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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46호 2023년 9월] 뉴스 본회소식

“ESG, 일시적 유행 아닌 투자·경영의 근본적 고려사항”

수요특강
“ESG, 일시적 유행 아닌 투자·경영의 근본적 고려사항”


정준혁 (법학96-02)
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기업 소유구조·경쟁상황 영향 받아 
‘선관주의의무’ 관련 신중해야


“‘개같이 벌어서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 다들 아시죠. ESG에선 그 속담을 좋아할까요, 싫어할까요?”

해야 한다는데, 알 것도 같은데, ‘그래서 뭐냐’면 말문이 막힌다. 기업 경영에서 뜨거운 화두 ‘ESG(Environmental·Social·Governance)’ 얘기다. ‘기부하고 환경 보호하면 되는 거 아닌가?’ 막연한 이들을 위한 ‘1타 강사’급 강연이 있었다. 8월 23일 정준혁(법학96-02) 모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가 마포구 장학빌딩에서 ‘ESG의 과거, 현재와 미래’라는 제목으로 연 수요특강이다.

정 동문은 모교 법대 재학 중 사법시험(43회)에 합격 후 법무법인 세종에서 M&A 전문 변호사로 활동했다. 2020년 모교 법학전문대학원에 부임해 회사법과 금융법, ESG와 VC 등을 연구하고 있다. ESG는 투자자와 기업의 의사 결정에 있어 전통적으로 고려해온 재무적 요소뿐만 아니라 ‘환경·사회·지배구조’라는 비재무적 요소도 함께 고려하자는 개념. 회사법 전문가인 정 동문이 ESG에 주목한 것은 “이제 ESG는 새로운 이슈를 넘어 경영과 회사법 전반에 녹아들어 버렸기 때문”이다. 먼저 20년 전 ESG 논의의 태동부터 짚었다.

“2004년 UN이 ‘Who Cares Wins’ 보고서에서 처음 ESG라는 용어를 사용합니다. 2006년 제정된 ‘UN 책임투자원칙’은 투자 분석과 의사결정에 ESG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내용에 JP모건, 골드만삭스, 국민연금 등 전 세계 금융기관 5000여 곳이 서명했죠. UN이 결의한 기후변화, 빈곤 퇴치 등 지속가능발전목표 달성을 위해선 기업 동참이 필요했거든요. 기업의 활동을 변화시켜 인류의 문제를 해결하려 한 거죠.”

그랬던 ESG가 약 5년 전부터 중요한 개념으로 급부상한다. 경영자와 투자자 모두 ‘오로지 기업 이익만 중요하다’는 오랜 기조를 뒤엎고 ESG와 이해관계자주의에 대해 말하기 시작했다. 미국의 경영자 모임인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은 ‘기업은 고객, 근로자, 공급자, 지역사회 등 이해관계자들에 기여하고, 주주들에게 장기적 가치를 제공한다’는 내용의 성명서를 발표했다. 투자자 측에서도 세계 최대 자산운용사 블랙록의 CEO 래리 핑크를 위시한 대형 자산운용사들이 일제히 ESG 요소를 투자에 반영하겠다는 입장을 표명했다.

“간단하게 말씀드리면, ESG 요소에 대한 정치적 압박이 높아졌기 때문이죠. 기후 변화 등이 심각해지면서 사회적 압박도 커졌고요. 국민연금과 같은 유니버설 투자자들도 시스템 리스크의 해결을 위해 ESG를 중시해요. ‘개같이 벌어 정승같이 쓴다’는 속담을 기업에 대입하면 수단 방법을 가리지 않고 돈을 벌어 좋은 곳에 쓰라고 해석되죠. ESG는 ‘정승같이 벌라’고 합니다. 환경오염해서 번 돈으로 환경 정화하지 말고, 벌 때부터 착하게 벌라는 거죠.”

그러나 현재 분위기는 다소 심상찮다. ESG가 정치적 논쟁으로 비화된 미국을 중심으로 반감이 늘어나고 있다. ‘백래시’(반발)에 맞서 공급망 실사법 등 EU의 ESG 관련 규제는 한층 증가하고 있지만, 우크라이나 전쟁과 에너지 위기를 거치면서 유럽 내에서도 반대하는 목소리가 크다.

“법률의 한계를 극복하고 법률이 요구하는 것 이상으로 환경, 사회 문제를 고려하겠다는 의도로 출발한 ESG인데, 결국 법이 되어가고 있으니 모순이죠. 유럽 기업들이 ESG를 경쟁력 회복 기회로 삼는 것도 현실이고요. 탄소국경조정제도를 통해 탄소규제 강도가 낮은 역외 국가 기업에게 관세를 부과한다고 하죠. 표현이 거칩니다만 조금은 ‘ESG 제국주의’적인 느낌도 있습니다.”

‘ESG가 과연 환경, 사회문제를 해결하는가’란 회의론도 제기된다. 비즈니스 라운드테이블의 ESG 선언 이후 해당 기업들을 살펴보니 ‘아무것도 변하지 않았다’는 조사 결과가 있다. 저조한 기업 실적의 핑곗거리로 ESG가 쓰인다는 비판도 나온다. 북유럽 등 글로벌 연기금들은 탄소자산을 가진 기업 지분을 처분하며 압박하지만, “오히려 그를 계기로 ESG가 중요치 않은 주주로 손바뀜할 뿐이라면 (기업에 영향을 주는 데) 실효성이 있는지 의문”이라고 정 동문은 지적했다.

2020년 이후 국내 기업들에 각종 ESG 위원회와 부서가 생겨났고, 로펌과 컨설팅펌의 자문 활동도 활발하다. 연기금 또한 ESG 요소를 대폭 고려하고 있다. 전세계적으로 ESG 공시가 중요해지는 추세에 따라 금융위원회는 단계적으로 ESG 공시를 의무화한다는 계획이다. “국내 기업들은 ESG를 새로운 기회보다 비용이 소요되는 새로운 규제의 일종으로 인식하는 것이 현실”이라고 그는 말했다.

경제가 어려우면 ESG 열풍이 좀 사그라들까. 정 동문은 “ESG란 비재무적 요소와 재무적 요소가 상충하는 게 아니라 ‘함께’ 고려하는 것이기 때문에 경제 상황이 악화한다고 ESG가 사라지지는 않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전세계적으로 투자, 대출, 공급망 관리에 있어 ESG 요소가 고려되기 때문에, 일시적인 열풍이 아닌 경영과 투자의 근본적인 고려 사항으로 자리 잡고 있다”고 했다. 좋든 싫든 앞으로 계속 ESG에 촉각을 곤두세울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기업 소유 구조와 경쟁 상황에 따라 은행 대출, 연기금, 소비자 등 다양한 채널을 통한 ESG 압박의 영향력이 다를 것이라 가늠해볼 수는 있다. “민영화된 공기업, 금융지주사 등을 제외하고 대부분의 기업에 지배주주가 존재하는 국내 기업은 주식소유구조가 분산된 미국이나 영국에 비해 ESG 투자가 잘 작동하지 않을 수 있다”는 분석. 소비자의 불매 운동은 독과점 기업엔 덜 치명적일 것이다. 글로벌 진출을 꿈꾸는 기업이라면, 글로벌 공급망의 ESG 기준을 간과해선 안 된다.

ESG 관련 새로운 법률 문제와 분쟁도 나타나고 있다. ESG에 대한 기업 이사들의 선관주의의무(선량한 관리자의 주의 의무) 범위 논쟁이 대표적이다. 이미 해외에선 많은 판례가 생겼고, 국내에서도 2019년 일명 ‘강원랜드 150억원 기부금’ 판결이 ESG 관련해 생각거리를 남기는 판례라고 볼 수 있다. 정 동문은 “이러한 흐름이 있기 때문에, ESG경영이 트렌드라고 해서 무조건 찬성하기보다, 신중하게 검토해 보시길 바란다”고 조언하며 강의를 마쳤다. 본회는 이날 참석자 전원에게 책 ‘실전 ESG경영’을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