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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52호 2024년 3월] 뉴스 본회소식

“인간다움에 대한 도전에 눈 감지 마십시오”

수요특강

“인간다움에 대한 도전에 눈 감지 마십시오”


김기현 (철학78-83)
모교 철학과 교수


힘들게 얻은 공감·이성·자유
‘인간다움’ 논의해야 미래로 간다


“인문학의 정수는 결국 인간다움에 대한 이야기예요. 정년을 앞두고, 비로소 인문학의 본령에 관한 주제를 얘기하기 시작했네요.”

2월 28일 마포구 본회 장학빌딩은 이른 아침부터 90명에 가까운 동문들로 북적였다. 본회 수요특강에서 김기현(철학78-83 모교 발전재단 부이사장) 모교 철학과 교수가 말하는 ‘인간다움’에 대해 듣기 위해서다. 최근 그는 40여 년 철학 연구의 소산으로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을 내놓고 한 권의 책으로 갈무리했다. 무엇이 인간을 인간답게 만드는가. 어쩌면 간절히 찾던 답을 구할 수 있으리란 기대감과 함께 강의가 시작됐다.

김 교수의 말에 따르면 지금 우리가 말하는 ‘인간다움’은 거저 얻어진 것이 아니다. 인류사 속에서 간난신고 끝에 획득한 ‘인간다움’의 재료들, ‘공감’, ‘이성’, ‘자유’다.

“공감 능력은 어머니에게 주어짐으로써 종족 보존에 중요한 능력이죠. 또 다른 사람에 대한 가혹 행위를 막아주고 나와 같은 하나의 주체로서 자아를 갖고 꿈을 만드는 존재임을 깨닫게 해줌으로써 공존을 위한 규범의 출발점이 됩니다. 그러나 공감도 내 가족과 TV 속 먼 나라 사람에게 느끼는 것이 다르죠. 이 공감의 편향성을 보완해주는 게 공감보다 뒤늦게 인간의 자산으로 자리 잡은 이성입니다. 그리고 불과 400~500년 전, 인간의 자율성이 결합되어 공감 능력과 이성을 행동으로 옮길 수 있게 되면서 비로소 지금과 같은 인간다움에 대한 생각이 자리 잡게 됩니다.”

그러나 김 교수는 “21세기를 사는 우리들은 ‘인간다워야 한다’는 생각과 ‘우리도 짐승에 불과하다’는 생각이 함께 자리 잡은 일종의 인지 부조화를 겪고 있다”고 말했다. 그 인지 부조화의 뿌리를 찾는다며 레오나르도 다 빈치의 ‘모나리자’를 화면에 띄웠다.

“모나리자 이전의 초상화엔 늘 엄숙하고 정숙한 모습만 담겼습니다. 고대와 중세에서 인간의 감정과 욕망은 불온하고 위험한 것으로 억제됐기 때문이죠. 근대에 와서 개인이 해방되고, 권위주의를 벗어나며 쾌락에 대한 생각도 달라지기 시작했습니다. 이 새로운 시대를 다 빈치가 감지한 거죠. 모나리자를 불러 미소를 짓게 함으로써 즐거움과 쾌락이란 감정을 화폭에 담아내고 새로운 시대의 도래를 알립니다.”

모나리자가 상징하는 쾌락의 해방은 뒤이어 발전한 과학과 결합해 인간의 이익을 추구하는 산업의 발달로 이어진다. 그러나 산업 사회의 그늘에서 인간의 이성에 대한 회의감이 싹텄고, ‘이성에 의해 구성된 도덕의 체계가 인간을 다른 동물과 구분시켜준다’는 생각은 흔들리기 시작했다. 19세기 포화를 받아 약해진 이성은 4차 산업혁명 시대 또다른 도전을 맞이했다. 대면소통의 축소로 공감능력은 후퇴되고, 알고리즘이 대신해주는 선택에 인간의 자율성 또한 설 자리를 잃어가고 있다.

김 교수는 “인간다움에 대한 개념이 흐릿하면 개인이 어떻게 살아가고, 세상이 어디로 가야 하는지도 흐릿해진다. 그래서 우리는 인간다움에 대해 정확히 알아야 한다”고 했다. “인간다움에 대한 도전에 눈을 감는 것은 결코 인간답지 않기에”, 현 시점에서 인간다움을 새롭게 논해야 한다는 것. 그는 “인공지능 시스템은 ‘무엇을 해야 하는가’를 선택하는 인간의 의식을 흉내낼 수 없기 때문에 인간과 같아질 수 없다. 앞으로 인간에게 중요한 지능은 문제를 푸는 게 아닌 문제를 던지는 능력으로서의 지능이며, 그 지능의 핵심은 인간의 정서와 감정을 이해하는 능력”이라고 했다. “인간이 과거 오랜 인고의 과정을 통해 얻은, 인간다움을 구성하는 공감, 이성, 자율의 영역은 하나같이 공격 받고 있습니다. 과연 이 도전을 그대로 받아들이고 인간다움이 변해가는 과정을 수용할 것인지, 과거의 인간다움에서 중요한 부분을 지켜나갈지는 이제 우리가 결정해야 할 몫입니다.”

예정보다 길어진 강의에도 집중의 끈을 놓지 않는 청중의 모습은 인간다움에 대한 열망을 방증하는 듯했다. 강의 후 한 동문은 “전공의 파업이 한창이다. 높은 지능(이성)을 가진 이들의 집단이 공감대를 형성하고 강력하게 행동하는 모습이다. 교수님의 생각이 궁금하다”고 질문했다.

“어려운 질문”이라면서도 김 교수의 답은 오래 걸리지 않았다. “공감이 가진 또 하나의 위험성이 생각나네요. 사람은 공감하고 있는 집단 속에 들어갈 때 삶에 대한 안정감을 얻기 마련입니다. 하지만 때로 진영 논리가 심한 사회에선, 특정 집단에 속해 자신들만의 공감을 상승시키는 경우를 보게 되죠. 공감을 보완하는 이성이 도전받고 있기 때문에 나타나는 일이죠. 공감이 진영 논리를 강화시키는 쪽으로 가는 건 안타까운 일입니다. 어느 쪽이 옮고 그르고를 떠나, ‘공감을 느끼는 우리’를 넘어서서 생각하는 이성의 영역은 어디로 갔는지 다시 한 번 생각하게 됩니다.”

두 번째 질문에서 한 동문은 “강의에서 언급하신 모나리자보다 국립중앙박물관의 반가사유상이 가진 신비감과 사유의 깊이가 한 수 위 같다. 철학적 관점에서 두 작품엔 어떤 차이가 있는지” 물었다. “반가사유상은 현재의 삶 속에서 느끼는 즐거움이라기보다, 영혼의 영역이 현재를 떠나 어떤 초월적인 영역에 도달함으로써 주어지는 즐거움, 기쁨을 표현하는 것 같아요. 반면 다 빈치가 모나리자를 통해 얘기하고자 한 건 우리가 살고 있는 현세 속에서의 어떤 즐거움인 것 같고요. 초월적인 세계에서 느끼는 것과 현재에 느끼는 것, 둘을 비교하는 관점에서 작품을 볼 수 있겠네요.” 사회와 철학, 예술과 철학을 부드럽게 잇는 답변에 모두 고개를 끄덕였다. 이날 참석자 모두에게 김 교수의 책 ‘인간다움’을 증정했다.

박수진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