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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34호 2022년 9월] 뉴스 본회소식

기부자 인터뷰: “자랑스러운 큰딸 이름으로 세상 돕습니다”

정기웅 (대학원83-89) 동문 가족


“자랑스러운 큰딸 이름으로 세상 돕습니다”

정기웅 (대학원83-89) 동문 가족

세상 떠난 정현영 동문 기리며
본회 장학금 1억원 기부



정기웅 동문의 가족사진. 왼쪽에서 두 번째가 4년 전 갑작스럽게 세상을 떠난 첫째딸 정현영 동문.


“세상살이에 호기심과 즐거움이 넘쳤던 아이, 삶을 사랑했고, 매 순간 기쁨으로 충만하게 빛났던 딸의 못다한 꿈이 이어지길 바라며 기부합니다.”

지난 5월 정기웅(대학원83-89) 동문·이윤희씨 부부가 4년 전 세상을 떠난 첫째딸 정현영(불문10-15) 동문의 이름으로 본회에 장학금 1억원을 기부했다. 정현영 동문이 다녔던 UCLA에 50만달러를 쾌척한 데 이어서다. 짧지만 아름다웠던 생애와, 기부를 결심한 배경에 대해 어렵사리 얘기를 청했다.

“이민자 가정이지만 힘든 내색 없이 잘 헤쳐왔던 큰딸은 새로운 시도에 주저함이 없었어요. 그 중에서도 서울대에서 보낸 시절이 가장 행복했을 겁니다.” 정 동문 부부는 정현영 동문이 3살 무렵 아르헨티나로 이민했다. 한인들의 섬유 산업이 활발한 현지에서 원단을 수입하고 생산하는 회사 ‘기리나 텍스(Kilina Tex)’를 차려 운영해왔다. 고교 졸업 후 정현영 동문은 방학 때 가본 한국에 매료돼 충분히 갈 수 있던 미국 대학을 마다하고 서울대를 택했다.

부모가 바라본 정현영 동문은 늘 분주하게 뭔가를 해내던 딸이었다. 전공인 불어불문학 외에도 서어서문학과 경영학을 부전공하면서 영자신문 동아리 편집장으로 활동했다. 틈틈이 관악구청에서 어린이 영어교습봉사, 대형병원 외국인 환자 통역 봉사도 했다. 작은딸 정현정(경영11-16) 동문도 언니를 따라 서울대에 진학해 자매가 학교 앞에 방을 얻어 함께 살았다.



정현영 동문의 모교 졸업사진. 


인권에 관심이 많아 모교를 우등으로 졸업하고 미국 UCLA 로스쿨에 진학했다. 2학년 1학기를 마치고 한국에 잠시 들어왔을 때였다. 머리가 아파 찾은 병원에서 청천벽력같은 병을 진단 받고 투병생활을 시작했다.

로스쿨 졸업 후 정현영 동문은 대형 컨설팅 펌에 입사가 확정돼 있었다. 무척 속상했을 텐데, 병석에서도 가족들을 위로하며 따뜻한 마음씨를 잃지 않았다. 사업으로 바쁜 와중에도 아르헨티나 한인 사회에 헌신적으로 조력하는 부모를 보고 자라서일까. 어머니 이윤희씨는 “아이들에게 가진 만큼 사회에 돌려줘야 한다는 얘기는 했지만, 현영이가 원래 도움이 필요한 누군가를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성품이었다”고 했다. “대학생 때부터 후원하던 아동 수를 투병 중에 늘렸어요. 탄자니아 학생들이 화장실이 열악해 고생한다는 소식을 듣고 마음아파 해 딸 이름으로 우물을 만들고 화장실과 강당도 지어줬죠.” 내 딸같은 젊은 환자들이 눈에 밟혀, 암 정복에 도움 되길 바라는 마음으로 분당 모교 병원에 1억3000만원을 기부했다. 그런 지성에도 불구하고, 반 년간 병마와의 싸움 끝에 정현영 동문은 27세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가슴에만 묻어두기엔 너무 빛나는 삶이었다. 소식을 들은 UCLA 총장과 로스쿨 학장이 위로 편지를, 교수진과 친구들은 추도식 영상을 보내왔다. ‘에너지와 생명력 가득했고, 작은 것에 감사하며, 사람들의 선한 면을 포착할 줄 알았던 친구였다’는 헌사와 함께. 로스쿨에서도 주말엔 불법체류자들의 서류 작성을 돕거나 불우 아동을 위해 법률 상담 활동을 했던 큰딸이었다. ‘엄마, 한 아이가 시력이 나빠서 큰 글자가 보이는 태블릿 PC가 필요하대. 내 거라도 주고 싶은데, 봉사자는 물품을 주면 안 된대’ 안타까워 했었다.

UCLA 로스쿨에 ‘jessica Hyun young Chung’ 이름으로 50만달러를 기부해 영원히 지속되는 장학금을 만들었다. “인권에 관심 있는 이민자 가정 출신 학생, 가정 형편이 어렵지만 이 장학금으로 공부해 다른 이들을 도울 수 있는 학생에게 써달라”고 했다. “하루는 동급생에게 연락이 왔어요. 경쟁 심한 로스쿨에서 도움 받기 쉽지 않은데, 현영이가 필기 노트를 흔쾌히 빌려줬대요. 그 인연으로 자신도 얼마간 장학금을 보태겠다고요. 친구들도 작은 기금을 마련하겠다고 했고요.”

그 따뜻한 반향에 힘입어 찾아온 곳이 서울대다. 딸이 많은 추억을 쌓았던 곳이고 가족 중 셋이나 인연을 맺기도 했다. 동생 정현정 동문도 ‘언젠가 언니에게 갈 몫을 사회에 나누자’는 뜻에 동의해 기부를 이어오고 있다.

‘하느님께서 일찍이 그 영혼을 사랑하셔서 세상의 악에 물들기 전에 안전한 곳으로 데려가셨다. 짧은 생애 동안 완성에 다다른 그는 오랜 세월을 산 셈이다.’ 이윤희씨가 딸을 잃고 매일 성당에 나가 울며 기도할 때 위로가 된 성경 구절이다. 너무나 충실한 삶이었지만 딸이 혹시라도 못다한 일이 있을까 부모는 세상 구석구석을 둘러본다.

“정말 이렇게 어여쁜 아이가 내 자식이었나, 너무 과분한 자식을 두고 자격 없는 부모는 아니었나. 그 서러움과 그리운 마음에 현영이를 추모하고 기리는 기회가 오면 어떤 일이라도 하고픈 심정입니다. 우리 딸 같은 총명한 젊은이들이 세상의 걸림돌 때문에 좌절하거나 낙담할 때, 우리의 하찮고 작은 도움이나 현영이 얘기가 등불 같은 위안과 격려가 됐으면 합니다.”

박수진 기자