더 좁아졌다. 한국이 서방측과 따로 가기는 어렵다. 더욱이 우크라이나 사태는 우리에게 국가 위기 상황에서 동맹이 얼마나 중요한지 각인시켰다.

사태 초기, 문재인 정부는 미국 주도의 국제제재 참여를 주저했다. 그러나 미국의 압력이 강해지고 국제사회와 국내 여론이 비등해지면서 뒤늦게 제재에 참여했다. 제재에 참여하면서도 문재인 정부는 여전히 조심스러운 자세를 보였지만, 러시아는 한국을 비우호적 국가로 분류했다. 러시아와의 무역 투자에 제약이 커졌고 우리 경제와 기업활동에 큰 부담으로 작용하고 있다. 민생에도 영향을 끼치는 것은 물론이다.

“최근 출범한 윤석열 정부는 미국과의 동맹 관계를 중시하고, 이를 강화하는 데 주력하고 있습니다. 새 정부의 노선은 안 그래도 북한·중국·러시아의 반작용을 초래하게 돼 있었는데, 우크라이나 사태까지 더해졌으니 3국의 반발도 더 세질 수밖에 없죠. 수교 30여 년 사상 최저점에 있는 한국과 러시아의 관계가 앞으로 더 멀어질 거예요. 중국은 △독립자주 △선린우호 △안정적인 공급망·산업망 수호 △내정 간섭 자제 △다자주의 견지 등 5대 원칙으로 압박하고 있고, 북한은 윤석열 대통령의 실명을 거론하며 망언, 추태 운운하고 있습니다. 포스트 우크라이나 시대는 새 정부 외교의 진정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본회는 이날 수요특강에 참석한 동문 전원에게 위 동문의 책 ‘한국 외교 업그레이드 제언’을 증정했다.

나경태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